“모세가 이르되, 이제 내가 옆으로 가서 이 큰 광경을 보리라. 떨기나무가 어찌하여 타지 아니하는가, 하였더라.”(출 3:3)
비전에 대한 히브리어로 처음 사용된 것은 호렙산에서의 불타는 가시덤불과 관계가 있다(출 3:3). 이 단어를 어느 성경번역본에는 초자연적인 광경이라고 했다. 이 비전에서 모세는 하나님 그분 자신을 보았다. 하나님은 모세의 임무의 시작, 과정, 목표로서 그분 자신을 보여주셨다. 하나님은 그분의 증거를 위해 유일하게 사역하신다. 그리고 그분은 항상 그분 자신을 나타내시는 것으로 일하신다.
이것은 우리의 개념과는 전혀 다르다. 우리의 개념은 하나님께서 많은 것을 원하시고, 우리가 그분을 위해 많이 이루려고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갈망은 많이 움직이지 않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갈망은 그분께서 겉보기에 성공하는 사역자들에게 말씀하실 이유다.
“내가 정녕 너를 알지 못한다.”(마 7:23)
하나님은 이루는 것을 원하시지 않고, 나타내기 원하신다. 그분의 목표는 많은 것을 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어떤 일을 갖도록 하실 수 있지만 그 책임을 완수하는데 항상 하나님 그분 자신을 나타내신다.
하나님께서 갈망하시는 것
불타는 가시덤불의 비전을 본 후 모세는 그분께서 하나님이셨는가를 물었다. 하나님은 두 가지 주된 일을 모세에게 말했다. 첫 번째 반응은 그에게 그분 자신의 이름을 말씀하셨다.
“나는 나다”(출 3:14)
두 번째 반응은 그분께서 이끌었다는 것을 말씀하셨다(출 3:8, 17).
우리들 중 어떤 이가 우리의 이름을 물었다면 우리는 즉각적으로 대답해 줄 수 있었다.
우리가 명예롭고, 유명한 누군가의 후손이었다면 우리는 그것을 언급하기에 자신 있어 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따르는 것을 질문했다면 우리들 중 대부분이 확실한 대답하기란 아주 곤란했을 것이다. 우리가 젊을 때 그 대답은 배우자를 찾는 것이었을 것이고, 나이가 들어서는 가정을 이끌기 원한다고 말했을 것이다. 그 후에도 여전히 우리는 우리의 직업, 학위, 사회적 지위나 명예의 진보를 갈망할 수 있다. 우리가 영적인 사람이라면 우리는 우리의 목표가 그리스도요, 그분의 교회라는 것을 말할 수 있다. 그렇지만 우리가 “교회”라고 말을 할 때 우리가 의미하는 말은 무엇인가? 우리 각자는 교회를 다르게 정의할 수 있다. 이 정의가 하나님이 갈망하시는 것과 맞지 않을 수도 있다. 우리는 실제로 우리가 추구하는 것을 알지 못한다.
하나님은 자신의 사람들을 갈망하심
하나님은 그분이 원하시는 것을 정확하게 아신다. 그분은 원하시는 것을 산출하시려고 모든 것을 하실 것이고, 결국 그것을 얻으실 것이다. 그런 후에만 그분은 만족하실 것이다. 그분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가? 먼저 그분은 그분이 특별한 보물을 원하신다고 말씀하신다. 이 보물이 세상의 풍성으로 이뤄지는 것은 아니지만 그분께서 사람들을 세상에서 그분 자신께로 불러 내셨다. 모세가 이 비전을 통해 받은 임무는 첫 번째로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사람들, 이스라엘 사람들을 하나님과 함께 머물 산으로 이끄는 것이었다(출 3:12).
나는 아주 좋고, 값비싼 바이올린을 가진 음악가를 안다. 바이올린은 그녀에게 보물이었다. 어느 날 그녀는 바이올린을 내려놓고서 잠시 나간 사이에 바이올린이 사라졌다. 누군가가 바이올린을 훔쳐간 것이었다. 그녀는 오랫동안 화가 나 있었다. 그런데 그녀는 중고 악기점에서 자신의 바이올린이 판매되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녀는 그런 것을 경찰서에 신고하지 않았다. 그녀는 그것을 다시 구매했다. 그리고 기뻐했다. 그녀의 보물은 다시 그녀의 것이 되었다.
우리는 하나님의 보물이다. 사탄은 우리를 훔쳤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찾으셨고, 우리를 이끄셨다. 하나님은 우리를 소중하게 여기신다. 그분은 절대로 우리를 놓아주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개인적으로 사실일 뿐만 아니라 단체적으로도 사실이다. 이것은 이스라엘 자손들이 그분의 보물이 되어야 했다고 말씀하신 이유다(출 19:5). 그리고 교회 역시 그분의 보물이라고 말씀하신다(마 13:44, 밷전 2:9).
하나님의 갈망은 변하지 않는다.
우리가 다양한 것들을 소중하게 여기는 것은 우리의 시대와 환경을 바탕에 근거한다. 아이들은 오랫동안 어떤 특별한 장난감에 큰 관심을 나타낼 것이다. 특별한 장난감에 큰 관심을 갖는 것이 그들이 원하는 유일한 일처럼 보인다. 부모는 아이들이 시간이 지나 흥미를 잃는 것을 알아 아이들에게 줄 장난감을 찾아 많은 시간과 돈을 들인다.
우리가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우리의 갈망은 계속 바뀐다. 우리가 결혼을 하고 나서 우리의 배우자는 우리의 보물이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에게 눈길을 보내지 않는다. 우리가 얼마 후 아이들이 생기고 나서 모든 것이 변한다. 모든 부모는 자신의 아이들을 바라보기를 좋아한다. 우리는 자신들의 아이들이 세상에서 가장 예쁜 아기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자신의 새로운 보물을 간직하고 기념하기 위해 사진을 찍고, 영화를 만든다. 우리의 눈은 서로에게 더 이상 유일하지 않다. 우리 아기들이 우주의 중심이다. 아무것도 아기들을 대체할 수 없다. 그런데 몇 년을 기다려 우리의 아이들은 결혼을 할 것이고, 그들의 아기들을 얻을 것이다. 그러면 우리 손자들은 우리의 새로운 특별한 보물이 된다.
우리가 소중하게 여기는 것은 우리 삶의 무대 크기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절대 바뀌지 않을 것이다. 그분은 영원부터 영원까지 동일하시다. 그분께서 우리를 사랑하신다고 말씀하실 때 절대 바뀌지 않을 것이다. 그분께서 교회를 사랑하신다고 말씀하실 때 영원히 사랑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은 그분께서 원하시는 것을 정확하게 아신다. 그분의 교회로서 우리는 영원히 그분의 보물이다.
아무도 하나님께서 소중히 여기는 보물보다 더 축복받지 못한다. 우리는 각자의 문화에 따라 다른 방법으로 살 수 있지만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이들이라면 우리의 보물은 똑같을 것이다.
“우리가 그분을 사랑함은 그분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이라.”(요일 4:19).
같은 방법으로 우리는 그분께서 먼저 교회를 사랑하셨기 때문에 교회를 사랑한다(엡5:25). 우리는 하나님께서 소중히 여기시는 것을 소중히 여긴다. 이것이 우리가 살아가는데 가장 좋은 방법이다.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들을 위해 좋은 땅을 갈망하신다.
하나님은 그분의 백성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그들을 이집트 사람들의 손에서 건져 내고 그들을 그 땅에서 데리고 올라와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가나안 족속과 헷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히위 족속과 여부스 족속의 처소로 이끌려고 내려왔노라.”(출 3:8)
그분은 가장 풍성한 산출물을 갖도록 가장 좋은 땅을 그들에게 주시기를 원하셨다. 이것은 그분께서 이스라엘 자손을 사랑하셨다는 것과 소중하게 여기셨다는 것을 보여 주신 것이다.
신약성경에서 하나님은 그분의 구속된 백성들, 회복된 백성들로서 우리를 소중하게 여기신다. 우리는 그분의 사랑한 교회를 구성하는 이들이다. 그분은 우리가 그리스도이신 좋은 땅에 거하기를 원하신다. 그분은 우리가 객관적이고, 이론적이지 않기를 원하시고, 주관적이고, 실제적으로 참여하기 원하신다. 우리 모두는 이 풍성한 땅에서 산출된 젖과 꿀을 누리도록 초대받았다.
극소수의 그리스도인들만이 하나님께서 정말 누림이 되실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분은 살아있는 물로서 마심이 되실 수 있다(요 4:10, 7:38). 그분은 생명의 빵으로서 먹음이 되실 수 있다(요 6:35). 하나님은 우리가 구원받은 그날부터 우리의 땅 그리스도께로 이끌려졌기 때문에 우리의 풍성한 공급이 되실 수 있다. 하나님의 보물은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들의 풍성, 넘치는 구원으로서 그분을 누리는 사람들의 무리를 갖는 것이다.
하나님은 그분의 백성들이 해방되기를 갈망하신다.
첫째로,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으로서 우리를 소중히 여기신다. 둘째로, 하나님은 좋은 땅에 대한 우리의 모든 누림을 소중히 여기신다. 셋째로, 하나님은 파라오에게 말하도록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바로가 더 이상 하나님의 백성 위에서 통치할 수 없고, 그들을 가게 해야 한다고 모세는 말했다(출 7:16). 이것은 파라오를 대표한 세상의 군림하는 지배 아래에 더 이상 있을 필요가 없음을 의미한다.
어떤 사람들은 열심히 훈련해 그 부분에서 프로가 된다. 그들은 열심히 일을 하고, 매일 많은 시간을 훈련한다. 그들이 어떤 성과를 내고, 믿지 않는 이들이 성과를 낼 때 모두 좋지만 거기엔 차이가 있어야 한다. 그리스도인들이 성과를 낼 때 하나님 아래에 있어야 한다. 믿지 않는 이들이 성과를 낼 때 이 세상의 파라오 즉 사탄 아래에 있는 것이다. 우리가 구원받은 후 우리가 알기 시작해야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소중히 여긴다는 것이고, 모든 것을 포함한 우리의 누림과 만족의 공급이 되시는 그리스도를 원하신다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사탄의 지배와 통치에서 떠날 것이다.
하나님은 자신을 섬기는 우리를 갈망하신다.
넷째로 하나님은 광야에서 자신의 백성들이 자신을 섬겨야 한다고 말씀하셨다(출 7:16).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을 이끌도록 누군가를 보내실 때 그분께서 모세에게 하셨던 것처럼 그 결과는 항상 섬김의 생활이 되어야 한다.
내가 프린스톤, 옥스퍼드, 하버드 신학교에서 졸업해 많은 지식을 가지고 여기에 와 많은 신학 이론으로 여러분을 가르친다면 여러분은 나의 메시지를 누릴 수 있고, 내가 아주 훌륭한 메신저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종류의 말이 여러분의 귀를 간질거리게 하고, 여러분을 이집트에서 섬기는 생활로 이끌지 못한다면 이런 것은 쓸데없다. 우리는 우리가 세장을 버리게 하고, 그분을 섬기기 위해 우리 자신을 주의 손에 던지게 하는 말이 필요하다.
하나님의 갈망을 가진 이는 얼마나 의미 있는 사람인지! 첫째로 하나님은 그분께서 우리를 정말로 소중히 여기신다고 말씀하신다. 둘째로 하나님은 그분이 그분의 좋은 땅으로 우리를 데려가시려고 우리를 돌보신다고 말씀하신다. 셋째로 그분은 우리를 파라오의 통치인 어둠의 권세에서 데리고 나오신다. 넷째로 그분은 그분의 섬김 안으로 우리를 이끄신다. 우리의 생명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은 정말로 단순하다. 주님을 찬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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