룻기는 유대 땅의 기근 때문에 베들레헴을 떠나 모압 땅에 거주하려고 엘리멜렉, 나오미 그리고 그들의 두 아들 말론과 기룐이라는 한 유대 가족으로 시작한다. 그 가족은 얼마간 모압에서 거주했고, 그 가족의 가장 엘리멜렉이 죽었다. 이제 어머니 나오미와 그녀의 두 아들 말론과 기룐만 남았다. 그 후 두 아들들은 모압의 여인들을 아내로 취했다. 말론은 룻과 결혼을 했고, 기룐은 오르바와 결혼을 해서 약 10년 동안 그 땅에서 살았다. 그런데 나오미의 아들들이 죽었고, 나오미와 그녀의 두 며느리만 남았다. 이후 나오미는 자신의 땅에 기근이 끝났다는 말을 듣고, 모압을 떠나 베들레헴으로 돌아갈 준비를 했다. 그녀는 룻과 오르바와 함께 베들레헴을 향해 여행을 했다. 하지만 도중에 나오미는 며느리들이 베들레헴에 함께 들어가기보다 남아서 식구들에게 돌아가도록 설득했다. 오르바는 여행도중 돌아가기로 했고, 룻은 계속해서 여행하기로 했다. 룻은 나오미에게 여행을 계속 하기로 한 자신의 결정을 말했다.
“나보고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고 강권하지 마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머무시는 곳에 나도 머물리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내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내 하나님이 되시리니 어머니께서 죽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묻힐 것이니이다. 만일 죽는 일 외에 어떤 다른 것이 나와 어머니를 갈라놓으면 주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룻 1:16-17)
며느리가 함께 계속해서 여행하기로 결정한 것을 보고 나오미는 며느리에게 말하는 것을 그쳤다. 그리고는 둘은 계속 여행을 했다(룻 1:18-22). 그러므로 그 가족관계는 이 룻기의 맨 처음에 세워졌다. 그리고 나머지 부분에서 이 관계에 대한 상세한 것을 말한다. 이 룻기의 첫 장에서는 세 부분의 가족관계를 제시한다.
1) 가족의 일부가 되는 룻과 오르바는 이방인들 중에서 택했다.
2) 룻과 오르바는 이방인의 가족의 구성원이 되었다.
3) 나중에 이 가족관계에서 분열이 일어났다. 룻은 나오미와 함께 떠났고, 오르바는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물론 이 모든 것은 오늘날 하나님의 경륜 안에서 일어날 사건의 예표다. 하나님은 자신의 이름을 위해 이방인들로부터 나오게 하신다(행 15:14, 롬 11:25).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성령께서 하나님의 아들을 위해 신부를 얻으시는 동안인 오늘날 따로 떼어 놓으셨다. 그리고 룻처럼 이 이방 신부는 유대인 관계를 소유해야 했다. 유대인에 속하지 않고서는 떡집인 베들레헴으로 여행할 수 없다.
4천 년 전 하나님은 다른 인종에게 축복이 된 한 사람을 불러 내셨다. 하나님은 갈대아 우르를 떠나도록 아브라함을 불러 내셨다. 하나님은 무조건적인 언약으로 땅을 그에게 주셨다. 약속된 그 땅은 이 한 사람과 그의 씨를 통해 그 땅의 모든 이방 민족들이 축복을 받게 되었다(창 12:1-3, 13:14-18, 15:18-21, 22:17-18).
성경에서 이 부분을 넘어서 인류에게 오는 모든 영적인 축복은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 이삭과 야곱의 노선을 통해서만 올 수 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아주 일찍이 그분의 계시로 사람에게 세우신 방법이다. 이것은 시간 속에서 그 일들이 항상 존재하는 방법이다.
실제로 하나님은 셈, 그의 후손 아브라함으로 시작해(창 9:25-27) 한 사람으로 4,000년 후 선택을 받는 것을 이미 세우셨다.
오늘날 이방인(유대인)들을 위한 구원은 신성한 능력과 하나님께서 유대인들을 통해서만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성경의 구절들이 있다.
“구원은 주께 속하나이다”(욘 2:9b)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나기 때문이라.”(요 4:22b).
두 구절 다 참된 것이어야 한다. 구원은 구원받지 않은 사람이 불법과 죄에 대해 죽었기 때문에(엡 2:1) 주에 속한 것이어야 한다. 구원받지 않은 사람은 영적인 영역에서 완전히 행할 수 없는 것이다. 그는 영적으로 죽었고, 또 다른 이(그리스도)가 생명이 없는 곳에 효과적인 생명을 위해 대신해 움직여야 한다. 이것은 하나님의 아들, 유대인의 마치신 사역에 기초하여 회복할 수 없는 사람 안으로 하나님의 성령께서 생명을 호흡하심으로 이뤄졌다. 그러므로 구원은 주님께 속한 것이요, 유대인에게 속한 것이다. 오늘날 제도 가운데 성령의 사역을 통해 죽음에서 생명으로의 전환된 개인들(요 5:24, 엡 2:1, 5)은 위치적으로 아브라함의 씨, 그리스도 안에 있다. 그리스도께서 아브라함의 씨인 고로 그리스도 안에 있는 그들의 위치에 있는 그들 역시 아브라함의 씨이다(갈 3:16, 29). 이스라엘 코먼웰스-연방에서 온 이방인이었던 거의 아브라함의 씨와 가까운 과거의 사람들은 땅에 속한 것이 아닌 하늘에 속한 상속자들이다. 아브라함의 씨가 되는 그들은 어느 날 주 예수그리스도, 아브라함의 맏아들과 하늘에서 통치행위에 참여할 가능성이 있다(갈 3:26-29, 엡 2:12- 13).
그런데 예표 속으로 돌아가서 룻과 오르바 사이의 차이가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 둘은 한 가족의 식구가 되었고, 빵집인 베들레헴으로 여행하는 중이었다. 룻은 여행을 끝까지 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오르바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오늘날 한편으로는 그리스도인들이 되어야 하고, 다른 편의 그리스도인이어야 한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빵집을 향해 여행을 시작하는 입장에 있지만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여행을 시작하거나 완료하는 것은 아니다.
룻과 같이 어떤 사람들은 그들이 부름을 받은 곳에서 그 나라를 떠나고 길을 간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오르바와 같이 여행을 절대 떠나지 않는다. 오르바와 같은 그리스도인들은 여행을 시작한 후에 되돌아간다. 창세기 24:57, 58절에 있는 리브가처럼 룻은 “네가 이 사람과 함께 가겠느냐?”는 물음에 “나는 가겠다.”라고 대답했다. 룻은 빵집을 향해 나오미와 함께 갔다. 하지만 오르바는 이런 방식으로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그녀는 되돌아갔다. 여행 중 룻과 오르바는 죽음을 통한 나오미와 관계가 있다. 그들의 남편들의 죽음직후 결혼관계 자체가 끝났다. 그리스도인들 역시 죽음을 통한 식구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한 아브라함의 씨다. 오르바는 되돌아갔고, 룻은 식구로 남았다. 창세기 19:26절에서 롯의 아내가 뒤돌아 본 후의 일이 언급되지 않은 것처럼 룻기에서 오르바가 되돌아간 이후의 일들이 언급되지 않았다. 누가복음 9:62, 17:32절에 있는 말씀은 그리스도의 책망과 경고가 분명하다.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왕국에 합당하지 아니하니라”(눅 9:62)
“롯의 아내를 기억하라.”(눅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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