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관점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성막의 내용물들을 공개하시지 않았을 때 그분은 지성소에 있는 궤와 함께 시작하셨다(출 25:10). 궤는 하나님 자신을 대표했고, 그분 사역 모두 여기서 시작하신다.
다음 항목은 떡 상이었다(출 25:23). 하나님은 우리의 만족을 위해 첫 번째 빵이 되심으로 우리 안에서 그분의 사역을 하신다. 우리는 오늘날 이 빵이 그리스도이심을 알고 있다(요 6:35). 우리가 그분으로 풍성한 만족이 될 때에만 하나님께서 작정하신 열매를 우리에게서 맺게 하실 수 있으시다. 우리가 하나님의 훈련을 늦추기 원한다면 우리는 다만 그리스도의 어떤 누림을 피해야 한다. 떡 상은 궤를 언급한 후 첫 번째로 언급되었다. 왜냐면 주님은 그리스도인들의 만족으로서 그리스도를 누리는 이들과 함께 일하기를 갈망하시기 때문이다.
세 번째 항목은 순금으로 등잔대였다(출 25:31). 등잔대는 순금으로 구성되었다. 순금은 하나님을 의미한다. 우리 인성이 포한된 것이 아니었다. 하나님은 만족하는 빵으로서 그리스도를 누리는 그리스도인들 안에 있는 신성한 빛의 특별한 원천이시다.
그 때 우리는 바깥뜰에 있는 놋 제단으로 간다(출 27:1). 놋 제단은 축복의 장소다. 우리가 이 제단에 머물고, 축복의 생활을 한다면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완전한 그분의 사역을 하실 수 있다.
향제단과 놋대야는 나중에 추가되었고, 이것은 부차적인 것이다(출 30:1,18). 여기에 기록된 네 번째들은 기본적인 것이요. 하나님의 사역의 완전한 그림을 우리에게 주는 것이다. 그분은 어울리는 상대가 그분의 2.5큐빗(1.143m)을 완성시키려는 그분의 갈망을 우리에게 보여주시려고 궤에서 시작하신다. 그 때 그분은 우리의 만족을 위한 우리의 빵이 되신다. 그런 다음 우리가 제단 위에서 축복된 삶을 사는 것을 배울 수 있기 때문에 그분은 금 등잔대에서 비추는 신성한 빛으로 우리 안에 빛을 비추신다. 이것이 성막 중앙에 있는 지성소에서 시작하는 하나님의 관점이다.
사람의 관점
하지만 우리의 관점은 궤를 향해 바라보이고 바깥뜰에 있는 제단에서 시작한다. 사실 우리의 모든 생활은 궤가 보이는 제단에서 보내야 한다. 우리의 눈이 궤에서 벗어난다면 우리는 절대 제단에서 머무르지 않을 것이다. 궤는 우리의 유일한 목표다. 확신하라. 우리가 다른 것을 따라 걷고 있는 우리 자신을 안다면 심지어 그리스도인의 일이라도 우리는 제단에서 벗어난 것이다.
그리스도인 음악이나 교회가 절기를 사랑하고, 행위를 사랑하는 것과 같이 우리가 다른 것을 따라 걷고 다른 어떤 것을 바라보는 것은 상대를 향한 하나님의 갈망을 잊고, 우리의 눈이 제단에서 벗어나기 너무도 쉽다. 우리가 다른 것을 따라 걷고 다른 어떤 것을 바라보는 것은 우리의 축복을 제하는 것이요, 제단에서 내려오는 것이다. 그리스도인 음악은 아무 잘못이 없다. 그러나 그리스도인 음악이 우리의 목표가 될 순 없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가지고 있는 것을 누리고 성도들과 함께 먹는 것은 좋은 것이다. 하지만 그리스도인 음악은 우리의 교회생활의 목적이 아니다. 우리는 이런 것들을 교회생활의 목표로 누리지 말아야 하고, 궤를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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