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 21:8절에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이라는 묘사는 성경이 같은 것을 다시 다루는 또 다른 방식이다. 이 구절에 있는 불 못은 요한계시록 11-15장에서 구원받지 않은 이들이 영원히 지낼 뿐만 아니라 오늘날 제도에서 세상, 육체, 그리고 마귀를 이기지 못하는 그리스도인들도 그곳에 있을 것이다. 다가오는 시대에 그 결과를 알게 될 것이다. 물론 이것은 마태복음 13:42, 50절에 있는 불이 이글거리는 용광로에 던져지는 그리스도인들과 같을 것이다. 이 같은 일은 요한계시록 2-3장에서 일곱 이기는 자들에 대한 약속들 중 두 번째에서 볼 수 있다. 이 두 장은 일곱교회에게 짧은 일곱 서신을 기록한다. 각 서신 끝에는 이기는 이들에 대한 약속이 있다.
“이기는 그에게는‧‧‧‧‧‧‧”
“이기는 그는‧‧‧‧‧‧‧”(계 2:7, 11, 17, 26-28, 3:5, 12, 21).
이 서신은 구원받은 각자(기기는 위치에 있는 이들)에게 전달되었고, 주님은 이기는 것보다 오히려 이기는 이들을 받아들이는 방법으로 그들이 오늘날 믿음의 경주를 하도록 장려, 격려하기 위해 보상, 상, 포상을 그들 앞에 놓았다. 이기는 이들에 대한 각각의 약속은 이뤄지는 범위가 천 년간이다. 경우에 따라 이기는지 이기지 못하는지를 천년 메시야시대만 깨닫게 될 것이다. 이뤄지는 범위가 천년이라는 사실은 아주 쉽게 묘사될 수 있다. 요한계시록 2:26-27, 3:21절에서 일곱교회 중 두 교회에게 약속이 기록되었다. 이 구절에서 표현된 장면은 천년왕국을 지나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천년왕국을 지나 그리스도와 그분의 공동 상속자들은 요한계시록 2:26-27절에서 이 통치가 묘사된 것처럼 더 이상 민족들 위에서 통치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이 통치가 이 땅을 넘어 확장되고, 우주 밖으로 나가는 것처럼 그리스도와 그분의 상속자들과 함께 그들 스스로 통치자의 위치로 이동할 것이다(계 22:2, 5). 천년왕국을 지나 아들은 요한계시록 3:21절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그분 자신의 보좌에 더 이상 앉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우주적인 통치가 나올 때로부터 하나님과 어린양의 보좌에 앉을 것이다(계 22:1, 3, 5).
서머나교회에 있는 이기는 이들에 대한 약속이 있다. 그 약속은 불 못과 관계가 있다. 이 약속의 이룸은 천 년간뿐이다. 말하자면 이 약속에서 이기지 못하는 이들에게 넌지시 암시하는 조건은 메시야 시대에서만 존재하고, 영원한 시대에는 없다. 성경은 천 년간의 보상을 받거나 잃거나, 영원한 보상을 얻거나 잃거나 하는 것을 다룬다. 만일 보상이 영원한 것이라면 보상을 잃기 때문에 이것은 누구나 이해하기 쉬워야 한다. 보상을 잃음은 죽음과 관계성을 포함한다(롬 8:13). 성경이 계시하는 어떤 것은 천년왕국을 지나 영원한 시대 초기에 사라질 것이다(고전 15:26, 계 21:4). 서머나교회를 구성하는 이들에게 이기는 이들에 대한 약속을 주셨다.
“귀 있는 자는 성령께서 교회들에 말씀하시는 것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자는 둘째 사망에게 해를 입지 아니하리라.”(계 2:11, 20:6).
이 약속에는 분명한 암시가 있다. 이기지 못하는 이들에게는 둘째 사망에 처해질 것이라는 것이다. 이 약속을 받으려는 어떤 시도와 어떤 것을 의미 있게 하는 것은 약속을 무너뜨리는 것이요, 주님께서 엄숙히 경고하시는 것이라고 분명하게 말한다(계 22:18-19). 이기는 이들이 둘째 사망에 들어가지 않을 것이라는 약속은 이 약속을 액면 그대로 받지 않고, 이기지 못하는 이들이 둘째 사망에 들어갈 것이라고 말하는 것을 정확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한 의미 없는 것이 될 것이다. 요한계시록에 있는 둘째 사망은 불 못과 관계가 있다(계 21:8). 이기지 못하는 이들(계 21:7)은 이 불 못에 있는 그들의 위치에 갈 것이다(계 21:8). 말하자면 불 못에 있는 영역을 가짐으로서 두 번째 사망에 들어가는 것이 될 것이다. 그런데 요한계시록 21:8절에서의 불 못의 일부를 갖는 것과 둘째 사망에 들어가는 구원받은 사람이라는 것은 정확하게 무엇을 의미하나? 요한계시록 21장은 천년왕국을 지나 영원한 시대로 이동한다. 요한계시록 21:1-6절은 영원한 시대가 시작하는 조건과 관련해 완벽한 이야기가 전개된다. 6절에 “이루어질”이라는 단어가 기록되었다. 사실 이 단어는 “이루어진”으로 바꿔야 한다. 헬라 원문에서 이 단어가 완료시제이기 때문이다. 보이실 일들이 끝난 상태에서 오늘날 존재하고 완료되었음을 가리킨다. 그런 다음 6절 후반부부터 8절까지 이기는 것과 이기게 되는 것이 마지막 시대에 있음을 이 책에서 다뤘다. 이것은 사람이 요한계시록 2-3장에서 볼 수 있는 같은 장소를 상기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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