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퍼런스/왕국의 비밀

알곡과 가라지의 비유

Hernhut 2016. 8. 11. 14:00


 

성경: 마태복음 13:24-30

 

앞서 종자를 뿌리는 이의 비유와 같은 주제로 밀과 가라지의 비유가 계속된다. 종자를 뿌리는 이의 비유의 중심초점은 열매 맺는 것이었고, 다른 것이 있었는데 한 면에서 열매 맺는 것을 막았고, 다른 면에서는 열매 맺게 되었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밀과 가라지의 비유 역시 열매 맺는 것을 중심 메시지다(13:26). 하지만 이 비유는 앞서서 말한 것과 같이 넓은 스펙트럼의 열매 맺는 문제를 다루지 않는다. 오히려 종자 뿌리는 이의 비유에서 오는 생각이 계속되고 있고, 그 자체가 한 영역에 제한되어 있다. 밀과 가라지의 비유는 좋은 땅에 종자가 뿌려져 열매 맺는 이들을 다루고 있는 부분에 한정된다(13:8, 23-24, 26).

종자 뿌리는 이의 비유에서 열매 맺는 것을 실패하는 이들은 좋은 종자로 볼 수 없다. 다시 말해 밀과 가라지의 비유에 있는 좋은 종자, , 그리고 왕국의 아들들은 열매 맺는 것을 볼 수 있다(13:24, 26, 37-38, 40-43). 이 비유는 종자 뿌리는 이의 마지막 비유의 연속이요, 완성이다.

여기서 새로운 어떤 것이 소개되었다. 밀과 가라지의 비유는 종자 뿌리는 이의 비유에서 계시되지 않은 어떤 것, 추가적인 어떤 것을 계시하기 위해 열매 맺는 이들에게 중점을 두고 있다. 밀과 가라지의 비유는 앞의 비유 끝에서 계시된 것을 넘어 한 발 더 움직인다. 이 비유는 앞의 비유와 같은 생각이 계속된 것이지만 개인적 열매 맺는 것을 반대하는 것을 집중적으로 계시한다. 개인적으로 열매 맺으려고 하는 것은 사탄이 사용하는 방법과 똑같은 것이라고 계시한다.

사탄은 수많은 의미를 두어 열매 맺는 것을 막으려 한다. 지난 세월 동안 그는 굉장한 그리스도인들에게 성공을 거두었다. 그는 열매 맺는 것을 막는데 대부분 성공했다. 과거에는 죄를 들여왔고, 천주교와 같은 바벨론 종교로 오염시켰고, 맘몬과 권력, 성공으로 위치를 차지하게 했으며, 후에 그리스도인 사이를 갈라놓는 분열을 가져왔다.

하지만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그런 것은 아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사탄의 방법과 계획을 이겼다. 그들은 세상, 육체, 그리고 마귀를 이긴다. 결국 그들은 열매를 맺고, 계속 열매를 맺는다. 이 그리스도인들은 열매 맺는 이들이다. 사탄은 밀과 가라지의 비유에서 자신의 공격을 겨냥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하늘들의 왕국은 ·······와 같다.

 

밀과 가라지의 비유와 다음의 다섯 비유들은 유사한 유형으로 시작한다.


하늘들의 왕국은 ·······와 같다.”(13:24, 31, 33, 44, 45, 47)


하지만 이렇게 번역하는 것은 영어번역이다. 그리스어원문은 예수님께서 밀과 가라지의 비유를 시작하신 방식과 나머지 다섯 비유들을 시작하신 방식 사이에 날카롭게 구분 짓는 그리스도 자신을 계시한다.

 

 

1) 같이 되는가, 같은가

 

영어원문에서 두 번째 비유는 마치 와 같이 되다is likened로 번역되었다. 다시 말해 이 말은 엇비슷하다는 뜻을 갖는다. 나머지 다섯 비유에서는 같다is like로 번역되었다. 그러므로 영어원문은 이 여섯 비유의 방식에서 구분하지 못하게 표현되었다.

그리스어원문도 각각의 경우가 다르지 않다. 밀과 가라지의 비유는 동사형 호모이오오homoioo로 사용했고, 나머지 다섯 비유에서는 명사형 호모이오스homoios를 사용했다. 이 다섯 비유의 각 명사와 동사의 구조는 동일하다. 호모이오오homoioo와 호모이오스homoios는 다른 것들을 같아 보이게 하거나, 한 가지 것을 다른 것과 비교하려고 그리스 신약성경에서 사용되었다. 예를 들어 이것이 와 같다를 뜻하는 호모homo는 그리스어에서 나온 단어로 어떤 특정 단어 앞에 붙여 동일이라는 뜻을 갖게 한다. 영어번역 마치 와 같이 되다is likened같다is like는 호모이오오homoioo와 호모이오스homoios의 의미를 정확하게 전달된다.

그런데 두 번째 비유에서 나머지 다섯 비유로 옮겨 가면서 영어 원문은 이 다섯 비유들을 소개하는 방식을 정확하게 전달하지 않는다. 이 각 비유에는 호모이오오homoioo와 호모이오스homoios의 단어의 의미로 사용된 것이 아니다. 각 비유는 그리스도께서 전체적으로 다른 유형에 따라 이러한 단어를 사용하신 것을 번역가들이 다르게 보여주려고 한 것을 실패한 것이다. 다시 말해 그리스도께서 밀과 가라지 비유에서 한 가지 일을 전달하시기 위해 동사형을 사용하셨다. 그러나 계속되는 다음 비유들은 다른 것을 전달하시기 위해 명사형을 사용하셨다.

동사 호모이오오homoioo마치 와 같이 되다라 번역되어야 하는 방식에 따라 밀과 가라지 비유를 소개하는데 사용되었다. 따라서 이 비유는 하늘들 왕국은 마치 와 같이 되다는 말로 시작해야 한다. 하지만 마치 와 같이 되다라는 이와 같은 번역은 나머지 다섯 비유들에서는 반복적으로 사용되지 말아야 한다. 오히려 나머지 다섯 비유에서는 하늘들 왕국은 마치 와 같다라고 번역하고, 명사 호모이오스homoios를 사용하는 것이 정확한 번역이 될 수 있다. 나머지 다섯 비유들에서의 이 번역은 모든 문제가 밀과 가라지 비유에 소개된 방법을 감안하여 이해되어야 했다. 다시 말해 이 비유는 하늘들의 왕국은 마치 와 같이 되다라는 계시로 열린다. 종자를 뿌리는 자의 비유부터 알곡과 가라지 비유까지의 이동은 하늘들의 왕국이 와 같이 되었다. 그런 후 하늘들의 왕국은 나머지 다섯 비유에서 계속해서 와 같다. 그러므로 이런 면에서 이어지는 각 비유의 서두에 나와 있는 하늘들의 왕국은 마치 과 같다는 문맥적으로 하늘들의 왕국이 마치 과 같다는 의미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이런 방식에 따라 생각하면 이런 비유를 통해 움직이는 연대적 연속성이 있다.

 

 

2) 하늘들의 왕국

 

하늘들의 왕국은 한 영역이다. 이 땅과 비교해 하늘들의 왕국은 단순히 땅 위의 하늘들의 통치를 말할 것이다. 사탄과 그가 부리는 천사들은 오늘날 땅 위의 하늘에 속한 영역에서 통치한다. 이 하늘에 속한 영역은 그리스도와 그분의 공동 상속자들이 다가오는 시대에 살 곳이다. 지금은 이 영역은 사탄과 그를 따르는 천사들이 쫓겨난 이후 그들이 땅 위의 하늘들을 다스리고 있다(12:4, 7-9).

그러므로 알곡과 가라지 비유에서 설명되고, 계속해서 이어지는 다섯 비유에서 묘사되는 하늘들의 왕국은 왕국 자체의 영역으로 말하기 어려울 수 있다. 영역 그 자체가 바뀌지 않는다. 다만 왕국에 관한 메시지와 같은 특정한 것만 바뀔 수 있다. 마태복음 13장의 비유부분은 비슷한 방식에 따라 도입되었고 결론짓는다. 이렇게 끝난 것이기 때문에 두 번째 비유에서부터 일곱 번째 비유에서 하늘들의 왕국이라고 표현하는 것에 대한 생각은 쉽게 알 수 있다.

종자를 뿌리는 이의 비유에서 나머지 비유를 위해 표현된 왕국의 말씀이 있는 것이다(13:19-23). 이것은 다가오는 시대에 하늘들의 왕국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공동 상속자로서 위치를 차지하기 위해 오늘날 제도 동안에 그리스도인들이 신실함을 지키는 것과 관계된 메시지다. 다시 말해 왕국의 말씀은 오늘날 사탄과 그가 부리는 천사들이 차지하고 있고, 그리스도와 그분의 공동 상속자들이 어느 날 차지할 영역에 관한 메시지다. 일곱 비유의 결론에서 그리스도는 이 일곱 비유에 관해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하늘의 왕국에 관하여 가르침을 받은 서기관마다 마치 자기 보고에서 새 것과 옛 것을 내오는 집주인과 같으니라”(13:52).


또 왕국의 말씀이 중심에 보인다.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 가르침은 도입부분의 비유에서 볼 수 있는 것과 똑같은 가르침이다. 이 가르침은 왕국의 말씀이요, 종자를 뿌리는 자의 비유에 있는 가르침이다. 이렇게 똑같은 것은 두 번째 비유부터 일곱 번째 비유에 있는 가르침 즉 하늘들의 왕국이라는 표현을 통해 보여준다. 이 비유들에서 설명되어진 것과 같이 되고, 계속 이어지는 하늘들의 왕국의 영역이 아니다. 이와 같은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비유들에서 묘사된 것 같이 되고, 계속 이어지는 하늘들의 왕국에 대한 선포요, 제안이요, 수용이거나 거절이다.

이스라엘에게 침례자 요한, 예수님, 그리고 열두 제자들에 의해 왕국이 제안되었다. 하늘들의 왕국은 가까이에 있었고, 근접해 있었다(3:2, 4:17, 10:7). 그 영역 자체가 다가오지는 않았다. 그 영역은 여전히 불변한 채 있었다. 하지만 이스라엘이 민족적인 회개를 바탕으로 그 영역이 움직이고, 차지할 가능성은 근접해 있었다(6:33, 11:12, 21:43).

 

 

왕국의 아들들, 마귀의 아들들

 

두 유형의 아들들은 알곡과 가라지들의 비유에서 볼 수 있다. 왕국의 아들들은 알곡()으로 좋은 종자를 표현한 것이고, 마귀의 아들들은 가라지들로 나쁜 종자를 표현한 것이다(13:24-25). 알곡()은 좋은 종자로 왕국의 아들들(자녀들)로 알려졌고, 가라지(밀의 쭉정이)들은 사악한 자의 아들들(자녀들)로 알려졌다(13:38). 좋은 종자를 뿌리는 이는 인자의 아들, 메시야적인 주제로 알려졌고(13:37, 8:4, 7:13-14, 16:13-16), 가라지들을 뿌리는 자는 대적, 마귀, 왕국에서 재임 중인 통치자로 알려졌다(13:39).

이 비유의 모든 것은 하나님의 특정한 일과 그분의 특정한 일을 반격하는 일과 관계가 있다. 하나님은 열매를 맺게 하려고 세상에 보내지는 이들이 있다. 그리고 이 열매는 권해진 왕국과 관련이 있었을 것이다. 사탄은 이 열매 맺는 일을 방해하는 이들을 열매 맺고 있는 이들의 중심에 보낸다(13:41). 이런 방법으로 사탄은 오늘날 자신의 통치하는 위치를 계속 유지하려는 소망을 꿈꿀 것이다.

가라지들이라는 단어는 헬라어로 지자니온zizanion이다. 지자리온zizanion성장 기간에는 밀과 닮아 보이지만, 그 낟알에는 독소를 품고 있는 전혀 다른 성분을 가진 식물이다.

오늘날 거의 완전하게 알려지지 않은 것이 이 교회제도 곳곳을 차지하고서 유사한 방식으로 함께 자라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삭이 나지 않고는 구분할 수 없는 지자리온zizanion은 이삭이 나지 않고서는 가려 뽑아낼 수 없다.

이 비유는 사탄이 열매 맺는 것을 막으려는 것과 관계가 없지만 열매 맺는 것을 멈추게 하는 것과 관계가 있다. 열매 맺는 것을 막으려는 것은 종자뿌리는 자의 비유 처음 세부분에서 볼 수 있지만 멈추게 하는 것은 마태복음 13장 전후의 비유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것이다. 이 비유는 그리스도인들의 선택된 무리에 대항하는 사탄의 공격을 계시한다. 그의 공격은 열매 맺는 그리스도인들을 대항하는 것이다. 이 공격은 그리스도인들 가운데서 사탄이 알곡이 아니고 알곡과 유사한 종자를 뿌림으로 하나님의 계획과 목적을 저지하려고 하는 것이다.

사탄은 열매 맺는 것이 하나님께서 다가오고 있는 그날에 그분의 아들과 함께 보좌에 오를 공동 상속자들에게 요구하시는 것임을 안다(21:18-19, 43, 6:7-9). 결국 그는 자신의 능력 안에서 그리스도인들이 열매 맺는 것을 막으려고 모든 것을 다할 것이다. 그래도 그리스도인들이 열매 맺기 시작할 때 열매 맺는 것을 멈추게 하려고 모든 힘을 쏟을 것이다. 열매를 맺는 그리스도인들 중에도 거짓으로 종자를 뿌리는 거짓 대언자들이 있다(7:15-20). 이들은 오늘날에도 자신들의 것으로 거짓 열매를 맺게 한다.

 

 

1) 알곡(밀알)-하나님의 아들들

 

세상 안팎에 주님에 의해 뿌려진 좋은 종자는 왕국의 자녀들(아들들)라는 표현으로 특별하게 말해졌다. 그것을 넘어 그 주제는 종자 뿌리는 이가 인자의 아들이라는 것을 알리는데 사용되었다. 아들들로서 그들 신분의 중요성은 그리스도인들이 오늘날 한 방면에서 입양을 기다리는 하나님의 아들들이라는 것과 다른 방면에서 아들 신분이 되기 위한 하나님의 자녀들이라는 사실에 있다. 바울은 이 문제를 로마서 8:14-23절에서 다뤘다.

 

하나님의 영에 의해 인도 받는 자들은 다 하나님의 아들들이니 너희는 다시 두려움에 이르는 속박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 삼으시는 영을 받았느니라. 그분을 힘입어 우리가, 아바, 아버지, 하고 부르짖느니라. 성령께서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자녀이면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공동 상속자니라. 우리가 그분과 함께 고난당하면 이것은 우리가 함께 영광도 받으려 함이니라........성령의 첫 열매를 소유한 우리까지도 속으로 신음하며 양자 삼으심 즉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림

 

로마서 8, 갈라디아서 3-4, 히브리서 12장에서도 이러한 언급이 있는데 양자되기에 앞서 현재의 의미로 그리스도인들이 아들들이 되었다(8:14-15, 3:26, 4:5-7, 12:5-8, 16-17, 23). 이것은 마태복음 13장에서 다뤄진 방식과 일치하는 경우다.

아들신분은 통치권의 신분을 나타낸다. 아들들만이 하나님의 왕국을 통치할 수 있다. 하지만 맏아들들만이 하나님의 왕국에 있는 사람의 영역에서 통치할 수 있다.

모든 천사들은 하나님께서 특별하게 창조하셨기 때문에 그들도 하나님의 아들들이다. 천사들은 하나님의 왕국에서 위임된 능력과 권세의 여러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1:6, 2:1, 38:7). 아담 역시 하나님의 특별한 창조 행위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다. 하지만 아담의 후손들은 하나님의 아들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자신들을 공격한 자의 아들들이 되었다. 그들은 아담의 아들들이 되었다(5:3-32, 3:38).

타락하기 전 하나님의 아들인 아담은 땅을 다스리는 위치에 있었다. 하지만 타락은 자격이 박탈되는 결과를 낳았다. 그가 여전히 하나님의 아들이었지만 타락 이후 더 이상 홀()을 잡는 위치에 있지 못했다. 아담 후손들 역시도 홀()을 잡지 못하는 위치에 있었다. 왜냐면 그들은 타락한 아담에게서 물려받은 위치가 되었고, 또 하나님의 아들들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들은 아담의 아들들이 되었고, 타락한 존재의 아들들이 되었다.

2,000년 후 하나님은 아담 안에서 잃었던 목적을 위해 갈대아 우르를 떠나도록 아브라함을 부르셨다. 아브라함의 노선을 통해 하나님은 인류를 구별하려고 하셨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그분의 맏아들로 양자 삼을 수 있으셨다. 아담 타락 이후 처음으로 땅을 다스리는 위치에 있도록 인류의 부분을 허락하는 구속이 정해진 것이다. 이 특별한 창조는 아브라함의 손자 야곱에 의해 수행되었고(43:1), 유전자로 전해지는 본질적인 것이었다. 이 창조는 야곱의 12아들들로 유전되고, 다른 모든 민족과 다르고 분리된 민족을 낳았다. 그리하여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은 다르다(23:8-11). 그러고 나서 하나님은 이 본질적인 별도의 민족을 가지셨다. 하나님은 이 민족을 아들로 간주하셨다. 하나님은 이 민족을 야곱 안에서 특별히 창조하시고, 맏아들 지위를 주시고, 입양하셨다(4:22-23). 이 민족에 포함되는 이들은 다 구속받았고(12:1-51), 이미 그들의 조상에게 약속하신 땅에서 민족들의 머리의 위치에 두셔서 다스리도록 모세를 통해 이집트 밖으로 이 민족을 불러내셨다(2:23-25, 3:7-12, 15:17-18, 19:5-6). 즉 하나님의 맏아들로서 알려진 구속된 사람은 아담이 이미 다스리도록 창조되었던 하나님의 왕국의 일부분을 다스리도록 부르심을 받은 존재가 되었다.

현대에 들어오면서 이스라엘은 오늘날 과거 불순종 때문에 땅을 다스리지 못하고 다스리는 위치에도 있지 않다. 하나님의 맏아들로서 민족의 위치로 여전히 남아 있지만 이스라엘은 불신앙을 하는 민족들 가운데 흩어져 있다. 이스라엘 땅에 오늘날 거주하는 자들조차도 불신앙 가운데 있다. 여전히 맏아들이기는 하지만 이스라엘 땅에 있든 밖에 흩어져 있든 이스라엘은 다스리는 위치에 있지 않다. 이스라엘 민족이 먼저 신앙훈련을 해야 한다. 출애굽기 12장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이스라엘 민족은 먼저 구속되어야 한다. 이스라엘은 먼저 2,000년 전 흘린 유월절 어린양의 피를 적용받아야 한다.

유대인 또는 이방인에서 구별된 그리스도인들인 교회도 다스리는 위치에 없는 것은 마찬가지다. 교회가 그리스도 안에서 새 창조(고후 5:17)이고 아들들로 간주될 수 있고, 구원받은 자들로 구성된 이들은 일지라도 양자가 되지 못했다. 오늘날 교회는 과거에 이스라엘 민족이 양자된 것과 같지 않다.

그리스도와 함께 보좌에 앉을 때 그리스도인들은 먼저 양가가 되어야 한다. 그리스도인들은 오늘날 새 창조로서의 입장 때문에 양자를 기다리는 아들들이다. 문맥적으로 그리스도인들이 오늘날 아들이라도 다스리는 위치에 있지 않다. 양자된 아들들만이 다스릴 수 있다. 장차 그리스도인들만이 이 입장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다스리는 자요, 아들의 신분은 양자와 상속에 관하여 로마서, 갈라디아서, 그리고 히브리서에서도 볼 수 있다. 아들신분의 문제는 로마서에서부터 정말 쉽게 드러나고 있다. 로마서 8:14절은 육체를 따라 살고, 죽음에 이르게 하는 육체의 행위로 사는 그리스도인들을 다룬다. 로마서 8:14절은 이미 언급된 육체의 행위를 죽음에 두고서 성령의 이끄심 아래에 있는 그리스도인들, 하나님의 성령에 의해 이끄심을 받는 그리스도인들을 다룬다. 이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아들들이 된다고 말했다. 이 그리스도인들은 그 다음 구절에서 아들신분과 관련해 양자가 되었다고 언급되었다(8:15, 23). 하지만 16절에서는 특별하게 그리스도인들이 오늘날 하나님의 자녀들이라고 말한다. 비록 그리스도인들이 오늘날 자녀들이고, 아들들이기는 하지만 그리스도인은 오늘날 맏아들로 볼 수 없다. 맏아들의 입장은 양자된 이후의 시간, 미래시대를 기다리는 것이다.

문맥적으로 로마서 8:14-16절은 히브리서 12:5-8절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히브리서 12:5-8절에서 그리스도인들은 아들들로서 아이의 훈육을 받는 것을 볼 수 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맏아들의 지위로 양자되기 위해 하나님의 아들들로서 훈육을 받는 것이다(8:16-17, 23). 그러므로 로마서 8:14-16절은 다가오는 시대에 양자된 이후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공동 상속자들(8:17, 19)로서 그분의 왕국 안에 있는 위치를 차지하는 맏아들들로서 나타날 오늘날 하나님의 성령에 의해 인도된 그리스도인들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이것은 모든 성경구절의 주제이기도 하다. 마태복음 13:38절에 있는 왕국의 아들들을 표현하는데 사용한 것과 같은 것이다.

마태복음 13:38절에 있는 왕국의 아들들은 좋은 종자요, 열매 맺는 이들이다. 같은 곳에 있는 아들들인 이들은 로마서 8:14절에 있는 이들처럼 다가오는 그날에 왕국에서 하나님의 아들들로서 나타날 것이다(8:19).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창조 때문에 오늘날 아들들로서 간주되지만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마태복음 13:38절에서 왕국의 아들들이라는 표현으로 언급되는 것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로마서 8:14절에서 표현된 하나님의 아들들을 말하는 것도 아니다. 마태복음에서의 특별한 언급은 열매 맺는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표현이요, 로마서의 언급은 성령의 이끄심을 따르는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표현이다. 그런데 이 둘은 같은 것이다. 열매 맺는 것은 성령의 이끄심을 따르는 것을 떠나서는 알 수 없고, 성령의 이끄심을 따르는 것은 언제나 열매 맺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왕국 즉 열매 맺는 것을 목적으로 세상에 그리스도인들을 뿌리는 이는 인자의 아들이시다. 인자의 아들(종자를 뿌리는 이), 왕국의 아들들(다스리는 신분을 예고하는 뿌려진 이들), 그리고 열매를 맺는 것 등 이 모든 것이 왕국 앞에서 일어난다.

 

 

 

2) 가라지들- 사악한 자의 아들들

 

하지만 가라지들는 다른 면을 보여준다. 이미 보여준 것처럼 가라지들은 여러 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을 멈추게 하여 열매 맺지 못하게 하는 사탄의 노력을 나타낸다. 사탄은 양면에서 그의 일을 수행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1) 그는 그리스도인들이 열매 맺는 것을 막으려고 한다.

2) 그는 그리스도인들이 열매 맺는 것을 멈추게 한다.

사탄이 그리스도인들이 열매 맺는 것을 막을 수 있다면 그 때에 해결될 것이고, 계속된 일은 불필요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그가 그리스도인들이 열매 맺는 것을 막을 수 없다면 그는 그리스도인들이 열매 맺는 것을 멈추게 해야 한다. 여기서 그는 가라지들을 뿌리게 된다. 그는 열매 맺는 그리스도인 가운데 완전하게 가라지들을 뿌리고, 마음속에 한 목표를 가지고 수행한다. 가능한 어떤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열매 맺는 그리스도인들이 계속해서 열매 맺는 것을 멈추게 하려고 온갖 노력을 다한다.

 

 

a) 가라지들의 정체성

 

열매 맺는 그리스도인들을 멈추게 하려고 온갖 노력을 다하여 그들에게 종자를 뿌리는 사탄은 정확하게 누군가? 그 답을 알아내기가 쉽다. 이 비유들은 하늘들의 왕국을 이스라엘 민족에게 제안했던 예수님의 초림 때에 그리스도에 의해 주어진 것이었다. 하지만 이 비유들은 하늘들의 왕국이 독립되고 구별되는 독립체인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새사람에게 제안될 그 때에 일어나는 일들과 관계가 있었다. 왕국이 이스라엘 민족에게 제안되었던 때이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새사람에게 제안될 때이든지 제안에 대한 어떤 깨달음은 열매 맺는 것의 여부에 따른 것이었다(21:18-19, 43).

이스라엘은 열매 맺는 것을 실패했다. 이 영역에서 민족의 실패에 책임이 있었던 이를 언급한다. 그들은 주로 서기관들, 바리새인들, 모세의 자리에 앉은 이들과 같이 민족의 종교생활을 통제한 그 당시의 종교지도자들이었다(23:2). 그들은 언제나 나라를 구하기 위해 예수님과 그분의 메시지를 반대하려고 그분을 따라다녔던 이들이었다. 그들은 왕과 왕국에 대한 민족의 거절에 직접적으로 책임이 있는 이들이었다. 그들은 사람들이 있을 때 이 사람들과 맞서서 하늘들의 왕국을 닫았다(23:13). 이런 이유로 그리스도에게서 그들은 이스라엘에 있는 다른 어떤 종교적인 무리에 의해 체험하는 것과 다른 질책과 비난을 체험했다(23:14-39).

오늘날 왕국과 관련되어 있는 열매 맺는 것을 막고, 멈추게 하려고 사탄이 사용하는 것은 기독교다. 이스라엘에게 제안하는 과거에 비추어보면 가능한 답은 한 가지 뿐이다. 이스라엘에게 제안되었던 같은 제안이 2,000년 전에 그리스도인들에게 시작되었다. 거절하는 것 또한 유대인 종교지도자들에 의한 것처럼 그들과 필적할만한 자들은 오늘날 그리스도인 종교 지도자들이 될 공산이 크다. 이스라엘 민족 밖에 있던 자들, 회개할 의지가 없는 세상은 이 문제와 관계가 없었던 것처럼 오늘날 교회 밖에 있는 자들, 회개할 의지가 없는 세상은 이 문제와 어떤 관계가 없다. 그들은 과거에 사탄이 이스라엘 안에 있던 이들을 사용한 자들인 것처럼 오늘날에도 사탄은 교회 안에 있는 자들을 사용한다(15:1-39, 16:1-28, 20:29-30).

어떻게 그리스도인들이 사악한 자의 아들들로 표현됨을 알 수 있을까?(13:38) 요한복음 8장에서 그리스도를 믿는 유대인들(31), 아브라함의 씨가 됨을 그리스도께 인정받은 유대인(37)들 역시 그들의 일들 때문에 아버지 마귀에게서 나왔다고 말했다(39-44).

마태복음 16장에서 베드로는 그가 그리스도의 고통, 죽음, 그리고 삼일 째 되는 날의 부활에 관해 주여, 그럴 수 없나이다. 이 일이 결코 주께 임하지 아니하리이다라고 말했기 때문에 직접적으로 사탄과 관계가 있었다. 예수님은 사탄에게가 아닌 베드로에게 사탄아, 너는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내게 실족거리니라. 네가 하나님에게서 난 일들을 좋아하지 아니하고 사람들에게서 난 일들을 좋아하는도다라고 말씀하셨다(16:21-23, 6:70). 그런 후 마태복음 23:15절에서 하늘들의 왕국을 닫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회심자 하나를 만들어 그들보다 두 배나 더 지옥(게헨나Gehenna)의 자식이 되게 했다. 그들이 한 것 때문에 그들의 아들 신분은 왕국과 관련이 있기보다 오히려 게헨나Gehenna와 관계가 있었다.

마태복음 13:38절에서 기독교에 존재하는 이들의 일부를 사악한 자의 아들들로 표현한다. 이들은 교회 안에서 구원받지 않은 이들이 아니고 구원받은 이들이다. 그렇게 보는 것이 문맥적으로 그 문제의 본질을 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이것은 비유의 이 부분을 올바로 보여주는 방법이고, 다른 의미를 통해서도 보여줄 수 있다. 교회 안에 있는 사악한 자의 아들들을 가라지로 보는 것이 문제의 모든 측면과 완전히 일치한다. 그것은 이스라엘에게 제안한 역사, 오늘날 기독교에 쉽게 볼 수 있는 것, 마태복음 13장의 세 번째 비유와 네 번째 비유로 넘어갈 때 볼 수 있는 것과 일치하는 것이다. 다른 어떤 방식으로 문제를 보는 것이 불가능할 것이다. 알곡과 가라지를 다루시는 하나님의 계시가 어떤 사람이 가지고 있는 그들의 정체성에 대한 모든 의심을 풀어 주어야 하는 것이다.

 

 

 

b) 알곡과 가라지들에 대한 심판

 

알곡과 가라지들 둘 다 같은 때, 같은 곳에서 다뤄진다. 비유에서 주님께서 그들을 다루심은 왕국 안으로 들어가도록 하거나 아니면 배제시키기 위한 것이다. 알곡으로 대표된 모든 성도들은 곳간에 모아져 가라지들로 대표된 이들과 전혀 다른 대우를 받는다. 알곡은 모아지고, 가라지들은 불태워진다(13:30, 40-43). 하지만 주목해 보면 영원한 진리들이 이 비유에서 다뤄지지 않고 있다. 오히려 이 비유의 주제는 왕국을 위해 열매 맺는 것이다. 모든 것은 주님께서 알곡과 가라지들로 대표된 이들을 다루실 때 심판대에서의 쟁점들과 결정들이 다른 성경구절과 완벽하게 일치한다는 것이다(24:45-51, 25:19-46, 15:1-6, 고전 3:12-15, 6:7-9). 이 본질에 대한 주님에 의한 다루심은 가라지들이 회심하지 않는 개인들이라는 어떤 생각과 완전히 다를 것이다. 여기서 볼 수 있는 방식에 따라 성경은 같은 시간, 같은 곳에서 구원받은 이들과 구원받지 않은 이들을 주님의 다루심을 나타나 있지 않다. 이런 방식으로 구원받은 이들과 구원받지 않은 이들이 왕국을 위해서 열매 맺는 것에 관해 둘 다 주님께 다뤄질 것이다.

 

 

 

c) 그들(가라지들)을 그냥 두라.

 

열매 맺는 것에서 멈추게 하려고 열매 맺는 그리스도인들 중심에 사탄이 뿌린 자들에 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이런 방면에서 그리스도의 지시를 따르는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사탄이 중심에 있으며 열매 맺는 것을 막으려 하는 자들을 향한 그리스도인들의 미덕은 무엇인가? 열매 맺는 그리스도인들이 자신들의 열매 맺음과 열매가 불태워지는 이유를 향한 반목에 관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 질문의 답은 마태복음 13:28-30절에 있다.

 

그가 그들에게 이르되, 원수가 이렇게 하였구나, 하니 종들이 그에게 이르되, 그러면 우리가 가서 그것들(가라지들)을 뽑아 모으기를 원하시나이까? 하거늘 그(그리스도)가 이르되, 아니라. 너희가 가라지를 모으다가 그것들과 함께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하노라. 둘 다 수확 때까지 같이 자라게 두어라. 수확하는 때에 내가 거두는 자(천사)들에게 말하기를, 너희는 먼저 가라지를 함께 모아 불태우게 단으로 묶되 곡식은 모아 내 곳간에 넣으라, 하리라, 하시니라.”

 

그리스도와 함께 그분의 왕국에 관심을 갖고 길에 서있는 성도들은 한 가지 방식만으로 다뤄진다. 그들은 혼자 남게 된다.

 

그들을 그냥 두라”(15:14)

 

그냥 그들을 무시하라. 주님께서 하도록 부르신 것을 계속해서 하라. 주님께서 그분 자신의 방법과 시간에 그 문제를 맡으시도록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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