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에 의하면 우리는 “하나님을 따라 창조된 새 사람을 입는 것”이라고 말한다(엡 4:24). 우리들 중 많은 이들은 신선한 깨달음을 우리에게 주시도록 주님께 요청해야한다고 들었고 또 듣고 싶어 할지 모른다. 왜냐면 이것이 실제적인 교회생활에서 필요하기 때문이다. 말씀에 포함된 진리는 절대 우리에게 옛 것이 되지 말아야 하고, 그것은 항상 신선해져야 한다. 부모는 그들의 자녀들이 날이면 날마다 곁에서 재갈거리더라도 그들을 돌보는 것을 절대 지긋지긋해 하지 않는다. 우리는 우리 삶과 관련이 있는 어떠한 것들로 덮여 있다. 우리는 회개해 그리스도의 몸이 되었다. 우리는 지금 지역교회 안에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창조된 새 사람을 입는 것을 배워야 한다.
새 사람은 누구며, 무엇인가? 트라이윤 하나님은 새 사람의 본질이시요, 성분이시요, 그리고 실체이시다. 그리스도는 트라이윤 하나님의 본체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는 새 사람의 모든 것이시다. 그래서 우리가 새 사람을 입을 때 우리는 새 사람으로서 교회의 생명이시요, 인격이신 그리스도 외에 다른 어떤 것도 입지 않는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의 지역적 표현 안에서 사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덮음이 되셔야 하고, 많은 지체들을 통한 실제가 되셔야 한다. 이것이 새 사람을 입는 것에 대한 의미다.
나는 재빠른 형제가 되고, 다른 형제들은 느린 형제가 될 수도 있고, 어쩌면 그 반대일 수도 있다. 우리는 서로 입으려 할 수 있지만 서로에게 어떻게 아량을 베풀고, 서로를 어떻게 받아들이려는가와 상관없이 그것은 일하는 것이 아닌 것이다. 이 새 사람 안에서는 우리가 아닌 그리스도께서 일하신다. 하지만 우리가 체험하는 그리스도께서 우리 자신을 제한하신다면 우리는 여전히 새 사람을 입지 못하는 것이다. 새 사람을 입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리스도의 어떠하심과 교제 가운데 있어야 한다는 것이요, 다른 성도들과 그리스도와 엮여져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체험 곧 결합체의 도움으로 인한 것이다. 우리는 새 사람 안에서 서로 입는 것을 나눈다. 그리스도 외에 새 사람을 입는 그런 일은 없다.
교회생활은 동료들과의 생활이 아니다. 지역에 있는 장로들이 동료로서 함께한다면 교회생활 안에서 손상을 입을 수 있다. 이 결합체 생활 외에 우리가 함께 하도록 하는 천연적인 이유들은 없다. 교회생활 안에는 유일한 교제만 있고, 이 교제는 결합체 생활의 교제를 통해서만 이뤄진다. 이 결합체 교제는 우리 가운데 뒤얽힌 존재를 산출한다. 이런 뒤얽힌 교제는 성도들이 서로를 입도록 할 수 있다. 여러분 안에 계신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계신 그리스도와 함께 일하고, 내 안에 계신 그리스도께서 여러분 안에 계신 그리스도와 함께 일을 한다. 이런 방식으로 우리가 새 사람을 입는 것을 배우기 때문에 우리 둘은 교회에 축복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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