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른훗 일기

우리 마음에 하나님의 빛 비추심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얼굴을 알도록 한다.

Hernhut 2015. 11. 18. 17:38

 

우리가 있는 모든 곳은 어둠 안이다. 어둠 속에서 빛아!”라고 말씀하셨고, 그러자 빛은 우리 마음 가운데서 빛 비추게 됐다. 베일이 벗겨졌다. 하지만 베일이 벗겨진 후에 어떤 것이 일어났다. 표면적으로 우리 마음에 오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의 지식이다. 하지만 여러분이 이 지식을 만질 때 여러분은 예수님의 얼굴을 거절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우리 마음은 무엇인가? 우리 마음은 우리 혼에 양심을 더한 것이다. 사실 우리 마음은 한 움직임이고, 우리의 영의 직관력은 교통을 가져오고, 교통은 선한 양심을 가져온다. 그런 다음에 영의 직관력을 움직이는 데 더 많은 기회를 만들어 낸다. 여러분은 귀로 듣고, 눈으로 보는 것처럼 이 세 가지를 말할 수 없다. 왜냐면 그 세 가지가 서로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고, 한 독립체이기 때문이다. 우리 안에서의 주의 사역은 항상 직관에서 시작한다. 이런 방식으로 하나님은 여러분 안에서 어떤 것을 촉발시키신다. 그분은 그분과 더 교통을 나누기를 갈망하도록 하신다. 이 교통에서부터 선한 양심이 산출되었다. 이 양심은 여러분의 마음을 지배하고, 영향을 주기 시작한다. 예를 들어 여러분의 마음이 어떤 것을 생각하고 있다면 여러분의 양심은 여러분을 통제하고, 여러분에게 그것을 생각하지 말라. 심지어 그런 방식조차도 생각하지 말라.”고 말하게 된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인격은 선한 양심에 따라 산다. 영적인 사람은 이런 방식으로 자신의 마음이 통제받는 사람이다. 한 사람이 자신의 직관, 교통, 양심을 통해 주의 움직이심으로 통제를 받았다면 그 사람은 영적인 사람이다.

 

하나님은 우리 안에 어떤 것을 가져오는 사역을 하려고 하신다. 그리고 우리가 볼 수 있게 하신다. 그분의 사역하심은 빛으로 빛 비추시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분은 어둠 속에서 빛이 비출 것이라”(고후 4:6)고 말씀하신 하나님이시다. 이것은 주님께서 오시기전 우리 마음이 칠흑 같았음을 가리킨다. 이런 어둠은 구름이 끼었을 때 여러분이 체험하는 그런 어둠이 아니다. 우리는 온통 어두워져 있는 상태였다. 그러자 주님께서 빛 비추셨다. 그 빛이 빛 비춰졌을 때 그것은 우리 마음에서 반짝거렸다. 우리의 양심은 그 반짝거림으로 살도록 만들어졌고, 우리의 인격을 이끌기 시작했다. 그런 마음을 가진 우리는 다소간의 영적인 인격이 되었다. 이 반짝거림은 우리 안에서 무엇을 산출하고 있었나? 그리스도의 얼굴 안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의 지식을 분명하게 하고, 드러내었고, 또 밝혀냈다.

 

우리 모두 어둠 가운데 있었다. 하지만 하나님은 빛아!”라고 부르셨고, 빛이 와서는 우리 마음속에 비췄다. 베일이 사라졌다. 하지만 그 베일이 사라진 후 이해할 수 없는 어떤 일이 일어났다. 하나님의 영광의 지식은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얼굴 안에 있기를 거절되었다.

 

나는 그리스도와의 여러분의 교통과 관계가 있기 때문에 고린도후서 4:6절에 큰 부담이 있다. 그리스도와의 여러분의 교통은 느낌이나 감정을 넘어 어떤 것이 되어야 한다. 여러분이 어둠 가운데 있었지만 결국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 빛으로 나왔다. 오늘 내가 여러분에게 주님께서 무엇처럼 보이나요?”라고 묻는다면 여러분이 이 빛 비춤을 체험하지 못했다고 한다면 여러분이 어떻게 반응할 수 있었을까? 우리 마음에 빛 비추는 이 빛은 모든 어둠을 제거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의 지식을 드러낸다. 하나님의 영광의 지식은 예수님의 얼굴, 예수님의 인격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여러분은 그런 다음에 그분을 보는 것이 분명해질 것이다. 결국 하나님의 갈망은 느낌이나 교리의 예수님이 아니라 우리 마음에 하나님의 빛을 비추심을 통해 알려진 우리가 예수님과의 교통을 갖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어둠에서 나왔을 뿐만 아니라 예수님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의 지식 안으로 확장되시는 예수님을 체험해야 한다. “주님, 저는 주님을 사랑합니다. 이와 같은 삶을 살기 원합니다. 다른 많은 것들을 추구하기보다 오히려 당신의 얼굴에 대한 분명한 비전을 갖고 살기를 갈망합니다.”라고 주님께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주님, 긍휼을 베푸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