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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전섹스 – 그리스도인들은 왜 그렇게 강하게 그것을 반대하는가?

Hernhut 2015. 6. 30. 11:14

 

 

결혼을 앞둔 교회 안에 있는 젊은 청년들에게 이와 같은 주제의 깨알 같은 이야기를 해 주고 싶다. 어떤 너그러운 사람들은 사람들이 모이다보면 이런 일 저런 일 다 일어난다. 이것저것 따지다 보면 교회가 돌아가지 않아. 그러니 그냥 용서하고 넘어가자고. 피 끊는 청춘들이 그럴 수도 있지 시간이 지나가면 다 치료가 되는 거야.”라고 말할는지 모르겠다. 또 어떤 이들은 당신과 만나기 전의 일이니까 당신이 상관할 일이 아니야.”라고 말하는 청년들도 있다. 그러나 혼전섹스는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훨씬 더 많을뿐더러 하나님께 영광스러운 것이 못되고, 교회에는 수치스러운 것이다.

 

혼전섹스는 법률적인 결혼관계에 들어가기 전 어떤 성적인 접촉을 포함한다. 성경과 복음적인 교회가 이것을 반대하는 수많은 이유가 있다. 하나님은 엄숙하게 약속한 결혼생활 관계 속에서 누리라고 섹스를 고안하셨다. 사람들은 법의 테두리를 벗어나 그것을 사용하려고 하는 경향이 농후하고, 엄숙한 약속을 빼버리고 왜곡시키고, 누림을 제한한다. 성적인 접촉은 어떤 다른 사람의 관계에서 체험하지 못한 친밀감 수준을 포함한다. 인류 최초의 부부 아담과 이브를 하나님께서 결혼이라는 관습에 묶으셨을 때 하나님은 한 육체관계를 세우셨다. 창세기 2:24절은 그러므로 남자가 자기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자기 아내와 연합하여 그들이 한 육체가 될지니라.”라고 우리에게 말한다.

 

이러한 생각은 신약성경에서도 다루어진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에서도 그 내용을 만날 수 있다(19:5, 10:7). 바울 역시 고린도전서 6:12-20절에서 상세히 말하고 있다. 바울은 한 남자가 매춘부와 섹스를 할 때 그들은 한 몸이 된다고 말한다(16). 성적인 관계가 특별한 것인 것이 분명하다. 성적인 관계는 약속, 신뢰, 결혼생활의 연합 안에서 이뤄져야 하는 한 가지 취약성이 있다.

 

일반적으로 혼전섹스에 대한 두 맥락이 있다. 하나는 젊은 남녀가 서로 사랑하고, 서로에게 약속을 했지만 결혼을 할 때까지 기다리기 원치 않고 성적인 관계만 원한다는 것이요, 다른 하나는 어쩌다 만난 사람과 성관계를 맺는 것(캐주얼 섹스)이다. 전자는 그 커플은 틀림없이 결혼할거야. 그래서 이제 결혼생활을 하고, 성적관계를 가져도 죄가 아니야.”라고 하며 종종 그런 행위를 바라보는 생각에 대해 합리화 시킨다. 요즘 결혼풍속도가 점점 바뀌어 동거 후 결혼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자신들에게 성급함과 부모와 또 다른 사람들에게도 무례함을 보여준다. 그런 풍속은 합당한 틀에서 관계의 특별한 순리를 깨는 것이다. 그것은 생각을 무너뜨릴 것이다. 우리가 이러한 행동을 받아들인다면 비록 우여곡절 속에 결혼을 했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부부간의 성생활에 대한 관심이 멀어진다는 것이다. 젊은 청년들이 장래의 메이트를 기다릴만한 가치가 있다.

 

캐주얼섹스는 사회에 만연되고 있다. 사실 캐주얼섹스라는 것은 없다. 이것은 친밀감의 깊이가 성적인 관계에 포함되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포스트잇에 유행은 유익하다.”라고 적어 노트에 붙여놓는다면 그것은 붙어있을 것이다. 우리가 그것을 떼어낸다면 그것은 작은 휴지조각으로 쓰레기통에 들어갈 것이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우리 생각 속에 있는 성적인 상상들, 부정적인 생각들을 남기지 않으면 않을수록 그것들은 쓰레기통에 들어간다. 우리가 그런 문구를 적어 반복적으로 여러 곳에 붙여놓으면 우리가 그것을 붙이는 모든 곳에 그런 문구가 남아 있을 것이고, 결국 여기저기에 붙이는 능력이 느슨해진다. 캐주얼섹스를 할 때 일어나는 일과 너무도 같다. 캐주얼섹스는 처음에 한 번의 시도가 어렵다. 한번 시도하고 나면 반복적으로 성적인 관계를 갖기 위해 상대방을 찾게 된다는 것이다. 결국 그들은 양심의 느슨함으로 무기력해진다. 우리가 할 수 없다는 것은 하다는 것이다. 성적인 관계가 아주 강하고 친밀한 사람은 아무리 쉬워보여도 캐주얼섹스를 할 수 없다.

 

그리스도인이 혼전섹스를 하고, 순결을 잃은 청춘남녀들이 그리스도께 올 때 성령님은 그 죄를 유죄 판결을 내리실 것이고, 그 일은 슬픔이 될 것이다. 하지만 소망이 있다. 예수의 피에 도달한 뒤에는 죄가 아니라는 것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하다. 물론 이기적이고, 고도의 사기꾼들은 이 말을 왜곡시킬지도 모른다. 예수께 오기 전에 혼전섹스, 캐주얼섹스를 즐기다가 마지막에 예수께 오겠다는 생각을 할지 모른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은 예수님의 필터링에 걸린다. 아무튼 우리가 진심으로 고백하면 예수님은 용서하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다(요일 1:9). 요엘 2:25절은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자벌레와 쐐기벌레와 털벌레가 먹은 햇수를 되돌리실 수 있시다고 말한다. 하나님은 회복의 능력이 있으시다. 혼전섹스는 젊은이들의 자존감, 자부심, 용서에 대한 인식을 비난하는 자벌레요, 쐐기벌레요, 털벌레요, 메뚜기다. 또 성경은 우리가 그리스도께 올 때 우리는 새 창조라고 우리에게 말한다(고후 5:17). 그러므로 회개 이전의 혼전섹스를 한 사람들은 하나님에 의해 새 사람들로 재창조되었다. 옛것은 지나갔고, 새것이 되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성령에 의해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생활하게 될 때 새로워졌다는 것을 안다. 골로새서 3:10절은 새 사람을 입었는데 이 새 사람은 그를 창조하신 분의 형상을 따라 지식에서 새로워진 자니라.”고 우리에게 말한다. 소망 없는 죄는 없다. 복음의 능력은 예수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용서를 가져다준다.

 

캐주얼섹스: 그냥 스쳐지나가거나 친하지 않은 사람들이 성적인 관계를 맺는 것을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