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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들의 이혼과 재혼

Hernhut 2015. 6. 28. 17:30

 

우리 주변에서 이혼을 하고, 또 재혼을 하는 사람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심지어는 이런 것이 당연한 것처럼 식상되어 버린 듯 아무렇지도 않게 대하게 된다. 어느 연예인이 떠들썩하게 이혼을 하고 아무렇지도 않은 듯 몇 달 후 텔레비전에 나와서 재혼을 한 것이 신선함을 주는 양 말하는 것을 보았을 때 그리스도인들의 이혼과 재혼에 대한 생각을 다루어야 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한 부부가 비록 이혼의 문제를 떠안고 있다할지라도 그들이 그리스도인이라면 말라기 2:16절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스라엘의 주 하나님이 말하노니 내가 이혼을 미워하노라.” 성경에 따르면 결혼은 서로에게 평생을 약속하고, 가약을 맺는 것이다. 그런즉 그들이 더 이상 둘이 아니요, 한 육체이니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19:6) 하나님은 결혼을 하는 것이 죄가 있는 사람들끼리 결합하는 것이기에 이혼이 일어날 것이라는 것을 아신다. 구약성경에서 하나님은 이혼의 권리, 특히 여인들의 권리를 보호하도록 어떤 법을 정하셨다(24:1-4). 예수님은 이 법이 주어진 이유는 그것들이 하나님의 갈망이었기 때문이 아니고 사람들의 마음의 가퍅함 때문이었다고 지적하셨다(19:8).

 

그리스도인들의 이혼과 재혼에 대한 논란은 마태복음 5:32, 19:9절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바에 따라 허락되었다. “결혼생활에서 외도 이외라는 구문은 하나님께서 이혼과 재혼을 허락하신 유일하다는 것이다. 많은 해석가들은 결혼생활에서의 외도라고 말하는 것이 약혼(혼담이 오고가는 기간)”이 적용이 되지 않는 것으로 이해한다. 유대인들의 관습에 따르면 혼담이 오고가거나 약혼을 했을 때에도 결혼한 것으로 간주되었다. 이런 점에서 약혼기간 동안의 부도덕함은 이혼을 하게 되는 유효한 이유가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결혼생활의 외도로 번역된 헬라어는 어떤 형태의 성적인 부도덕함을 의미할 수 있는 단어다. 성적인 부도덕함이란 간통, 매춘, 간음 등을 의미할 수 있다. 세속적인 법에서는 이러한 성적인 부도덕함이 거의 사라지고 있고, 사람들의 생각과 인식 속에서도 필요악의 존재처럼 허용하려는 경향을 갖고 있다. 심지어는 이제 결혼 풍속도가 예전과 달라져서 혼전섹스와 혼전동거, 그리고 혼전임신은 너무도 자연스럽게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다.

 

예수님은 이혼은 금하시지 않으셨다. 예수님은 성적인 부도덕함을 범했을 경우 이혼을 허용할 수 있다고 말씀하신다. 성적인 관계는 결혼생활을 묶는 필수불가결한 부분이다. 그들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라”(2:24, 19:5, 5:31) 그러므로 혼외의 성적인 관계로 끈을 끊는 것은 이혼의 이유가 될 수 있었다.

 

예수님은 또 재혼에 대한 생각을 가지고 계시다. 또 다른 여자와 결혼하는 자”(19:9)라는 구문은 이혼과 재혼이 예외적인 경우 허락되었음을 가리킨다. 물론 여기에는 설명되는 것이 있었겠지만 아무튼 그 당시에도 이혼과 재혼이 허락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결백한 당사자만이 재혼을 허락받았음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다음에 명시되지 않았지만 이혼 후 재혼을 허락함은 성적인 부도덕함을 저지른 사람들을 위한 것이 아니다.

 

어떤 이들은 고린도전서 7:15절을 믿지 않는 배우자와 이혼을 한다면 재혼을 허락받는 또 다른 예외조항으로 이해한다. 여기서 문맥상 재혼을 언급하지 않지만 믿는 성도들에게 말하는 유일한 것은 믿지 않는 배우자가 떠나기를 원하면 계속해서 (억지로) 결혼생활을 하게 하지 말라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성경에 기록하고 있지는 않지만 배우자나 아이들을 학대하고, 폭력을 휘두르는 것이 이혼의 정당한 사유가 된다고 주장한다. 사실이 그러할 수 있지만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제시할 지혜가 못된다. 요즘 이러한 문제가 배가가 된 것 같지만 예전에도 있었고, 나중에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것 때문에 이혼한다는 것은 그리스도인으로서 의미가 없다.

 

예외조항을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은 결혼생활에서의 외도가 이혼을 허락하는 것을 의미하는 한 예외조항을 필요로 하지 않고 이혼을 하는 것이 사실이다. 또 어떤 부부는 간음을 범했을 때조차도 하나님의 은혜를 통해 용서하는 법을 배우고, 그들의 결혼생활을 재건축하는 법을 배울 수 있다. 하나님은 훨씬 더 많은 것에서 우리를 용서하셨다. 분명하게 우리는 그분의 본을 따를 수 있다. 심지어 우리는 간음의 죄를 용서할 수 있다(4:32). 하지만 많은 경우의 배우자들이 성적인 부도덕함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계속해서 저지른다. 그런 경우에 마태복음 19:9절을 적용시킬 수 있다. 누구든지 음행 외에 다른 이유로 자기 아내를 버리고 다른 여자와 결혼하는 자는 간음하며 또 누구든지 버림받은 여자와 결혼하는 자는 간음하느니라

 

많은 사람들은 이혼 후 하나님께서 싱글로 있기를 바라실 때에 아주 재빨리 재혼을 해버린다. 하나님은 사람들의 관심이 나누어지지 않도록 하려고 싱글이 되도록 사람들을 부르신다(고전 7:32-35). 이혼 후 재혼은 어떤 환경들 속에서의 의견일 수 있지만 그것이 유일한 의견이라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믿지 않는 세상에서 그리스도인들의 이혼율이 높다는 것은 우리를 괴롭히는 것이다. 이혼율을 높이는 것은 둘 중 하나에 속한다. 하나는 그리스도인들의 지도자들이 이혼과 재혼에 대해 분명하게 가르치지 않거나 다른 하나는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살거나 하는 것이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이혼을 미워하신다고 아주 분명하게 말씀하신다(2:16). 또 화해와 용서는 성도들의 삶의 표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11:4, 4:32). 하지만 하나님은 이혼이 일어날 것을 아신다. 심지어 그리스도인들 중에서도 이혼이 일어날 것이다. 그렇지만 성도들의 이혼이나 재혼을 했다하여 하나님에 의해 덜 사랑받고 있다고 느끼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은 선하심을 이루시기 위해서 그들도 사용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