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rethren/연(輦)모임 메시지

하나님의 소유된 사람 되기(6)

Hernhut 2015. 2. 17. 11:56

 

 

이집트에서 하나님의 구원으로 시작하여 홍해를 건너는 것으로 침례를 받은 이스라엘 자손의 이 긴 여정은 그들의 최종 목적지 시내산에 이르렀습니다. 이곳은 호렙산으로 알려진 곳입니다. 이곳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불꽃이 이는데도 타지 않는 가시덤불로 나타나셨던 산과 같은 곳이었습니다. 네가 백성을 이집트에서 데리고 나간 뒤에 너희가 이 산에서 [하나님]을 섬기리니 너에게 이것이 곧 내가 너를 보낸 증표가 되리라.”(3:12) 그 표적이 이루어졌습니다.

 

 

8. 시내산

시내산은 이 여정의 마지막이요, 여덟 번째 역이었습니다. 여행 도중에 모세와 이스라엘 자손들이 하나님이셨고, 그분께서 원하셨던 것에 관해 배웠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여전히 그분의 증거가 되기 위해서 긴 길을 걸었습니다. 그들을 위한 하나님의 목표는 훨씬 더 높은 것이었고, 심지어 큰 계시와 약속이 요구되었습니다.

 

결국 모세는 그가 하나님을 대면하여 볼 수 있고, 하나님과 함께 걷고, 하나님과 합병될 수 있었던 곳으로 왔습니다. 이 합병의 장소에서 모세는 하나님, 그분의 갈망을 공급하고, 하나님에 대한 증거, 장막을 세울 수 있었을 것입니다.

 

모세는 그가 시내산에 도착했을 때 이미 충분한 훈련을 받았다고 생각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하나님의 방법은 진보적이십니다. 그분은 항상 우리를 더 전진하도록 하십니다. 그분의 훈련은 책으로 배우도록 하시지 않으십니다. 그렇게 했었다면 우리는 결국 시험을 통과 하고, 졸업하고, 그것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훈련은 우리와 그분께서 하나가 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그분 자신을 우리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시내산에서의 모세와 이스라엘 자손들과의 하나님의 거래는 복잡했고, 폭로되었지만 그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소유가 되게 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훈련은 점진적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훈련을 한 번에 다 하지 못합니다.

 

산을 오름

하나님은 여러 번 모세를 산 위로 부르셨습니다(19:3, 20, 24:1, 32:31, 34:2). 모세는 80살인 자신이 산을 오르기에는 너무 늙었다고 불평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불꽃이 이는데도 타지 않는 가시덤불의 공과와 하나님의 사역과 방법, 어느 정도 하나님 자신에 대해 배웠던 산으로 그는 서슴없이 올라갔습니다. 거기에는 모세의 불평이 없었습니다. 산을 오를 때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더 보여 주셨습니다.

 

첫 번째 여행에서 하나님은 그분께서 말씀하시려고 하셨던 사람들을 준비하셨습니다. 내가 이집트 사람들에게 행한 것과 또 내가 독수리 날개에 너희를 실어 내게로 데려온 것을 너희가 보았느니라. *그러므로 이제 너희가 참으로 내 목소리에 순종하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내게 모든 백성들보다 뛰어난 특별한 보물이 되리니 이는 온 땅이 내 것이기 때문이라. *또 너희는 내게 제사장 왕국이 되며 거룩한 민족이 되리라. 네가 이스라엘의 자손에게 고할 말들이 이러하니라.”(19:4~6) 그분은 그들이 이를 위해 스스로 준비되도록 구별되어야 한다고 덧붙여 말씀하셨습니다(19:10).

 

하나님은 모세에게 그와 함께 아론을 데리고 산에 오르라고 말씀하셨습니다(19:24, 24:1, 9). 아론의 두 번째 여행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모세는 그때에 모세와 아론과 나답과 아비후와 이스라엘의 장로 칠십 명이 올라가서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보았는데 그분의 발밑은 마치 사파이어 돌로 포장한 듯하고 청명한 하늘의 본체 같더라. *그분께서 이스라엘 자손의 고귀한 자들에게 자신의 손을 대지 아니하셨으므로 그들도 [하나님]을 보며 먹고 마셨더라.”(24:9~11) 이것은 구약에서 가장 달콤한 장면입니다. 성경은 그들이 먹었던 음식이 하나님께서 공급하신 것이었거나 그들이 그 음식들을 가지러 그들과 함께 산을 올라갔다면 무엇이든 간에 그들은 하나님 자신의 임재 안에서 그것을 먹었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에 의해 산 위 꼭대기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40일 밤낮을 나타나지 않았습니다(24:12, 18). 아론, 나답, 아비후, 그리고 70명의 장로들은 모세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는데 있어 한계가 있었고, 초조해 했습니다. 모세가 산에서 내려오는 것이 늦어지는 것을 백성이 보고는 함께 모여 아론에게 가서 그에게 이르되, 일어나 우리를 위해 우리 앞에 갈 신들을 만들라. 이 모세 곧 우리를 이집트 땅에서 데리고 올라온 사람에 관하여는 그가 어찌 되었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노라, 하니”(32:1)

 

아론은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 다른 사람들과 먹고, 마셨던 것처럼 하나님을 볼 수 있었던 산 위에 있었습니다. 아론은 하나님께서 산꼭대기로 모세를 부르셨을 때 모세와 함께 있었습니다. 그는 모세가 있었던 곳에 있었습니다. 아론은 하나님을 위해 강하게 일어섰어야 했습니다. 그는 모세에 관해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확신시켜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사람들에게 아론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 아내들과 너희 아들딸들의 귀에 있는 금귀고리를 빼서 내게로 가져오라, 하매 *온 백성이 자기들의 귀에 있던 금귀고리를 빼서 아론에게로 가져오니라. *그가 그들의 손에서 그것들을 받아 송아지를 부어 만들고 새기는 도구로 그것의 모양을 내매 그들이 이르되, 오 이스라엘아, 이것들은 너를 이집트 땅에서 데리고 올라온 네 신들이니라”(32:2~4)고 말했습니다. 아론이 이렇게 행했던 것은 거의 믿을 수 없는 것입니다. 다음 날에 그들이 일찍 일어나 번제 헌물을 드리고 화평 헌물을 가져오며 백성이 앉아서 먹고 마시며 일어나서 뛰놀더라.”(32:6) 아론은 모든 상황을 우상숭배로 저하시켰습니다. 하나님의 임재 안에 있지만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것이 정말 위험합니다.

 

성막과 그 기구들

산 위에 모세가 40일 밤낮을 있는 동안 하나님은 성막에 관련된 많은 것을 그에게 보여 주셨습니다. 성막은 사람과의 하나님의 완전한 관계의 육체적인 그림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궤와 그 모든 상세한 것들을 그에게 보여주셨습니다(25:10). 그런 다음 테이블(25:23), 금등대(25:31), 그리고 놋제단((27:1)을 보여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바깥마당, 제사장직분, 희생제물들에 대한 것들을 말씀하시려고 하셨기 때문에 성막의 기구를 만들어 배치케 하셨습니다. 하지만 그런 후에 하나님은 갑자기 향제단과 놋대야를 추가하여 만들도록 하셨습니다(30:1, 18). 왜 하나님은 이 두 항목을 더하셨을까요? 분명하게 하나님은 마지막 순간에 그들을 잊지 않으시고, 기억하신 것이었습니다. 나는 이것 때문에 모세가 하나님과 산 위에서 교제하고 있는 동안 아론이 이스라엘 장막에서 금송아지를 만들고 있었다고 믿습니다. 그 때에 하나님은 모세에게 그분의 경륜을 드러내시지 않으시고 계셨고, 아론이 우상숭배 안으로 사람들을 이끌고 있었습니다. 향제단과 놋대야는 사람들의 타락과 실패 때문에 추가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관점에서 첫째로 우리는 제단에 우리 자신을 헌신하고, 그런 후 빵이 올려 진 제단의 식탁에서 주님을 누리고, 그리고 금등대로서 그리스도의 형상 안으로 성령에 의해 모이고, 마지막으로 우리는 그분의 증거를 전하기 위해 그분과 하나 되려고 궤에 임하시는 하나님의 임재 안으로 이끌려지는 것입니다. 진실로 헌신된 사람은 모두가 그럼 것이 필요합니다.

 

산 위에서 하나님과 함께 있었던 아론, 나답, 아비후, 그리고 70명의 장로들은 모든 것을 엉망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들은 그들이 사람들을 하나님께 예배하도록 이끌고 있었다고 생각했습니다(32:5). 하지만 사실 그들은 사람들을 우상숭배, 육체적인 세상 안으로 이끌었습니다. 그것은 성령으로 시작하여 육체로 끝나기 쉽습니다(3:3). 우리는 심지어 차이조차도 모릅니다.

 

이것이 내가 하나님께서 마지막 두 기구를 추가하셨다고 믿는 이유입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접촉한 것을 씻고, 우리의 헌신을 다시 새롭게 하는 놋대야가 필요합니다. 우리는 우리 분투하는 형제자매들을 위해 도움의 기도를 할 향제단이 필요합니다. 이것 없이 이스라엘 자손들이 회개하는 것이 불가능했었고, 금송아지를 숭배한 후 하나님께 다시 받아들여지기가 불가능했습니다. 이 두 가지 것들의 실재 없이 우리는 또한 우리가 육체로 잘못 들어서는 한 하나님께로 되돌아 갈 길이 없다는 것을 알 것입니다.

 

영적 리더쉽

교회는 영적 리더쉽이 필요합니다. 성도들은 결국 지도자들에게 의지합니다. 지도자가 영적인 것에 헌신하면 할수록 성도들도 영적인 것에 더 헌신할 것입니다. 지도자가 이상을 가지고 있으면 있을수록 성도들도 역시 더 이상을 가질 것입니다. 지도자들이 하나님 안으로 합병되고, 하나님과 함께 걷고, 그분의 증거를 전달하면 할수록 성도들은 축복을 더 받을 것입니다.

 

지도자들이 천한 곳에 있다면 성도들 역시 천한 곳에 있게 되어 위험에 처하게 됩니다. 결국 그들을 하나로 합치면 주로 사회생활을 즐기는 것이 될 것입니다. 그들은 그들의 모임이 이스라엘사람들에 대한 묘사와 일치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다음 날에 그들이 일찍 일어나 번제 헌물을 드리고 화평 헌물을 가져오며 백성이 앉아서 먹고 마시며 일어나서 뛰놀더라.”(32:6) 그들은 모이는 그리스도인들이지만 그들 가운데서 그리스도를 찾기란 어렵습니다. 바울은 이제 내가 너희에게 밝히 말하는 이 일로는 너희를 칭찬하지 아니하노니 그것은 곧 너희가 함께 모이는 일이 더 좋은 일이 되지 못하고 더 나쁜 일이 된다는 것이라.”(고전 11:17)고 고린도교회에 말해야 했습니다. 고린도교회는 더 좋은 일이 되기 위해 함께 모이는 것이 아니라 더 나쁜 일이 되도록 했습니다. 오늘날에도 이런 유형으로 모이는 무리들이 많습니다.

 

아론은 이런 점에서 자신을 가련한 지도자라는 것을 입증했습니다. 아론은 다른 가련한 지도자들-나답, 아비후, 그리고 70명의 장로들과 함께 했습니다. 그들 모두 산 위에서 모세와 함께 하나님 앞에서 먹고, 마시고 있었습니다. 이제 그들은 사람들의 소망을 이루어 주기 위해 산 아래에 있었습니다. 산 아래에 있었던 이스라엘 사람들은 자신들의 신으로서 금 우상을 만드는 소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결과적으로 모든 성도들은 그들이 예배하는 하나님을 육체적인 생각으로 끝냈습니다.

 

모세가 산에서 내려와 금송아지를 보고 춤추고 있는 것을 보았을 때 그는 화를 냈습니다(32:19). 모세가 아론을 꾸짖었지만 아론은 책임지기를 거절했습니다(32:22). 그런 다음 아론은 그가 사람들에게서 금을 모아서 불 속에 그 금을 던졌더니 의도하지도 않았는데 송아지가 나왔다고 말을 했습니다(32:24). 아론은 가련한 지도자였을 뿐만 아니라 가련한 거짓말쟁이였습니다.

 

아론이 이와 같은 믿을 수 없는 이야기를 했던 이유에 대해 말하기란 어렵습니다. 나는 이 장면을 추측해 봤습니다. 아론이 모세의 화난 얼굴을 볼 때까지 그가 만든 실수가 어떤 것인지를 몰랐었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사전에 어떤 것을 잘못했는지 깨닫지 못했고, 모세에게 말할 것에 관해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런 우스꽝스러운 변명이 입 밖으로 나온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진노 때문에 칼과 재앙으로 죽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과 대면하여 그분의 긍휼과 은혜로 그런 상황에서 구해 주시도록 구했습니다(33:11~17).

 

대야와 향제단

하나님께서 성막에 대야와 향제단을 추가하신 것은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긍휼입니다. 대야가 없는 곳에서는 세상과 육체에서 접촉한 것을 씻을 방법이 없습니다. 향제단이 없는 곳에서는 서로를 위한 기도가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들 가운데 모든 지도자들은 잘못을 하지만 이 두 항목 때문에 계속해서 그 길을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길은 단순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죄를 고백함으로 씻을 수 있고, 교회에서 그분의 말씀의 물을 누림으로 씻을 수 있습니다(요일 1:9, 5:26). 우리는 영 안에서 서로를 위해 열정적으로 기도함으로 도울 수 있습니다(5:16).

 

이것은 성막의 휴식을 통해 우리가 통과해 가고 전진해 갈 수 있게 합니다. 우리는 헌신을 시작합니다. 헌신은 바깥마당에 있는 제단에서 잿더미가 되도록 전소시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것 하기를 기꺼워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계속해서 제단에 오를 것이고, 더 깊이 가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가 기꺼워한다면 우리는 다음의 거룩한 장소로 옮기게 됩니다. 그 성소에서 우리는 진설병으로서 그리스도를 누릴 것이요, 등잔으로서 우리가 그리스도를 따르는 성령의 사역을 할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은 우리가 궤 안에서 하나님과 하나 되는 지성소 안으로 이끌려지는 것입니다. 각 단계는 다르게 건축되지만 결코 떨어질 수 없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증거가 되고, 그분의 소유가 된다는 것입니다.

主護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