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rethren/연(輦)모임 메시지

하나님의 소유된 사람 되기(5)

Hernhut 2015. 2. 13. 10:59

 

 

7. 르비딤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여호와의 명령대로 신 광야에서 떠나 그 노정대로 행하여 르비딤에 장막을 쳤으나 백성이 마실 물이 없는지라”(17:1)

 

이스라엘 사람들이 르비딤에 도착했을 때 거기에도 물이 전혀 없었습니다. 200만명의 사람들과 셀 수 없는 동물들은 불볕더위에 떠돌아 다녔습니다. 거기엔 마실 물이 없었습니다. 백성이 모세와 다투어 가로되 우리에게 물을 주어 마시게 하라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나와 다투느냐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를 시험하느냐 *거기서 백성이 물에 갈하매 그들이 모세를 대하여 원망하여 가로되 당신이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어서 우리와 우리 자녀와 우리 생축으로 목말라 죽게 하느냐”(17:2~3)

 

아무도 물 없이 살 수 없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의 불평은 합법적인 것 이상이었습니다. 그들의 목마름은 절실했고, 그들의 필요는 당면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불평은 사람들이 엘림에서 샘물을 체험하고 신광야에서 만나를 체험했더라도 그들이 그분을 신뢰할 수 있게 하는 하나님과의 교제를 여전히 갖지 못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주님은 모세에게 백성 앞을 지나가서 이스라엘 장로들을 데리고 하수를 치던 네 지팡이를 손에 잡고 가라 *내가 거기서 호렙산 반석 위에 너를 대하여 서리니 너는 반석을 치라 그것에서 물이 나리니 백성이 마시리라 모세가 이스라엘 장로들의 목전에서 그대로 행하니라”(17:5~6)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불평하는 것이 모세의 차례가 되었어야 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80살이 넘었다고 주님께 말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바위로 가려고 산을 오르기에는 너무 나이가 들었습니다. 여호수아나 다른 젊은이들은 이 일을 할 수 없었을까요? 한 술 더 떠서 그의 동역자들 역시 과중한 부담이었습니다. 그는 적어도 4.5kg의 지팡이를 들고 올라야 했습니다. 그런 후 그는 물이 아노도록 기대하고서 이스라엘 장로들 앞에서 그의 동역자와 함께 바위를 쳐야 했습니다. 이것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왜 비를 주시지 않을까요? 그가 바위를 쳤는데 물이 나오지 않았다면 그는 사람들 앞에서 창피를 당했을 것입니다. 게다가 이런 일을 하기에 그는 너무 목말랐을 것입니다.

 

하지만 성경에는 모세가 반대한 적이 있다고 기록되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불평은 합법적이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는 불평하는 대신 주님께서 명령하신 것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동료와 함께 산에 올라가서 바위를 쳤습니다. 그러자 주님께서 약속하신 것처럼 물이 바위에서 나왔습니다. 그 물은 200만 명의 사람들과 셀 수도 없는 많은 동물들에게 공급하기에 충분한 양이었습니다. 그 물은 강과 같이 흘러야 했었습니다.

 

내적공급

 

다섯 번째 역에는 물을 공급하는 12샘이 있었는데 왜 일곱 번째 역에는 물이 없었을까요? 여기에는 영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의 구원에 대한 최초의 체험에서부터 르비딤에 있는 이 부분까지 이집트를 대표합니다. 그때에는 하나님께서 겉으로 나타나셨고, 그분의 물 공급 또한 표면적인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하늘에 계신 그분께 우리의 불평을 하게 되었고, 그분은 땅에 있는 우리에게 그분의 축복을 보내셨습니다. 우리는 메시지를 들었고, 영적인 책을 읽었고, 다른 사람들의 풍성을 의지해서 살았습니다. 우리는 물이 어떤 외부적인 원천에서 우리에게 공급되었을 때에만 마실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관점은 거리가 먼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젊었던 영적인 생활을 영원한 것과 같은 것이 되도록 할 그분의 의도가 아니기 때문에 처음 여섯 단계를 통해 우리와 함께 외부적인 교제하시는 것을 기뻐하셨습니다. 그분의 큰 관심은 우리가 그분을 사랑하기 시작하고, 그분을 갈망하기 시작하도록 하기 위해서 그분 자신께 우리를 이끄시는 것입니다. 결국 그분은 우리가 바위를 두드려 충분한 물을 마실 수 있는 곳인 르비딤으로 우리를 데려오십니다. 이 공급은 내적인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그들이 모두가 같은 영적 음료를 마셨느니라. 그들이 자기들을 따라가던 영적 [반석]으로부터 마셨는데 그 [반석]은 그리스도였느니라.”(고전 10:4)고 말했습니다. 끊임없는 내적인 물을 공급하는 이 바위는 매 순간마다 우리와 함께 있습니다. 예수님은 마지막 날 곧 명절의 그 큰 날에 예수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 기록이 말한 것 같이 그의 배에서 생수의 강들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라. *(그러나 이것은 그분께서 자기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더라. 예수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아니하셨으므로 아직 [성령님]께서 주어지지 아니하였더라.)”(7:37~39)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바위는 우리 안에 있는 성령으로서의 그리스도십니다.

그리스도는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두들기셨습니다. 그리스도는 우리가 처음 믿었을 때 영접한 분이십니다. 그분은 이제 끊임없는 내적공급으로서 우리 안에서 살아있는 물의 강들로 흐르십니다. 예수님은 그분께서 우물가에서 만난 사마리아 여인에게 누구든지 내가 줄 물을 마시는 자는 결코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줄 물은 그 사람 속에서 솟아나는 우물이 되어 영존하는 생명에 이르게 하리라”(4:14)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영접한 분이십니다. 그분은 우리 안에서 물이 흐르게 하실 바로 그 바위십니다.

 

우리는 모두 일곱 번째 단계인 르비딤 체험 안으로 성장하기를 갈망해야 합니다. 이것이 큰 변화입니다. 이전의 모든 것은 겉으로 하나님에 의해 주어진 것이었습니다. 그분은 이것과 저것을 우리에게 주십니다. 그분은 이것과 저것을 돌보셨습니다. 그분은 겉의 모든 것을 우리에게 공급하셨습니다. 르비딤을 시작으로 그분은 우리가 모든 시간에 흐르게 할 생명의 물을 우리 안에 가지고 있음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리스도는 하늘에 계시지만 그분은 성령으로서 우리 안에 계시고, 우리의 생명으로서 우리 안에 거하시고 계십니다. 그분은 진실로 편재(遍在)하십니다. 우리 여생을 감사함으로 갈 것이요, 이 내적공급을 누릴 것입니다.

 

아말렉과의 전쟁

물은 특히 광야에서는 소중한 것입니다. 모세가 바위를 두들긴 후 바위에서 흘러나온 것은 풍부한 물 공급이었습니다. 그래서 거기서 살던 사람들에게 시기와 주의를 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물이 흐르기 시작한 직후 그때에 아말렉이 와서 르비딤에서 이스라엘과 싸웠습니다.”(17:8) 바위에서 나오는 물은 모든 믿는 이들에게 거하시는 움직이시고, 흐르시고, 공급하시는 성령을 대표합니다. 아말렉은 우리가 아담 안에서 천연적인 우리의 태어남으로 받아들인 모든 욕정과 욕망으로 우리의 타락한 육체를 대표합니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서 흐르시기 전 우리는 우리 육체로 살았습니다. 가끔 그것은 고결한 인도주의자 방법, 이기적인 사악한 방법에서 나왔습니다. 가끔 그것은 세련된 면을 자랑하기도 하고, 야만적인 면을 드러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오기 전에 아말렉이 온 땅을 차지하고서 행복한 것만을 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그리스도께서 오시기전 우리 육체가 우리 모두를 차지하고서 원하는 것만을 했습니다.

 

우리가 매혹된 바위처럼 그리스도를 영접했고, 영적인 물이 우리 안에 흐르게 되어 우리 육체 안에서 전쟁이 시작되었습니다. 바울은 그런즉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곧 성령 안에서 걸으라. 그리하면 너희가 육신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육신은 성령을 대적하여 욕심을 부리고 성령은 육신을 대적하나니 이 둘이 서로 반대가 되므로 너희가 원하는 것들을 너희가 능히 하지 못하느니라.”(5:16~17)고 썼습니다. 성령과 육체는 항상 서로 전쟁을 치룰 것입니다.

 

이 전쟁을 치르려고 모세는 산꼭대기인 하늘에 속한 곳에 서서, 손을 올리고 기도했습니다(17:9~10). 그가 계속해서 손을 올리고 있는 한 이스라엘은 승리했습니다. 그가 손을 내렸을 때 아말렉이 이겼습니다. 기도는 어려운 일입니다. 하지만 기도는 아말렉이 패하는 것이라면 해야만 하는 일입니다. 아론과 훌은 모세가 피곤해서 손을 내리게 되었을 때 모세를 지지해 주었고, 팔을 붙잡아 올려 주었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함으로 오랫동안 우리 자신을 이길 수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승리할 수 있다면 다른 사람들의 지지가 필요합니다.

 

전쟁이 승리로 끝난 후 주님은 모세에게 이것을 책에 기록하여 기념으로 삼고 또 여호수아의 귀에 그것을 되풀이하여 말하라. 내가 하늘 아래에서 아말렉에 대한 기억을 철저히 없애리라, 하시니라. *모세가 제단을 쌓고 그것의 이름을 여호와닛시라 하였으니 *이는 그가 이르기를, {}께서 아말렉과 대대로 싸우리라고 {}께서 맹세하셨도다, 하였기 때문이더라.”(17:14~16)고 말씀하셨습니다. 한 면에서는 아말렉의 기억이 완전히 덮여질 것입니다. 다른 한 면에서는 주님께서 대대로 아말렉을 대항하여 전쟁을 치를 것입니다.

 

하나님의 관점에서 육체는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견디셨을 때 완전히 제거되었습니다. 바울은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능히 하지 못하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하셨나니 곧 자신의 [아들]을 죄 많은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시고 또 죄로 인하여 육신 안에서 죄를 정죄하셨느니라.”(8:3)고 기록했습니다. 하늘에 속한 이론은 육체가 비난했다는 것이요, 육체가 제거되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모세의 관점에서 육체와의 전쟁은 대대로 계속 이어질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육체를 처리하는 또 다른 그림, 이스마엘을 쫓아냄으로 하나님께 순종하는 신실한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이 죽었을 때 이스마엘은 그를 육체에 매장했습니다(21:10~14, 25:9). 우리의 육체는 우리가 휴거되거나, 주님께 사로잡힌 그 날까지 뇌리에서 떠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어느 날 그렇게 강해지는 우리의 육체를 알 때 놀라거나 실망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우리의 손을 올려 우리 안에서 흐르시는 성령을 신뢰하고, 믿는 이들과 함께 우리 승리의 깃발이신 주님께 기도로 의지할 때입니다. 그런즉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곧 성령 안에서 걸으라. 그리하면 너희가 육신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5:16)

主護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