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퍼런스/교회II

5-5.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남아있다는 안식(히 4:9).

Hernhut 2014. 12. 11. 17:45

 

히브리서 4:4, 10절에 일곱 번째 날과 하나님의 안식이 언급됩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을 위해 남아 있는 그 안식이 일곱 번째 날 안식일이라고 논쟁을 벌입니다.

 

히브리서 4장 어디에도 특별한 날에 휴식하라고 사람들을 가르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이 언제 휴식을 할 것인지, 얼마나 오래 휴식할 것인지, 얼마나 자주 휴식할 것인지에 관해 말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에게 일곱 번째 날에 휴식할 것을 요구하는 사람들은 말하지 않은 구절을 추가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안식과 사람들의 휴식 사이의 유사성은 노동의 중지에 대한 개념만을 말합니다. 언제, 얼마나 자주, 얼마나 긴지를 말하지 않습니다.

 

안식일이라는 일반적인 단어는 단순히 휴식이나 중지를 의미합니다. 안식일 자체가 휴식할 대상, , 빈도, 길이를 정의하지 않습니다. “안식일은 반드시 일곱 번째 날을 휴식의 날이라 말하지 않습니다. 안식일이라는 용어는 휴식의 다른 빈도와 다른 기간에 사용되었습니다. 오직 이 문맥만 휴식이 그 주간에 일곱 번째 날을 말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몇 가지 예가 있습니다. “안식일이라는 단어는 휴식의 기간과 여러 시간을 말하는데 사용되었습니다.

 

속죄일은 안식일을 포함했습니다(16:19~31, 23:31~32). 땅은 일곱 번째 해에 1년을 휴년(休年)으로 지켰습니다(25:2~8). 사람들이 유배되었거나 포로 되었을 때 그 땅은 안식일로 지켰습니다. 그들이 바벨론으로 갔을 때 그 땅은 70년 동안 안식이 지속되었습니다(26:34~35, 43, 대하 36:21). 나팔절과 초막절도 안식일에 포함되었습니다. 차이가 있지만 안식일과 관계가 있는 단어로 사용되었습니다(23:24~25, 39).

 

그러므로 안식이라는 단어는 단순히 휴식이아 중지를 말합니다. 안식은 하루, 한 해, 아니면 여러 해를 지속할 수 있습니다. 안식은 한 주에 한번, 7년에 한번, 어떤 미확인된 시간이 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문맥에서만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히브리서 4장은 휴식이 얼마나 오랜 지속하는지를 말하지 않습니다. 히브리서 4:9절의 안식은 언제 휴식해야 하는지, 얼마나 지속해야 하는지를 말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일곱 번째 날 안식일이라고 논쟁하는 것은 입증할 수 없는 주장입니다.

 

하지만 안식일에 대한 기준 말씀은 히브리서 4:9절 어디에도 없습니다. 히브리서 3~4장은 하나님의 사람들을 위한 휴식을 몇 번 말하고 있지만 사용된 단어는 안식일에 대한 말씀이 아닙니다. 히브리서 4:9절은 안식과 유사한 어원을 사용하지만 그것은 다른 단어입니다. 안식일(사바톤)이라는 용어는 히브리서 4장 어디에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히브리서 4:9절에 있는 휴식(사바티스모스)이라는 단어는 여기서만 사용되었고, 문맥은 휴식에 대한 특별한 날이 아니라 휴식을 단순히 설명하는 것을 보여줍니다.

 

번역가들은 이 차이를 인정했고, 그에 따라 번역했습니다. 히브리서 4:9절의 표준 번역은 하나님의 사람들이 “(안식) 휴식을 받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표준 번역이 아닌 번역은 안식일이라고 말합니다. 그 모든 번역들은 에 대한 생각이 아니고 휴식에 대한 생각을 강조합니다.

 

예를 들어 테이어는 히브리서 4:9절에 있는 단어가 안식이란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들과 그리스도인들에 의해 고통과 덫에서 풀려나는 휴식을 다가오는 시대에 추구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합니다. 테이어는 틀릴 수 있는 사람이지만 그가 말한 요점은 히브리서 4:9절에 일곱 번째 안식일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안식일안식 기간사이의 차이점을 생각해 보십시오. 이 단어는 같은 어근을 갖습니다. 하지만 그 단어들은 다른 생각을 말하기 때문에 다릅니다. 둘 다 쉼이나 휴식을 의미하지만 안식 기간은 어떤 기간이나 빈도를 의미합니다. 문맥에서만 알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히브리서 4:9절에 있는 단어는 일어나는 때와 빈도와 기간과 상관없이 어떤 휴식 기간을 말할 수 있습니다. 문맥에서만 이러한 것들을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들어갈 남아있는 휴식은 하늘에 있는 우리의 영원한 보상입니다. 문맥은 세 가지 다른 휴식들을 말합니다.

 

1) 히브리서 4:4, 10절은 창조를 완결하셨을 때 일곱 번째 날에 하나님의 안식을 말합니다. 히브리서 4:9~10절은 하나님의 안식과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약속하신 휴식 사이에 유사성이 있음을 보여줍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어떤 특정한 날을 휴식하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2) 히브리서 3~4장 문맥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가나안에 있게 하시겠다는 약속하셨지만 이 휴식에 들어가는 것에 실패했다는 것을 설명합니다. 휴식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반복해서 말합니다(3:11, 18~19, 4:3, 5).

 

이 휴식에 들어가는 것에 대한 실패함은 시편 95:7~11절에 하신 말씀을 히브리서 3:7~11절에 인용을 했고, 히브리서 3:16~19절에서 설명을 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약속하신 가나안 땅에 들어갔을 때 휴식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33:14, 3:20, 12:9~10, 25:19). 하지만 모세의 인도 하에 이집트에서 나온 이스라엘은 불순종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을 그 휴식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셨고, 40년간이나 광야에서 유랑하게 하셨습니다(14:23, 28~30, 1:34~35).

 

이것은 일곱 번째 안식일과 어떤 관계도 없습니다. 이스라엘은 안식일 날을 지키도록 명령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히브리서 3~4장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약석하신 휴식을 논하지만 광야에서 하나님을 대항하는 그들의 모반 때문에 그들은 그 땅에서의 휴식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3) 마찬가지로 문맥은 이스라엘의 실패에서 배우는 오늘날의 하나님의 사람들을 꾸짖습니다. 이스라엘과 마찬가지로 문맥은 들어가기를 추구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논합니다. 지키고, 기억하고, 거룩하게 지키라는 명령을 하지 않습니다. 반복해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휴식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4:1, 3, 6, 9, 10~11).

 

히브리서 3:12~15, 4:1~11절은 그것을 설명합니다. 심지어 결국 이스라엘이 여호수아의 지도하에 가나안에 들어간 후에도 여전히 다윗은 하나님의 사람들이 기다리는 휴식을 말했습니다(시편 95). 우리는 이스라엘의 불순종이나 우리 역시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가지고 계시는 휴식 안으로 들어가지 않으려고 하는 것을 따라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끝까지 굳게 붙잡는다면 그 휴식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가나안에 들어간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휴식을 주시겠다고 약속하는 것처럼 그분은 우리가 하늘에 들어갈 때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에게 휴식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그분의 멍에를 짊어지면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짊어진 자들에게 휴식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11:28~29). 주님 안에서 죽는 자들은 히브리서 4:10절과 마찬가지로 그들의 수고에서부터 휴식한다고 말합니다(14:13). 하지만 신실하지 않은 사람은 그런 휴식은 없습니다(4:11). 예수께서 하늘로부터 계시되실 때 신실한 자들은 휴식을 주실 것이지만 복음에 순종하지 않는 자들은 고난을 받을 것입니다(살후 1:7, 4:6, 8~9).

 

히브리서 4장과 마찬가지로 이 모든 구절들은 불순종의 사람들이 받는 휴식이란 없고, 하나님의 신실한 사람들에게 주시는 휴식을 약속합니다. 이 어떤 구절도 한 주간 중 특정한 날을 지키도록 명령한 것과 관계가 없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혼의 휴식을 받고, 그런 후 하늘에 있는 영원한 휴식을 받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신실하게 된 후 들어갈 수 있는 약속이요, 축복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지켜야 한다는 명령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안식은 우리에게 지키라는 명령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안식은 단순히 그분의 사역을 쉬셨다는 의미입니다. 어느 날에 우리 역시 우리의 사역에서 휴식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