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과 음료/복음칼럼

오바댜에게서 배우는 교회생활

Hernhut 2014. 11. 15. 11:01

엘리야가 명했을 때까지 이스라엘에 비와 이슬이 내리지 않을 것이라고 예언한 것을 주님께서 인정하셨습니다. 이 가뭄은 온 땅에 극심한 기근을 가져왔습니다. 3년 후 주님의 말씀이 엘리야에게 임했습니다. 가서 너를 아합에게 보이라. 내가 비를 땅 위에 내리리라”(왕상 18:1).

 

같은 때에 아합왕은 말들과 노새들을 구하도록 풀들이 나있는 골짜기와 샘을 찾도록 그의 종 오바댜를 보냈습니다. 그는 땅을 반으로 나누어 반은 자신이 찾았고, 반은 오바댜를 보내어 찾도록 했습니다(왕상 18:5~6). 자신의 모든 백성들이 굶어 죽을 위험에 처해 있었을 때 아합왕이 노새들을 걱정했을 것이라는 것을 믿기 어렵습니다.

 

오바댜는 하나님을 크게 경외했던 선한 사람이었습니다(왕상 18:3). 이세벨이 하나님의 선지자들을 핍박하고 있었을 때 오바댜가 대언자 백 명을 데려다가 그들을 오십 명씩 굴에 숨기고 그들에게 빵과 물을 먹였습니다.”(왕상 18:4) 오바댜와 선지자들은 그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을 숨겼습니다. 하지만 그들 중 아무도 하나님께 그분의 증거를 위해 쓰임 받지 않았습니다. 이것으로부터 배우게 되는 심각한 공과가 있습니다. 우리가 선하고, 하나님을 경외할 수 있지만 여전히 하나님께 그분의 증거를 위해 완전히 쓰임 받지 못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바댜의 위치가 아합에게 접근할 준비를 다 했는데 왜 그는 아합에게 바알을 따르는 것을 반대하는 경고를 하지 않고, 하나님의 길에 관해 말하지 않았을까요? 그는 아합에게 바알을 숭배하는 것을 멈추라. 이스라엘 왕이 거짓 신들을 숭배하는 것을 용인하는 것은 잘못이다. 이와 같은 것을 세우고, 홍보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하나님께로 돌아가 그분만을 섬기라. 왜냐면 그분만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라고 말해야 했습니다. 분명히 오바댜와 선지자들은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고, 아합왕은 보호되었습니다. 그들이 주님의 선지자였을지라도 그들 중 아무도 하나님의 증거할 용기가 없었다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요?

 

어떤 하나님의 선지자들이 입장을 취하기를 꺼리는 것은 주의 증거에 약하다는 것입니다. 고학력자요, 고위 관료요, 세상적으로 가장 성공한 오바댜는 왕이 수치스럽고, 모독적인 행동을 계속한다면 왕위를 내놓아야 한다고 말해야 했습니다.

 

오바댜는 선한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이름조차도 하나님의 종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그가 하나님의 증거를 해야 할 시간이 왔을 때 완전히 소극적이었습니다. 적극적으로 주님을 위해 행동을 취하기보다 오히려 상황과 환경에 따라 움직였습니다. 우리가 오바댜들이라면 우리는 나는 주를 사랑한다. 나는 주를 따른다. 나는 그분의 사람들과 선지자들을 사랑한다. 나는 그들을 잘 돌본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모든 것을 기꺼이 포기하나요? 모든 희생을 감당하나요? 하나님의 증거를 위해서 기꺼이 우리 자신의 삶을 내려놓습니까? 우리는 오바댜가 되는 것이 선한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그리스도를 추구하는 긴 세월 속에서 우리에게 커다란 손실일 것입니다.

 

오바댜의 소극적임은 아합의 완전한 타락보다 훨씬 더 나를 괴롭힙니다. 아합은 분명하게 이사벨과 결혼하는 심각한 실수를 범했습니다. 그는 이방 여자, 특히 바알을 숭배하는 사람과 결혼하는 것보다 더 낫다는 것을 알아야 했습니다. 이 결혼은 아합의 통치의 모든 실패와 비극의 근원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와 같은 사악한 아내조차도 아합이 하나님을 깊이 경외하는 오바댜라 불리는 친근한 친구이자 청지기 때문에 충격이 완화되었거나 균형을 잡을 수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오바댜는 하나님의 증거를 전하려는 값을 기꺼이 지불하지 않았습니다.

 

교회생활에서 종종 있는 문제들은 아합이 일으키는 문제들이 아니라 오바댜가 일으키는 문제들입니다. 주님을 섬길 것을 주장하는 많은 사람들은 대부분 오바댜들입니다. 그들이 주님의 증거를 분명하게 전할 수 없기 때문에 주를 섬기라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엘리야와 오바댜 사이나 엘리야와 오바댜가 숨겨준 100명의 선지자들 사이에 무슨 차이가 있었나요? 결국 그들은 거짓 선지자들이나 바알의 선지자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선지자들이었고 그분을 섬겼습니다. 차이는 오바댜와 선지자들은 모두가 겁쟁이들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주님의 관심보다 그들 자신들의 삶에 더 관심을 가졌습니다. 선지자들로서 그들은 주님의 관심과 증거에만 관심을 가져야 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왜 선지자들이 된 것이죠? 하지만 그들은 왕이 잘못되었고, 또 사람들을 타락으로 이끄는 그에게 말하는 것이 너무나 두려웠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