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과 음료/새벽이슬처럼

기노스코Ginosko, 오이다Oida

Hernhut 2014. 9. 23. 11:30

 

마태복음 7:23절과 마태복음 25:12절의 알다라는 단어는 헬라어에서 다른 의미입니다. 마태복음 7:23절에서 사용된 지식은 기노스코ginosko입니다. 마태복음 25:12절에서 사용된 지식은 오이다oida입니다.

 

기노스코ginosko체험을 통해 얻어지는 지식을 말합니다. “기노스코ginosko는 그리스도를 따르고, 그분의 명령을 유지하는 체험을 통해 그리스도와 친밀한 교제를 갖게 하는 지식입니다(요일 2:3~4). 이것은 바울이 빌립보서 3:10절에서 사용한 단어입니다. 이것은 내가 그분의 죽으심과 일치하게 되어 그분과 그분의 부활의 권능과 그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을 알고자 함이요 이와 같은 지식, 그리스도와의 교제의 결론은 죽은 자들의 부활안으로 도달하게 하는 것입니다(3:11).

 

반면 오이다oida완전한 지식”, 체험 외에 얻어진 지식을 말합니다. 이것은 우리의 영원한 구원과 성경에 있는 여러 측면과 관련 있는 것을 소유하는 지식입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들이니라. 우리가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되 그분께서 나타나시면 우리가 그분과 같게 될 줄 아노니 이는 우리가 그분을 그분께서 계신 그대로 볼 것이기 때문이라.”(요일 3:2), “내가 [하나님][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들을 쓴 것은 너희에게 영원한 생명이 있음을 너희가 알게 하고 또 [하나님][아들]의 이름을 너희가 믿게 하려 함이라.”(요일 5:13)

 

마태복음 7:23절에서 그리스도께서 사용하시는 기노스코ginosko는 사람들이 수행했던 기적적인 사역과 관계없음을 분명하게 계시합니다. 이 사역을 수행하는 사람들은 완전하게 그리스도와 어떤 친밀한 교제의 영역 밖의 행위들을 이루었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그리스도와의 교제를 주장하지만 주님은 모른다고 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의 질문에 대한 반응하시는 그리스도는 기노스코ginosko라는 단어를 사용하심으로 그분께서 이러한 사역과 전혀 관계가 없다고 보여주시기를 매우 조심하셨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주님께 질문한 의도는 주님께서 긍정적인 반응을 답하시는 것을 기대했었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그들에게 성령의 능력과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수행하고 있었던 기적적인 사역에 대해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셨습니다.

 

현제도가 끝나가는 오늘날 기적적인 사역을 드러내 보이는 기독교의 이러한 분파(7:22)는 성령충만과 관련이 있는 거짓되고 위조된 여분의 기름 공급을 받는 것에 대한 메시지를 선포하고 있습니다. 사실 여기서 나는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 나는 확실히 예수의 이름으로 사역하고 있어! 라고 말할지도 모릅니다. 이 성령에 대한 거짓되고 위조된 사역은 그들의 메시지의 핵심입니다.

 

이 본성에 대한 오류는 오늘날 제도 끝 무렵 기독교의 라오디게아 상태에 있는 사탄의 사역이 될 수 있을 뿐입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인들을 혼란을 일으킵니다. 이것은 부패와 기만을 산출합니다. 그것은 제도가 맨 처음 시작될 때 여자가 가루 서 말에 두었던 누룩의 일에 결론의 한 측면입니다(13:33).

 

사탄의 이 일에 휩쓸려 기만을 받은 그리스도인들은 악한 세상에 널리 퍼져있는 초자연적인 능력에 대해 드러내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고, 이러한 것들이 주님의 것으로 믿고 있으며, 또 성령의 능력으로 이루어지는 것으로 믿고 있습니다. 그들은 그들의 생활에서 모조된 성령의 일을 받아들임으로 더 기만되고 있습니다. 그들은 직면해 있는 영적전쟁을 위해 가짜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또 이 행위에 포함되어 있는 그리스도인들은 장차 거절됨을 산출하는 체험을 할 뿐입니다. “내가 너를 전혀 모르겠는데!”

 

그러므로 마태복음 7:23절에서 예수님은 신중하게 단어를 선택하셨습니다. 이런 기적적인 일을 하는 사람들과 주님께서 친밀한 교제를 가지 않으실 것이라는 것을 보여주십니다. 하지만 마태복음 25:12절에서 그분은 다르게 말씀하십니다. “기노스코ginosko보다 오히려 오이다oida를 사용한 것은 어떤 체험적인 말을 제외하고 사실적인 지식을 계시합니다.

 

하지만 체험적인 지식은 여분의 기름을 획득하는 것입니다. 문 밖에 있는 자들은 이와 같은 체험의 권리를 주장하지 못합니다(7:21~23). 그리스도는 단순한 것으로 여기셨습니다. 주님은 문을 열고서 요청하는 자들에게 합당한 답을 주신 것처럼 완전하신 말씀을 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