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과 음료/복음칼럼

하나님의 살아있는 말씀

Hernhut 2014. 5. 15. 12:04

 

그러나 노아는 주의 눈에 은혜<호의>를 입었더라. *노아의 세대들은 이러하니라. 노아는 의로운 사람이요 그의 <악한>세대에서 비난받을 것이 없는 자이더니 노아가 하나님과 <친숙한 교제로> 동행하였더라.”(6:8~9). 노아는 일생동한 하나님과 함께 걸었습니다. 이 때문에 그는 하나님의 눈에서 호의를 찾았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안에 있는 큰일들은 항상 생명으로부터 일어났습니다.

 

노아가 하나님의 시야에서 호의를 찾았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분의 살아있는 말씀을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6:13~21). 우리가 약하기를 원치 않는다면 영 안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그분과의 교제로 살므로 하나님과 함께 걸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증인이 되고, 그분을 섬기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또한 하나님의 살아있는 말씀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길이가 300, 너비가 50, 높이가 30큐빗의 3층으로 된 방주를 만들라고 말씀하셨습니다(6:15~16). 하나님의 말씀이 그의 마음에 꽂혔습니다. 노아가 이같이 하니 하나님이 그에게 명한 모든 것을 다 하였더라.”(6:22).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이 그에게 살아있었고, 그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노아는 그 말씀을 잊지 않았습니다. 우리도 말씀을 가지고 있지만 우리 안에서 살아있거나 우리를 지배하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말씀이 있지만 우리의 생명공급이 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분 자신의 명령을 수행하도록 그에게 힘을 돋게 하는 그분의 살아있는 말씀을 통해 노아를 얻으셨습니다.

 

우리가 창세기에서 노아 부분을 읽을 때 방주가 아주 빠르게 만들어졌다고 느낍니다. 사실 많은 시간이 걸렸습니다. 우리는 노아가 여러 해 동안 사람들에게서 조롱받은 고통을 상상할 수 없습니다. 노아는 숨어서 조용하게 방주를 짓지 않았고, 의의 전달자로서 그 당시 사람들에게 경고를 했습니다(벧후 2:5).

 

노아의 세대들은 이러하니라. 노아는 의로운 사람이요 그의 <악한>세대에서 비난받을 것이 없는 자이더니 노아가 하나님과 <친숙한 교제로> 동행하였더라.” (6:9), 하지만 그는 하나님의 뜻을 수행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살아있는 말씀이 여전히 필요했습니다. 비록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의롭고, 떳떳한 사람으로 우리를 보실지라도 우리는 역시 하나님을 섬기고, 그분의 뜻을 행하기 위해 살아있는 말씀이 필요합니다. 살아있는 말씀은 우리를 다른 사람이 되게 힘을 줍니다.

 

하나님의 살아있는 말씀을 가진 사람들은 순수하게 되고, 믿음 있어야 함을 절대 말하지 않습니다. 그들 안에 불순물이 섞여 있을 때, 순수하지 못할 때 그들은 순수해질 필요가 있음을 느낍니다. 그들 안에 믿음이 없을 때 믿음이 있기를 내면에서 요구합니다. 말씀은 그들 안에서 자라고, 그들을 통제합니다(1:21~22). 이것이 살아있는 말씀을 갖는 체험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따르는 것처럼 우리는 계속적으로 그분의 살아있는 말씀을 필요로 합니다.

 

글자는 죽이지만 살아있는 말씀은 속사람을 강하게 합니다(고후 3:6). 복음 전파자들은 여러 번 비슷한 메시지를 나눌 수 있습니다. 우리가 그영으로부터 오는 신선한 말을 열지 않는다면 우리는 나는 전에 이것을 들었다.”고 반응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살아있는 말씀을 열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영이 없이 우리는 실제를 갖지 못합니다. 다만 우리를 오만하게 만드는 지식을 가질 뿐입니다(고전 8:1). 이런 지식은 육체로 살게 하고 바보같이 말하게 합니다. 우리가 살아있는 말씀을 가지면 가질수록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살고, 육을 신뢰하지 않습니다(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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