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우리의 개인적인 신분의 완전성을 지적하고 싶다. 이 신분은 그리스도인들 생활의 우리의 이해에 강한 영향을 준다. 바울의 저서로부터 인용 성구로 시작하자. 나는 요점을 강조하기 위해서 괄호 안에 주석을 달았다.
“내가[옛날의 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고 있나니 이제는 내가[옛날의 나]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이라. 지금 내[새로운 나]가 육체 안에서 사는 삶은 나[새로운 나]를 사랑하사 나[옛날의 나]를 위해 자기 자신을 내주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으로 사는 것이라.”(갈2:20). 이 구절은 우리에게 예전의 바울이 예전에는 온통 육체 안에 있었으며,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새 삶을 사는 바울은 바울 안에 그리스도의 생활로 살고 있다. 바울은 이제 새로운 삶을 생활하며, 삶의 원천이 바울 자신이 아니라 그리스도시다. 이것은 바울이 그의 자아를 잃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그의 혼(soul: 생각, 감정 그리고 의지)의 재능이 그의 옛 천연적인 삶을 자신의 지배를 통해서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성령의 지배와 깨달음 아래에 있음을 의미한다.“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시요, 죽는 것이 이득이기 때문이라.”(빌1:21). 이 구절은 다시 바울의 생활의 근본과 내용이 바로 그리스도였음을 보여준다. “이는 너희가 죽었고[예전의 여러분] 너희 생명[새로운 여러분]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졌기 때문이라. *우리의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너희도 그분과 함께 영광 가운데 나타나리라.”(골3:3~4). 이 구절들은 하나님의 관점에서 봄으로서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삶이라고 하는 것, 즉 입장적인 진리로 말하는 것을 포함한다. 이 구절은 우리의 옛 아담 생명이 완전히 그리스도와 함께 죽어 깨끗하게 되었으며, 지금은 그리스도 자신은 우리의 생명이시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입장적으로 우리의 생명이시고, 체험적으로 우리의 생명이 되실 수 있다. “이는 영으로 하나님께 경배하고 그리스도 예수님을 기뻐하며 육체를 신뢰하지 아니하는 우리가 곧 할례자이기 때문이라. *비록 내가 육체[천연적인 생명, 예전의 나]를 신뢰할 만도 하지만 그리하지 아니하노라. 만일 어떤 사람이 육체를 신뢰할 만한 것이 자기에게 있는 줄로 생각하면 나는 더욱 그러하리니 *나는 팔 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의 줄기에 속한 자요, 베냐민 지파에 속한 자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에 관하여는 바리새인이요, *열심으로는 교회를 핍박하고 율법에 있는 의로는 흠이 없는 자로다.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이득이 되던 것들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손실로 여길 뿐더러 *참으로 모든 것을 확실히 손실로 여김은 그리스도 예수 내 주를 아는 지식이 매우 뛰어나기 때문이라. 내가 그분을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그것들을 단지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분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을 통해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빌 3:3~9).
이 구절에서 우리는 바울이 그의 천연적인 생명인 육체 안에서 어떠한 신뢰도 하지 않았음을 본다. 여기서 그의 육체는 존경받을 만한 혈통이요, 하나님의 뜻[그가 변화받기 전이므로]으로 잘 교육을 받았으며, 훈련된 “좋은” 육신이었다. 그러나 바울은 그런 것의 모든 것을 거절했다. 그의 노력들로 하지 않고 그 자신의 의로움 없이 그분 안에서 찾게 된 그의 소망은 변화된 소망의 직분이었다. 이와 같은 소망은 바울이 그분께서 다시 오실 주님에 의해 찾게 될 희망이 어떤 것을 의미하는지 모르겠다. 바울은 그가 어떤 선함을 위한 근본으로서 그 자신을 내버리고 돌아보지 않으며, 실제적인 의로운 생활을 위해 그에게 공급의 근거가 되는 그리스도를 순간순간 신뢰 하게 될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바울은 생활의 근본으로서 자신을 거부했다. 그의 목표는 그리스도의 죽으심에 완전히 따르게 되는 것이었고(예전의 나를 완벽하게 끝내는 것), 각별히 부활에 도달하기 위하여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이었다.
믿는 이들이 그리스도인들의 생활을 지치게 만들 수 있는 우리에게 보여주는 잘못된 한 가지 예가 있다. 십대 소녀가 구원을 받았다고 가정하자. 그녀가 주님을 찾을 때 그녀는 그녀의 삶 안에서 주님을 불쾌하게 하는 것들이 어느 정도 있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할 것이다. 이를테면 아마도 그녀는 스스로를 통제하지 못한다거나 학교에서 해야 할 일을 마지막 시간까지 하지 못할지 모르겠다. 아마도 또한 그녀는 그녀의 방을 계속해서 너저분하게 하고 또 이런 것이 경건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을지 모른다. 다른 한편으로는 그녀가 다른 사람들을 돕거나 버려진 동물들을 돌보는 마음을 가진 친절한 사람이라고 가정하자. 그 소녀의 천연적인 생각은 하나님께서 그녀가 스스로를 통제하지 못하고 너저분하지만 친절함과 자비에 관하여는 “좋다”고 하는 것처럼 그녀의 삶의 영역에서 “나쁜”것을 개선하기 위해 그녀를 원하신다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주님, 더 훈련되게 나를 도와주옵소서.”라고 기도할지 모르겠다. 개선이 필요하다는 것을 안 이후에 성공의 어떤 자부심을 가짐과 동시에 다시 예전의 생활방식으로 돌아갈지 모른다. 그녀 스스로 개선을 위해 주님의 “도움”의 기도를 하는 것은 다시 한 번 그녀를 통제하는 것이다. 그 소녀는 그리스도인들의 생활을 모두 이해하지 못한다. 주님께서는 우리의 예전의 스스로를 개선하는 것을 원하지 않으시다. 주님께서 예전의 자신을 “선하다”라고 동의하신다고 말하는 이들이 아무도 없다. 모든 우리는 하나님의 측정에 따르면 심판될 필요가 있어서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 위에서 저주 받았으며, 그로 인하여 우리 옛 자신은 흠이 없는 아담 안에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다만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살았던 새 창조를 볼 소망이 있으시다. 이 새 창조는 우리의 생명의 근원으로서 우리 안에 살아계신 그리스도 그분 자신이시다. 여러분과 나는 모든 것을 위해 그분을 의지하고 있는 포도나무이신 그리스도 안에서 그 가지가 된다. 그러므로 성급한 사람이 기도할 때 성경의 진리에 바탕 없이 “주님, 인내심을 도와주옵소서.”라고 한다. 반면 성경에 기초한 이는 “주님, 예전에 조급한 내가 당신과 함께 십자가에 달리게 하셨음을 감사합니다. 주 예수여, 나는 내 인내심으로 믿음에 의해 당신께 나아갑니다. 나는 죽었고 이제 당신은 나의 삶입니다. 할렐루야! 나는 내가 필요한 모든 것이 되시고 나의 진정한 생명이신 당신 안에 있는 진리를 제외한 어떤 것도 행하거나 개선될 필요가 없습니다.”라고 기도할 것입니다. 같은 방식으로 우리는 우리의 선한 점을 의지하는 어떤 것을 거절해야 한다. (“육체 안에서 의지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대신에 우리의 모든 능력과 힘으로 살아계신 그리스도를 찾아야 한다. 문제의 요점은 우리의 삶의 원천이다. 하나님의 계획과 방법은 우리가 아담 안에 있던 모든 것을 십자가에 못 박고 심판하는 것이었으며, 우리의 삶을 그리스도와 함께 변화시키는 것이었다. 옛 생명은 여전히 근원으로서 우리에게 있다. 그러나 새 생명은 우리의 생활의 근원으로서 그리스도께 있다. 언제나 우리는 우리 자신으로부터 하나님을 순종함으로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려고 노력하거나 아니면 언제나 우리의 근원으로서 홀로이신 그리스도를 취하기 위하여 옛 생명을 완전히 죽음에 넘기는 것을 동의하지 않고 그러한 생명을 살도록 우리를 향해서 하나님의 활력 있는 은혜의 흐름을 막는다.
갈라디아서 2:20이후로 가서 보면 바울은 “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게 하지 아니하노니”(갈 2:21)라고 선포한다. 앞 구절에서 바울은 율법으로 죽었고(하나님께 순종하는 사람의 노력을 포함한 것), 그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달렸던 것과 이제 그리스도께서 그 안에서 사신다고 진술한다(갈 2:21). 이와 같은 훈련을 바탕으로 바울은 “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게 하지 아니하노니”(갈 2:21)라고 진술할 수 있다.
우리는 우리의 옛 사람을 십자가에 못 박고 하나님 앞에서 끝내기 위해 가져왔다는 진리 안에서 우리의 믿음을 두어야만 한다. 이것은 심지어 우리 스스로가 우리의 아담 성분의 천연적인 생명 안에 있었던 모든 것을 죽음에 넘기게 되었다는 것을 동의함을 포함한다. 이와 같은 믿음과 동의로서 우리는 우리의 일상의 생활에서 우리 안에 있는 죽음으로 넘겨지는 것들은 성령을 통한 것이다(롬8:13). 그러나 이 문제 후의 세부 항목에 관해 말하게 될 것이다. 같은 방식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부활 사역 안에서 진리의 믿음을 가져야 한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되어서 “생명의 새로움 안에서 걷게”(롬 6:4)되었다. 우리는 우리의 감정을 믿을 수 없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믿음을 가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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