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승리를 효과적으로 걷을 수 있기 위하여 우리의 내면적인 상황에 투명한 그림을 가질 필요가 있다.
첫째, 우리가 세 부분 즉 몸과 혼과 영으로 되어 있다는 것을 보자. 어떤 믿는 이들 중에 몸과 영혼으로 되어 있다는 사람들도 있다(살전5:23). 이 주장은 일부분이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주장하는 것이다. 복음서에서는 예수께서 구체적으로 몸과 영혼으로 구성되었다든지 혹은 몸, 혼, 영으로 구성되었다든지 하는 말씀을 하지 않으시고, 어느 때에는 둘로, 어느 때에는 셋으로 말씀하시고 계심을 말하려고 한다. 비록 우리가 전적으로 타락한 천연적인 본성 안에는 죄를 가지고 있다. 타락한 사람은 하나님에 의해 “육체”로 취급되어 있다. 노아시대에 인류는 다음 구절에 의하면 완전히 악하게 되었다.
“하나님께서 사람의 사악함이 땅에서 커지고 또 그 마음에서 생각하여 상상하는 모든 것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창 5:6). 하나님께서 타락한 사람을 육체로 취급하신 것은 이 때였다. “주께서 이르시되, 내 영(靈)이 항상 사람과 다투지는 아니하리니 이는 그도 육체이기 때문이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날들은 백이십 년이 되리라, 하시니라.”(창 6:3)
비록 문맥에 의하면 단호하게 사용할 수 있는 어떤 다른 사람들이 있다 하더라도 대개는 타락한 사람에 관련하여 “육체”라는 말을 성경은 사용한다. 타락한 사람은 육체의 죄가 있는 욕구(정욕)에 의해 산다. 이런 욕망들이 가득하도록 허용되었을 때 육체의 일이 되거나 아니면 육체의 행위가 된다.
갈라디아서에 기록된 다음 구절들을 보라.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성령 안에서 걸으라. 그리하면 너희가 육신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이는 육신은 성령을 거슬러 욕심을 부리고 성령은 육신을 거스르기 때문이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하므로 너희가 원하는 것들을 능히 하지 못하느니라. *그러나 너희가 성령의 인도를 받으면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니라. *이제 육신의 행위들은 명백하니 곧 간음과 음행과 부정함과 색욕(色慾)과 *우상 숭배와 마법과 증오와 불화와 경쟁과 진노와 다툼과 폭동과 이단 파당과 *시기와 살인과 술 취함과 흥청댐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내가 또한 전에 너희에게 말한 것같이 미리 말하노니, 이런 일들을 행하는 자들은 결코 하나님의 왕국을 상속받지 못하리라.”(갈 5:16~21).
이 구절에서 우리는 어떤 행위들이 몸에서 생기고(19절 특히-간음, 음행, 부정함, 색욕), 어떤 행위들은 타락한 혼에서 생기며(적개심, 다툼, 질투, 분냄, 논쟁, 불화, 이단분파 등과 같은 것), 그리고 어떤 행위들은 사람의 영과 연합되어(영적영역의 문제 즉 우상숭배와 마법)있다. 따라서 우리는 성경에 의하여 육체로 타락한 사람의 전체를 볼 수 있다. 세부분으로 된 그의 모든 것이 타락되었다.
우리는 본성에 의해 죄인으로 태어났다(롬 5:19). 그러나 우리가 회심을 했을 때 또 다른 본성이 우리 안으로 들어와 존재하게 된다. 우리 인간의 영은 하나님의 성령으로 태어난다(요 3:6, 히 12:9). 이것이 기쁨의 이유이다. 우리의 영은 하나님의 생명으로 살도록 만들어졌다(엡 4:18과 대조하여 롬 8:10).
“그들의 지각(蜘痂)은 어두워지고 그들 속에 있는 무지(無蜘)와 그들의 마음이 눈먼 것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생명에서 떨어져 있도다.”(엡 4:18).
“또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인하여 죽은 것이나 성령은 의로 인하여 생명이 되시느니라.”(롬 8:10)
거듭남으로 하나님의 생명이 들어오고, 신성한 본성의 분담자들이 된다(벧전1:4). 그리스도는 우리 안에 계시고 우리는 우리 영 안에서 그분과 하나 되어 절대적으로 연합되어 있다(고전6:17). 그분은 우리의 새 생명과 새 본성의 근원이 되신다.
지난 수년 동안 어떤 교사들은 우리의 예전의 죄 있는 생활을 회심하여 제거하고 뿌리째 뽑아버렸을 때 잘못된 극단적인 말을 하곤 했다. 그들은 어떻게 하든지 “죄의 뿌리”가 회심을 하든지 아니면 순식간에 축복의 체험을 말하든지 간에 우리 밖으로 나가도록 해야 한다고 논쟁을 벌인다. 이 견해에 의하면 믿는 이들은 단지 하나의 본성을 가지고 있고 그것이 바뀌었다고 한다. 거기에 잘못된 관념이 있는데 성경은 우리의 옛 사람이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고 옛 사람의 본성이 믿는 이들 안에서 더 이상 거주하고 있지 않는다고 우리에게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견해들은 균형이 맞지 않으며 성경 모두에서 설명되지 않고 있다. 우리 옛 사람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았다. 이것은 바로 하나님 앞에서 영적인 영역 안에서 벌어진 것이다. 그것은 체험적으로가 아닌 (그리스도 안에서) 입장적으로 우리에게 일어난 일이다. 만일 옛 사람이 전적으로 우리의 체험으로 밖에 있다면 그렇다면 성경은 믿는 이들에게 편지를 썼던 에베소서 4:22에 있는 명령을 기록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전의 행실에 관하여는 너희가 속이는 것으로 가득한 욕심들에 따라 부패한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마일즈 스탠포드는 옛 사람이 우리의 체험으로 밖으로 나가게 된다는 이와 같은 논쟁에 관하여 잘못된 주장이라고 지적한다. 이것은 문제의 핵심이 있는데 그것 자신이 죄를 계속 가지고 있는 동안에는 죄의 근본인 옛 사람을 뿌리째 뽑아버린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결과는 원이 있기 마련이다. 만일 여러분에게 죄를 가지고 있다면 여러분은 죄의 근원 즉 아담과 같은 옛 사람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 육체는 이 몸 안에 우리가 있는 동안 우리와 함께 있다. 그리스도인들은 육체에 속할 수 있다(고전 3:1,3) *그리스도인들은 그들 자신들의 육체에 씨앗을 뿌릴 수 있다. *또 우리는 육체의 정욕과 욕망을 따라 걷는 것을 수행할 수 있다. *죄는 옛 육신의 범위 안에서 움직이는 원칙이 있다. *온통 예전의 “나”는 죄로 노예가 된 육체이다.
“형제들아, 내가 영에 속한 자에게 말하는 것같이 너희에게 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 있는 갓난아이들에게 말하는 것같이 하였노라. *너희가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로다. 너희 가운데 시기와 다툼과 분열이 있으니 어찌 너희가 육신에 속하여 사람들처럼 걷는 것이 아니리요?”(고전 3:1,3)
“자기 육신을 위하여 심는 자는 육신으로부터 썩는 것을 거두되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존하는 생명을 거두리라.”(갈 6:8)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성령 안에서 걸으라. 그리하면 너희가 육신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갈 5:16)
“이제 내가 원치 아니하는 그것을 행하면 그것을 행하는 자가 더 이상 내가 아니요, 내 안에 거하는 죄니라. *오호라, 나는 비참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롬 7:20, 24)
“그 까닭은 우리가 알거니와 율법은 영적이나 나는 육신적이어서 죄 아래 팔렸기 때문이로다.”(롬 7:14)
다른 말로 하자면 우리는 새 생명을 얻게 되기 전 행했던 것처럼 살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우리 안의 상황은 복잡하다. 우리는 우리 영 안에 새 생명과 새 본성을 가지고 있으나 우리는 아직 또한 우리 내부에 옛 생명과 옛 본성을 가지고 있다. 비록 우리의 체험을 따라 우리는 우리 내부에 두 본성을 가지고 있을지라도 우리는 두 사람이 아니다. 믿는 이들로서 우리는 하나의 동일성을 갖는다. 우리는 동일함 안에서 “죄인들”이 아니고 성도들이다. 우리의 동일성은 그리스도 안에서 위치하고 있는 우리 안에서 이제 찾는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옛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모든 것이 새롭게 되었도다.”(고후 5:17)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를 설명하는 성경은 오직 새 생명과 동일성을 가지고 있음을 나타내고 있다.
“우리의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너희도 그분과 함께 영광 가운데 나타나리라.”(골 3:4)
우리는 “동일한 믿음들”을 붙잡아야만 한다. 육체의 정욕이 우리의 내적인 곳에서 올라올 때 우리는 더 이상 우리에게 속한 것이 아니므로 그것들과 함께 동일시 취급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우리 옛 사람이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을 믿음 위에 서야 한다.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 사람이 그분과 함께 십자가에 못박힌 것은 죄의 몸을 멸하여 다시는 죄를 섬기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니”(롬 6:6)
육체의 옛 고통스런 몸은 우리가 십자가 위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었을 때 우리에게서 잘라졌다(골 2:11) 나는 이제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라는 것을 선포해야만 한다(고후 5:17). 나는 나의 옛 생명인 내 옛 자신과 함께 동일시하지 않는다. 이제 그리스도는 나의 생명이시다(골 3:4). 나는 그분과 함께 동일하다.
마음(생각)이나 악은 우리가 아직 예전의 타락한 사람과 같다고 우리에게 말할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그 같은 생각을 인정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예전의 사람과 같지 않다. 우리는 새로운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데 그 정체성은 그리스도시다. 그분은 우리의 생명이시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새로운 피조물로 만드셨다. 우리는 우리 내부에서 느낌과 상관없이 믿음 위에 서야만 한다. 우리는 우리의 진정한 생명으로서 그리스도가 되시는 우리 새사람은 그리스도와 함께 죽은 옛사람의 믿음 위에 서있다. 그런 다음 우리는 우리의 생활 안에서 나타나는 믿음을 보게 될 것이다. 이것은 믿음의 방식이고, 승리의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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