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퍼런스/아담 vs 그리스도

우리의 입장과 우리의 체험

Hernhut 2013. 4. 18. 21:51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입장과 체험은 두 다른 문제가 있다. 우리는 이 두 문제를 혼동하지 말고 분명하게 이해해야만 한다. 오늘날 기독교 교사들은 심지어 아직까지 두 문제를 혼동하고 있는데 믿는 이들의 처신에 관해 잘못 생각하는 것으로 인도한다. 우리의 입장은 하나님 앞에 영적인 영역 안에서의 위치라는 영적인 사실에 관련이 있다. 입장적인 진리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만족스러운 입장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이 같은 사실들은 우리의 일상적인 체험의 위치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이 두 영역의 배열 즉 입장과 체험은 복잡해 보일지 모르지만 이것은 하나님의 방법이다. 이 배열의 미덕으로서 이기는 생명은 추구하는 마음과 살아있는 믿음이 필요하다. 우리는 우리의 만족스러운 입장이 모든 믿는 이들의 체험 안에서 무의식적으로 변화된 어떤 것이라고 생각을 해서는 안 된다. 이 같은 체험은 혼란과 실망의 원인이 될 것이다.

 

이 다섯 번째 수업에서 끝부분에 나열된 구절들을 보라. “우리의 입장아래에 있는 구절들은 우리 옛 사람이 십자가에 못 박혔고 또 지금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생명이라는 것을 우리에게 말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그것들은 옛사람을 우리에게서 벗어버렸고, 우리는 이미 새사람을 입었다. 그렇지만 우리의 체험에 관련되어 있는 다른 성경에서 죽음 안에 우리의 것들을 집어넣었음을 우리에게 말하고 있다. 또한 에베소서 4:22~24절에서 우리의 체험 안에서 지금 옛사람을 벗어버렸으며 새사람을 입어 우리를 변화되었다고 말한다.

 

이전의 행실에 관하여는 너희가 속이는 것으로 가득한 욕심들에 따라 부패한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너희의 생각의 영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참된 거룩함으로 창조하신 새사람을 입었도다.”(4:22~24)

승리하는 생명은 우리 입장 안에서 적용되는 것이 필요한데 우리 체험의 영역 안으로 변화되어야만 한다. 그렇다면 이 변화에 연관되어 있는 것이 무엇인가? 거기에는 네 가지의 기본적인 것이 연관된 것처럼 보인다. 이 네 항목들은 성령과 우리의 믿음과 우리가 추구하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이다. 아마도 이런 것들은 믿음의 문제 안에서 우리의 추구하는 것을 포함하고 있을 것이다. 나는 믿음이 말씀을 믿는데 있어서 어떤 종류의 정신적인 운동이라고 생각하는 믿는 이들을 원치 않기 때문에 이 문제를 따로 떼어내어 추구하여 제시하기로 했다.

믿음에 관해 히브리서 116절에서 말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고려해 보라.

그러나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가 반드시 그분께서 계시는 것과 또 그분께서 자신을 부지런히 찾는 자들에게 보상해 주시는 분이심을 믿어야 하기 때문이니라.”

여기서 믿음은 하나님을 추구하는 것과 확신하는 것 둘 다를 포함함으로서 이 구절의 하반부에서 설명하고 있다. 이 추구하는 문제에 관해서 나는 주님을 진정으로 추구하는 것 없이 승리하는 생명을 계속적으로 사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고 생각한다.

 

이제 주님을 추구하는 문제는 오늘 그만 하기로 하고 말씀과 믿음과 성령의 요소들을 보기로 하자. 많은 교사들은 훈련으로 믿는 이들의 체험의 실제를 설명하고 있다. 그 기관차는 말씀이요, 믿음은 연료 차요, 경험은 객차이다. 이것은 말씀이 첫 번째 와야 하며, 그 다음 우리의 믿음은 말씀을 바탕으로 하고 있으며, 또 그 결과로 경험이 뒤 따른다는 것을 의미한다. 만일 우리가 경험을 첫 번째 둔다면 우리는 실패할 것이다. 우리가 말씀에 우리의 신뢰와 우리의 믿음을 두어야만 경험이 뒤 따르게 될 것이다. 사실적으로 경험의 일을 깨닫는 것은 우리 생활 안에서의 성령의 효능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 말씀이 무엇을 선포하든지 우리의 신뢰로 시작해야만 하고 또 이것이 우리의 감정을 무시해야만 하거나 아니면 말씀에 상반된 우리의 체험이 되는 것처럼 보여서는 안 됨을 의미한다. 성경은 말한다.

 

“(이는 우리가 믿음으로 걷고 보는 것으로 걷지 아니하기 때문이라.)”(고후 5:7)

우리는 어떤 상황이 벌어지든지 우리의 믿음을 버리지 말아야만 한다. 대신에 우리는 우리의 감각에 참되게 보이는 것과 우리의 마음에 증표를 새기는 것을 무시하고 또 반면 하나님을 추구하고 우리의 영 안에서 그분께 오는 동안 우리는 상황에 관하여 그분의 말씀이 어떻게 말씀하시든 우리의 신뢰에 두어야한다. 윌리암 뉴웰은 같은 방법으로 이 믿음의 행동은 보이지 않거나 (외형적이지 않는)다고 설명한다.

우리가 여기서 주목해야할 문제는 우리 옛사람이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서 위대한 연합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어쩌면 더 어려운 일이 없고 지속적으로 주의 깊게 관심을 필요로 하는 일이 없다는 것은 믿는 이들에게 하나님에 의해서 명령된 것이다. 우리 옛사람이 십자가에 달렸다는 이 문제는 의식에 완전히 반대되어 마음에 계속 유지되고 또 고정되는 엄청난 일이다. 이 말씀들은 오직 믿음으로 믿음에 초점을 맞출 수 있다. 감정들과 느낌들은 그 말씀을 거부할 수 있다. 감정과 느낌은 어리석기 때문이다. 그러나 폭풍우 치는 바다를 걷는 믿음이 있다. 산을 바다에 던질 수 있는 믿음이 있다. 얼마나 많은 불가능한 것을 하신 믿음인가!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의 생활에 주어진 사실과 믿음과 체험의 또 다른 실례가 있다. 여러분은 아마 벽 꼭대기를 따라 걷고 있는 사실과 믿음과 체험의 예화를 알 것이다. 사실(fact)은 오른쪽이나 왼쪽으로 돌 수도 없으며 절대 뒤를 보아서도 안 되며 계속해서 걷는 것을 말한다. 믿음(faith)은 믿음이 사실(fact)에 그의 눈을 초점을 계속해서 맞추고 있는 동안은 모든 것이 잘 따라가게 될 것이나 믿음(faith)이 경험(experience)과 연관이 되고 어떻게 되었는지를 보려고 돌자마자 믿음은 균형을 잃고 벽에서 떨어졌으며 가련한 옛 체험은 믿음을 아래로 떨어지도록 했다.

 

그래서 우리는 이기는 그리스도인들의 생명을 살기 위해서 특히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입장의 진리인 하나님의 말씀에 꾸준하게 초점을 맞추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았다.

이 우리의 체험에서 우리는 여기에 영적인 전투가 있으며, 영 안에서 우리의 인내가 있다는 것을 알 것이다. 또 우리는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오늘 주께서 너희에게 보여 주시는 주의 구원을 보라.” (14:13)는 말씀처럼 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우리는 믿음 안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섬으로서 그분을 추구하고 의지하며, 또 그 영(the Spirit)은 죽음과 부활의 체험을 우리 안에서 일하신다.

이 수업의 마지막 부분에서 여러분은 그 영(the Spirit)께서 우리 안에서 죽음에 관여하셨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 구절들은 우리가 옛사람을 벗고 새사람을 입어야한다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또한 우리는 우리 몸의 죄 있는 지체와 행위를 죽여야만 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모든 것을 그 영(the Spirit)과 성령의 움직이심과 능력에 의해서 한다. 그리고 성령은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우리의 믿음을 통해서 오신다. 구절들을 따라서 볼 때 바울은 은혜의 방식으로 하나님께 순종하여 율법의 방식을 대조시켜 성령과 믿음 사이의 관계를 강조한다.

 

나는 여러분으로부터 찾기 원하는 유일한 것이 있다. 여러분은 그 영(the Spirit)을 율법의 사역에 의해서 받았는가? 아니면 믿음으로 들음에 의해 받았는가? 여러분들은 바보들인가? 그 영(the Spirit)을 가지고 있다. 여러분은 지금 육체에 의해 완벽하게 되어 있는가? 당신 가운데 기적을 행하시고 그 영(the Spirit)을 여러분에게 공급하시는 그분은 율법의 사역에 의해서 인가? 아니면 믿음으로 들음에 의해서인가?(3:2~5) 우리는 의로운 소망을 그 영(the Spirit)을 통해 믿음에 의해서 기다리고 있다(5:5).

어떻게 이런 생각이 나올 수 있는지 보기 위해 실제적인 체험을 보기로 하자. 어떤 방식으로 죄에게 유혹을 받았다고 가정해 보자. 여러분 안에 있는 죄악의 정욕들은 불러일으키었었고 또 여러분을 죄 있는 행동을 향해서 잡아당기고 있다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지니 이는 하나님은 악으로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기 때문이니라. *오직 사람마다 자기 자신의 욕심에 이끌려 유혹을 받을 때에 시험을 받나니 *욕심이 잉태(孕宅)한즉 죄를 낳고 죄가 완료된즉 사망을 낳느니라."(1:13~15).

여러분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여러분은 하나님 앞에 있기 위해 여러분의 비밀한 것을 돌이켜야 하며, 여러분의 영 안에서 그분을 향해 와야만 하는 것이 이 시점이다. 동시에 여러분은 그분께 기도로 유능한 동일한 진리를 고백하기 시작해야 한다. 여러분은 예를 들어 감사합니다. 예수여, 내가 십자가 위에서 당신과 함께 못 박혔나이다(6:6). 이제 주님, 옛날의 내가 더 이상 살아있지 않습니다. 당신은 나의 전부의 생명으로서 내 안에 사십니다(2:20). 당신은 이 문제에서 성화(성별)되십니다(고전 1:30). 나는 나의 의로움으로 당신 안에서 믿음이 있습니다.”(고전 1:30) 라고 기도한다.

거기에는 여러분이 기도하고 있는 동안에도 죄악의 충동을 일으킴으로서 내적인 전투가 될 것이다. 이것은 여러분이 아직 죄가 있는 사람이라는 증거이며, 거기다 여러분들은 죄짓는 것을 끝낼 것이고, 그분이 여러분에게 어떠함이 되시므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여러분의 진리를 사용하므로 그것들이 제거될 것임에 틀림없다는 증거이다. 죄의 존재는 거기에 있게 될 것이나 우리의 일은 그분의 은혜와 능력을 위해서 주님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4:16). 우리는 우리에게 주시는 그분의 효력 있는 공급과 그분 안에 있는 우리의 입장에 관하여서는 그분의 말씀의 진리에 서며, 우리 영 안에서 그분을 추구하므로 성령께서 우리가 죄의 욕망에 빠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 우리 안에서 정욕의 능력이 올라오는 것을 죽음에 넣기 시작하신다. 이 방식 안으로 그분을 의지함에 있어서 우리는 우리를 도우시고 또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는 그분 입장 안에서 우리가 서기 위해 강하질 느낌이 있을 것이다.

그 방법이 실패하게 될까? 우리는 실패할 수 있다. 우리는 유혹과 실패에 굴복하여 아직 손상되었고 또 아직 배우고 있다. 때론 우리의 마음은 순수하지 못하다. 우리는 비밀스럽게 죄를 사랑하고 또 나쁜 것을 승리하고자 하는 욕구가 없다. 우리는 유혹 받는 그 때에 주님 앞에서 무정함을 느낀다.

또 다른 문제는 우리가 전적으로 주님을 의지하지 않고서 고집스럽게 우리 자신의 노력의 힘으로 죄와 싸우려는 것이다. 우리는 다음 수업에서 이 문제에 대해서 말할 것이다. 이것이 실패에 대한 우리의 가장 큰 이유들 중 하나인 것을 말해두고 대부분의 믿는 이들이 이 패배하는 습관으로부터 떨어지는 것은 몇 년 걸린다. 또한 만일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보내는 기간이 없다면 우리의 믿음과 우리의 영적인 생명은 그것을 느끼게 되어 우리는 믿음 안에서 약해질 것이다(4:4, 10:17)

마지막으로 니 형제님은 우리가 우리 자신을 죄에 대하여 죽게 함으로 청산 받고 있는 것(6:11)과 그리스도와 함께 옛 사람이 십자가에 못 박힘을 아는 것이 바탕이 된다는 것을 깨달아야만 한다고 지적했다(6:6). 우리가 그분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었다는 것을 아는 것은 어떤 영적인 계시가 필요하다. 이것은 다른 믿는 이들에게 다른 방식으로 올지 모르나 보통 이것을 아는 것은 오직 실제와 승리를 위해 주님을 추구한 후에 온다. 우선 우리가 그분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다는 것은 싸움 가운데 있다는 그 사실에 믿음을 공급하는 것보다 더 쉽다는 것을 알고 있다. (생각) 안에서 앞 단락에서와 같은 생각으로 우리는 우리의 체험의 증가와 진보가 관련된 시간의 문제가 있다고 결론을 지을 필요가 있다.

이기는 생명은 그것의 표현 안에서 증가이다. 만일 우리가 이기는 생명의 원칙을 따르고 주님을 추구하는 것을 계속한다면 승리는 점점 더 크게 나타나게 될 것이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에 의해 사용되는 어떤 진리들은 우리의 체험 안에서 충분하게 표현하는 데는 실제로 오랜 시간, 아마도 몇 년 걸릴지 모른다. 이 생각에 인용구를 주겠다.

모든 유혹은 주로 주님에서 우리의 눈을 떼고 또 외모를 고려하는 우리 안에서 보는 것이다. 믿음은 항상 하나님의 말씀을 부인하는 증거의 산, 실제로 실패하는 명백한 사실의 영역 안에서의 분명한 부인의 산, 게다가 느낌과 생각 영역 안에서의 산을 모이게 하는 것이다. 어찌됐든 믿음이든 산이든 우리는 가야할 필요가 있다. 그것들 둘 다 설 수 없다. 그러나 문제는 많은 시간을 산에 머무르고 또 믿음으로 가는 것이다. 그렇게 되지는 말아야한다. 만일 우리가 진리를 덮으므로 우리의 감각을 의지한다면 우리는 사탄의 거짓말을 찾게 되어서 종종 우리의 체험에 충실한 것으로 충분하게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반대하는 것과 홀로 사탄 안에서 믿음의 태도를 유지하는 것으로 속박 받는 것을 거절한다면 우리에게서 사탄의 거짓말들은 사라지기 시작하고 우리의 체험은 하나님의 말씀과 일치되도록 진보적으로 다가오고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그것은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우리의 일인데 점차적으로 구체적인 문제에 대해 우리에게 실재가 되는 것을 의미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주어진 입장 안에서 우리는 실재적인 의로움과 거룩함과 부활 생명으로서 우리를 위해 그것을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나는 다시 강조한다. 우리 이기는 경험은 우리의 입장에 바탕을 둔다. 만일 여러분이 우리 안에서 죽음에 죄를 밀어 넣는 것과 아니면 새사람을 입는 것과 관련된 신약 성경의 말씀을 읽는다면 대개 이 명령들이 영적인 사실(입장적인 진리)의 말씀에 의해서 설교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일으킴을 받았거든 위에 있는 것들을 추구하라. 거기에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오른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위에 있는 것들에 애착(愛竄)을 두고 땅에 있는 것들에 두지 말지니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졌기 때문이라. *우리의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너희도 그분과 함께 영광 가운데 나타나리라. *그러므로 땅에 있는 너희 지체(遲體)들을 죽이라. 곧 음행과 부정함과 무절제한 애정과 악한 욕정과 탐욕이니 탐욕은 우상 숭배니라. *이것들로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가 불순종의 자녀들에게 임하느니라. *너희도 전에 그 가운데 살 때에는 그 가운데서 걸었으나 *이제는 너희도 이 모든 것을 내어 버리라. 곧 분노와 진노와 악의와 신성 모독과 너희 입에서 나오는 더러운 대화라. *서로 거짓말하지 말라. 너희가 옛 사람과 그의 행위를 벗어 버리고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 새 사람은 자기를 창조하신 분의 형상을 따라 지식에서 새로워진 자니라. *거기에는 그리스인이나 유대인이나 할례자나 무할례자나 바바리인이나 스구디아인이나 매인 자나 자유로운 자가 없나니 오직 그리스도만이 모든 것이요, 모든 것 안에 계시느니라.”(3:1~11)

이 구절의 후반부에 있는 구절은 특정한 죄들을 처리하는 실재적인 명령인데 1~4절 있는 우리의 입장의 진리를 기초로 하고 있다. 5절은그러므로로 시작하는데 죄를 처리하는 우리가 그러므로의 기초와 능력을 입장적인 진리 안에 뿌리를 두고 있음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느낌과 상관없이 우리 입장 안에서의 믿음은 승리의 문제 안에서 꼭 필요하다는 것을 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가 참되다는 진리를 기억하고 곰곰이 생각해 보자. 우리 하나님을 추구하고 또 그분의 거룩하심을 추구하자. 우리의 실패들 모두와 죄가 우리 안에서 존재한다는 정죄를 무시하고 잊어버리자. 우리가 우리의 힘 안에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려고 하지 말고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에게 일어나는 것과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의 진리에 관해서 하나님의 말씀 위에 서자. 그러면 우리 안에서 사시고 계신 그리스도의 체험은 자랄 것이고 또 꽃을 피울 것이다.

우리의 입장

영적인 사실

우리의 체험과 영적인 사실의 이해

I."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 사람이 그분과 함께 십자가에 못박힌 것은 죄의 몸을 멸하여 다시는 죄를 섬기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니"(6:6)

II. "이는 너희가 육신을 따라 살면 죽을 것이로되 성령을 통하여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 것임이라."(8:13)

III.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졌기 때문이라. 우리의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너희도 그분과 함께 영광 가운데 나타나리라."(3:3~4)

IV. "그러므로 땅에 있는 너희 지체(遲體)들을 죽이라. 곧 음행과 부정함과 무절제한 애정과 악한 욕정과 탐욕이니 탐욕은 우상 숭배니라."(3:5)

V. "온유와 절제니 이 같은 것을 반대할 법이 없느니라."(5:23)

VI. "이는 너희가 육신을 따라 살면 죽을 것이로되 성령을 통하여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 것임이라."(8:13)

VII. "또한 그분 안에서 그리스도의 할례로 말미암아 육신의 죄들에 속한 몸을 벗어 버림으로 손으로 하지 않은 할례를 받았느니라."(2:11)

VIII.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성령 안에서 걸으라. 그리하면 너희가 육신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5:16)

IX. "또 너희 가운데 그리스도 안으로 침례를 받은 자는 다 그리스도로 옷 입었음이라."(3:27)

X. "내가 알고 또 주 예수님을 통하여 확신하거니와 무엇이든지 그 자체로서 부정한 것은 없으되 다만 부정하게 여기는 그 사람에게는 그것이 부정하니라."(13: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