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퍼런스/교회

교회모임에 참여하는 것

Hernhut 2013. 4. 17. 19:46

 

 

그리스도인들은 왜 각지교회의 예배모임에 출석해야 할까요? 교회 출석하는 것은 일치, 교제, 그리고 하나님과 다른 사람들을 섬기는 것이 어떤 관계를 갖게 하나요? 교회모임은 어떻게 성도들의 일치나 분열에 반사하나요? 성경은 한마음으로 기도, 성경연구, 가르침, 다른 예배활동 하는 것에 대한 우리의 부담에 관해 뭐라고 가르치나요?

 

들어가는 서론

복음은 하나님의 사람들 가운데서의 교제에 대한 중요성, 일치에 대한 중요성, 서로간의 섬김과 시중드는 것에 대한 중요성에 관한 많은 지시를 줍니다. 복음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을 예배해야 하는 것과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해야 하는 많은 이유를 주고 특별하게 예배와 활동하는 것을 연구하는 모임(소그룹)에 참여하기 위해서 교회모임에 출석해야 하는 이유를 알게 해 줍니다.

 

이 공과를 연구하는 목적은 이러 생각이 어떻게 함께 묶이는지를 토론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일치되는 그리스도인들의 중요성과 서로를 섬기고 또 교제하는 것을 연구하기 원하지만 우리는 성경을 연구하고 또 예배를 위해 교회모임에 적극적이고 활동적으로 참여하는 것의 중요성에 대한 가르침을 공급할 것입니다.

 

I. 복음은 일치에 관해 가르치는 것

교회의 일치는 교리적인 순수성을 요구합니다. 많은 구절들은 오류와 거짓교리가 지방교회의 일치를 무너지도록 갈등과 분열로 이도할 것입니다. 하지만 거기에는 정확한 교리적인 동의보다 성경적인 일치가 더 있습니다. 일치는 또한 영, 사고방식, 감정, 목표, 그리고 목적이 하나 되는 것을 요구합니다. 같은 것들에 관한 염려요, 상호간의 갈망입니다. 지방교회 안에서 일치에 대한 영의 중요성을 우리가 연구하지만 성도들 가운데 있는 이 영이 어떻게 우리가 교회 예배 모임에서 그 자체를 나타내는지를 볼 것입니다.

 

A. 초대교회의 본

가장 첫 번째 지방교회는 예루살렘에 있었습니다. 어떻게 복음이 사고방식과 목표에 대한 그들의 일치를 되풀이하여 설명하는지를 생각해보십시오. 그런 후에 어떻게 이 일치가 그들의 예배모임의 활동에서 그 자체를 표현하고 반사했는지를 연구해봅시다.

 

이들이 다 여자들과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와 그분의 형제들과 함께 한마음이 되어 기도와 간구를 계속하더라.”(1:14)

제자들은 합심해서 변함없이 기도(예배)를 계속하려고 모두함께 있었습니다. 목적과 사고방식의 일치는 예배를 함께 하는 사람들 가운데 그 자체를 보여주었습니다(2:1, 46).

오순절 날이 충만히 임하였을 때에 그들이 다 한마음이 되어 한 곳에 있더라.”(2:1)

날마다 한마음이 되어 성전에 거하고 집에서 집으로 돌아가며 빵을 떼면서 단일한 마음으로 즐겁게 자기들의 음식을 먹고”(2:46)

 

사도들이 풀려나매 자기 동료들에게 가서 수제사장들과 장로들이 자기들에게 말한 것을 다 전하니 그들이 그것을 듣고 한마음으로 [하나님]께 목소리를 높여 이르되, [], 주는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것들 안의 모든 것을 만드신 [하나님]이시요,”(4:23~24)

박해를 받을 때 교회는 모였고, “합심해서하나님께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이 말은 한마음으로 하나님께 부르짖어 하나님을 찬송했다는 말입니다. 일치는 예배를 드리기 위해 모이는 것 그 자체라는 것을 다시 보여줍니다.

 

믿은 자들의 무리가 한 마음 한 혼이 되어 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하고 그들 중에 아무도 자기 소유를 조금이라도 자기 것이라고 말하지 아니하더라.”(4:32)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믿는 이들은 마음이 하나요, 혼이 하나였습니다. 난 이것을 어떻게 형언할 수 없는 데 이것을 체험하지 못한 사람은 설명이 되지 않습니다. 성도들끼리 동일체가 되었다고나 할까요. 내가 당신이 되고 당신이 내가되는 것이지요. 성령의 충만을 받으면 이런 동일체가 되는 것입니다. 이런 현상은 내적인 변화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밖으로도 흘러 나와 가난한 성도들을 위해 후하게 재정이나 소유물들을 모으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런 현상은 작게나 크게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모이는 성령 충만한 무리들에게 나타납니다. 성도들끼리 모이지 않고는 결코 아무리 성령 충만하더라도 일어날 수 없는 현상입니다.

 

온 교회와 이 일들을 들은 모든 사람들에게 큰 두려움이 임하더라. 사도들의 손을 통하여 백성 가운데 많은 표적들과 이적들이 일어나매 (그들이 모두 한마음이 되어 솔로몬의 주랑에 있었고”(5:11~12)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다른 제자들과의 사고방식에 하나가 되어 나누지 못했습니다. 물론 그들은 엄격한 훈련을 받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들에게 결국 죽음을 맞이했는데 이것을 생각하도록 교회의 남아있는 사람들에게 전해졌고 합심해서함께 되었습니다(15:22, 25). 아나니아와 삽비라를 생각하면서 나는 사실 오늘날의 기독교와 교회를 비교해 봅니다. 사도들의 시대에는 소유를 숨기고, 나눌지 모르는 사람들은 그 즉시 죽음을 맞이했는데 오늘날에는 그렇게 죽는 사람들을 볼 수 없을까요? 그 답은 결국 성령 충만하지 않거나 극소수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와 교회들이 수적으로 부흥을 가져와도 오순절의 성령 충만의 모습은 재현하지 못할 것입니다.

 

모임에서의 참된 일치는 하나님을 예배하고 그분의 말씀을 연구하려고 모이는데 전념하는 사람들 그 자체를 나타냅니다. 그와 같은 사람들은 함께 모이기를 원합니다. 하지만 우리의 연합이 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 곧 하나님을 섬기고 영원한 생명을 받는 것과 관련될 때 우리는 함께 모이기를 원할 뿐만 아니라 우리는 함께 있는 것이 필요합니다.

 

여러분의 교회 형제들은 그들이 올 필요를 느끼지는 않지만대신에 다른 것을 할 것을 찾는다는 생각을 하거나 오기를 원하지 않음을 생각하십시오. 그들이 그들의 형제들(성도들)한마음, 한혼을 가지고 있습니까? 여러분의 교회 형제들은 초대교회의 그리스도인들의 사고방식을 나누고 함께 모이는 데 헌신하고 있습니까?

 

B. 분열을 꾸짖는 구절들

개인적으로 나는 교회가 분열하는 것을 극히 싫어합니다. 분열시키는 사람들을 몹시 미워합니다. 그래서 난 오래전부터 분열로부터 떠나 하나의 축이 되고자 헌신을 해왔습니다. 세상에 이단이 한국에 그리 많아진 것은 바로 기독교의 분열과 수평이동 그리고 성직세습에 있다고 봅니다. 난 이 문제에 대해 기독교를 엄히 꾸짖을 계획입니다.

 

또 만일 어떤 왕국이 스스로 분쟁하면 그 왕국은 서지 못하고 만일 어떤 집이 스스로 분쟁하면 그 집은 서지 못하며 만일 사탄이 자기를 대적하여 일어나 분쟁하면 서지 못하고 종말을 맞느니라.”(3:24~26)

왕국이나 집이 서로 대항하여 나누어지면 그곳에서 설 수 없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바로 교회를 말하고 있습니다. 분열, 분파, 분쟁은 그 배후에 사탄의 세력이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한국에는 수많은 장로교회와 여러 감리교회, 여러 순복음교회, 오순절, 성결, 침례교회들이 있습니다. 이들이 다 한 복음으로 시작되었지만 결국 분쟁과 분열의 결과로 갈라졌습니다. 이제는 이 모든 것을 초월하는 초교파도 일어났습니다. 이것은 바로 사탄의 전략입니다. 누누이 말하지만 사탄은 하나님의 목적과 별반 다르지 않게 우리를 유혹합니다. 결과는 극과 극의 차이가 되지만 처음에는 비슷한 것으로 시작합니다. 이들 교파들은 각각의 법과 규칙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은 성경도 사용하고 있지만 그들의 법에 의해서 복음을 많이 바꾸어 실행합니다. 물론 그들은 그렇지 않다고 말하겠지만 실상은 성경에 위배되는 법을 가지고 있습니다. 생각 속에는 우리가 교파의 이름은 달라도 우리의 근본의 뿌리는 같다고 말할지 모릅니다. 그런데 왜 갈라졌을까요? 그 뿌리가 같을지 몰라도 결과의 열매는 절대로 같지 못합니다. 이것이 종교의 자유 같지만 이것은 사탄이 쓰기 좋아하는 가장 좋아하는 말일 것입니다. 우리는 분열된 것을 회개해야 합니다. 기독교에 가면 당신은 주님께 회개해야 한다고 성도들이 말합니다. 그렇지만 사실 그 이전에 분열된 것을 먼저 회개하고 내려놓고 주님의 뜻을 따라 사는 사람들이 이런 말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회개는 해야 하지요. 하지만 자신들은 여전히 교파에 머물며, 교파의 교리를 따르고 기회만 주어지면 분열하려는 사람들이 해야 할 말은 아닌 것 같습니다. 오늘도 열을 냈습니다.

 

형제들아, 이제 내가 우리 []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에게 간청하노니 너희는 다 같은 것을 말하고 너희 가운데 분쟁이 없이 같은 생각과 같은 판단 안에서 완전히 함께 결합하라.”(고전 1:10)

지방교회에서는 분열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지체들이 같은 마음, 같은 판단 가운데 함께 완전히 결합하고 뭉쳐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같은 말을 해야 합니다. 같은 생각을 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교회입니다. 사탄은 틈만 있으면 다른 말을 하게 합니다. 다른 생각에 이르게 합니다. 분쟁과 분열을 일으켜 서로에게 상처를 주려고 합니다.

 

이것은 몸 안에 분쟁이 없게 하고 오직 지체들이 서로 같은 보살핌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고전 12:25)

우리는 모두 같은 몸 안에 있기 때문에(고전 12:12, 14, 20) 몸 안에서 교파로의 분립이 없어야 합니다. 그렇지만 지체들은 함께 있는 몸이기에 서로 같은 돌봄이 필요합니다. 오늘날의 서로 다른 교파로의 분립은 한 몸이 찢어져 억지로 세워지려 하는 것과 같은 모습입니다. 머리가 분리한 것은 아니지만 몸은 여러 개로 갈라져 있습니다. 머리에 붙은 샴쌍둥이들과 같이 살아야 합니다. 하나의 머리에 하나의 몸이 있어야 비로소 한 인간인 것처럼 교회도 한 머리이신 그리스도에 한 몸인 교회가 있어야 하고 그 몸에 기능을 할 수 있는 그리스도의 지체들이 있어야 한 몸으로 건축되는 것입니다. 이 주제에 대해서는 그리스도의 몸의 영적은사에서 다룰 것입니다.

 

고린도 교회는 신약성경에서 가장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분열된 교파들 중 하나였습니다. 바울은 그들의 분열에 대해 반복적으로 꾸짖었습니다. 그들의 분열은 예배에 오는 회중들 가운데 나타났습니다. 고린도전서 11, 14장은 그들이 모였을 때 발생했던 분열과 갈등으로 길게 다루어졌습니다.

 

교회의 회중들은 지체들 가운데 일치되는 것만 반사하는 것이 아니라 지체들 가운데 분열도 반사합니다. 지체들이 하나님, 그분의 섬김, 그리고 영원한 생명에 대한 소망에 대해 공통의 헌신이 나눠질 때 그들은 다 같이 모이는 것이 필요하고 교회가 모일 때마다 오려고 분투하는 것을 봅니다. 사람들이 서로 서름서름할 때나 하나님께 헌신하는 것, 믿음의 공통의 결속력을 나누지 않을 때 그들이 같이 모여서 호들갑떨거나 다투는 경향이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교회에 나가는 것은 짐이 되고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나오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어떤 지체들이 올 수 있지만 단순히 노력하지 않을 때 우리가 일치에 관해 어떤 말을 해야 할까요? 우리가 정말로 하나님께 공통의 헌신을 가져야 한다고 하는가, 아니면 우리가 분열을 해야 한다고 나눕니까? 우리는 연합된 집이 있습니까, 아니면 분열된 집이 있습니까?

 

C. 하나 됨을 강하게 권고하는 구절

내가 이 사람들만을 위해 기도하지 아니하고 그들의 말들로 인하여 나를 믿을 자들도 위해 기도하오니 이것은 그들이 다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 [아버지],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우리 안에서 하나가 되게 하사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세상이 믿게 하옵소서.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그들에게 주었사오니 이것은 우리가 하나인 것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17:20~22)

예수께서는 자신과 그분의 아버지처럼 모든 믿는 이들이 하나되기를 기도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지방교회의 일부분이셨다면 그분께서 연구하고 기도하고 그분의 아버지를 예배하는 교회에게 주어진 기회들을 등한시 하실까요? 누가 이와 같은 것을 상상할 수 있을까요? 우리가 예수께서 그분의 아버지와 함께 계셨던 연합의 같은 영을 가지십시오. 그러면 우리가 아버지를 예배하려는 예수의 갈망 안에서 함께 나누지 않을까요?

 

오직 너희 행실을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하라. 그리하면 너희에 대한 일들 곧 내가 가서 너희를 보든지 떠나 있든지 너희가 한 영 안에 굳게 서서 복음에 속한 믿음을 위하여 한마음으로 함께 싸우며”(1:27)

복음의 활동을 할 만한 가치는 복음을 위해 한 마음으로 한 영안에서 분투하기 위해 굳게 서도록 우리를 인도할 것입니다. 우리가 속한 곳에서 하고 또 집회에서 예배하는 것이 복음을 위해 분투하는 것이 아닐까요? 이 사람들이 영과 마음이 여기서 우리와 함께 사역하게 될 것을 나누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완전한 자들은 다 이같이 생각할지니 만일 어떤 일에서 너희가 달리 생각하면 [하나님]께서 바로 이것을 너희에게 드러내시리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이미 도달한 곳에서는 같은 규칙에 따라 걷고 같은 것을 생각할지니라.”(3:15~16)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서 무슨 안위나 사랑의 무슨 위로나 /성령]의 무슨 교제나 무슨 인정이나 긍휼이 있거든 너희는 같은 생각을 품고 같은 사랑을 가지며 한 뜻과 한 생각이 되어 내 기쁨을 성취하라. 어떤 일도 다툼이나 헛된 영광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더 낫게 여기며 각 사람이 자기 일들만 돌아보지 말고 각 사람이 남의 일들도 돌아보라.”(2:1~4)

한 생각과 일치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같은 마음을 품으십시오. 지체들이 오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을 할 때 와야 한다고 생각하는 지체들처럼 같은 사랑, 같은 마음, 같은 생각을 품습니까? 교회 안에서 이런 일이 비일비재합니다.

 

끝으로 형제들아, 잘 있으라. 완전하게 되며 위로를 받으며 한마음이 되며 평안히 지낼지어다. 사랑과 평강의 [하나님]께서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고후 13:11)

한마음이 되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실 것입니다. 이 단순한 원리를 모르는 성도들은 교회를 다니면서도 회의를 느끼고 생활을 합니다. 이 얼마나 가련합니까? 여러분 자신이 먼저 한마음이 되려고 하십시오. 한마음이 되지 않으면 사실상 떠돌이가 되고 요즘의 교회는 다양성 안에 있기 때문에 자기의 입맛에 맞는 교회를 찾아 기웃거립니다. 그러다 이단에 빠지기가 아주 쉽죠.

 

모든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으로 사랑 안에서 서로 참아 주며 화평의 매는 띠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4:2~3)

서로에게 사랑 안에서 참고 화평의 끈으로 그영(the Spirit)의 연합을 계속해서 지키십시오. 여기서 힘써 지키라고 말씀하신 것은 힘쓰지 않으면 화평이 깨진다는 것을 함축합니다. 지방교회의 지체들은 하나님을 섬기기 위한 공통의 사랑과 헌신을 나누어야합니다. 우리가 사랑과 헌신에 대한 유대관계의 끈을 나누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것을 개발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복음이 연합을 가르치는 주제가 함께 사역하도록 모든 지체들을 인도할 것이라는 것을 나중에 연구할 것입니다.

 

이제 인내와 안위의 [하나님]께서 너희에게 그리스도 예수님을 따라 서로를 향해 같은 마음을 갖게 하사 너희가 한 마음과 한 입으로 [하나님] 곧 우리 []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시기를 원하노라.”(15:5~6)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을 찬미하는 한마음과 한 입술로 서로를 향해 같은 마음이 되도록 하십니다. 우리의 연합은 하나님께 영광을 드리도록 우리의 예배에서 반사해야 합니다.

 

교회의 모임들은 지체들의 사고방식에서 연합을 하거나 분열을 하는 것을 반사합니다. 교회가 공부, 예배, 인정된 다른 사역을 하기 위해 만날 시간을 정할 때 한마음과 한 혼의 사람들은 거기에 참여하려고 분투할 것입니다. 그만큼 연합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어떤 사람들이 가야한다고 생각하지 않거나 기꺼운 마음으로 노력하지 않을 때 연합되지 않은 교회() 일까요? 분열한 교회()일까요?

 

여러분은 하나님을 예배하고 그분의 말씀을 연구하러 교회에 가려고 하는 여러분의 갈망에서 여러분의 형제들과 한마음과 한 생각이십니까?

 

끝으로 너희는 다 한마음이 되어 서로를 동정하며 형제로서 사랑하고 불쌍히 여기며 예의바르게 행하라.”(벧전 3:8)

그러므로 우리가 화평을 이루는 일들과 서로 세워 주는 일들을 따를지니”(14:19)

그러므로 온 교회가 다 같이 한 곳에 모여 모두 타언어들로 말하면 배우지 못한 자나 믿지 않는 자들이 들어와서 너희가 미쳤다고 하지 아니하겠느냐?”(고전 14:23)

기록된바, 내가 믿었으므로 말하였노라, 한 것 같이 우리가 같은 믿음의 영을 가졌으니 우리도 믿으므로 또한 말하노라.”(고후 4:13)

서로 같은 생각을 가지며 높은 것들에 생각을 두지 말고 도리어 낮은 처지의 사람들에게 겸손히 행하며 스스로 지혜 있는 것으로 여기지 말라.”(12:16)

 

II. 섬김에 대한 사역에서의 협력과 교제에 관한 복음적인 가르침

여러 모임에서 연합에 대한 사람의 영이나 사고방식은 함께 사역을 하는 것, 사역량을 나누는 것, 서로 섬기는 것이 지체들 가운데서 나타나야 합니다.

 

 

A. 지체들은 사역 가운데서 교제를 함으로 나누기를 갈망해야 함

여러 교회모임은 지체들이 사역 안에 참여하는 것에 헌신함으로 협력하려고 하는 사람의 영이 필요합니다. 이것은 회중들 밖에서 행하는 사역을 포함하지만 교회 사역에 참여할 대부분의 기회들은 직간접적으로 교회의 모임을 포함할 것입니다.

 

그들이 흔들리지 아니하며 사도들의 가르침과 교제 안에 머물고 빵을 떼며 기도하더라.”(2:42)

첫 교회집회의 지체들은 교제 가운데서 변함없이 계속 머물렀습니다. 머물며 나누는 것을 계속했고, 함께 참여였으며, 또 주의 만찬을 하였으며, 단란함 가운데 서로가 귀찮아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언제 어떻게 실행되었을까요? 사도들의 가르침을 연구하고, 주의 만찬, 기도와 같은 예배하는 가운데서 실행되었습니다.

 

그들은 함께 있었고필요가 있는 지체들을 도왔습니다(2:44~45). 그들은 성전 안에서 합심하여 날마다 계속했습니다(2:46). 그들의 연합과 교제는 교회의 사역 특히 예배사역을 함께 행하도록 전달되었습니다.

 

사도들이 풀려나매 자기 동료들에게 가서 수제사장들과 장로들이 자기들에게 말한 것을 다 전하니”(4:23)

반대가 있을 때 사도들은 그들 자신의 동역자들을 만나서(ASV), 기도했습니다(4:24, 31). 결과적으로 무리는 지체들의 필요를 주고(4:32~35),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사역을 함께 했습니다(4:31).

 

기록하기를 무리는 소속감과 함께 사역하는 것을 가졌습니다. 그들은 무리가 그들 자신이었다는 것을 인정했습니다. 또 그들은 그 무리와 함께 사역을 하고 그 무리와 함께 있기를 갈망했습니다. 그들은 협력의 영을 가지고 있었고, 함께 만나려고 그들의 헌신 안에서 그 자체가 표현되었습니다.

 

사울이 예루살렘에 가서 제자들과 합류하려 하였으나 그들이 다 그를 두려워하며 그가 제자 된 것을 믿지 아니하되 바나바는 그를 데리고 사도들에게 가서 그가 길에서 []를 본 것과 또 그분께서 그에게 말씀하신 것과 다마스커스에서 그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담대히 선포한 것을 그들에게 밝히 말하니라. 사울이 제자들과 함께 있으면서 예루살렘에서 드나들며 [] 예수님의 이름으로 담대히 말하고 그리스말 하는 사람들을 논박하니라. 그러나 그들이 그를 죽이려 하매”(9:26~29)

사울이 예루살렘으로 갔을 때 그는 또한 그 무리의 일부가 되기 원했습니다. 그의 배후가 확인되고 믿음 있는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알게 된 후 교회는 그를 받아들였습니다. 그는 가고 오는 것을 그들과 함께있었고, 설교사역을 참여하는 것도 그들과 함께했습니다.

 

이 사람들은 그들이 무리와 함께되고 무리의 일부가 될 필요가 있었다는 것을 이해했습니다. 거기에는 행하는 사역이 있었고, 지체들은 그 사역에 참여하기를 갈망해야 합니다. 무리의 일부가 되도록 그들을 요구했고, 무리와 함께있기를 요구했습니다.

 

그분으로부터 온 몸이 각 부분의 분량 안에서의 효력 있는 일에 따라 모든 마디가 공급하는 것에 의해 꼭 맞게 함께 결합되고 들어차서 몸을 자라게 하여 사랑 안에서 스스로를 세우느니라.”(4:16)

이 본은 모든 부분에 적용되어야 합니다. 모든 부분들은 몸을 건축하는 사역을 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 각자가 몸의 부분”(지체)이 되어야 하고 그런 후에 몸이 자라고 건축될 수 있음으로써 그들의 나누는 것(교제)” 실행하고 사역하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이와 같이 우리도 여럿이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요 각 사람이 서로 지체이니라.”(12:5)

우리는 다른 것 중의 한 지체들입니다. 이는 우리는 합병이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이 가장 좋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합병은 어떤 성질이 다른 어떤 것끼리 다름에도 불구하고 연결되고 조절되는 것을 말합니다. 문맥(12:4~8)은 우리가 부지런히 사역을 하기 위해 우리의 능력을 사용해야 함을 보여줍니다. 육체적인 몸 안에 있는 우리는 협력을 위한 필요를 이해합니다. 모든 지체들은 사역의 나누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몸이 고통을 받고 어떤 효능도 없습니다.

 

교회 안에서 우리는 많은 사역이 교회가 모일 때 실행하고 있는 것을 반복적으로 볼 수 있습니다.

 

믿음 있는 그리스도인들은 지방교회 제자들과 같이합니다. 그들은 제자들과 함께있고, 그들은 제자들과 함께 사역합니다. 교회모임과 구역모임에 출석하지 않는 지체들은 사역 안에서 절대 포함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들은 전혀 하나님의 본을 따르지 않는 것입니다.

 

B. 지체들은 서로 섬기기를 갈망해야 함

형제들아, 너희가 부르심을 받아 자유함에 이르렀으나 오직 자유를 육신의 기회로 쓰지 말고 사랑으로 서로를 섬기라.”(5:13)

사랑을 통해 우리는 서로 섬깁니다. 우리 모두는 도울 수 있고, 격려할 수 있고, 다른 그리스도인들을 이롭게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하기를 원해야 합니다.

 

너희는 서로 남의 짐들을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6:2)

그리스도의 법은 서로의 부담을 짊어지라고 우리를 가르칩니다. 다른 지체들은 우리가 함께 그들을 도울 수 있는 일이나 어려움, 고통을 같이 짊어집니다. 우리는 그렇게 하도록 헌신해야 합니다. 이런 일들은 바이러스처럼 번져나가야 합니다. 오늘날의 기독교회는 너무 이기적인 쪽으로 편향되어 나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도록 하기 위해 교회에 참여하기보다는 자신의 안위와 평강과 유익을 위해서 참여하는 경향이 빈번합니다.

 

각 사람이 선물을 받은 대로 [하나님]의 여러 가지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로서 서로 그 선물을 써서 섬기라.”(벧전 4:10)

우리는 모두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은사나 축복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 복과 은사의 청지기들입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사역에 사용하도록 우리에게 은사와 축복을 주셨습니다. 특별히 우리는 서로 섬기는 사역에 그것들을 사용해야 합니다. 섬기는 사역에 자신의 능력을 사용할 기회를 갖지 않고 있는 지체들은 하나님의 축복의 좋은 청지기가 아닙니다.

 

이것은 성도들을 완전하게 하고 섬기는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게 하려 하심이라.”(4:12)

교회는 섬기는 사역을 이루기 위해 장비하는 지체들이 건축되어서(4:11), 교회가 변화되고 더 활력화 되고 건축될 수 있습니다(4:16).

 

지방교회는 지체들이 주님을 위해 연구, 예배, 그리고 사역을 할 기회를 분배하려고 존재합니다. 지체들이 섬기는 사역을 이루기 원할 때로부터 우리는 그 사역가운데 우리 자신이 포함되고 지방교회의 일부가 되기를 기대함으로 따릅니다. 아무것도 우리가 논의하지 않는 것은 그 주의 어떤 각별한 날로 제한된 어떤 방식이나 특정한 모임이나 많은 모임들이 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원칙들은 교회가 그 주간에 분배하여 어떠한 날, 어떤 모임에 적용되도록 사역을 할 기회를 지체들에게 줍니다. 25:31~46절을 읽어 주십시오.

 

C. 참여하는 것에 대한 적용

1. 모임은 교회가 지체들에게 섬기는 것과 사역을 나누고 참여하는 것에 대한 그들의 의무를 수행하도록 공급하는 중요한 기회들 중 하나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그리스도인들이 예배하는 것과 사역하는 교회 모임에 함께 있었던 것을 반복적으로 보는 이유입니다.

 

* 모임 안에 있는 우리는 이미 말을 한 것처럼 배우는 것 안에서 참여하고 나누는 것을 할 수 있고, 또 서로 가르치는 것과 책망을 할 수 있습니다.

 

* 우리는 하나님을 찬양함으로 교제를 갖습니다.

 

* 모임 가운데서 우리가 다른 사역을 배우는 것을 선포할 수 있습니다. “선포란 무엇입니까? 우리가 왜 선포를 해야 합니까? 선포는 섬길 기회들에 관한 정보와 지식을 지체들에게 공급합니다. 선포는 교회에 일어나고 있는 것들, 다른 지체들의 생활들을 우리에게 말합니다. 그렇게 함으로 서로 기도할 수 있고, 서로 섬길 수 있습니다. 이것이 섬기도록 우리를 장비시키는 교회입니다.

 

특별하게 우리는 다른 지체들의 필요 곧 질병, 병원에 입원하는 것, 걱정거리, 기도가 필요한 문제, 재정적 필요, 침례를 받는 것, 죄를 고백하는 것, 등을 배웁니다. 우리는 교회가 분배하고 있는 심방하는 일, 매일의 사역, 복음집회 등을 다른 여러 사역을 할 기회들을 배웁니다.

 

 

* 우리의 집회의 일들이나 집회에 이어서 하는 펼쳐지는 말들은

흔히 섬기는 방법을 제시합니다.

 

가끔 선포가 제외되는 모임에서 우리는 섬기는 기회에 대한 다른 방법들을 배우기도 합니다. 사람들이 침례를 받는 것, 죄를 고백하는 것이 있거나 기도를 요청하면 우리는 그들을 격려하고 그들을 위해서 기도 합니다.

 

봉사하기 전후 사람들과 함께 하는 사담(私談)에서 우리는 기회를 잡을 수 있습니다. 말을 가로채서 너무 급하게 말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의 친한 친구들이나 가족, 그리고 교회 지체에게 말할 시간을 주십시오. 그들이 말하지 못하고 그냥 서 있게 하지 마십시오. 주변을 떠나지 말고, 다른 사람들과 말을 하십시오. 흥미와 관심을 표현하십시오. 그들의 필요를 알려고 하십시오. 그리고 섬기기 위한 방법을 찾으십시오. 찾아오는 사람들을 알려고 하십시오. 그들을 격려하기 위한 방법을 알려고 하십시오. 다른 지체들과 그들의 가족이 잘 살아가고 있는지를 물으십시오. 또 섬길 수 있는 방법을 찾으십시오. 교회 모임에 이어 잠시 동안은 사람들이 사적인 어떤 성경적인 주제를 토론하거나 어떤 성경적인 주제를 연구하기 위해 사적인 모임을 발표할 때입니다. 흔히 우리는 교회 집회 직전, 직후에 사적인 연구 시간이나 소그룹 연구 시간에 발표합니다.

 

사역을 하기 원하는 사람들은 무슨 사역을 해야 할지를 알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우리가 함께 특히 집회 가운데 있을 때 이 소식, 지식, 등을 배웁니다. 요약하면 집회는 교회가 서로 분발시켜 지체들을 장비케 하고 교회를 건축하는 주된 방법 중 하나입니다. 사역 안에서 나눌 것을 하나님에 의해 명령된 이후로 서로 섬김 안에서 교제하는 지체들은 교회가 모임이 열리는 언제든지 출석하여 그들의 필요를 찾아 그 지체들을 인도해야 합니다.

 

2. 지체들이 교회모임에 출석할 기회를 소홀히 할 때 그들은 사역에서 협력하거나 나누지 못할 것입니다. 습관적으로 어떤 사람들은 늦게 와서 선포를 놓치기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 일찍 교회모임에서 나가기 때문에 침례를 받거나 죄를 고백하는 것을 함께 하지 못합니다. 그들은 교회모임 전후에 다른 지체들과 교회 모임에 방문한 사람을 알게 될 시간을 갖지 못합니다. 결과적으로 그들은 사역에 참여하게 되는 방법을 알지 못하고 사역을 할 방법을 찾지 않습니다. 이것이 부지런한 그리스도인들이 가져야 할 것을 사역에서 협력하고 나누는 영입니까? 이것이 다른 그리스도인들을 섬기는 갈망을 나타냅니까? 이와 같은 사람들은 부지런하게 사역에 참여할 기회를 찾고 있습니까?

 

그리고 모든 봉사를 놓치는 사람들은 어떤가요? 섬길 기회를 협력하고 찾고는 있나요? 그들은 가르칠 기회, 성경연구 소그룹모임과 각 집회에서 주어진 다른 사람들을 분발시키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을 놓치고 있습니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의 필요와 섬길 다른 기회들에 대해 주어진 정보를 놓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진정 봉사하기 원한다면 왜 이 같은 기회를 등한시하나요? 섬기는 것은 아름다운 것이요, 행복해지는 비결입니다.

그럼 집회 밖에서 할 수 있는 어떤 섬김의 사역이 있습니다. 그 간단한 사실이 있는데 집회를 규칙적으로 놓치는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무슨 사역을 해야 하는지 모르거나 다른 사람들이 행하고 있는지를 모릅니다. 만일 그들이 오는 것조차도 흥미가 없고 전적으로 헌신하지 않는다면 그들이 집회 밖에서 섬기는 사역을 전적으로 하게 될 기회는 무엇입니까? 얼마나 여러분은 많은 사람들이 습관적으로 집회에 오는 것을 등한시 하는 사람을 알고 있습니까? 또 사역에 깊게 관여하는지를 알고 있습니까?

 

3. 규칙적으로 교회모임에 출석하지 않는 사람들은 무리의 일부를 느끼지 않습니다.” 내가 예전에 출석했던 교회조차도 모든 집회에 관해 가장 일반적인 불평들 중 하나였습니다. 아무리 지체들을 친절하게 대하고, 돌보고 있고, 사랑하고 있더라도 어떤 지체들은 우리는 그 일의 일부로 느끼지 못한다. 우리가 참여하지 않는다. 우리는 소속감을 갖지 못한다.”라고 말할 것입니다. 그들은 대개 마치 집회의 비평가였던 것처럼 그건 다른 지체들의 책임이요, 잘못이야.”하고 말합니다.

 

100에서 99번 섬김의 사역에 규칙적으로 참여하지 못하거나 참여하여도 부지런히 수고하는 것이 아닐 것이라는 사람들일 것입니다. 한 사역에 참여할 것을 초대할 때 그들은 흔히 움츠립니다. 그렇지 않으면 직업으로는 생각하지만 등한시하거나 소홀히 하고 그리고 떨어져 나갑니다.

 

회사원들이 1/2~1/4시간만 출근해 일하려고 한다면 그가 무리 중 일부라고 느낄까요? 학생들이 모두 3~4시간만 클래스를 채우려고 등교하고 집에서 숙제를 하지 않는다면 그가 그 클래스의 일원으로 느낄까요? 여러분 가정에 있는 아이가 식구들이 하는 것을 1/3~1/4만 참여하다면 그들이 가정의 일원이라고 느낄까요?

 

이러 사람들은 무리에 일부로 느끼라고 요구하는 것을 하지 않기 때문에 무리에 일부로 느끼지 않고교회 모임을 규칙적으로 놓치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협력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나누지 않습니다. 그들은 사역에서 교제를 갖지 않습니다.

 

결론

하나님은 지방교회에 참여하도록 할 그리스도인을 위한 본을 가지고 계십니다. 다른 믿음 있는 그리스도인들과 함께 일치감과 하나 됨을 가진 사람들은 사역 안에서 교제를 갖거나 나누기를 원합니다. 그들은 서로 도울 수 있는 그들의 능력을 사용해 다른 사람들을 섬길 필요와 지방교회의 목표를 이룰 필요를 봅니다. 이것을 실행하지 않는 사람들은 단순히 믿음으로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연구한 예들로 묘사된 성경적인 본은 믿음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무리의 일부가 되어야 하고 무리의 일부가 되었다는 느낌을 가져야함을 보여줍니다. 사울과 동일하게 말입니다.

 

(1) 무리와 함께하십시오.

교회는 여러분이 무리의 한 부분이 되기를 원한다는 것을 아십시오.

(2) 무리와 함께되십시오. 규칙적으로 모든 교회기능에 참여하십시오.

(3) 무리의 사역에 참여하십시오.

 

부지런하고 나는 여러분들이 곧 무리의 일부로 느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더 중요한 것은 여러분이 믿음 있는 그리스도인의 사역을 실행하게 될 것이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것입니다.

 

교회모임에 참여해야 할 여러 구절들도 있고, 그 이유도 있습니다. 하나님께 예배하는 중요성과 성경연구를 해야 하는 중요성에 관한 특별한 구절들을 포함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의 증거가 있습니다. 연합, 협력, 섬김에 대한 성경적인 가르침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교회가 모일 때마다 오도록 분배하여 부지런하게 사역해야 이유이고 주목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들을 주는 것입니다.

 

당신은 그리스도이십니까? 여러분은 믿음 있는 각지교회의 지체가 되십니까? 여러분은 믿음을 가지고 출석하고 사역에서 믿음으로 섬기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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