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퍼런스/교회

거룩한 날들을 지키는 것에 대한 성경적인 적용(D)

Hernhut 2013. 3. 12. 17:51

D. 종교적으로 이런 거룩한 날들을 지키기 위해 참여하는 것은 이교도와 배교자들의 종교에 참여하는 것이다.

이러한 거룩한 날들의 역사는 이교도, 토속신앙에서 시작했고, 천주교회와 변절자라고 불리는 그리스도인 무리에 의해 수용되었습니다. 종교적으로 그런 날들을 참여하는 것은 이교도에 참여하는 것이요, 변질된 종교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한국은 우상에게 절하거나 점치러 다니는 것은 우상숭배라고 하면서 이러한 거룩한 날들은 열심을 내어 지키는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사실 이런 날들은 우상을 섬기는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내가 교회에게 썼으나 그들 가운데 으뜸이 되기를 좋아하는 디오드레베가 우리를 받아들이지 아니하니 *그러므로 내가 가면 그가 행하는 행위들을 기억하리라. 그가 악한 말들로 우리를 헐뜯고도 그것으로 만족하지 아니하며 자기 자신도 형제들을 받아들이지 아니하고 받아들이고자 하는 자들도 금하여 교회에서 내쫓는도다. *사랑하는 자여, 악한 것을 따르지 말고 선한 것을 따르라. 선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였으나 악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을 보지 못하였느니라.”(요이 1:9~11)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가르침 안에 거하지 않고, 우리에게 이런 이교도적인 가르침에 이끌 때 우리는 하나님의 축복을 그들에게 명하지 말아야 하고 악한 일에 참여조차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여기서는 엄하게 교제권에서 쫓아낼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즉 내가 무엇을 말하느냐? 우상은 무엇이며 우상들에게 희생물로 바친 것은 무엇이냐? *그러나 내가 말하건대 이방인들이 희생물로 드리는 것은 마귀들에게 드리는 것이요,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아니니 나는 너희가 마귀들과 교제하는 자 되는 것을 원치 아니하노라. *너희가 주의 잔과 마귀들의 잔을 겸하여 마실 수 없으며 주의 상과 마귀들의 상에 겸하여 참여하는 자가 될 수 없느니라. *우리가 주의 질투를 일으키겠느냐? 우리가 그분보다 강하냐?”(고전 10:19~22) 이교도 종교의식에 참여함은 질투하시는 주님을 화나시게 합니다. 이 같은 원칙은 대개 거짓 종교에 적용됩니다. 변질된 종교무리의 의식에 종교적으로 참여하는 것은 악한 것들과 친교를 갖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런 것들을 행할 수 없고 다만 하나님의 참된 예배에만 참여할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러한 것들을 의심 없이 거룩해 보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우리에게 다가오기 때문에 주님과 관계있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장식되어 있을지라도 우리의 적들은 그 당시나 현대나 미래에도 여전히 그리스도의 이름과 거룩함으로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입니다.

 

너희는 믿지 않는 자들과 공평하지 못한 멍에를 메지 말라. 의와 불의가 어찌 사귀겠으며 빛과 어둠이 어찌 친교를 나누겠으며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일치하겠으며 혹은 믿는 자가 믿지 않는 자와 어찌 한 몫을 나누겠으며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들이 어찌 조화를 이루겠느냐? 이는 너희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기 때문이라.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내가 그들 가운데 거하고 그들 가운데 거닐며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되리라. *주가 말하노라. 그러므로 너희는 그들 가운데서 나와 너희 자신을 분리하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를 영접하여 *너희에게 아버지가 되고 너희는 내 아들딸이 되리라. 전능자 주가 말하노라, 하셨느니라.”(고후 6:14~18) 빛이 어둠과 교제를 가질 수 있을까요? 의가 불의와 사귈 수 있을까요? 하나님의 사람들과 어떻게 함께 할 수 있을까요? 거룩함과 거룩한 체 하는 것과 조화를 이룰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있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깨끗하지 않은 것을 만지지도 말아야 하고 이교도와 변절된 실행으로부터 우리 자신이 분별해야 합니다. 그리하면 우리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아들과 딸들인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희가 하나님을 알지 못하던 때에는 본래 신들이 아닌 것을 섬겼느니라. *그러나 이제는 너희가 하나님을 알 뿐 아니라 하나님께서도 너희를 아시거늘 어찌하여 너희가 다시 약하고 천한 초등 원리로 돌아가 다시 그것에게 종노릇하려 하느냐? *너희가 날과 달과 때와 해를 지키니”(4:8~10) 갈라디아사람들은 참된 복음과 다른 실행으로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리스도의 은혜 안으로 너희를 부르신 분을 너희가 이렇게 속히 떠나 다른 복음으로 옮겨가는 것을 내가 이상히 여기노라. *이 다른 복음은 또 다른 참 복음이 아니요, 다만 너희를 어지럽히는 어떤 자들이 있어 그리스도의 복음을 왜곡시키려 하는 것뿐이라. *그러나 우리나 혹은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선포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선포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우리가 전에 말한 것같이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너희가 받아들인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선포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1:6-9). 다른 복음이라 함은 참된 복음과 완전히 다른 것을 말하지 않고 복음에 추가하거나 빼서 복음처럼 전파하고 그 실행에 참가함을 말합니다. 여기엔 이교도, 변질된 복음, 어떤 날, 어느 달, 계절, 그리고 연례적으로 지키는 것을 만들어 실행하는 것입니다. 요즘 저는 어떤 기독교회에 가서 천번제, 월삭예배, 등 구약성경에서나 있음직한 용어를 사용하면서 기도하거나 예배를 하는 것을 보고서 깜짝 놀랐습니다. 신약교회인지, 구약회당인지 분간할 수 없었습니다. 이런 이끎은 바울에게는 두려움이었습니다. 진리를 그들에게 가르치려고 한 수고가 헛된 것이 되었습니다. 현대의 교회도 이와 같이 분별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렇게 해서 많은 사람이 예수를 믿는 것을 하나님은 원하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구원받기 원하시지만 복음을 변질시키고 변형시켜서 전한다면 그들이 구원받을 수 있을까요? 사회에서 성공을 할지 모르고 대형교회가 될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참된 교회, 순전한 교회가 아닐 것입니다.

 

현대의 거룩한 날들의 기원은 이교도요, 변질된 기독교도들입니다. 부활절(Easter)은 이교도 여신의 이름을 따서 부른 것입니다. 크리스마스와 부활절 날은 이교도의 거룩한 날과 똑같이 일어났습니다. 아마도 같은 날 다른 저편에서는 이교도들의 종교행사가 벌어질 것입니다. 이교도들과 변절자들의 실행이 현대 교회의 거룩한 날들을 지키는 많은 실행들의 기원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단지 복음적인 것처럼 보이기 위해 예수그리스도와 그분의 죽으심, 고통과 고난 그리고 부활을 넣어놨을 뿐입니다. 우리가 이런 것을 종교적으로 지킨다면 우리는 바울이 여기서 반대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교도와 변절자들의 실행으로 되돌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열매 없는 어둠의 일들에 참여하지 말고 도리어 그것들을 책망하라.”(5:11) 이러한 교제를 갖기보다 우리는 그들을 꾸짖어야 합니다. 오늘날 이런 선견자들이 없습니다. 또 꾸짖는 다고해도 자신들을 반대한다는 것으로 치부해 버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 메시지를 읽는 많은 사람들은 깨어나기를 기도합니다. “너는 말씀을 선포하라. 때에 맞든지 맞지 아니하든지 항상 예비하라. 모든 오래 참음과 교리로 책망하고 꾸짖고 권면하라. *이는 때가 이르리니 사람들이 건전한 교리를 견디지 못하며 귀가 가려워 자기 욕심대로 선생들을 쌓아 두고 *또 진리로부터 귀를 돌이켜 꾸며낸 이야기들을 따를 것임이라.”(딤후 4:2~4), “너희는 이 세상에 동화되지 말고 오직 너희 생각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받으실 만하며 완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입증하도록 하라.”(12:2), “사무엘이 이르되, 주께서 번제 헌물과 희생물을 주의 목소리에 순종하는 것보다 더 좋아하시겠나이까? 보소서, 순종이 희생 헌물보다 낫고 귀를 기울이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삼상 15:22).

 

나는 오랫동안 이 일을 해왔습니다. 이런 무익한 거룩한 날을 지키기 위해 참여하는 것에 대해 그 위험성을 보았습니다. 이런 날들은 사회적이고 계절에 따른 것도 아니요, 국가적인 것을 따라 결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이런 것에 참여함으로서 많은 예수의 사람들에게 파급되는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8, 10장과 로마서 14장을 연구함으로 성경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알 수 있습니다. 이런 거룩한 날을 인정한 바가 성경에는 없습니다. 이 모든 것들은 단지 인간의 교리와 전통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것입니다. 그런 날들은 성경적인 원칙을 왜곡시킨 날들입니다. 이런 날들은 근본적으로 이교도와 이교의 성향을 가진 자들의 기원 안에 있습니다. 대부분의 거룩한 날들은 배교자들의 종교적인 몸에 의해 기독교의 이름을 채택했습니다. 대부분이 로마 천주교회에서 나온 말들입니다. 성경은 이와 같은 종교적인 실행을 피하도록 우리에게 경고합니다. 대신 우리는 예수의 죽으심을 기억하기를 강조합니다. 우리는 매주 첫날 주의 만찬을 통해 예수의 몸과 피로 교제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