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퍼런스/교회

거룩한 날들을 지키는 것에 대한 성경적인 적용(B)

Hernhut 2013. 3. 8. 17:38

B. 거룩한 날들은 신약성경에서 실행할 권한이 전혀 없다.

거룩한 날들은 신약성경을 읽은 사람이라면 강조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성경에 관해 어떤 것을 알고도 그런 날들을 실행하는 사람들에 의해서 시인되었습니다. 나는 의문이 갔습니다. 왜 천주교의 사제들이나 개신교의 목사들은 신약성경을 읽으면서도 수많은 세월을 이런 거룩한 날들을 지킬 것을 요구할까요? 사실 모르고서 강요한다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알고도 가르친다는 것은 거짓말을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어떤 사람들은 구약성경의 거룩한 날을 기초로 해서 연례적인 거룩한 날을 지키는 것이 옳다는 것을 밝히려고 합니다. 그들은 현대의 거룩한 날들이 구약성경에 있는 거룩한 날들의 변형이라고 주장하기도 하고 바로 구약성경에 있었던 날고 같은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그들은 그런 날들이 구약성경에서 거룩한 날들을 갖는 것이 허락된 것이어서 오늘날에도 지키는 것을 허가해야 한다고 판단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신약성경을 읽을 필요가 있습니다. 손으로 쓴 규례들 곧 우리를 대적하고 반대하는 규례들을 지우시고 그것들을 길에서 취하사 그분의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정사(政使)들과 권능들을 노략하사 십자가에서 그들을 이기시고 드러내어 구경거리로 삼으셨느니라. *그러므로 먹는 것이나 마시는 것이나 거룩한 날이나 월삭(嫄朔)이나 안식일로 인하여 아무도 너희를 판단하지 못하게 하라. *이것들은 앞으로 올 것들의 그림자이거니와 그 몸은 그리스도께 속해 있느니라.”(2:14~17) 율법은 예수께서 죽으셨을 때 제거되었습니다. 그분의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물과 피를 흘리심으로 모두 제거되었습니다. 거룩한 날들을 포함하여 이러한 것들은 오는 것들의 그림자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것들에 관해 우리를 판단할 사람들이 아무도 없도록 해야 합니다. 율법은 더 이상 율법으로서 구속력이 없기 때문에 거룩한 날들에 대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그 안에 굳게 서고 다시는 속박의 멍에를 메지 말라. *보라, 나 바울이 너희에게 말하노니 너희가 만일 할례를 받으면 그리스도께서 너희에게 아무 유익도 주지 못하시리라. *내가 할례를 받은 각 사람에게 다시 증거하노니 그런 사람은 율법 전체를 행할 의무를 가진 자니라.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율법으로 의롭게 된 자에게는 그리스도께서 아무런 효력이 없으며 너희는 은혜에서 떨어진 자로다.”(5:1~4) 우리가 우리의 실행을 정당화하려고 율법을 사용한다면 우리는 모든 율법을 지켜야 합니다. 또 율법을 계속 지키는 것은 우리가 예수의 복음을 버린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은혜와 상관이 없는 사람들이 된 것입니다. 우리가 지키기 원하여 일부의 것만을 따로 정당화하여 율법을 사용하는 것은 합당한 것이 아닙니다. 모두 것을 취하거나 거절해야 합니다.

 

특별하게 우리가 율법을 근거로 해서 거룩한 날을 정당화하려고 한다면 우리는 율법이 그것들을 지키라고 한 방식으로 구약성경의 거룩한 날들을 모두 지켜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편리를 위해 새로운 것으로 그것들을 바꾸거나 더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율법의 다른 요구를 모두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율법에서는 할례, 동물희생, 제 칠일 안식일 등을 요구합니다. 우리가 그런 것들을 실행한다면 우리는 은혜를 저버리는 것입니다.

 

나는 오래전부터 율법뿐만 아니라 새로 추가된 거룩한 날들과 강력하게 주장해오고 있는 십일조, 각종 헌금, 여성목사, 교회세습, 십자가 우상화, 성화걸기, 목사들의 가운착의, 담임목사제도, 교회음악의 악기 사용 등을 내려놓기를 주장해오고 있습니다. 아무튼 구약성경은 하나님께서 거룩한 날들을 지키기를 원하셨을 때 그분께서는 분명히 지킬 것을 나타내셨음을 보여줍니다. 또 우리가 그것을 실행할 때 지켜야 하는 이유를 보여주셨습니다. 구약성경에서 하나님은 많은 거룩한 날들을 세우셨습니다. 오늘날에 미치는 것은 아니지만 구약성경에 그러한 것들을 기록하신 것은 유익한 공과로 우리를 가르칠 수 있습니다(15:4, 고전 10:1~12). 하나님께서는 언제 무슨 목적으로 실행해야 할지를 항상 그분의 사람들에게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기념축제(연회)

성경

시간

기념목적

유월절

12:6,14,24~51

114

첫 태생의 죽음

나팔절

23:24

71

나팔을 부는 것

속죄, 대속절

23:27

710

죄를 갚는 일

장막절(초막절)

23:39~44

715

광야에서 사는 것

안식일

20:8~11, 5:1~15

매주 토요일

창조와 이집트로부터 구출

주의 만찬

20:7, 26:26-29

매주 첫날

예수의 죽으심

 

 

본을 따르는 것을 생각해 보라.

하나님께서는 절대 사람들이 이러한 축제들을 지킬지를 자유롭게 놔두시지 않았습니다. 언제 실행할지, 무슨 목적으로 지켜야 할지를 하나님께서 결정하신 것입니다. 성경에는 이러한 것들이 항상 명확하게 드러나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크리스마스, 부활절, 사순절들과 같이 연례적인 거룩한 날을 우리가 지키기를 원하셨다면 신약성경에는 왜 확실하게 말씀하시지 않으셨을까요?

 

사람들은 신약성경에 언급하고 있지 않은 실행을 정당화하려고 구약성경을 인용합니다. 사실상 구약성경 연구는 하나님께서 이런 실행을 원하시지 않음을 우리에게 더 강하게 확신시켜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연례적인 거룩한 날들을 구약성경에 승인하셨을 때 주님은 명확한 용어들로 표현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오늘날 연례적인 거룩한 날(크리스마스, 부활절, 사순절, 주현절, )을 원하신다면 무엇을 실행하고, 언제 실행하며, 그 목적이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신약성경에 말씀하시지 않았을까요? 하나님께서 구약성경에서 거룩한 날들에 관해 말씀하신 것과 반대로 하나님께서 이러한 날들을 지키지 않기를 원하신다는 분명한 증거가 있습니다. 이런 증거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성도들에게 지킬 것을 주장하는 많은 신학자들이나 목사들, 신부들의 의도는 무엇일까요?

 

신약성경은 예수의 죽으심을 매 주 기념할 것을 확실하게 강조합니다.

제자들이 먹을 때에 예수님께서 빵을 집으사 축복하시고 나누어 그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받아서 먹으라. 이것은 내 몸이니라, 하시고 *또 잔을 집으사 감사를 드리시고 그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그 까닭은 이것이 죄들의 사면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나의 피 곧 새 상속 언약의 피이기 때문이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이 포도나무 열매에서 난 것을 이제부터 내 아버지의 왕국에서 너희와 함께 새롭게 마시는 그 날까지 마시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26:26~29) 예수님은 분명하게 무엇을 실행할지, 무슨 목적인지를 우리에게 가르치셨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몸과 피를 기억하려고 떡을 먹으며 포도나무에서 나는 포도의 술을 마십니다.

 

내가 너희에게 전해 준 것은 또한 주께 받은 것이니 곧 주 예수님께서 배반당하시던 바로 그 밤에 빵을 집으사 *감사를 드리신 뒤에 그것을 나누시고 이르시되, 받아서 먹으라.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부서진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억하라, 하시고 *저녁 식사 뒤에 또 그와 같은 방법으로 잔을 집으시고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상속 언약이니 너희가 마실 때마다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억하라, 하셨느니라. *이는 너희가 이 빵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그분께서 오실 때까지 보이기 때문이라.”(고전 11:23~26) 바울은 주님의 죽으심을 기념하는 것입니다. 이 문맥은 교회가 함께 모일 때에 우리가 실행하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것은 정기적으로 실행하는 것이 되었습니다. “그들이 흔들리지 아니하며 사도들의 교리와 교제 안에 머물고 빵을 나누며 기도하더니(2:42).

 

()의 첫날에 제자들이 빵을 나누려고 함께 나오니 바울이 이튿날 떠나고자 하여 그들에게 말씀을 선포하며 계속해서 한밤중까지 말을 하니라.”(20:7). 제자들은 한 주의 첫날모일 때 그것을 실행했습니다.

 

구약성경의 축제만큼이나 확실하게 무슨 목적인지, 언제 실행할 것인지. 무엇을 실행할 것인지를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다시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신약성경의 중요한 일들을 기념하는 것입니다. 이 중요한 일들은 우리의 죄를 용서함을 받은 것입니다. 예수의 죽으심을 원하신다는 것을 기념하도록 하나님은 주의 만찬을 강조하셨습니다. 이것은 주님께서 연례적으로 지키는 거룩한 날을 강조하지 않으셨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무슨 권리로 우리가 정기적적인 연례행사로 지키는 것입니까?

 

하나님께 하는 예배는 항상 주님의 뜻 안에서 강조되어야 합니다. 모든 성경 기록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주신 것으로 교리와 책망과 바로잡음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것은 하나님의 사람으로 하여금 완전하게 되어 모든 선한 일에 철저히 갖추어지게 하려 함이라.”(딤후 3:16~17). 성경은 모든 선한 사역을 교육하고 공급하여 장비하게 합니다. 하나님께서 연례적인 거룩한 날들을 원하셨을 때 그분은 자신의 말씀에 그것들에 대한 것을 분명하게 공급하셨습니다. 오늘날 주님은 매주 주님의 죽으심을 기념하도록 분명히 공급하십니다. 이러한 현대적인 거룩한 날들이 선한 사역이라면 성경에서는 왜 이것들을 가르치는 곳이 아무데도 없을까요?

 

그러나 참되게 경배하는 자들이 영과 진리로 아버지께 경배할 때가 오나니 곧 지금이라. 이는 아버지께서 자기에게 이렇게 경배하는 자들을 찾으시기 때문이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그분께 경배하는 자가 반드시 영과 진리로 경배할지니라.”(4:23~24). 하나님은 그영(the Spirit)과 진리로 주님을 예배하는 사람들을 찾으십니다. 주님의 말씀은 진리십니다(17:17). 연례적인 거룩한 날들이 주님의 예배로 준비되어야 했다면 우리는 주님의 말씀에서 그런 날들을 찾아야 합니다. 모든 것들이 주님의 말씀 안에서 찾을 수 없음을 인정합니다. 그러므로 그러한 것들은 진리가 아닙니다. 우리가 그영(the Spirit)과 진리로 주님을 예배한다면 우리가 어떻게 준비할 수 있을까요?

 

이것들은 앞으로 올 것들의 그림자이거니와 그 몸은 그리스도께 속해 있느니라.”(3:17). 우리가 실행하는 것은 주님의 권세로 예수의 이름 안에서 행해져야 합니다. 우리는 매주 첫날에 주님의 권세로 그분의 죽으심을 기억할 수 있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인정하는 모든 이들은 연례적인 거룩한 날을 절대 강조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주님의 이름 안에서 종교적으로 지킬 수 없습니다. 우리가 주님의 이름으로 모든 것들을 실행해야 한다면 무슨 권리로 그런 거룩한 날들을 지킬 수 있었을까요? by성임현형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