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퍼런스/교회

교회사역(헌금) IV~VII 그리고 결론

Hernhut 2012. 9. 14. 13:04

 

교회사역(헌금)

성임현형제 씀

 

IV. 목적

 

“저마다 자기 마음속에 정한 대로 낼 것이요, 마지못해 하거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거이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고후 9:7)

 

헌금의 목적을 말하고자 합니다. [오늘날 기독교회들이 헌금에 대한 목적을 잃어버린 채 긁어모아 교회 건물들을 도심에 우후죽순처럼 하늘을 찌르듯 올라가거나 세습을 끊어버리지 못하고 주님의 가르침과 복음을 상속하고 믿음을 유산으로 남기는 것보다 건물과 전별금이나 퇴직금으로 수십억, 수백억씩 쏟아 붓는 물색없는 목회자들을 보면 솔직히 말없이, 이름 없이,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라고 했던 사도바울처럼 이 땅에서 하늘에 속한 상속을 외칠 사람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이렇게 말하는 날보고 어떤 이들은 ‘당신이 LOOSER라서 그래. 당신이 뭘 몰라서 그래. 하나님의 돈 가지고 하나님을 위해서 복음을 위해서(사실 내 돈인데 왜 참견이야!)빚도 내고 대출 받아 짓는 데 당신이 왜 참견하는 거야?’라고 말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초기 교회들이 건물을 그렇게 크게 세웠나요? 유대인들은 회당을 필요로 했는지 모르지만 교회는 건물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신학박사요, 10년을 넘게 성경을 연구하신 분들이 이 문제를 간과할까요? 사도들이 퇴직금, 전별금을 받았나요? 자식에게 세습했다고 성경에 어디에 있나요? 유대인들은 제사장직분을 세습한 것이 맞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현상들이 맘몬주의, 탐욕주의에 빠진 자들이 아닐까요? 신약의 교회가 옛 율법을 버리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판단하는 것인데 이는 탐욕주의요, 거룩한 타락입니다. 왜 교회를 욕되게 하십니까? 회개하십시오. 주님오실 날 멀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거룩한 탐욕실로 직행하면 어쩌시려고 그러십니까? 헌금의 목록이 80여 가지가 넘더라고요. 성경으로 돌아가지요. 너무 열을 냈나봅니다.]

 

각 사람이 자신의 마음에서 목적을 가졌던 것을 따라서 헌금을 해야 합니다. 우리가 첫 번째로 목적을 세우는 것은 우리가 드리는 것입니다. 헌금주머니가 지나갈 때까지 기다리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것이 무엇(얼마)이든 일부분을 드리십시오. 추가적으로 여러분은 여러분 스스로 목적을 세워야 합니다. 설교자나 장로들이나 인도자들이 여러분이 무엇(얼마)을 드려야 할지를 결정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목적을 세운 후 여러분이 목적을 세운 것이 무엇(얼마)이든지 목적을 따라야 하고 드려야 합니다.

 

“이에 제자들이 저마다 자기 능력대로 유대에 거하던 형제들에게 구호금을 보내기로 결정하고”(행 11:29)

각 사람이 자기의 능력에 따라서 무엇을 드려야 할지를 결정합니다. 드리는 것은 가볍게 하지 말아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들이 교회에 얼마나 많이 드릴 것이냐 보다 새로운 구두, 옷, 컴퓨터, TV, 셀폰을 사는 것에 더 많이 생각하는 데 더 많이 씁니다.

 

교회가 여러분의 영원한 예정을 포함한 목적을 이루기 위해 많은 돈을 필요로 하는 것은 아주 중요한 사역들이라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성경을 연구하십시오, 우리가 연구하고 있는 원칙 위에서 묵상하십시오. 여러분의 부(富)와 능력을 분석하십시오. 그런 후 얼마나 드려야할지를 결정하십시오. 이것이 여러분이 헌금을 어떻게 드려야할지를 알아야 할 부분입니다. 헌금은 막연히 하는 것이 아닙니다. 헌금은 교회의 질서 중 하나입니다.

 

이 헌금사역에 대한 끝에는 여러분이 드리는 것을 계획하도록 돕도록 하는 기록들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들의 소유를 드릴 준비한 액수를 더 주의 깊게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 목록은 수입대비 드려진 액수를 백분율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이 지나치게 적은 것이 될지 모르겠지만 여러분의 목적을 돕게 될 때까지 고려해야할 다른 요소들입니다. 여러분은 다른 나라에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드릴 수 있는지요? 여러분은 구약성경의 이스라엘 사람들보다 많거나 동일하게 드릴 수 있나요? 여러분의 수입의 몇 퍼센트를 이제 드리겠습니까? 여러분은 높일 수 있나요?

 

 

V. 사랑, 자유, 그리고 기쁨

   

드림은 사랑을 표현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자신의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것은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는 멸망하지 않고 영존하는 생명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 3:16)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노라. 그러나 내가 아니요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느니라. 나는 지금 내가 육체 안에서 사는 삶을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해 자신을 주신 [하나님]의 [아들]의 믿음으로 사노라.”(갈 2:20)

예수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시러 오셨을 때에 예수님과 그분의 아버지의 사랑이 표현되셨습니다. 성경적인 사랑은 필요에 관해 사심이 없는 것이요, 다른 사람들의 잘됨에 대해 더없이 기뻐하고 응원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기꺼이 주고 그들 자신들을 위해 하려고 하는 것을 할 수 없도록 사람들을 동기부여 시키는 것입니다(요 15:13, 고전 13:4~7, 요일 4:9, 엡 5:2, 25).

 

“나는 명령으로 말하지 아니하며 오직 다른 이들이 열심인 것을 기회로 삼아 너희의 사랑이 진실함을 입증하려고 말하노라.”(고후 8:8)

“그러므로 너희는 너희의 사랑의 증거와 너희에 대한 우리의 자랑의 증거를 교회들 앞에서 그들에게 보이라.”(고후 8:24)

우리의 드림은 우리의 사랑에 대한 표현과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얼마나 사랑하고 그 사역을 수행하기 위해 교회를 얼마나 원하는지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이제 세 가지를 특별하게 생각해 보겠습니다.

 

(1) 잃어버린 자들에게 복음을 전파하는 것에 관해 여러분이 얼마나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까? 여러분이 진리를 몰랐더라면 교회가 여러분을 가르칠 수 있겠지만 돈을 가지고 있었다면 어떻게 여러분이 아낌없이 줄 교회지체들을 원할 것입니까? “네 이웃을 네 자신처럼 하라”고 하셨습니다.

“둘째 명령은 그것과 같은 것으로서, 너는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이니라.”(마 22:39).

 

(2) 여러분은 정말 그들에게 복음 전파하는 것이 계속 필요가 있어 사역비를 받을 복음전파자를 원합니까? 만일 여러분이 여러분의 가정을 돌보기 위하여 매달 일정한 금액을 필요로 한 복음전파자라면 여러분은 어떤 너그러운 지체가 되기를 원하십니까?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사람들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대로 너희도 그들에게 그와 같이 행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대언자들이니라.”(마 7:12).

 

(3) 여러분은 진정으로 물질적인 필요를 가지고 있는 형제들을 사랑하십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자신의 생명을 버리셨으므로 우리가 이로써 그분의 사랑을 깨닫나니 우리가 형제들을 위해 우리의 생명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그러나 누가 이 세상의 좋은 것을 가지고 있으면서 자기 형제가 궁핍한 것을 보고도 동정하는 마음을 닫아 그를 피하면 어찌 [하나님]의 사랑이 그 속에 거하겠느냐? 나의 어린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1 John 3:16-18).

 

여러분은 하나님께로부터 온 좋은 모든 것, 곧 육적인 축복, 영적인 축복, 그리고 영원한 생명에 대한 소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사랑하는 지를 물으십니다. 자신의 뜻을 행할 것인지를 물으십니다. 그리고 교회를 후원할 것인지를 물으십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을 정말로 사랑한다면 여러분이 적게 드리려고 할 수 있을까요? 아니면 하나님의 뜻을 여러분이 이룰 수 있도록 아낌없이 드릴까요?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내 명령들을 지키라.”(요 14:15)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분의 명령들을 지킬 때에 이로써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들을 사랑하는 줄 아나니 우리가 그분의 명령들을 지키는 것, 이것이 곧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니라. 그분의 명령들은 무겁지 아니하니라.”(요일 5:2~3)

“또 사랑은 이것이니 곧 우리가 그분의 명령대로 걷는 것이요, 명령은 이것이니 곧 너희가 처음부터 들은 대로 그 안에서 걷는 것이라.”(요이 1:6)

 

자유롭게 드리라.

물론 헌금사역은 신중하고 철저한 원칙이 있어야 합니다. 헌금에 대한 사역에서 많은 사람들이 올무에 걸려 넘어지고 상처입고 심지어는 신앙생활과 교회생활에서 떠나게 됩니다. 이렇게 된다면 하나님께서 얼마나 상심하시겠습니까?

“너희 중에 어떤 사람이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너그러이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그것을 그에게 주시리라.”(약 1:5)

하나님은 모든 사람들에게 자유로이 주십니다. 모든 좋은 선물(은사)과 완전한 선물(은사)을 그분에게서 옵니다.

“모든 좋은 선물과 모든 완전한 선물은 위에서 빛들의 [아버지]로부터 내려오거니와 그분께는 변함도 없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느니라.”(약 1:17)

그분께서는 변함도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다니 얼마나 신실하십니까? 우리가 그분께서 하시는 것이 정말 감사하다면 우리는 인색하게 되거나 이기적으로 되는 것을 대처하겠습니까?

 

“또한 형제들아, 마케도니아의 교회들에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를 우리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고난의 큰 시련 속에서도 그들의 넘치는 기쁨과 극심한 가난이 그들로 하여금 풍성하고 너그러운 선물을 넘치도록 하게 하였도다.”(고후 8:1~2)

마케도니아의 교회에게 주심은 자유의 풍성이 넘쳤습니다. 고난 받고 가난한 것이 하나님의 채울 수 있지만 우리는 그분께서 가지신 그분의 풍성을 가져다 쓸 줄 알아야합니다.

“권면하는 자는 권면하는 일로 섬기며, 주는 자는 단순함으로 그 일을 하고, 다스리는 자는 부지런함으로, 긍휼을 베푸는 자는 즐거움으로 할 것이니라.”(롬 12:8)

 

“다만 내가 말하려는 바는 이것이니 곧 인색하게 뿌리는 자는 또한 인색하게 거둘 것이요, 풍성하게 뿌리는 자는 또한 풍성하게 거두리라는 것이라.”(고후 9:6)

우리는 우리의 씨를 뿌리는 비율에 따라 거둔다는 것입니다. 밭이나 들에 씨를 뿌리는 것처럼 우리가 적게 씨를 뿌린다면 적게 거둘 것입니다. 많이 거두기를 원한다면 많이 뿌려야 합니다. 우리가 무엇을 거두기를 원합니까? 영원한 생명입니다(갈 6:8)!! 풍성한 수확 있는 사람입니까? 아니면 적게 거두는 사람입니까? 누가 더 풍성한 수확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우리는 적게 하는 것과 인색하게 하는 드림으로 수확할 수 있습니까? 여러분이 인색하게 씨를 뿌리고 있습니까? 아니면 풍성하게 뿌리고 있습니까?

 

기쁨으로 드리라.

“저마다 자기 마음속에 정한 대로 낼 것이요, 마지못해 하거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거이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고후 9:7)

앞 구절에서는 많이 헌금을 드리면 많이 거두고, 인색하면 인색하게 거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만 바로 뒤 구절에서는 마음속에서 정한대로 드릴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기꺼이 드리는 사람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필요에 따르거나 억지로 드리지 마십시오. 드리는 것은 준비된 마음으로 기꺼이 해야만 합니다(고후 8:12). 며칠 전 어떤 기독교의 한 교회에서 성도들 개인당 10만원씩을 헌금하라는 말을 했다고 합니다. 이런 교회는 무슨 배짱을 가지고 그런 것을 요구했을까를 생각해 봤습니다. 그러면서 고린도후서 9:6절의 말씀을 적용시키면 많은 사람들이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뒤에 있는 구절을 읽으면 하나님께서 사랑하시지 않고 물질을 허비하는 것을 유도한다는 것입니다. 기독교회가 거의 이렇게 성경을 왜곡시키고 있습니다. 우리는 드린 것을 후회하지 않을 정도, 아까워하지 않을 정도로 헌금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드린 헌금으로 잘못 쓰이거나 개인의 호주머니로 들어가는 것이라면 하나님의 뜻에 맞지 않는 교회가 되는 것이지요. 어떤 분은 십일조와 감사헌금을 빚을 내면서까지 했지만 생활은 결코 나아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런 교회를 다니시는 분은 얼마나 불쌍한 일인지요? 그런 교회는 주님의 교회를 세우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교회를 망치는 것이요, 무속교회가 된 것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자신을 한탄하거나 안타깝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자는 많은 돈을 내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은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교회는 진정한 하나님께 기름부음 받은 이의 대언이 필요합니다. 성경은 마음속에 정하고 드리기를 기뻐하는 자를 사랑하신다는 말입니다. 그런 것이 아니고 많이 드려야 기뻐하시는 하나님이라고 가르치는 것은 사탄의 지배를 받는 교회입니다. 우리가 소망하는 모든 것에 관해 생각하는 것은 우리가 그 돈으로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어떤 사람들이 우리가 드리는 문제에 있어서 기뻐하거나 난처하게 하기 때문에 드리지는 마십시오. 그 대신 드리는 특권을 생각하십시오.

 

“내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보여 주되 곧 너희가 마땅히 이렇게 수고하여 약한 자들을 지원하고 또 [주]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 즉,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더 복되도다, 하신 말씀을 기억하게 하였느니라.”(행 20:35)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 더 복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이것을 교회 목회자들은 헌금을 해야 복을 받게 된다고 가르치는 교회도 보았습니다. 왜 하나님은 우리가 그 사역을 이루도록 하기위해서 드리도록 그분의 사역을 계획하셨을까요? 그분께서는 우리의 은사들이 없이는 계획들을 행하실 수 없으실까요? 그것이 사실입니다. 그런데 왜 이런 방식으로 그분의 계획을 하실까요? 그분께서 선물(복)들을 필요하시지 않으셨지만 우리가 드릴 필요가 있어야 합니다. 드림은 우리의 선물 곧 복과 또 은사를 위한 것입니다. 진정한 기쁨과 행복은 우리가 다른 사람들을 시중들 때만 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희가 나의 고난에 함께 참여하였으니 잘하였도다. 빌립보 사람들아, 이제 너희도 알거니와 복음의 초기에 내가 마케도니아를 떠날 때에 주고받는 일로 나와 나눈 교회가 너희 외에는 없었느니라. 심지어 데살로니가에 있을 때에도 너희가 한 번 그리고 또 다시 내 필요를 위해 보내었느니라. 나는 선물을 바라지 아니하며 오직 너희 회계장부에 넘치게 될 열매를 바라노라. 오직 내게는 모든 것이 있고 또 풍부하니라. 에바브로디도 편에 너희가 보낸 것들을 받았으므로 내가 풍족한데 이것은 달콤한 냄새의 향기요 받으실 만한 희생물이며 [하나님]을 매우 기쁘게 한 것이니라.”(빌 4:14~18)

 

우리는 우리가 행하는 것에 의해서만 어떠한 것을 얻습니다. 그 이유는 많은 사람들이 교회생활을 아주 조금 얻는다는 것은 아주 조금 드린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섬김에 있어 진정으로 축복을 받는 것은 우리가 우리 자신을 드려야 합니다(막 10:29~30, 눅 6:38, 잠 11:24~25, 말 3:10).

 

 

VI. 희생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많은 희생을 치루셨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자신의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것은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는 멸망하지 않고 영존하는 생명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 3:16)

아버지께서 우리가 구원을 받을 수 있도록 죽으시기 위해서 자신의 독생자를 보내셨습니다. 그분은 그분께서 개인적으로 가장 비싼 값을 치루시고 가장 좋은 것을 주셨습니다. 희생이란 본래 댓가없이 자신의 것을 다른 사람에게 주거나 어떤 것을 행하는 것입니다. 그런데요 여기서 주님은 우리를 위해 독생자인 자신의 아들을 주시고요, 또 영생을 받을 수 있는 권리까지 주셨다는 사실입니다.

 

“사람이 자기 친구들을 위해 자기 생명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요 15:13)

예수께서는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들을 대신하여 줄 수 있는 가장 큰 개인적인 희생을 해 주셨습니다. 그분은 하늘의 기쁨을 그만두시고 또 우리를 위해 죽으시려고 땅으로 오셨습니다.

“너희 안에 이 생각을 품을지니 곧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도 있던 생각이라. 그분은 [하나님]의 형체로 계시므로 [하나님]과 동등함을 강탈로 여기지 아니하셨으나 스스로 무명한 자가 되사 자기 위에 종의 형체를 취하시고 사람의 모습이 되셨으며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순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의 죽음이라.”(빌 2:5~8)

 

하나님은 그분께 적은 가치까지라도 우리에게 주시려고 자신을 위한 가장 좋은 소유도 갖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은 큰 고통과 희생의 값을 치르더라도 그분께서 가지신 가장 좋은 것을 주셨습니다(롬 6:23, 딤전:2:6, 갈 1:4, 2:20, 딛 2:14, 롬 8:23).

 

우리 또한 희생하여야 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그분께서 부요하셨으나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자신의 가난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고후 8:9)

예수의 희생은 희생적으로 주도록 하는 우리를 가르치는 한 본보기입니다(벧전 2:21). 주님은 본래 부유하시고 풍성하셨습니다. 하지만 그분께서는 그 부유하심을 내려놓고 스스로 가난함을 택하셔서 우리에게 나누어 주셨습니다. 그 이유는 바로 우리의 영생과 우리를 부유케 하시려고 취하신 것입니다.

“또한 형제들아, 마케도니아의 교회들에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를 우리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고난의 큰 시련 속에서도 그들의 넘치는 기쁨과 극심한 가난이 그들로 하여금 풍성하고 너그러운 선물을 넘치도록 하게 하였도다. 내가 증언하노니 그들이 힘닿는 데까지 하였을 뿐 아니라 참으로 힘에 넘치도록 자원하여 하였고 우리가 이 선물을 받아 줄 것과 또 성도들을 섬기는 교제의 일을 맡아 줄 것을 우리에게 매우 간절히 구하였노라.”(고후 8:1~4)

마케도니아사람들은 비싼 값을 치루더라도 자유롭게 드렸습니다. 그들의 선물은 마케도니아성도들이나 바울의 동역자들에게 참된 가치였습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한 본보기입니다. 만일 우리가 자유롭게 헌금을 하지 않거나 요구를 통해 어쩔 수 없이 부득이함으로 할 때 받는 교회나 개인이 부유해지지 않을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에서 실수하는 문제들 중에 가장 고려하지 않는 문제입니다.

 

“만군의 {주}가 말하노라. 너희가 또한 이르기를, 보라, 그 일이 얼마나 피곤한가! 하며 그 일을 향하여 코웃음을 치고 찢긴 것과 다리 저는 것과 병든 것을 가져왔느니라. {주}가 말하노라. 너희가 이같이 헌물을 가져왔으니 내가 너희 손에서 이것을 받겠느냐? 그러나 속이는 자 곧 자기 양 떼 중에 수컷이 있는데도 서원한 뒤에 부패한 것으로 [주]에게 희생물을 드리는 자는 저주를 받으리라. 나는 위대한 [왕]이며 내 이름은 이교도들 가운데서 두려운 것이니라. 만군의 {주}가 말하노라.”(말 1:13~14)

구약성경의 희생은 우리가 먼저 우리 자신의 기쁨을 만족한 후에 우리에게 별로 가치가 없는 나머지를 드리는 것을 원하시지 않으신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가장 좋은 것을 드리기 원하십니다. 사실 액수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의 문제입니다. 그리고 헌금사역은 교회에 위탁하는 것이지 교회나 목사와 같은 지도자가 결코 하나님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성전 보고의 맞은편에 앉으사 사람들이 어떻게 보고에 돈을 넣는지 보실 때에 여러 부유한 자들은 많이 넣는데 어떤 가난한 과부는 와서 이 렙돈 곧 일 고드란트를 넣으니라. 그분께서 자기 제자들을 불러 그들에게 이르시되,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가난한 과부가 보고에 넣은 모든 사람보다 더 많이 넣었도다. 그들은 다 풍족한 가운데서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궁핍한 가운데서 자기가 가진 모든 것 즉 자기의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하시니라.”(막 12:41~44)

한 과부는 비교적 작은 액수가 있었지만 그녀가 가지고 있는 것 모두를 드려서 칭찬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양이나 액수가 아니라 우리의 희생 정도로 감동을 하십니다. 복음은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을 드리도록 요구하는 것(행 5:4)이 아니라 희생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개신교회에서 잘못된 헌금사역을 가르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신약성경에서도 헌금사역에 대해 말씀하실 때 많이 드려야 풍성하게 거둔다는 것을 개신교는 잘못 가르치고 있는 교회들이 많습니다.

“다만 내가 말하려는 바는 이것이니 곧 인색하게 뿌리는 자는 또한 인색하게 거둘 것이요, 풍성하게 뿌리는 자는 또한 풍성하게 거두리라는 것이라.”(고후 9:6)

양(量)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드리는 마음을 보시는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날 교파들의 가르치는 헌금사역에는 결코 올바르지 않는 것을 보게 됩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참된 가치의 것을 희생하고 있다는 것에 효과를 느끼도록 충분히 드려야 합니다. 이것들은 여러분이 갖기를 좋아할 것들입니까? 여러분이 그것에 여유를 가질 수 있는 것인가요? 여러분이 교회에 돈을 준 것이 사실이 아니었나요? 하나님께 우리의 드림이 그분께서 우리를 위해 희생하심으로서 그분을 위한 희생을 보여주나요(빌 4:18, 롬 12:1, 창 4:4, 삼상 24:24, 빌 2:5~8)?

 

VII. 우선순위와 전폭적인 헌신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삶 가운데

우리의 가장 높은 우선순위가 되어야 한다.

“너희 자신을 위해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서는 좀이 먹고 녹이 슬며 거기서는 도둑이 뚫고 훔치느니라. 오직 너희 자신을 위해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서는 좀이 먹지도 녹이 슬지도 않으며 거기서는 도둑이 뚫지도 훔치지도 못하느니라. 너희 보물이 있는 곳에, 거기에 너희 마음도 있으리라. 몸의 등불은 눈이니 그러므로 네 눈이 단일하면 네 온 몸이 빛으로 가득하되 네 눈이 악하면 네 온 몸이 어둠으로 가득하리라. 그런즉 네 안에 있는 빛이 어둡게 되면 그 어둠이 얼마나 크겠느냐! 아무도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나니 이는 그가 이 주인을 미워하고 저 주인을 사랑하거나 혹은 이 주인을 떠받들고 저 주인을 업신여길 것이기 때문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맘몬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마 6:19~24)

“오직 너희는 첫째로 [하나님]의 왕국과 그분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3)

하나님께 하는 헌신은 물질적인 것들을 향한 우리의 태도에 영향을 미치게 합니다. 우리는 땅 위에서가 하늘에 보물을 쌓아야 합니다. 먼저 하나님의 왕국과 그분의 의를 찾으십시오. 땅 위에서의 필요들도 찾으십시오. 소중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계시면 계실수록 덜 중요한 물질적인 것들을 받게 될 것입니다.

 

성경은 자주 물질적인 것들이 몹시 부패적 영향을 받게 될 수 있다고 우리를 경고합니다(딤전 6:6~10, 17:19, 눅 12:15~21, 신 8:11~18, 마 19:23~24, 요일 2:15~29). 나는 개인적으로 이 말에 동의합니다. 물질적인 것들을 가지면 가질수록 훨씬 더 많이 갖기 위해 부패와 탐욕의 길로 가는 것입니다. 평균적인 오늘날의 한국인들은 물질(만능)주의적입니다. 그들은 땅에 속한 보물의 소유자들입니다. 우리가 사는 방식은 하나님을 기뻐하시기를 우리의 갈망에 의한 것보다 오히려 물질적인 것들을 위한 우리의 갈망으로 결정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우리가 줄 것을 결정했을 때 이 문제들에 대해 곰곰이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전형적인 한국 사람들처럼 우리가 물질적인 것에 너무 관련되어 있어 우리의 갈망이 우리가 드려야 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합니까? 우리 예전의 한국은 인심이 좋고, 너그럽고, 자기는 누리지 못해도 남을 배려할 줄 아는 민족이라는 소리를 많이 들어 왔지만 경제적으로 발전해오면서 한국인들이 서양의 패턴을 닮아가는 것 같습니다. 한국도 이제 개인주의 적이고 서로를 밀어내 혼자만이 가지려는 경향이 농후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차선을 취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생명에 있어서 다른 것들은 우리에게 중요한 것들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야 할 것들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자기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어떤 사람이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지니라. 누구든지 자기 생명을 구원하려 하는 자는 그것을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로 인해 자기 생명을 잃으려 하는 자는 그것을 찾으리라. 사람이 만일 온 세상을 얻고도 자기 혼을 잃으면 그에게 무슨 유익이 있느냐? 사람이 무엇을 주어 자기 혼을 대신하게 하겠느냐? 사람의 [아들]이 자기 [아버지]의 영광 중에 자기 천사들과 함께 올 것이요, 그때에 그가 각 사람에게 그의 행위대로 갚아 주리라.”(마 16:24~27)

우리는 예수를 따르는 데 있어서 자신을 부인해야 합니다. 우리는 그분을 섬기는 데 있어서 우리의 생명을 드려야 합니다. 물질적인 이익과 육체적인 기쁨을 위해서 우리의 혼을 잃는 것은 아주 큰 대가를 지불할 것입니다. 오래 전 제 교제권 안에서 저의 전적인 멘토이셨던 형제님이 이 문제에 대해 몇 명의 형제들에게 가르쳤습니다. ‘만일 A형제가 물질적으로 고통을 받는다면 네가 여유롭게 쓸 돈이 있으면 그냥 A형제에게 주라. 여기엔 어떤 조건도 없어야 하고 되돌려 받으려는 생각을 하지 말라. 받으려고 생각하고서 돈을 넘겨준다면 그 A형제와 멀어질 것이다. 그리고 아마도 영적인 것까지도 노선을 달리하거나 분파의 길을 갈 것이다. 또 돈을 A형제에게 준 것을 다른 형제들에게 절대로 말하지 말아야 한다. 그 또한 같은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이다. 이것이 드림의 원칙이다. 교회에 대한 헌금사역도 마찬가지다.’라고 가르쳤습니다. 난 이 말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그들은 우리가 바라던 것과 달리 이 일을 행하되 먼저 자신을 [주]께 드리고 또 [하나님]의 뜻에 따라 우리에게 주었도다.”(고후 8:5)

마케도니아사람들은 그들이 먼저 주님께 그들 자신들을 드렸기 때문에 아낌없이 드렸습니다(갈 2:20).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예배니라.”(롬 12:1)

많은 사람들이 드림에 있어서 아낌없이 드리지 않는 한 가지 이유는 하나님의 사역에 대한 헌신의 깊이가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것이 정말 우리에게 소중한 것이라면 우리는 그것을 희생시켜 기꺼운 마음으로 드리는 것이 교회의 헌금사역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려고 하나님께 우리의 삶을 드릴 때 우리의 생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되는 것이요, 우리는 하나님을 섬기는 것에 우리의 것들을 기쁘게 드릴 것입니다.

 

그리고 나는 교회 특히 기독교에 말하려는 것이 있는 데 성도들이 헌금하는 것은 그들의 생명을 드리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헌금을 사용하는 데는 분명하고 투명해야 합니다. 대부분의 교회에서는 투명한 헌금사역을 하지 않기 때문에 많은 문제들을 낳습니다. 이것이 교회에서 양 무리들을 잃어버리고 교회가 깨지고 심지어 분파가 되어 자신들의 중심으로 정통이니 합당하니 라는 이론을 내세워 성도들을 사탄에게 내어줍니다. 개신교회의 분열은 대부분 교리의 문제가 헌금사역에 있는 것입니다.

 

당신의 우선순위들을 고려하라.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여러분의 최우선순위라면 여러분이 여러분의 물질(돈)을 쓰는 방법을 보여야 합니다. 우리 각자가 우리의 우선순위에 비춰서 우리의 재정을 공부해야 합니다. 우리가 우리의 재정을 공부하지 않는다면 교회의 헌금사역과 가정의 헌금사역에 커다란 문제를 일으키게 될 것입니다. 이 공부는 비용에 대한 생각입니다. 우리가 가장 중요한 것을 위해 지혜롭게 쓰도록 하기 위해서 우리가 쓰는 것을 공부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우선적으로 사용해야하는 대표적인 것을 기록하는 것이 우리의 헌금사역에 커다란 도움이 될 것입니다.

 

1. 교회후원과 기부

2. 집을 위해 쓸 것- 대출금, 렌트 비용, 공과금 등

3. 의복

4. 세금

5. 식량- 쌀, 부식, 각종 기구

6. 차 유지비 및 교통비

7. 문화이용- 스포츠, TV나 인터넷, 휴가비, 영화 등

8. 기타비용

 

여러분이 한 주간이나 한 달에 쓸 비용을 한 번 적어 보십시오. 필요를 공급하는 것은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직무부분입니다(딤전 5:8, 6:8, 창 3:17~19).

“우리가 너희와 함께 있었을 때에도 너희에게 이같이 명령하여 누구든지 일하려 하지 아니하거든 먹지도 말라고 하였노라. 우리가 들으니 너희 가운데 질서 없이 걸으며 전혀 일하지 아니하고 참견하기만 좋아하는 자들이 더러 있다 하는도다. 이제 그러한 자들에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힘입어 우리가 명령하며 권면하노니 그들은 조용히 일하고 자기 빵을 먹을지니라.(살후 3:10~12)

사치(품)이나 호화스러운 것들은 그 자체가 죄가 아닐지는 모르지만 사치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아니요, 우리 자신을 기쁘게 하려고 그것들을 사는 것입니다. 사치나 호화로움은 한국이 높은 순위에 있는 듯합니다. 브랜드나 고급상품 등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고, 심지어는 이런 것들을 갖기 위해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어떤 사람은 ‘내가 더 드리려고 해도 난 지불할 돈이 너무 많기 때문에 할 수 없다.’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무엇을 위한 여러분의 돈입니까? 흔히 우리는 다른 사람이 가지고 있는 것을 갖기 원해서 교회 재정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생각하지 않고 우리 자신을 기쁘게 하려고 구입합니다. 그런 후에 우리는 우리가 “지불해야 할 돈이 너무 많이 가지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부자가 된 것처럼 자기의 기쁨만을 더 추구하기 때문에 드리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더 주의 깊게 쓸 수 있도록 어떠한 돈을 빼놓을 수 있습니까? 여러분이 사치와 오락에 덜 쓰려고 한다면 더 효율적인 것에 돈을 지불하고 또 교회에 드릴 용의가 있나요? 여러분이 교회에 드리고 있는 것보다 유흥과 오락에 더 쓰고 있다면 하나님께서 진정 여러분의 생명을 우선적으로 생각하실까요?

“배신하며 고집이 세며 높은 마음을 품으며 [하나님]을 사랑하기보다는 쾌락들을 더 사랑하며”(딤후 3:4)

우리의 재정에 대한 연구에서 우리는 우리의 수입에 대해 평가할 수 있고 우리의 수입에 비추어 낭비되고 있는 것을 삭감하거나 지불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것이 드리는 것에 대한 목적을 갖고 있는 우리를 도울 것입니다. 여러분의 드림이 합당한 우선순위와 여러분의 생활 가운데서 헌신을 반사합니까?

 

 

결론

교회를 후원하기 위한 돈을 드리는 것 외에 하나님을 섬김에 있어서 우리 자신을 드리는 데 많은 방법이 있습니다. 이 연구는 그리스도인이 해야 하는 전체적인 드림에 대한 한 방면을 검토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들의 드림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지를 알아 그들을 돕도록 하려고 합니다.

 

1. 나는 하나님의 사역을 후원하기 위해 얼마나 희생을 하고 있는가? 내가 가지고 있는 것에 비교하여 진정으로 얼마나 많은 것을 드리고 있는가?

 

2. 나는 교회의 사역을 후원하는 부담에 대해 공평한 분배를 수행하고 있는가? 아니면 내가 더 드릴 수 있을 때에 다른 사람들에게 떠넘기고 있는가?

 

3. 내가 할 수 있는 한 많이 드리려고 하고 있는가? 나와 내 가족을 기쁘게 하려고 휴식을 보내고 주님께 대해서는 그럭저럭 지내고 있는가?

 

4. 나의 예산에서 어떻게 다른 항목들과 비교하여 나의 교회에 헌금하는가?

 나의 드림은 교회와 하나님께 대한 섬김이 내에 대한 삶 가운데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가?

 

5. 만일 다른 사람들이 나의 필요를 채워주고 있었고, 내가 복음을 듣는 것이 필요한 사람을 잃어버리고, 내가 필요 가운데 있는 복음전파자나 그리스도인이었다면 내가 그들에게 주기를 원하는가?

 

6. 예수께서 내 입장 가운데 있었다면 내가 예수께서 드리실 만큼 드리고 있는가? 그분께서 나의 수입과 가정의 임무를 가졌다면 그분께서 더 드리실까(벧전 2:21)?

 

7. 만일 내가 예수님의 구멍 뚫린 손 안으로 개인적으로 선물을 넣어야 한다면 나는 매 주일에 얼마나 드릴까요?

내가 지금 하는 것보다 더 드릴까요? 나는 지금 드리는 것에 대해 부끄러움을 느끼나요?

내가 지금 드리고 있는 것을 그분은 알고 계시고 그것을 그분은 판단하신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은 당신의 드림으로 기뻐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