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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치, 교제, 섬김, 그리고 교회모임에 참여하는 것(II)

Hernhut 2012. 9. 22. 18:41

 

 

일치, 교제, 섬김, 그리고 교회모임에 참여하는 것

성임현헤른훗형제씀

 

II. 섬김에 대한 사역에서의

협력과 교제에 관한 복음적인 가르침

 

 

여러 모임에서 연합에 대한 사람의 영이나 사고방식은 함께 사역을 하는 것, 사역량을 나누는 것, 서로 섬기는 것이 지체들 가운데서 나타나야 합니다.

 

 

A. 지체들은 사역 가운데서 교제를 함으로 나누기를 갈망해야 함

여러 교회모임은 지체들이 사역 안에 참여하는 것에 헌신함으로 협력하려고 하는 사람의 영이 필요합니다. 이것은 회중들 밖에서 행하는 사역을 포함하지만 교회 사역에 참여할 대부분의 기회들은 직간접적으로 교회의 모임을 포함할 것입니다.

 

“그들이 흔들리지 아니하며 사도들의 가르침과 교제 안에 머물고 빵을 떼며 기도하더라.”(행 2:42)

첫 교회집회의 지체들은 교제 가운데서 변함없이 계속 머물렀습니다. 머물며 나누는 것을 계속했고, 함께 참여였으며, 또 주의 만찬을 하였으며, 단란함 가운데 서로가 귀찮아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언제 어떻게 실행되었을까요? 사도들의 가르침을 연구하고, 주의 만찬, 기도와 같은 예배하는 가운데서 실행되었습니다.

 

그들은 “함께 있었고” 필요가 있는 지체들을 도왔습니다(행 2:44~45). 그들은 성전 안에서 합심하여 날마다 계속했습니다(행 2:46). 그들의 연합과 교제는 교회의 사역 특히 예배사역을 함께 행하도록 전달되었습니다.

 

“사도들이 풀려나매 자기 동료들에게 가서 수제사장들과 장로들이 자기들에게 말한 것을 다 전하니”(행 4:23)

반대가 있을 때 사도들은 “그들 자신의 동역자들”을 만나서(ASV), 기도했습니다(행 4:24, 31). 결과적으로 무리는 지체들의 필요를 주고(행 4:32~35),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사역을 함께 했습니다(행 4:31).

 

기록하기를 무리는 소속감과 함께 사역하는 것을 가졌습니다. 그들은 무리가 “그들 자신”이었다는 것을 인정했습니다. 또 그들은 그 무리와 함께 사역을 하고 그 무리와 함께 있기를 갈망했습니다. 그들은 협력의 영을 가지고 있었고, 함께 만나려고 그들의 헌신 안에서 그 자체가 표현되었습니다.

 

“사울이 예루살렘에 가서 제자들과 합류하려 하였으나 그들이 다 그를 두려워하며 그가 제자 된 것을 믿지 아니하되 바나바는 그를 데리고 사도들에게 가서 그가 길에서 [주]를 본 것과 또 그분께서 그에게 말씀하신 것과 다마스커스에서 그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담대히 선포한 것을 그들에게 밝히 말하니라. 사울이 제자들과 함께 있으면서 예루살렘에서 드나들며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담대히 말하고 그리스말 하는 사람들을 논박하니라. 그러나 그들이 그를 죽이려 하매”(행 9:26~29)

사울이 예루살렘으로 갔을 때 그는 또한 그 무리의 일부가 되기 원했습니다. 그의 배후가 확인되고 믿음 있는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알게 된 후 교회는 그를 받아들였습니다. 그는 가고 오는 것을 “그들과 함께” 있었고, 설교사역을 참여하는 것도 “그들과 함께”했습니다.

 

이 사람들은 그들이 무리와 “함께” 되고 무리의 일부가 될 필요가 있었다는 것을 이해했습니다. 거기에는 행하는 사역이 있었고, 지체들은 그 사역에 참여하기를 갈망해야 합니다. 무리의 일부가 되도록 그들을 요구했고, 무리와 “함께” 있기를 요구했습니다.

 

“그분으로부터 온 몸이 각 부분의 분량 안에서의 효력 있는 일에 따라 모든 마디가 공급하는 것에 의해 꼭 맞게 함께 결합되고 들어차서 몸을 자라게 하여 사랑 안에서 스스로를 세우느니라.”(엡 4:16)

이 본은 모든 부분에 적용되어야 합니다. 모든 부분들은 몸을 건축하는 사역을 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 각자가 몸의 “부분”(지체)이 되어야 하고 그런 후에 몸이 자라고 건축될 수 있음으로써 그들의 “나누는 것(교제)” 실행하고 “사역하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이와 같이 우리도 여럿이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요 각 사람이 서로 지체이니라.”(롬 12:5)

우리는 다른 것 중의 한 지체들입니다. 이는 우리는 합병이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이 가장 좋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합병은 어떤 성질이 다른 어떤 것끼리 다름에도 불구하고 연결되고 조절되는 것을 말합니다. 문맥(롬 12:4~8)은 우리가 부지런히 사역을 하기 위해 우리의 능력을 사용해야 함을 보여줍니다. 육체적인 몸 안에 있는 우리는 협력을 위한 필요를 이해합니다. 모든 지체들은 사역의 나누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몸이 고통을 받고 어떤 효능도 없습니다.

 

교회 안에서 우리는 많은 사역이 교회가 모일 때 실행하고 있는 것을 반복적으로 볼 수 있습니다.

 

믿음 있는 그리스도인들은 지방교회 제자들과 “같이”합니다. 그들은 제자들과 “함께” 있고, 그들은 제자들과 함께 사역합니다. 교회모임과 구역모임에 출석하지 않는 지체들은 사역 안에서 절대 포함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들은 전혀 하나님의 본을 따르지 않는 것입니다.

 

 

B. 지체들은 서로 섬기기를 갈망해야 함

“형제들아, 너희가 부르심을 받아 자유함에 이르렀으나 오직 자유를 육신의 기회로 쓰지 말고 사랑으로 서로를 섬기라.”(갈 5:13)

사랑을 통해 우리는 서로 섬깁니다. 우리 모두는 도울 수 있고, 격려할 수 있고, 다른 그리스도인들을 이롭게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하기를 원해야 합니다.

 

“너희는 서로 남의 짐들을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갈 6:2)

그리스도의 법은 서로의 부담을 짊어지라고 우리를 가르칩니다. 다른 지체들은 우리가 함께 그들을 도울 수 있는 일이나 어려움, 고통을 같이 짊어집니다. 우리는 그렇게 하도록 헌신해야 합니다. 이런 일들은 바이러스처럼 번져나가야 합니다. 오늘날의 기독교회는 너무 이기적인 쪽으로 편향되어 나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도록 하기 위해 교회에 참여하기보다는 자신의 안위와 평강과 유익을 위해서 참여하는 경향이 빈번합니다.

 

“각 사람이 선물을 받은 대로 [하나님]의 여러 가지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로서 서로 그 선물을 써서 섬기라.”(벧전 4:10)

우리는 모두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은사나 축복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 복과 은사의 청지기들입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사역에 사용하도록 우리에게 은사와 축복을 주셨습니다. 특별히 우리는 서로 섬기는 사역에 그것들을 사용해야 합니다. 섬기는 사역에 자신의 능력을 사용할 기회를 갖지 않고 있는 지체들은 하나님의 축복의 좋은 청지기가 아닙니다.

 

“이것은 성도들을 완전하게 하고 섬기는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게 하려 하심이라.”(엡 4:12)

교회는 섬기는 사역을 이루기 위해 장비하는 지체들이 건축되어서(엡 4:11), 교회가 변화되고 더 활력화 되고 건축될 수 있습니다(엡 4:16).

 

지방교회는 지체들이 주님을 위해 연구, 예배, 그리고 사역을 할 기회를 분배하려고 존재합니다. 지체들이 섬기는 사역을 이루기 원할 때로부터 우리는 그 사역가운데 우리 자신이 포함되고 지방교회의 일부가 되기를 기대함으로 따릅니다. 아무것도 우리가 논의하지 않는 것은 그 주의 어떤 각별한 날로 제한된 어떤 방식이나 특정한 모임이나 많은 모임들이 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원칙들은 교회가 그 주간에 분배하여 어떠한 날, 어떤 모임에 적용되도록 사역을 할 기회를 지체들에게 줍니다. 마 25:31~46절을 읽어 주십시오.

 

 

 

C. 참여하는 것에 대한 적용

1. 모임은 교회가 지체들에게 섬기는 것과 사역을 나누고 참여하는 것에 대한 그들의 의무를 수행하도록 공급하는 중요한 기회들 중 하나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그리스도인들이 예배하는 것과 사역하는 교회 모임에 함께 있었던 것을 반복적으로 보는 이유입니다.

 

* 모임 안에 있는 우리는 이미 말을 한 것처럼 배우는 것 안에서 참여하고 나누는 것을 할 수 있고, 또 서로 가르치는 것과 책망을 할 수 있습니다.

 

* 우리는 하나님을 찬양함으로 교제를 갖습니다.

 

* 모임 가운데서 우리가 다른 사역을 배우는 것을 선포할 수 있습니다. “선포”란 무엇입니까? 우리가 왜 선포를 해야 합니까? 선포는 섬길 기회들에 관한 정보와 지식을 지체들에게 공급합니다. 선포는 교회에 일어나고 있는 것들, 다른 지체들의 생활들을 우리에게 말합니다. 그렇게 함으로 서로 기도할 수 있고, 서로 섬길 수 있습니다. 이것이 섬기도록 우리를 장비시키는 교회입니다.

 

특별하게 우리는 다른 지체들의 필요 곧 질병, 병원에 입원하는 것, 걱정거리, 기도가 필요한 문제, 재정적 필요, 침례를 받는 것, 죄를 고백하는 것, 등을 배웁니다. 우리는 교회가 분배하고 있는 심방하는 일, 매일의 사역, 복음집회 등을 다른 여러 사역을 할 기회들을 배웁니다.

 

 

* 우리의 집회의 일들이나 집회에 이어서 하는 펼쳐지는 말들은

흔히 섬기는 방법을 제시합니다.

 

가끔 선포가 제외되는 모임에서 우리는 섬기는 기회에 대한 다른 방법들을 배우기도 합니다. 사람들이 침례를 받는 것, 죄를 고백하는 것이 있거나 기도를 요청하면 우리는 그들을 격려하고 그들을 위해서 기도 합니다.

 

봉사하기 전후 사람들과 함께 하는 사담(私談)에서 우리는 기회를 잡을 수 있습니다. 말을 가로채서 너무 급하게 말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의 친한 친구들이나 가족, 그리고 교회 지체에게 말할 시간을 주십시오. 그들이 말하지 못하고 그냥 서 있게 하지 마십시오. 주변을 떠나지 말고, 다른 사람들과 말을 하십시오. 흥미와 관심을 표현하십시오. 그들의 필요를 알려고 하십시오. 그리고 섬기기 위한 방법을 찾으십시오. 찾아오는 사람들을 알려고 하십시오. 그들을 격려하기 위한 방법을 알려고 하십시오. 다른 지체들과 그들의 가족이 잘 살아가고 있는지를 물으십시오. 또 섬길 수 있는 방법을 찾으십시오. 교회 모임에 이어 잠시 동안은 사람들이 사적인 어떤 성경적인 주제를 토론하거나 어떤 성경적인 주제를 연구하기 위해 사적인 모임을 발표할 때입니다. 흔히 우리는 교회 집회 직전, 직후에 사적인 연구 시간이나 소그룹 연구 시간에 발표합니다.

 

사역을 하기 원하는 사람들은 무슨 사역을 해야 할지를 알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우리가 함께 특히 집회 가운데 있을 때 이 소식, 지식, 등을 배웁니다. 요약하면 집회는 교회가 서로 분발시켜 지체들을 장비케 하고 교회를 건축하는 주된 방법 중 하나입니다. 사역 안에서 나눌 것을 하나님에 의해 명령된 이후로 서로 섬김 안에서 교제하는 지체들은 교회가 모임이 열리는 언제든지 출석하여 그들의 필요를 찾아 그 지체들을 인도해야 합니다.

 

2. 지체들이 교회모임에 출석할 기회를 소홀히 할 때 그들은 사역에서 협력하거나 나누지 못할 것입니다. 습관적으로 어떤 사람들은 늦게 와서 선포를 놓치기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 일찍 교회모임에서 나가기 때문에 침례를 받거나 죄를 고백하는 것을 함께 하지 못합니다. 그들은 교회모임 전후에 다른 지체들과 교회 모임에 방문한 사람을 알게 될 시간을 갖지 못합니다. 결과적으로 그들은 사역에 참여하게 되는 방법을 알지 못하고 사역을 할 방법을 찾지 않습니다. 이것이 부지런한 그리스도인들이 가져야 할 것을 사역에서 협력하고 나누는 영입니까? 이것이 다른 그리스도인들을 섬기는 갈망을 나타냅니까? 이와 같은 사람들은 부지런하게 사역에 참여할 기회를 찾고 있습니까?

 

그리고 모든 봉사를 놓치는 사람들은 어떤가요? 섬길 기회를 협력하고 찾고는 있나요? 그들은 가르칠 기회, 성경연구 소그룹모임과 각 집회에서 주어진 다른 사람들을 분발시키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을 놓치고 있습니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의 필요와 섬길 다른 기회들에 대해 주어진 정보를 놓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진정 봉사하기 원한다면 왜 이 같은 기회를 등한시하나요? 섬기는 것은 아름다운 것이요, 행복해지는 비결입니다.

 

그럼 집회 밖에서 할 수 있는 어떤 섬김의 사역이 있습니다. 그 간단한 사실이 있는데 집회를 규칙적으로 놓치는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무슨 사역을 해야 하는지 모르거나 다른 사람들이 행하고 있는지를 모릅니다. 만일 그들이 오는 것조차도 흥미가 없고 전적으로 헌신하지 않는다면 그들이 집회 밖에서 섬기는 사역을 전적으로 하게 될 기회는 무엇입니까? 얼마나 여러분은 많은 사람들이 습관적으로 집회에 오는 것을 등한시 하는 사람을 알고 있습니까? 또 사역에 깊게 관여하는지를 알고 있습니까?

 

3. 규칙적으로 교회모임에 출석하지 않는 사람들은 “무리의 일부를 느끼지 않습니다.” 내가 예전에 출석했던 교회조차도 모든 집회에 관해 가장 일반적인 불평들 중 하나였습니다. 아무리 지체들을 친절하게 대하고, 돌보고 있고, 사랑하고 있더라도 어떤 지체들은 “우리는 그 일의 일부로 느끼지 못한다. 우리가 참여하지 않는다. 우리는 소속감을 갖지 못한다.”라고 말할 것입니다. 그들은 대개 마치 집회의 비평가였던 것처럼 “그건 다른 지체들의 책임이요, 잘못이야.”하고 말합니다.

 

100에서 99번 섬김의 사역에 규칙적으로 참여하지 못하거나 참여하여도 부지런히 수고하는 것이 아닐 것이라는 사람들일 것입니다. 한 사역에 참여할 것을 초대할 때 그들은 흔히 움츠립니다. 그렇지 않으면 직업으로는 생각하지만 등한시하거나 소홀히 하고 그리고 떨어져 나갑니다.

 

회사원들이 1/2~1/4시간만 출근해 일하려고 한다면 그가 무리 중 일부라고 느낄까요? 학생들이 모두 3~4시간만 클래스를 채우려고 등교하고 집에서 숙제를 하지 않는다면 그가 그 클래스의 일원으로 느낄까요? 여러분 가정에 있는 아이가 식구들이 하는 것을 1/3~1/4만 참여하다면 그들이 가정의 일원이라고 느낄까요?

 

이러 사람들은 무리에 일부로 느끼라고 요구하는 것을 하지 않기 때문에 “무리에 일부로 느끼지 않고” 교회 모임을 규칙적으로 놓치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협력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나누지 않습니다. 그들은 사역에서 교제를 갖지 않습니다.

 

 

결론

하나님은 지방교회에 참여하도록 할 그리스도인을 위한 본을 가지고 계십니다. 다른 믿음 있는 그리스도인들과 함께 일치감과 하나 됨을 가진 사람들은 사역 안에서 교제를 갖거나 나누기를 원합니다. 그들은 서로 도울 수 있는 그들의 능력을 사용해 다른 사람들을 섬길 필요와 지방교회의 목표를 이룰 필요를 봅니다. 이것을 실행하지 않는 사람들은 단순히 믿음으로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연구한 예들로 묘사된 성경적인 본은 믿음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무리의 일부가 되어야 하고 “무리의 일부가 되었다는 느낌”을 가져야함을 보여줍니다. 사울과 동일하게 말입니다.

 

(1) 무리와 “함께”하십시오.

교회는 여러분이 무리의 한 부분이 되기를 원한다는 것을 아십시오.

 

(2) 무리와 “함께”되십시오. 규칙적으로 모든 교회기능에 참여하십시오.

 

(3) 무리의 사역에 참여하십시오.

 

부지런하고 나는 여러분들이 곧 무리의 일부로 느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더 중요한 것은 여러분이 믿음 있는 그리스도인의 사역을 실행하게 될 것이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것입니다.

 

교회모임에 참여해야 할 여러 구절들도 있고, 그 이유도 있습니다. 하나님께 예배하는 중요성과 성경연구를 해야 하는 중요성에 관한 특별한 구절들을 포함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의 증거가 있습니다. 연합, 협력, 섬김에 대한 성경적인 가르침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교회가 모일 때마다 오도록 분배하여 부지런하게 사역해야 이유이고 주목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들을 주는 것입니다.

 

당신은 그리스도인이십니까? 여러분은 믿음 있는 지방교회의 지체가 되십니까? 여러분은 믿음을 가지고 출석하고 사역에서 믿음으로 섬기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