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퍼런스/교회

일치, 교제, 섬김, 그리고 교회모임에 참여하는 것(I)

Hernhut 2012. 9. 20. 13:07

 

일치, 교제, 섬김, 그리고 교회모임에 참여하는 것

성임현헤른훗형제씀

 

그리스도인들은 왜 지방교회의 예배모임에 출석해야 할까요? 교회 출석하는 것은 일치, 교제, 그리고 하나님과 다른 사람들을 섬기는 것이 어떤 관계를 갖게 하나요? 교회모임은 어떻게 성도들의 일치나 분열에 반사하나요? 성경은 한마음으로 기도, 성경연구, 가르침, 다른 예배활동 하는 것에 대한 우리의 부담에 관해 뭐라고 가르치나요?

 

들어가는 서론

복음은 하나님의 사람들 가운데서의 교제에 대한 중요성, 일치에 대한 중요성, 서로간의 섬김과 시중드는 것에 대한 중요성에 관한 많은 지시를 줍니다. 복음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을 예배해야 하는 것과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해야 하는 많은 이유를 주고 특별하게 예배와 활동하는 것을 연구하는 모임(소그룹)에 참여하기 위해서 교회모임에 출석해야 하는 이유를 알게 해 줍니다.

 

이 공과를 연구하는 목적은 이러 생각이 어떻게 함께 묶이는지를 토론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일치되는 그리스도인들의 중요성과 서로를 섬기고 또 교제하는 것을 연구하기 원하지만 우리는 성경을 연구하고 또 예배를 위해 교회모임에 적극적이고 활동적으로 참여하는 것의 중요성에 대한 가르침을 공급할 것입니다.

 

 

I. 복음은 일치에 관해 가르치는 것

교회의 일치는 교리적인 순수성을 요구합니다. 많은 구절들은 오류와 거짓교리가 지방교회의 일치를 무너지도록 갈등과 분열로 이도할 것입니다. 하지만 거기에는 정확한 교리적인 동의보다 성경적인 일치가 더 있습니다. 일치는 또한 영, 사고방식, 감정, 목표, 그리고 목적이 하나 되는 것을 요구합니다. 같은 것들에 관한 염려요, 상호간의 갈망입니다. 지방교회 안에서 일치에 대한 영의 중요성을 우리가 연구하지만 성도들 가운데 있는 이 영이 어떻게 우리가 교회 예배 모임에서 그 자체를 나타내는지를 볼 것입니다.

 

A. 초대교회의 본

가장 첫 번째 지방교회는 예루살렘에 있었습니다. 어떻게 복음이 사고방식과 목표에 대한 그들의 일치를 되풀이하여 설명하는지를 생각해보십시오. 그런 후에 어떻게 이 일치가 그들의 예배모임의 활동에서 그 자체를 표현하고 반사했는지를 연구해봅시다.

 

“이들이 다 여자들과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와 그분의 형제들과 함께 한마음이 되어 기도와 간구를 계속하더라.”(행 1:14)

제자들은 “합심”해서 변함없이 기도(예배)를 계속하려고 “모두” 함께 있었습니다. 목적과 사고방식의 일치는 예배를 함께 하는 사람들 가운데 그 자체를 보여주었습니다(행 2:1, 46).

“오순절 날이 충만히 임하였을 때에 그들이 다 한마음이 되어 한 곳에 있더라.”(행 2:1)

“또 날마다 한마음이 되어 성전에 거하고 집에서 집으로 돌아가며 빵을 떼면서 단일한 마음으로 즐겁게 자기들의 음식을 먹고”(행 2:46)

 

“사도들이 풀려나매 자기 동료들에게 가서 수제사장들과 장로들이 자기들에게 말한 것을 다 전하니 그들이 그것을 듣고 한마음으로 [하나님]께 목소리를 높여 이르되, [주]여, 주는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것들 안의 모든 것을 만드신 [하나님]이시요,”(행 4:23~24)

박해를 받을 때 교회는 모였고, “합심해서” 하나님께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이 말은 한마음으로 하나님께 부르짖어 하나님을 찬송했다는 말입니다. 일치는 예배를 드리기 위해 모이는 것 그 자체라는 것을 다시 보여줍니다.

 

“믿은 자들의 무리가 한 마음 한 혼이 되어 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하고 그들 중에 아무도 자기 소유를 조금이라도 자기 것이라고 말하지 아니하더라.”(행 4:32)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믿는 이들은 “마음이 하나요, 혼이 하나”였습니다. 난 이것을 어떻게 형언할 수 없는 데 이것을 체험하지 못한 사람은 설명이 되지 않습니다. 성도들끼리 동일체가 되었다고나 할까요. 내가 당신이 되고 당신이 내가되는 것이지요. 성령의 충만을 받으면 이런 동일체가 되는 것입니다. 이런 현상은 내적인 변화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밖으로도 흘러 나와 가난한 성도들을 위해 후하게 재정이나 소유물들을 모으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런 현상은 작게나 크게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모이는 성령 충만한 무리들에게 나타납니다. 성도들끼리 모이지 않고는 결코 아무리 성령 충만하더라도 일어날 수 없는 현상입니다.

 

“온 교회와 이 일들을 들은 모든 사람들에게 큰 두려움이 임하더라. 사도들의 손을 통하여 백성 가운데 많은 표적들과 이적들이 일어나매 (그들이 모두 한마음이 되어 솔로몬의 주랑에 있었고”(행 5:11~12)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다른 제자들과의 사고방식에 하나가 되어 나누지 못했습니다. 물론 그들은 엄격한 훈련을 받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들에게 결국 죽음을 맞이했는데 이것을 생각하도록 교회의 남아있는 사람들에게 전해졌고 “합심해서”함께 되었습니다(행 15:22, 25). 아나니아와 삽비라를 생각하면서 나는 사실 오늘날의 기독교와 교회를 비교해 봅니다. 사도들의 시대에는 소유를 숨기고, 나눌지 모르는 사람들은 그 즉시 죽음을 맞이했는데 오늘날에는 그렇게 죽는 사람들을 볼 수 없을까요? 그 답은 결국 성령 충만하지 않거나 극소수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와 교회들이 수적으로 부흥을 가져와도 오순절의 성령 충만의 모습은 재현하지 못할 것입니다.

 

모임에서의 참된 일치는 하나님을 예배하고 그분의 말씀을 연구하려고 모이는데 전념하는 사람들 그 자체를 나타냅니다. 그와 같은 사람들은 함께 모이기를 원합니다. 하지만 우리의 연합이 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 곧 하나님을 섬기고 영원한 생명을 받는 것과 관련될 때 우리는 함께 모이기를 원할 뿐만 아니라 우리는 함께 있는 것이 필요합니다.

 

여러분의 교회 형제들은 그들이 “올 필요를 느끼지는 않지만” 대신에 다른 것을 할 것을 찾는다는 생각을 하거나 오기를 원하지 않음을 생각하십시오. 그들이 그들의 형제들(성도들)과 “한마음, 한혼”을 가지고 있습니까? 여러분의 교회 형제들은 초대교회의 그리스도인들의 사고방식을 나누고 함께 모이는 데 헌신하고 있습니까?

 

B. 분열을 꾸짖는 구절들

개인적으로 나는 교회가 분열하는 것을 극히 싫어합니다. 분열시키는 사람들을 몹시 미워합니다. 그래서 난 오래전부터 분열로부터 떠나 하나의 축이 되고자 헌신을 해왔습니다. 세상에 이단이 한국에 그리 많아진 것은 바로 기독교의 분열과 수평이동 그리고 성직세습에 있다고 봅니다. 난 이 문제에 대해 기독교를 엄히 꾸짖을 계획입니다.

 

“또 만일 어떤 왕국이 스스로 분쟁하면 그 왕국은 서지 못하고 만일 어떤 집이 스스로 분쟁하면 그 집은 서지 못하며 만일 사탄이 자기를 대적하여 일어나 분쟁하면 서지 못하고 종말을 맞느니라.”(막 3:24~26)

왕국이나 집이 서로 대항하여 나누어지면 그곳에서 설 수 없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바로 교회를 말하고 있습니다. 분열, 분파, 분쟁은 그 배후에 사탄의 세력이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한국에는 수많은 장로교회와 여러 감리교회, 여러 순복음교회, 오순절, 성결, 침례교회들이 있습니다. 이들이 다 한 복음으로 시작되었지만 결국 분쟁과 분열의 결과로 갈라졌습니다. 이제는 이 모든 것을 초월하는 초교파도 일어났습니다. 이것은 바로 사탄의 전략입니다. 누누이 말하지만 사탄은 하나님의 목적과 별반 다르지 않게 우리를 유혹합니다. 결과는 극과 극의 차이가 되지만 처음에는 비슷한 것으로 시작합니다. 이들 교파들은 각각의 법과 규칙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은 성경도 사용하고 있지만 그들의 법에 의해서 복음을 많이 바꾸어 실행합니다. 물론 그들은 그렇지 않다고 말하겠지만 실상은 성경에 위배되는 법을 가지고 있습니다. 생각 속에는 우리가 교파의 이름은 달라도 우리의 근본의 뿌리는 같다고 말할지 모릅니다. 그런데 왜 갈라졌을까요? 그 뿌리가 같을지 몰라도 결과의 열매는 절대로 같지 못합니다. 이것이 종교의 자유 같지만 이것은 사탄이 쓰기 좋아하는 가장 좋아하는 말일 것입니다. 우리는 분열된 것을 회개해야 합니다. 기독교에 가면 당신은 주님께 회개해야 한다고 성도들이 말합니다. 그렇지만 사실 그 이전에 분열된 것을 먼저 회개하고 내려놓고 주님의 뜻을 따라 사는 사람들이 이런 말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회개는 해야 하지요. 하지만 자신들은 여전히 교파에 머물며, 교파의 교리를 따르고 기회만 주어지면 분열하려는 사람들이 해야 할 말은 아닌 것 같습니다. 오늘도 열을 냈습니다.

 

“형제들아, 이제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에게 간청하노니 너희는 다 같은 것을 말하고 너희 가운데 분쟁이 없이 같은 생각과 같은 판단 안에서 완전히 함께 결합하라.”(고전 1:10)

지방교회에서는 분열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지체들이 같은 마음, 같은 판단 가운데 함께 완전히 결합하고 뭉쳐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같은 말을 해야 합니다. 같은 생각을 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교회입니다. 사탄은 틈만 있으면 다른 말을 하게 합니다. 다른 생각에 이르게 합니다. 분쟁과 분열을 일으켜 서로에게 상처를 주려고 합니다.

 

“이것은 몸 안에 분쟁이 없게 하고 오직 지체들이 서로 같은 보살핌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고전 12:25)

우리는 모두 같은 몸 안에 있기 때문에(고전 12:12, 14, 20) 몸 안에서 교파로의 분립이 없어야 합니다. 그렇지만 지체들은 함께 있는 몸이기에 서로 같은 돌봄이 필요합니다. 오늘날의 서로 다른 교파로의 분립은 한 몸이 찢어져 억지로 세워지려 하는 것과 같은 모습입니다. 머리가 분리한 것은 아니지만 몸은 여러 개로 갈라져 있습니다. 머리에 붙은 샴쌍둥이들과 같이 살아야 합니다. 하나의 머리에 하나의 몸이 있어야 비로소 한 인간인 것처럼 교회도 한 머리이신 그리스도에 한 몸인 교회가 있어야 하고 그 몸에 기능을 할 수 있는 그리스도의 지체들이 있어야 한 몸으로 건축되는 것입니다. 이 주제에 대해서는 “그리스도의 몸의 영적은사”에서 다룰 것입니다.

 

고린도 교회는 신약성경에서 가장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분열된 교파들 중 하나였습니다. 바울은 그들의 분열에 대해 반복적으로 꾸짖었습니다. 그들의 분열은 예배에 오는 회중들 가운데 나타났습니다. 고린도전서 11, 14장은 그들이 모였을 때 발생했던 분열과 갈등으로 길게 다루어졌습니다.

 

교회의 회중들은 지체들 가운데 일치되는 것만 반사하는 것이 아니라 지체들 가운데 분열도 반사합니다. 지체들이 하나님, 그분의 섬김, 그리고 영원한 생명에 대한 소망에 대해 공통의 헌신이 나눠질 때 그들은 다 같이 모이는 것이 필요하고 교회가 모일 때마다 오려고 분투하는 것을 봅니다. 사람들이 서로 서름서름할 때나 하나님께 헌신하는 것, 믿음의 공통의 결속력을 나누지 않을 때 그들이 같이 모여서 호들갑떨거나 다투는 경향이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교회에 나가는 것은 짐이 되고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나오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어떤 지체들이 올 수 있지만 단순히 노력하지 않을 때 우리가 일치에 관해 어떤 말을 해야 할까요? 우리가 정말로 하나님께 공통의 헌신을 가져야 한다고 하는가, 아니면 우리가 분열을 해야 한다고 나눕니까? 우리는 연합된 집이 있습니까, 아니면 분열된 집이 있습니까?

 

 

C. 하나 됨을 강하게 권고하는 구절

“내가 이 사람들만을 위해 기도하지 아니하고 그들의 말들로 인하여 나를 믿을 자들도 위해 기도하오니 이것은 그들이 다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우리 안에서 하나가 되게 하사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세상이 믿게 하옵소서.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그들에게 주었사오니 이것은 우리가 하나인 것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요 17:20~22)

예수께서는 자신과 그분의 아버지처럼 모든 믿는 이들이 “하나” 되기를 기도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지방교회의 일부분이셨다면 그분께서 연구하고 기도하고 그분의 아버지를 예배하는 교회에게 주어진 기회들을 등한시 하실까요? 누가 이와 같은 것을 상상할 수 있을까요? 우리가 예수께서 그분의 아버지와 함께 계셨던 연합의 같은 영을 가지십시오. 그러면 우리가 아버지를 예배하려는 예수의 갈망 안에서 함께 나누지 않을까요?

 

“오직 너희 행실을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하라. 그리하면 너희에 대한 일들 곧 내가 가서 너희를 보든지 떠나 있든지 너희가 한 영 안에 굳게 서서 복음에 속한 믿음을 위하여 한마음으로 함께 싸우며”(빌 1:27)

복음의 활동을 할 만한 가치는 복음을 위해 “한 마음으로 한 영” 안에서 분투하기 위해 굳게 서도록 우리를 인도할 것입니다. 우리가 속한 곳에서 하고 또 집회에서 예배하는 것이 복음을 위해 분투하는 것이 아닐까요? 이 사람들이 영과 마음이 여기서 우리와 함께 사역하게 될 것을 나누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완전한 자들은 다 이같이 생각할지니 만일 어떤 일에서 너희가 달리 생각하면 [하나님]께서 바로 이것을 너희에게 드러내시리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이미 도달한 곳에서는 같은 규칙에 따라 걷고 같은 것을 생각할지니라.”(빌 3:15~16)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서 무슨 안위나 사랑의 무슨 위로나 /성령]의 무슨 교제나 무슨 인정이나 긍휼이 있거든 너희는 같은 생각을 품고 같은 사랑을 가지며 한 뜻과 한 생각이 되어 내 기쁨을 성취하라. 어떤 일도 다툼이나 헛된 영광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더 낫게 여기며 각 사람이 자기 일들만 돌아보지 말고 각 사람이 남의 일들도 돌아보라.”(빌 2:1~4)

한 생각과 일치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같은 마음을 품으십시오. 지체들이 오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을 할 때 와야 한다고 생각하는 지체들처럼 같은 사랑, 같은 마음, 같은 생각을 품습니까? 교회 안에서 이런 일이 비일비재합니다.

 

“끝으로 형제들아, 잘 있으라. 완전하게 되며 위로를 받으며 한마음이 되며 평안히 지낼지어다. 사랑과 평강의 [하나님]께서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고후 13:11)

한마음이 되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실 것입니다. 이 단순한 원리를 모르는 성도들은 교회를 다니면서도 회의를 느끼고 생활을 합니다. 이 얼마나 가련합니까? 여러분 자신이 먼저 한마음이 되려고 하십시오. 한마음이 되지 않으면 사실상 떠돌이가 되고 요즘의 교회는 다양성 안에 있기 때문에 자기의 입맛에 맞는 교회를 찾아 기웃거립니다. 그러다 이단에 빠지기가 아주 쉽죠.

 

모든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으로 사랑 안에서 서로 참아 주며 화평의 매는 띠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엡 4:2~3)

서로에게 사랑 안에서 참고 화평의 끈으로 그영(the Spirit)의 연합을 계속해서 지키십시오. 여기서 힘써 지키라고 말씀하신 것은 힘쓰지 않으면 화평이 깨진다는 것을 함축합니다. 지방교회의 지체들은 하나님을 섬기기 위한 공통의 사랑과 헌신을 나누어야합니다. 우리가 사랑과 헌신에 대한 유대관계의 끈을 나누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것을 개발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복음이 연합을 가르치는 주제가 함께 사역하도록 모든 지체들을 인도할 것이라는 것을 나중에 연구할 것입니다.

 

이제 인내와 안위의 [하나님]께서 너희에게 그리스도 예수님을 따라 서로를 향해 같은 마음을 갖게 하사 너희가 한 마음과 한 입으로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시기를 원하노라.”(롬 15:5~6)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을 찬미하는 한마음과 한 입술로 서로를 향해 같은 마음이 되도록 하십니다. 우리의 연합은 하나님께 영광을 드리도록 우리의 예배에서 반사해야 합니다.

 

교회의 모임들은 지체들의 사고방식에서 연합을 하거나 분열을 하는 것을 반사합니다. 교회가 공부, 예배, 인정된 다른 사역을 하기 위해 만날 시간을 정할 때 “한마음과 한 혼”의 사람들은 거기에 참여하려고 분투할 것입니다. 그만큼 연합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어떤 사람들이 가야한다고 생각하지 않거나 기꺼운 마음으로 노력하지 않을 때 연합되지 않은 교회(집) 일까요? 분열한 교회(집)일까요?

 

여러분은 하나님을 예배하고 그분의 말씀을 연구하러 교회에 가려고 하는 여러분의 갈망에서 여러분의 형제들과 “한마음과 한 생각”이십니까?

 

“끝으로 너희는 다 한마음이 되어 서로를 동정하며 형제로서 사랑하고 불쌍히 여기며 예의바르게 행하라.”(벧전 3:8)

“그러므로 우리가 화평을 이루는 일들과 서로 세워 주는 일들을 따를지니”(롬 14:19)

“그러므로 온 교회가 다 같이 한 곳에 모여 모두 타언어들로 말하면 배우지 못한 자나 믿지 않는 자들이 들어와서 너희가 미쳤다고 하지 아니하겠느냐?”(고전 14:23)

“기록된바, 내가 믿었으므로 말하였노라, 한 것 같이 우리가 같은 믿음의 영을 가졌으니 우리도 믿으므로 또한 말하노라.”(고후 4:13)

“서로 같은 생각을 가지며 높은 것들에 생각을 두지 말고 도리어 낮은 처지의 사람들에게 겸손히 행하며 스스로 지혜 있는 것으로 여기지 말라.”(롬 12: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