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퍼런스/교회

우리는 언제 주의 만찬을 가져야 하는가?(III)

Hernhut 2012. 8. 23. 14:25

우리는 언제 주의 만찬을 가져야 하는가?(III)

합당한 시간과 주의 만찬의 빈도수

성임현헤른훗 형제

 

III. 다른 구절에서의 가르침

 

사도행전 20:7절은 우리가 한주의 첫날에 주의 만찬을 가져야 함을 믿도록 우리를 인도합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성경이 주제에 대해 말하는 모든 것을 취해야 하는 것을 상기해 냅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들은 사도행전 20:8~9절에 있는 것처럼 위층에 있는 방에서 왜 우리가 주의 만찬을 갖지 않는가를 묻습니다. 그에 대한 대답은 우리가 다른 구절을 연구할 때 우리는 장소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됐다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는 마당 곧 솔로몬의 행각(行閣), 솔로몬의 주랑(柱廊)에서도 모였던 것 같습니다.

 

교회가 한주간의 첫날보다 다른 날에 주의 만찬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성경구절이 있습니까? 성경적인 구절과 같은 사도행전 20:7절 외의 구절을 찾을 수 있습니까? 아니면 다른 곳에서 본 다른 가르침이 그러한 결론을 강하게 주장합니까?

 

A. 주님의 만찬과 여러 모임에 관한 가르침

“그들이 흔들리지 아니하며 사도들의 가르침과 교제 안에 머물고 빵을 떼며 기도하더라.”(행 2:42)

개심한 초기 성도들은 사도들의 가르침, 기도에 더하여 빵을 떼기를 “끊임없고 변함없이 계속 실행했습니다.” 이 구절에 있는 다른 항목들은 경배(예배)에 대한 실행이라고 우리의 주의를 집중시킵니다. 이 구절에서 빵을 떼는 것이 일반적인 식사가 아니고 예배에 대한 실행이요, 주의 만찬이라는 것이 고린도전서 11장과 조화를 이뤄서 우리는 결론짓습니다. “끊임없고, 쉼 없이 늘 실행하는 것”은 제자들이 얼마나 자주 주의 만찬을 갖는 가를 정의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주의 만찬이 얼마나 정기적인 일이었고 흔히 그들 가운데서 실행되었는지, 그들이 얼마나 주의 만찬에 헌신적이고 전념을 다했었는지를 우리에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주의 만찬은 드문 일도 아니지만 되는대로 실행하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우리의 함께 모이는 일을 폐하지 말고 서로 권면하여 그 날이 다가옴을 너희가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히 10:25)

교회는 규칙적인 모임을 가졌고 지체들은 놓치지 않기를 기대했습니다. 이 구절은 주의 만찬을 말하는 것도 아니요, 얼마나 자주 집회를 가져야 하는지를 말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렇지만 여기서 말하려는 것은 규칙적인 모임에 대한 생각을 강화하는 것이요, 보강하자는 말입니다. 여기서 지체들이 보여주는 것은 모임에 대한 헌신과 열정이 있어야 함을 말합니다. 교회가 모일 때 지체들은 거기에 있어야 합니다. 모임 안에 남아 있어야 합니다. 나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교회와 갈등이 있을 때 그 교회를 떠나 다른 교회로 옮겨 가는 경우를 많이 보았습니다. 그런데 이런 행동들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를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 갈등이 심화되어도 여전히 그들은 그곳에 머물러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나의 가르침은 ‘그곳이 아니면 나는 죽은 것이다.’라는 생각이 없다는 것입니다. 목숨을 걸고 그 교회를 나가야 합니다. 여기저기로 옮겨 다니는 지체들 때문에 교파가 갈라지고 더 나아가 이단이라는 무리가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이제 내가 너희에게 밝히 말하는 이 일로는 너희를 칭찬하지 아니하노니 그것은 곧 너희가 함께 모이는 일이 더 좋은 일이 되지 못하고 더 나쁜 일이 된다는 것이라. 무엇보다 먼저 너희가 교회에 함께 모일 때에 너희 가운데 분쟁이 있다는 것을 내가 듣고 어느 정도 그것을 믿노니 인정받는 자들이 너희 가운데서 밝히 드러나려면 너희 가운데 반드시 이단 파당도 있어야 하느니라.”(고전 11:17~19)

이것이 얼마나 부끄러운 일입니까? 이런 일들은 참으로 교회 안에서 없어져야 하는 일입니다. 교회가 왜 분쟁이 있고 여기저기로 갈등을 피해 떠돌아다니는 사람들이 많을까요? 많은 이유들이 있지만 배후에 사탄의 간섭이요, 사탄이 간섭하는 것은 사람들의 탐욕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그것을 잘 모르지요. 예수님은 주님의 상에서 그분의 죽으심을 기억하는 그분의 모든 사람들을 원하십니다.

내가 너희에게도 전해 준 것은 [주]께 받은 것이니 곧 [주] 예수님께서 배반당하신 바로 그 밤에 빵을 집으사 감사를 드리신 뒤에 그것을 떼시고 이르시되, 받아서 먹으라.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찢긴 내 몸이니 나를 기억하여 이것을 행하라, 하시고 저녁 식사 뒤에 또 그와 같은 방법으로 잔을 집으시고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상속 언약이니 너희가 그것을 마실 때마다 나를 기억하여 이것을 행하라, 하셨느니라.”(고전 11:23~26)

이것은 선택적인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필수적인 것입니다. 우리는 주의 만찬 가운데 참여하는 것에 전념하고 헌신해야 합니다. 주의 만찬은 교회가 모일 때 먹어야만 합니다(고전 11:20, 33). 주의 만찬은 바울이 그들의 모임에서 가지려는 교회를 꾸짖는 일반적인 식사와 대조적입니다. 교회는 집에서 일반적인 식사를 해야 합니다(고전 11:22, 34).

 

그렇지만 이 구절에서 무슨 날, 얼마나 자주 실행해야 하는지를 말하지 않았습니다. 여기서는 실행“할 때마다”라고 간단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묘사된 방식으로 수행되어야 합니다. “~할 때마다”라는 표현은 “언제나, 모든 시간에”라는 의미입니다. 이런 것을 해결하기 위해서 다른 성경책들을 참고해서 연구할 필요가 있습니다. NIV, NEB, Wms, Knox, Gdspd을 연구해 보십시오. 이것은 한 가지가 일어나고 다른 것이 일어날 때마다를 의미하는 “관계부사”입니다. 그 표현 자체가 얼마나 자주 주의 만찬을 가져야 하는지를 여러분에게 충분하게 말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여러분이 봉급을 받는 만큼 여러분의 카드에서 소득세를 떼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이제 성도들을 위한 모금에 관하여는 내가 갈라디아의 교회들에 지시한 바와 같이 너희도 그렇게 하라. 주의 첫날에 너희 각 사람이 [하나님]께서 형통하게 하신 대로 자기 곁에 모아 두어 내가 갈 때에 모으는 일이 없게 하라.”(고전 16:1~2)

고린도교회는 한주의 첫날에 모이는 것을 계속하도록 명령된 것이 문맥의 흐름상 알 수 있습니다. 갈라디아, 아케아 마케도니아교회들도 같이 실행되고 있었습니다. 다른 곳에서도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이것은 확실히 각주(各週)의 첫날에 있어야 할 모임을 입증합니다. 이 구절은 집에서 혼자서 있는 것이 아니라 교회로 흔한 모임을 갖도록 하고 있습니다. 각 사람들은 바울이 예루살렘에 사람들을 데려왔을 때 함께 모여야 했을 것이고 하지 말아야 한다고 그가 말했던 것과 똑같은 것입니다.

 

한주간의 첫날 하루만 모이는 것은 아니고 교회가 시작됨으로 이 모임이 생겨났지만 각 주 첫날에 계속해서 실행됨으로써 지금에 이르기까지 반복적으로 행해져야 하는 것입니다(NASB, NIV, RSV, NEB, 등). 그러나 오늘날 개신교 대부분이 이것을 실행하고 있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그것은 본래 교회 사역의 우선순위가 바뀌어졌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오늘날과 같이 우선순위가 바뀌는 것은 다른 복음에 속한 것입니다. 아무리 복음을 전달한다고 할지라도 다른 방향으로만 갈 뿐입니다. 주님의 날에 주된 집회가 바로 주의 만찬입니다. 말씀전달은 그 다음입니다. 이 우선순위가 회복될 때 하나님의 은혜가 풍성해 진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람들은 말씀을 전하거나 들어서 은혜를 얻으려고 하기 때문에 정작 실행해야 할 것을 놓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교회에 가는 이유도 말씀을 듣고 전하러 가는 것이 아니어야 합니다. 다른 날은 말씀을 들으러 가거나 전하러 가야 하지만 주님의 날 한 주간의 첫날은 집회에 참여하는 목적이 바로 주님의 상에 참여하고 주의 만찬을 먹으러 가는 날이어야 합니다. 그 후에야 말씀을 전하고 듣는 집회가 진행되는 것이 옳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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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구절은 사도행전 20:7절이 주의 만찬에 관해 말하는 것을 재정(헌금)을 모으는 것에 관한 것과 같은 것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두 가지(주의 만찬을 실행하는 것, 선교비를 모으는 것) 다 한 주의 첫날에 실행되었습니다. 교파들은 흔히 주의 만찬을 성만찬(holy supper)이라는 명목으로 분기에 한번이나 일 년에 한번 그리고 기념일에 갖습니다. 하지만 재정을 모으는 데는 매 시간에 갖고 있습니다. 성경은 둘 다 같은 것이요, 같은 주의 날에 가져야 한다고 말합니다.

 

또한 사도행전 20:7절과 고린도전서 16:1~2절 사이에 연관성이 있습니다. 고린도전서에서 바울은 예루살렘에 있는 궁핍한 성도들에게 보내려고 한 주의 첫날에 재정을 모으도록 교회들에게 지시했습니다. 나중에 그와 다른 사람들은 그 도시들을 찾아갔고 예루살렘에게 줄 재정을 모았습니다(고전 16:1-4, 고후 8~9장, 롬 15:25~27, 행 24:17). 사람들이 사도행전 20장에서 하고 있었던 여행입니다. 여행하고 있던 그들은 한 주의 첫날에 드로아에 있는 교회에서 주의 만찬을 가지려고 그 곳에 머물렀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이것은 드로아에 있는 교회는 한 주의 첫날에 모였다는 것이 드물지 않거나 우연의 일치가 아니었다는 것을 결정적으로 입증합니다. 그런데 왜 어떤 사람들은 다르게 생각해야 할까요? 물론 그들은 주 첫날에 정기적으로 모이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바울이 고린도전서 16장에서 이미 밝혔던 것처럼 그것을 명하셨습니다. 바울이 여행하면서 그는 하나님께서 모이라고 인정하셨던 그 날에 드로아에 있는 교회와 함께 모였습니다. 사도행전 20:7절의 예는 그들이 재정을 모으기 위해 모인 날이 주의 만찬을 하기 위해 모였던 날이었음을 보여줍니다.

 

 

주님의 만찬과 여러 모임의 가르침에 대한 결론

제자들은 주님의 만찬과 그들의 모임에 출석에 대해 변함이 없었고 굳건했습니다. 그들은 드로아 교회에서 주의 만찬을 가졌습니다. 그들은 한 주의 첫날에 모임을 계속했습니다.

 

그런데 사도행전 20:7절은 제자들은 빵 떼는 것을 한 주 첫날에 함께 모이는 것을 더하고 있습니다. 교회들은 첫날에 모이는 것을 포함해 규칙적으로 집회를 했습니다. 그들이 주 첫날에 집회할 때 그들은 주의 만찬을 갖고 물질적 재정을 모았습니다. 그 본이 명백해짐으로서 정착되었습니다.

그래서 다른 구절을 연구하므로 사도행전 20:7절이 흔하지 않은 일이었다는 결론에 이르게 하지 못합니다. 주의 만찬이 다른 날에 있었다는 말할 만한 구절이 없습니다. 대신 그 본은 사도행전 20:7절의 실행이 교회의 실행에 대한 전반적인 그림이 되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B. 한 주의 첫날에 대한 중요성

다른 구절들이 한 주의 첫날 어떤 특별한 중요성이 있는지 없는지를 입증합니까? 왜 하나님께서 주의 만찬과 헌금을 모으기 위해 첫날에 집회를 하는 교회를 원하시는지를 설명하는데 어떤 것이 있습니까?

 

“이제 예수님께서 주의 첫날에 일찍 일어나신 뒤에 전에 친히 몸속에서 일곱 마귀를 내쫓아 주신 마리아 막달라에게 처음으로 나타나시니라.”(막 16:9)

예수님은 주의 첫날에 일어나셨습니다. 예수의 부활은 세상의 역사 가운데 가장 위대한 사건으로 여러 방면에 나타나 있습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것이 위대한 것이었지만 부활이 아니었더라면 십자가에 못 박히심은 어떤 의미도 없었을 것입니다. 십자가에 못 박히심은 큰 슬픔과 비통으로 제자들을 떠나게 했습니다. 부활은 궁극적으로 승리였고, 기쁨의 이유가 되었습니다.

 

더욱이 예수님께서 죽으신 요일에 대해서는 직접적으로 밝히는 구절은 없지만 4복음서 모두 예수님께서 주의 첫날에 일어나셨다는 것을 우리에게 말합니다. 또 4복음서 모두 반복적으로 그것을 말합니다. 그 요일에 대해 어떤 중요성이 없다면 왜 첫날에 대해 강조할까요(눅 24:1, 4, 21, 막 16:2, 마 26:1~7, 눅 24:1~9, 요 20:1~10).

 

“그 뒤 같은 날 곧 주의 첫날 저녁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들을 닫았는데 예수님께서 오셔서 한가운데 서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시니라.”(요 20:19)

예수님은 한 주의 첫날 저녁 무렵 쯤 맨 먼저 자신의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예수님의 부활하심으로 나타나심은 자신이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그들에게 입증하셨기 때문에 우리의 믿음에 또한 중요합니다(고전 15:1~8).

거룩함의 영으로는 죽은 자들로부터 부활하심으로써 [하나님]의 [아들]로 권능 있게 밝히 드러나셨느니라.”(롬 1:4)

한 주의 첫날에 부활하신 후 예수님은 몇 번에 걸쳐 나타나셨습니다(막 16:2, 9, 마 26:1, 8~10, 눅 24:1, 19~21, 요 20:1, 11~19). 이 나타나심 중 한번은 제자들이 집회하고 있을 때에 일어났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그 날에 부활하셨기 때문에 한 주의 첫날에 집회를 했습니다. 예수님 그분 자신이 그 집회에 가시려고 선택하셨습니다(눅 24:33~40)

 

여드레가 지나서 그분의 제자들이 다시 안에 있을 때에 도마도 그들과 함께 있더라. 그때에 문들이 닫혔는데 예수님께서 오셔서 한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시고”(요 20:26)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두 번째 날도 한 주의 첫날이었습니다. 우리는 다시 제자들이 함께 모였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부활 하시고 처음으로 나타나신 후 8일째 되는 날이었습니다. 날을 세는 방법은 한 주의 첫날 다음부터 세는 것이 맞습니다(레 23:39).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날에 제자들은 모였고 그 다음 한 주의 첫날에도 다시 모였습니다. 두 상황 모두 예수님께서 자신의 임재하심으로 제자들의 집회를 영광스럽게 하셨습니다. 이 어찌 예사롭지 않습니까? 여러분은 교회가 아직 시작되지 않았음으로 주의 만찬을 말하는 구절들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모임이 한 주의 첫날에 있었던 사실이 중요하지 않은 것이라면 왜 모임을 가졌던 날을 그렇게 분명하게 말을 할까요?

 

오순절 날이 충만히 임하였을 때에 그들이 다 한마음이 되어 한 곳에 있더라.”(행 2:1)

오순절 날 역시 한 주의 첫날이었습니다(레 23:15~16). 사도들은 성령이 임할 것이라는 어떤 생각을 하기 전부터 이 날에 함께 이미 모여 있었습니다(행 1:1~11). 성령은 그들의 모임에 임했습니다. 결과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함께 집회를 가졌고 복음이 전파되었으며, 3,000명이 그날에 침례를 받았습니다. 한 주의 첫날에 큰 일이 일어났습니다(행 2:47).

1) 성령님이 임했습니다.

2) 복음이 처음으로 전파되었습니다.

3) 초기의 사람들은 개심하였고, 또 그리스도인들이 되었습니다.

4) 교회가 시작되었습니다.

 

이 모든 것이 한 주의 첫날에 제자들이 함께 집회를 가졌을 때에 일어났습니다. 이때로부터 주의 만찬 등 여러 가지의 실행들을 그들은 계속해서 실행해 왔습니다(행 2:42).

 

사도행전 20:7절에서 제자들은 빵을 떼기 위해 한 주의 첫날에 함께 모였습니다. 여기서 주의 만찬이 한 주의 첫날에 실행하는 것이라고 직접적으로 언급한 유일한 시간일지 모릅니다. 하지만 한 주의 첫날이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유일한 구절이 아니라는 것이 분명합니다. 제자들이 한 주의 첫날에 모이는 것을 보여주는 유일한 구절도 아닙니다.

 

“이제 성도들을 위한 모금에 관하여는 내가 갈라디아의 교회들에 지시한 바와 같이 너희도 그렇게 하라. 주의 첫날에 너희 각 사람이 [하나님]께서 형통하게 하신 대로 자기 곁에 모아 두어 내가 갈 때에 모으는 일이 없게 하라.”(고전 16:1~2)

교회들은 매주의 첫날에 재정을 모았습니다. 한 주의 첫날에 관한 것과 그리스도인들의 모임에 관한 다른 구절 모두 이것을 인정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그 날에 모여야 하고 재정적 헌금을 모으는 것이 맞습니다.

 

한 주의 첫날에 대한 중요성에 대한 결론

한 주의 첫날에 그리스도인들이 해야 할 대단한 중요성을 보겠습니다. 초기교회사 가운데서 가장 큰 수많은 사건들이 그날에 일어났습니다. 그날에 일어났던 사건들 중 4번은 그날에 그리스도인들의 모임에 포함되었고 다섯 번째는 명학하게 모임이었음을 입증합니다. 여기서 2번은 예수님께서 그 모임에 임재하셨고 다른 때에는 성령께서 임재하셨습니다. 한 주의 첫날이 하나님의 계획안에 있는 특별한 중요성이 있다는 것을 어떤 누가 의심할 수 있을까요? 한 주의 다른 어떤 요일을 분명하게 부르거나 아니면 구절을 생각해 보십시오. 나 뿐만 아니라 온전하고 성경을 바르게 읽어본 많은 그리스도인 즉 성경학자들이라면 이날을 부인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 모든 일들과 모임들 그리고 경배의 행동은 한 주의 첫날에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말합니다. 하지만 주의 다른 어떤 날을 그리스도인들에게 어떠한 중요성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이름이 명명된 것이 한 번도 없습니다. 한 주의 둘째 날, 한 주의 셋째 날 .... 등 이런 식으로 말하는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일곱 번째 날은 있지만 그것은 유대인들의 모임에서만 관계가 있고, 그리스도인의 모임이나 그리스도인들의 특별히 중요한 사건에서는 결코 관계가 없다는 것입니다. 어떤 중요한 사건이 다른 날 일어났었는지는 모르지만 결코 그날에 어떤 중요한 애착을 갖지 않습니다. 한 주의 어떤 날이 주의 날 이외에 명명되지 않았습니다. 왜 모두 그것에 관해 특별하고 중요한 것이 있지 않는 한 첫날을 강조할까요?

 

다른 구절을 연구하는 우리는 사도행전 20:7절 외에 선택적이거나 아니면 우연한 기회라도 한 주의 첫날 주의 만찬을 갖는 것을 가리키는 어떠한 것도 찾아내지 못했습니다. 한 주의 다른 요일에 그것을 갖도록 하는 어떠한 권리가 주어진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우리가 다른 성경구절을 연구하면서 한 주의 첫날에 대한 중요성을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다른 성경구절을 생각하면서 우리는 한 주의 첫날 빵 떼는 제자들을 보고 놀라지 않습니다. 반면 다른 요일에 그것을 한다거나 했다는 것을 볼 수 없었던 것에 더 놀랄 뿐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을 위해 특별하게 중요한 유일한 날은 주님의 날이요, 우리가 주의 만찬에 참여하게 된 날이 주님의 날 곧 한 주의 첫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