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과 음료/새벽이슬처럼

팔레스타인 가운데서 도피처를 찾기(큐티)

Hernhut 2012. 1. 3. 20:22

팔레스타인 가운데서 도피처를 찾기

 

“그들 앞에서 자기 행동을 바꾸고 그들의 손 안에서 미친 체하며 바깥문의 문짝들에 휘갈겨 쓰고 침을 수염에 흘리매 그때에 아기스가 자기 신하들에게 이르되, 보라, 너희도 보거니와 이 사람이 미쳤도다. 그런즉 어찌하여 너희가 그를 내게로 데려왔느냐?”(삼상 21:13~14 흠정역)

 

다윗은 하나님의 백성을 떠나서 팔레스타인 땅에 있는 중요한 도시 중의 하나인 가드(Gath)로 도피했습니다. “그 날에 다윗이 사울을 두려워하였으므로 일어나 도망하여 가드 왕 아기스에게로 가니”(삼상 21:10 흠정역). 가드의 왕 아기스의 종은 다윗에 대해 듣고 아기스에게 말했습니다. “아기스의 신하들이 그에게 이르되, 이 사람은 그 땅의 왕 다윗이 아니니이까? 그들이 춤추며 그에 관해 서로 노래하여 이르되, 사울이 죽인 자는 수천이요, 다윗은 수만이로다, 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므로”(삼상 21:11 흠정역). 막 도착한 이방 땅에도 사울로 이스라엘 안에서 여자 문제가 시작되었습니다. 만일 그리스도인들이 또 다른 사람들 보다 위에 주님의 종을 높이지 않기를 배우는 것뿐이라면 하나님의 백성들 가운데 훨씬 더 많은 평강을 얻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다시 문제 속에 빠져 있었습니다. 만일 다윗이 인정받지 못한 팔레스타인 가운데 살 수 있었다면 평강으로 그들 가운데 거주했을지 모릅니다. 이방세계조차도 다윗은 너무 알려져 있었습니다. 이것은 축복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행동을 바꾸도록 다윗을 강압했습니다. 그는 정신이상인양 꾸몄습니다. 그는 그가 미쳤다고 믿어 팔레스타인으로 인도되도록 침을 턱수염에 흘렸고 문의 문짝을 뜻 없이 긁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우리가 세상에서 도피처를 찾을 수 없다는 것을 묘사합니다. 이것은 세상에서 살아남고 통하기 위해 옳지 않은 삶을 사는 우리에게 요구합니다.

 

우리는 세상 어디에서 우리의 도피처를 찾을 수 있을까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살아야 살아남을 수 있을까요? 세상에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도피처는 없습니다. 우리는 오늘날 팔레스타인을 찾고 그곳에 들어감으로 평강을 찾을 수 있습니다. 예수가 바로 우리의 팔레스타인이요, 우리의 도피처입니다. 그리스도께 피하십시요. 그러면 오늘 하나님의 평강에 참여할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