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단한 겸손
이 때에 예수께서 갈릴리로서 요단강에 이르러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려 하신대 요한이 말려 가로되 내가 당신에게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당신이 내게로 오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 하신대 이에 요한이 허락하는지라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 오실쌔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하늘로서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 마태복음 3:13~17
참고/ 마가복음 1:9~11, 누가복음 3:21~23
침례자 요한은 예수께서 그로 말미암아 침례를 받으려고 하셨을 때 그분께 압도되었습니다. 요한은 이미 그리스도의 신발 끈을 풀기에 어울리지 않는 스스로를 설명했었고 이제 그리스도께서 그분의 침례를 주기를 요구하고 있었습니다. “요한이 모든 사람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나는 물로 너희에게 침례를 주거니와 나보다 능력이 많으신 이가 오시나니 나는 그 신들메를 풀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침례를 주실 것이요”(눅 3:16).
이처럼 우리는 자주 주님께서 우리를 쓰실 수 있다는 생각으로 압도됩니다. 우리 누가 그리스도의 헤아릴 수 없는 부유하심을 선포하고 있습니까? 우리 스스로 자격을 박탈되고 하나님의 지시를 수행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요한에게 그가 모든 의를 수행하기를 수행해야만 한다고 말했습니다.
놀라운 것은 주님께서 우리를 쓰시길 선택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요한의 협력 없이 수행될 수 없었습니다. 주님은 사람들을 통해 일하십니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그분 스스로 아무것도 하시지 않을 것입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요 15:5),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의 온갖 구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엡 3:20). 이해부족은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축복을 놓치는 원인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가장 좋은 것을 갈망하고 기도하지만 그들의 독립을 움직이도록 하나님을 기다립니다. 우리가 우리 생활 안에서 하나님의 의를 수행해야만 하는 것이 있습니다.
요한은 스스로 높아지기를 추구하지 않았으나 침례를 예수께 베풀지 못한 실패는 겸손의 행동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것은 어리석은 짓이었을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인정되도록 하는 대단한 겸손을 갖고, 또 그분께서 우리를 쓰시도록 합시다. -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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