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비가 내리는 밤에 동유럽의 가상의 카페로 우리를 데려가는데, 그 카페에서는 독재와 억압 속에서 살았던 사람들이 「좋은 땅」이 어떤 모습일지에 대해 깊고 사려 깊은 대화를 나눈다. 「더 나은 나라에서는 독특하면서도 다른 사람들과 깊은 교감을 나눌 수 있는 자유가 둘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 대신, 둘 다이며, 신뢰에 의해 지속적으로 유지되는 역동적인 긴장이다.」 「이전에는 노예였던 사람들은 잊어야 할 사고 패턴이 있지만 배울 수 있는 모델은 거의 없다.」 손님들이 빛을 둘러싼 10개의 손가락이 있는 조각품을 생각하면서 의견이 나온다. 사람들이 서로에게 마음을 열면서도 안전하다고 느끼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서구의 현재 생각은 개인의 자유 선택에 대한 제한이 자유가 아니라는 것이다. 「하지만 자아의 관점이 삶에 대한 충분히 넓은 관점을 제공할까?」 「나의 관점에서 보는 관점은 신뢰를 키우기에는 너무 제한적이다. 나의 욕망만이 현실에 대한 불충실한 증인이다.」
신뢰의 문제는 존중받고 적절한 위치에 있으며, 더 나은 땅을 만드는 데 중요한 문제가 된다. 사람의 성격적 특성으로서의 신뢰성이 핵심이다. 이것이 십계명이 가장 심오하게 말하는 부분이다. 「십계명은 행동에 대한 부름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성격을 표현한 것이다. 그것은 절대적인 권력을 안전하게 만드는 선함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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