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메시지/생명의 나무

비느하스처럼 인도하라

Hernhut 2024. 6. 27. 21:00

하나님을 위해 일어서라. 그러면 당신은 하나님 앞에 서게 될 것이다.

 

오늘날 교육은 학생들에게 리더가 아닌 추종자가 되는 방법을 가르친다. 우리 세상은 사람들의 마음을 어릴 때부터 잘못된 교육으로 가득 채운다. 그리고 우리는 좋은 평가를 받고, 사랑받고, 받아들여지기를 좋아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순응에, 즉 눈먼 양처럼 이 세상의 거짓 가르침을 따르는 함정에 빠지게 된다!

하나님은 여러분에게 참된 교육을 하기를 원하신다. 현대 교육은 학생들에게 추종자가 되는 방법을 가르친다. 참된 교육은 학생들에게 경건한 지도자가 되는 방법을 가르친다. 경건한 지도자가 되려면 이 세상에 순응하는 함정을 피해야 한다.

우리가 그 함정에 빠지기 쉬운 주된 이유 중 하나를 명시한다. 우리는 좋은 평가를 받고 싶어한다. 우리는 사랑받고 싶어한다. 우리는 받아들여지기를 원한다. 그것은 천연적인 욕망이다. 그러나 당신이 그러한 욕망을 하나님의 법에 어긋나게 측정하지 않는다면, 그것이 하나님께 순종하려는 당신의 욕망보다 더 높아지면, 그것이 이기심과 허영심에 의해 동기가 부여된다면, 그것은 당신을 순응의 함정에 빠뜨리고 당신을 추종자로 만들 것이다!

당신은 하나님을 위한 지도자가 될 수 없고 이 세상에 순응할 수 없다. 당신은 이마에 양이라고 쓴 것을 가지고 돌아다니는 것이 나을 것이다. 하지만 성경에서는 자신이 지도자임을 입증한 사람의 예를 통해 어떻게 이 함정을 피할 수 있는지 알려 준다.

민수기 25장에 기록된 이 이야기는 이스라엘이 약속의 땅에 들어가기 직전에 일어났다. 민수기 25:1-3은 이렇게 말한다.

 

“이스라엘이 싯딤에 거주하더니 그 백성이 모압 딸들과 음행하기를 시작하니라. 그리고 그들이 그 신들에게 제사할 때에 백성을 청하매 백성이 먹고 그들의 신들에게 절하니라. 이스라엘이 바알브올에게 가담한지라 주께서 이스라엘을 향하여 진노하시니라”

 

40년의 광야생활이 끝난 때였다. 그들은 이전 세대 전체가 죄의 결과로 죽는 것을 보았다! 이 상황에서 그들은 어떻게 돌아왔는가?

이스라엘 사람들이 아모리 사람들을 쳐부수자 모압 사람들은 자기들이 다음 차례가 될까봐 두려워했다. 그들은 당시의 종교지도자였던 이교 선지자 발람을 고용하여 이스라엘 사람들을 저주했다. 하나님께서는 발람이 이스라엘 사람들을 저주하는 것을 금하셨으나 발람은 모압 왕이 그에게 제안한 보상을 탐냈다. 발람은 하나님께 순종하기는커녕 자신이 가고 싶은 방향으로 최선을 다해 나아갔다. 발람을 하나님의 율법의 테두리 안에서 안전하게 지내는 강력한 교훈으로 지적하고 싶다.

발람이 하나님의 마음을 바꾸려고 시도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여전히 ​​발람이 이스라엘 백성을 저주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다. 대신에 발람은 모압 사람들에게 이스라엘 백성들을 속여 스스로 저주하게 만드는 방법을 가르쳤다. 그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유혹하여 죄를 짓게 하면 그들은 하나님을 떠나 스스로 저주하게 될 것이다.

 

모압 사람들과 미디안 사람들은 발람의 계획을 따랐고, 죄가 이스라엘 사람들 전체에 퍼졌다. 그것이 국가적인 문제가 될 때까지 아무도 모세와 그의 지휘관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리지 않았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 보셨다.

 

“주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백성의 두령들을 잡아 태양을 향하여 주 앞에 목매어 달라 그리하면 주의 진노가 이스라엘에게서 떠나리라. 모세가 이스라엘 재판관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바알브올에게 가담한 자들을 각기 죽이라 하매 ” (민수기 25:4, 5)

 

모세가 따라갔다. 그리고 이스라엘 지도자들에게 명령을 내려, 관련된 사람들을 죽이고 지도자들의 머리를 빼앗아 장대 위에 매달도록 했다. 하나님은 진노하셔서 이스라엘에게도 재앙을 내리셨다. 만일 모세와 그의 재판관들이 속히 행동하지 아니하면 이 재앙이 이스라엘 온 땅에 퍼질 것이요. 강력한 반응이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고 그들은 회개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전부는 아니다.

“보라, 이스라엘 자손 중 한 사람이 모세 앞과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보는 앞에서 한 미디안 여자를 데리고 그의 형제들에게로 왔는데 그들이 성막 문 앞에서 울고 있더라.”(민수기 25:6). 

 

민수기 25:14은 이 뻔뻔스러운 죄인이 누구인지에 관해 몇 가지 자세하게 말한다.

 

“살해된 이스라엘 사람, 곧 미디안 여자와 함께 죽임을 당한 사람의 이름은 시므리요 살루의 아들이요 중족장이더라. 시므온 사람들이요.”

 

그와 함께 있던 여자는 미디안의 공주였다(민수기 25:15).

성막은 이스라엘 진영의 중앙에 있었다. 시므리는 모세와 성막에서 울고 있는 백성들 앞에서 이 일을 하기 위해서는 진의 중간쯤을 지나 성막을 지나 자신의 장막으로 나아가야 했다. 이스라엘 사람들의 절반은 그가 모세에게 다가가기 전에 그의 행동을 관찰했을 것이다.

모세가 하나님의 심판을 집행하도록 임명한 관원들과 재판관들은 어디에 있었는가? 아마도 그들은 시므온 가문의 방백의 이 아들에 대해 조치를 취하는 것에 대해 염려했을 것이다. 아마도 그들은 시므온 사람들이나 다른 지파들의 추장들의 반응을 두려워했을 것이다. 아마도 그들은 좋은 평가를 받고, 사랑받고, 인정받고 싶었을 것이다.

그래서 이 왕자는 이 여자와 함께 뻔뻔스럽게 수용소를 통과하는 것이 허용되었다. 한 사람을 제외하고는 누구도 그것에 대해 아무것도 하지 않을 것이다.

“제사장 아론의 손자 엘르아자르의 아들 비느하스가 그것을 보고 회중 가운데서 일어나 손에 단창을 들고 그가 이스라엘 남자를 따라 천막 안으로 들어가 이스라엘 남자와 여자의 배를 찔러 두 사람을 찔렀다. 이에 염병이 이스라엘 자손에게 그쳤느니라”(민수기 25: 7, 8).

 

한 사람이 행동을 취하여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처리했다. 그의 강력한 리더십으로 전염병이 끝났다!

비느하스가 모세를 통해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대로 행동했다는 점에 유의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는 자신의 방식으로 처리하지 않았다. 그는 모세가 관리들에게 명령한 것이 무엇인지 알았고, 하나님께서 주모자들을 어떻게 다루기를 원하시는지도 알고 있었다. 그는 여전히 하나님의 정부에 복종하여 이 모든 일을 하셨다. 경건한 지도자는 인도하지만 하나님의 정부에 복종하도록 인도한다. 그러나 그는 조치를 취했다.

민수기 25:10-13은 비느하스의 행동에 대한 하나님의 반응을 기록한다.

“주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제사장 아론의 손자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가 질투할 때에 이스라엘 자손에게서 나의 노를 돌이켰느니라 이는 내가 그들 중에 있어서 질투심으로 이스라엘 자손을 진멸하지 아니하였음이니라 그러므로 말하라 내가 그에게 내 화평의 언약을 주노니 그와 그의 후손이 영원한 제사장 직분의 언약을 얻으리라 이는 그가 그의 하나님을 위하여 열심이 있어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속죄하였음이니라”

 

비느하스가 하나님께 열심이 있었기 때문에 순응의 함정을 피할 수 있었다. 그는 다른 이스라엘 사람들이나 시므온 가문의 생각보다 하나님의 생각에 더 관심을 가졌다. 그는 주저하지 않고 하나님께 순종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는 그의 열망은 다른 사람들을 기쁘게 하려는 열망보다 더 강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 점을 주목하셨다! 하나님은 이 사람이 지도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아셨다.

그리고 우리는 역사가 비느하스의 행동을 어떻게 기억하는지 본다. 시편 106편에서 다윗은 이스라엘 백성의 역사를 회고하며, 이 역사에 대해 비느하스가 “그에게 공의를 베풀어 대대로 의로 여기셨다”(시편 106:30, 31)고 썼습니다. 비느하스는 당시 확실히 인기가 없는 입장을 취했지만, 역사 기록에는 누가 다윗 왕과 다른 경건한 사람들에게 존경받고 받아들여졌는지 기록되어 있다.

좋은 생각을 받기 위해 이 세상에 순응할 필요는 없다! 여러분이 하나님께 순종하고 열심을 내며 하나님 보시기에 옳은 일을 하면 여러분은 받아들여지고 존경을 받을 것이다. 하나님을 최우선에 두라.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올바른 이유로 그러한 갈망을 성취하실 것이다.

우리는 비느하스에게서 어떤 교훈을 배울 수 있는가? 우리는 어떻게 추종자가 아닌 리더가 될 수 있는가?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의 눈에 돋보일 수 있는가? 열심은 중요하다. 하나님을 첫째로 두고, 다른 사람의 생각보다 그분의 생각에 더 관심을 두는 것이다. 비느하스는 또한 하나님의 정부에 순종했다. 그는 하나님께서 하라고 하신 일을 하기 위해 나섰다. 비느하스가 조금만 더 느렸더라면 더 많은 사람이 죽었을 것이다. 그는 하나님께 순종하는 일에 급급했다.

이 구절에서는 또 다른 교훈이 덜 분명하게 드러난다. 그러나 비느하스에게 확실히 도움이 되었을 한 가지는 그가 역사를 통해 배웠다는 것이다.

비느하스는 레위 지파 출신이었다. 출애굽기 32장에는 비슷한 상황, 즉 금송아지 사건이 나오는 또 다른 예가 있다. 이것이 이스라엘 백성과 하나님과의 관계의 시작이었다. 모세가 예상보다 오래 시내산에 올라가자 이스라엘 백성들은 우상숭배에 빠졌다. 그들은 금송아지를 만들어 숭배하고 우상 숭배에 수반되는 음란한 행위를 저질렀다. 모세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이 산 아래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그에게 말씀해 주셔야 한다는 것을 알았을 때 조치를 취했다! 금송아지를 파괴하고 이스라엘 백성에게 마시게 한 것 외에도 그는 이 죄악 행위를 저지른 자들을 다루었다.

출애굽기 32:26에 “이에 모세가 진 문에 서서 이르되 주의 편에 선 자가 누구냐? 그를 나에게로 오게 하라. 그러자 레위 자손이 다 그에게로 모였다.”라고 했다. 여기에 이스라엘의 국가적 죄의 또 다른 상황이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지시를 주셨고, 모세는 이렇게 물었다. 영원하신 분의 편에는 누가 있는가? 누가 하나님 편에 있는가?

다른 사람들이 좋아하고 받아들이고 싶은 욕구가 커질 때, 자신이 내리는 결정이 인기가 없을 수 있는 상황에 처하게 될 때, 다음과 같이 물어보는 중요한 질문이 있다. 당신은 누구 편인가? 당신은 하나님 편에 있는가?

이것이 모세가 물었고 레위 자손이 대답한 것이다. 모세는 그들에게 죄인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지시했고 그들은 그에 따라 행동했다. 금송아지를 든 레위인의 행위는 그들이 성막 봉사자로 선택된 이유 중 하나였다! 비느하스는 이 역사를 알았을 것이며 심지어 살아 있었을 수도 있고 그로부터 배웠을 것이다.

레위인들에게는 놀라운 변화였다. 과거 야곱 시대에 레위와 시므온은 그들 자신의 방식, 즉 매우 세속적이고 기만적이며 폭력적인 방식으로 상황을 처리하려고 했다. 그들은 복수를 위해 마을 전체를 거의 전멸시켰다! 야곱은 이 말을 듣고 그들의 행동을 부끄러워했다. 그들은 야곱에게 가지도 않았고, 하나님께로 가지도 않았다. 그들은 문제를 스스로 해결했다. 야곱은 그들의 사악한 행위 때문에 그의 이름이 다른 나라들에게 “악취”가 되었다고 말했다(창세기 34:30)!

그러나 레위 자손은 그것을 배웠다.  그러나 레위의 후손들은 상황을 반전시켰고, 하나님은 레위 지파를 선택하여 그분의 신권을 세우셨다! 그들에게는 성령이 없었지만 어느 정도 그들은 목자이시며 돌이시며 야곱의 전능하신 하나님께로 돌아섰고, 하나님께서는 무서운 저주를 축복으로 바꾸셨다. 오늘날 우리는 레위가 처음에 저지른 끔찍한 잔인함보다는 제사장직을 기억한다. 하나님은 너무나 기꺼이 용서하신다! 회개하면 우리의 삶이 바뀔 수 있다.

 

하나님은 비느하스의 행위, 레위 사람들의 행위를 보셨다. 그분은 그들의 열심을 보셨고 그들이 하나님 편에 있다는 것을 보셨다. 그리고 그분은 그들이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지도자가 될 수 있음을 보셨다. 그들은 순응에 갇히지 않았다. 그들은 하나님을 옹호했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섰다.

하나님은 당신에게 인도하는 방법을 가르치기를 원하신다. 그분은 자신의 기관을 통해 교회뿐 아니라 내일의 세상을 위한 지도자를 세우신다. 우리가 하나님을 위한 지도자가 되려면 세상에 순응하는 함정을 피해야 한다. 우리는 그러한 욕망을 하나님의 법에 어긋나게 판단하고, 하나님을 따르려는 우리의 열심보다 더 커지지 않도록 함으로써 그러한 욕망을 처리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비느하스의 예에서 배우라. 하나님에 대한 열심을 키우라. 굳건히 하나님 편에 서라. 그러면 당신은 이 세상에 순응하는 함정을 피할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그분을 위한 지도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아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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