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rethren/연(輦)모임 메시지

우리를 위하시는 분

Hernhut 2023. 8. 25. 11:38

 

 

로마서 8:31, 32

 

로마서 8:31은 로마서 8장의 마지막 부분을 시작한다. 바울은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라는 질문을 던진다. 여기서 위하다로 번역된 헬라어 후페르huper는 문자 그대로 를 의미하는 널리 사용되는 헬라어 전치사다. 여기에서 속격의 경우와 함께 사용되면서, 그것은 하나님이 보호하거나 방어할 것을 위로서 있거나 구부리는 것으로 생각된다.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 편이시며 우리의 대의를 은총하시고 발전시키신다는 것을 나타낸다. 만유의 심판자이시며 전능하심으로 만물이 되시도록 부르시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신다면 아무도 우리를 대적할 수 없다. 또한 [바울][우리에게] 반대되는 것처럼 보이는 슬픔과 고통의 세력이 선을 위해 함께 일하고 있다는 사실을 이미 보여주었다. 그 확신에 비추어 바울은 모든 공간과 모든 시대를 들여다보며 '누가 우리를 대적하겠느냐?'고 묻고 있다. 그 대답은 실제로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신다는 질문의 가정에 대한 설명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신다는 것을 아는 것은 바울이 그분의 아들을 아낌없이 대하신 하나님의 인식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아끼다라는 단어인 페이도마이pheidomai는 사도행전 20:29과 베드로전서 2:4, 5에서만 사용되었는데, 이는 늑대가 양 떼를 아끼지 않고 타락한 천사들과 고대 세계에 대한 하나님의 무자비한 심판을 아끼지 않는 것으로 묘사한다. 로마서의 의도는 분명하다. 만일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를 위해 그런 방법으로 그분의 아들을 주신다면, 그분이 우리에게서 어떤 것도 보류하신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계시와 적용

 

로마서 8:31, 32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에 대한 놀라운 선언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분의 아들의 영광스러운 형상을 본받도록 그분의 뜻에 따라 우리를 부르셨다. 하나님은 시간이 존재하기 전에 우리를 지정하셨다! 이 경우 어떤 대적이 우리를 대적할 수 있는가? 하나님께서 우리를 의롭게 하지 않으셨는가? 사실, 그분은 자신의 아들을 아끼지 않으시고 우리 모두를 위해 아들을 내주셨다. “어찌 그와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값없이 주시지 아니하시겠느냐?” , 얼마나 놀라운 선언인가!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신다

 

우리를 위해우리를 반대하는은 누군가의 편에 서겠다는 생각을 담고 있는 상반된 문구다. 우리는 이 구절을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서 계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할 수 있겠는가?”라고 생각할 수 있다. 우리를 위하시는 우리 하나님이 우리 곁에 서 계신다!

 

하나님은 항상 우리를 위하시고 우리와 함께 계신다. 그분은 우리와 함께 계시며 모든 환경에서 우리를 보호하신다. 그분은 우리가 약하든 강하든 우리와 함께하신다. 그분은 우리가 극복하든 실패하든 우리와 함께하신다. 평안과 안전 가운데 그분은 우리와 함께 서 계신다. 혼란과 절망 속에서도 그분은 여전히 우리와 함께하신다. 우리 하나님은 항상 우리 곁에 서서 우리를 보호하시고 모든 것을 값없이 주실 준비가 되어 계신다.

 

아들을 아끼지 않으시는 하나님

 

우리를 위하시고 우리와 함께하시는 사랑의 하나님은 자신의 아들을 아끼지 않으시고 우리 모두를 위해 넘겨주셨다. 이 점은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을 하나님께 드렸을 때 성경의 다른 부분에 반영되어 있다. 그때 주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독생자인 너의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였다라고 말씀하셨다(창세기 22:16). ‘보류하지 않음아끼지 않음이다. 하나님께서 아들을 아끼지 않으셨을 때, 자신을 위해 아들을 아끼지 않으신 것이 아니다.

 

로마서 8:32의 시작 구절인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신 분은 거의 잔인한 느낌을 준다. 확실히, 하나님의 아들은 육신을 입으시고 이 땅에 계셨을 때 아버지는 그분을 결코 애지중지하지 않으셨다. 예수님은 왕족의 삶을 누릴 수 있는 궁궐에서 태어나지 않으셨다. 그분은 이 땅의 왕으로 통치하기 위해 즉위하신 것이 아니었다. 그러한 삶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겪으신 잔인함과는 정반대의 것이다.

 

하나님은 그의 아들에게 잔인하셨다. 그러나 그분은 우리를 위해 그분의 아들에게 잔인하게 대하셨다. 하나님은 그의 아들을 우리에게 주셨고 십자가에서 죽게 하셨다. 그분은 우리를 위해 사랑하는 아들을 버리셨다. 주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실 때 아버지께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고 기도하셨다(마태복음 27:46). 이 기도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아들을 보류하지 않으셨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하나님은 그분에게 그토록 잔인한 삶과 죽음을 아끼지 않으셨다.

 

아끼지 아니한다라는 개념은 사도행전에서도 발견되는데, 양 떼를 아끼지 않는 이리를 묘사한다(사도행전 20:29). 한편으로 아들에 대한 하나님의 대우는 아들 이삭을 아끼지 않은 아브라함과 같았다. 반면에, 그분의 아들에 대한 하나님의 대우는 양 떼 가운데 있는 늑대와 같았다.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독생자를 사랑하지 않으셨다는 뜻은 아니다(마태복음 3:17). 사실, 하나님은 결코 사랑을 거두지 않으셨다. 그러나 우리의 죄를 위해 하나님은 그분의 아들을 제쳐두고 십자가에서 심판하심으로써 그분의 아들을 아낌없이 잔인하게 대우하셔야 했다. , 이것이 아버지께 얼마나 깊은 상처를 주었는지 누가 알 수 있겠는가? 그러나 그분은 우리 모두를 위해 자신의 아들을 넘겨주셨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을 아끼지 않으셨고 우리의 모든 죄가 그분 탓으로 돌렸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린도후서 5:21; 요한복음 1:29).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것

 

하나님은 우리를 위하신다는 말을 오해하기 쉽다. 이 구절을 생각할 때,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얻을 수 있는 백화점과 같다고 상상할 수 있다. 우리가 힘, 지혜, 돈을 원한다면 하나님께서 우리가 원하는 만큼 주실 것을 기대한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이 주시고자 하는 방식이 아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신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하려면 로마서 8:32을 읽고 그분의 선물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그것은 하나님의 아들이 우리 모두를 위해 넘겨졌다고 말한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신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하나님이 백화점이라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분이 우리에게 주신 가장 큰 선물은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이며, 그분의 아들이며, 이 선물을 주심으로 만물이 함께 일한다는 것이다(로마서 8:28). 하나님이 사람에게 주시는 모든 것은 그의 아들을 주시기 위한 것이다.

 

우리에게 무언가가 필요하거나 부족하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그 필요를 채우시고 우리의 부족함을 채우러 오신다는 의미는 아니다. 하나님은 우리 편에 계시고, 우리와 함께 계시며, 기꺼이 그분의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다. 우리에 대한 그분의 소망은 우리가 그분의 아들을 계속 얻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아니다.

 

우리의 체험에 비추어 볼 때, 아버지께서 주시는 이 주는 것은 미래의 어떤 것일 뿐만 아니라 오늘날에도 관련이 있다. 한편으로 우리는 미래의 어느 시점에서 모든 것을 상속받고 완전한 아들이 될 것이다. 반면에, 모든 것이 지속적으로 함께 일하심으로써 우리는 오늘날 하나님의 아들을 얻을 수 있다(로마서 8:28)! 하나님께서는 오직 한 가지 목적, 즉 그분의 아들을 우리에게 주시기 위해 모든 것을 우리에게 값없이 주신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아들을 아끼지 않으시고, 보류하시고, 자비롭게 대우하지 않으신 이유는 우리에게 당신의 아들을 주시기를 원하시기 때문이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한 사랑이며 우리에게 보여주신 사랑이다(로마서 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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