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모데후서 1:13에서 바울은 말한다.
“너는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 안에서, 네가 내게서 들은 온전한 말씀들을 담은 틀을 굳게 붙들어라.”
‘온전한 말씀들’은 ‘건강한 말씀들’로 번역될 수 있다. 두 번역 다 좋은 번역이다. 사람들이 완벽한 몸매가 건강하게 보인다고 말할 때 그것은 건강하다는 의미다. 하지만 건강은 상대적이다. 나는 이제 60살이다. 의사들은 걸을 때 종종 헐떡거리고, 혈압이 오르락내리락하지만, 뇌출혈로 코마 상태까지 갔던 사람치고 여전히 내 건강이 좋다고 말한다. 만약 젊은 남자가 걸을 때 헐떡거린다면, 의사들은 그가 온전한 건강이 아니라고 말할 것이다. 온전한 건강에 대한 절대적인 기준은 없다.
온전한 말씀들, 건강한 말씀들은 무엇인가? 그 말씀들은 그리스도인들을 먹이고, 격려하고, 성장하는 많은 다른 단계에서 성장하도록 돕는다. 디모데는 바울에게서 온전한 말씀의 기준을 들었다. 기준은 개요, 본, 또는 형식으로 번역할 수 있다. 이 말씀은 그림으로 표시하거나 스케치와 같은 어떤 것을 가리킨다. 따라서 이 전체 구문은 온전하고 건강한 말씀의 스케치로 이해될 수 있다.
스케치 같은 건강한 말씀에 무언가가 있다고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스케치가 좋은 번역이라고 생각하는데 그것은 말씀이 나의 것이 되는 것을 가리키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내가 10년 동안 한 건물에서 어떤 형제들과 함께 지냈다고 생각해 보라. 처음에는 그 형제들이 많은 미덕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서서히 나는 그들이 많은 결점이 있고, 단점들이 있음을 볼 것이다. 나중에는 그들의 단점들이 그들의 미덕인 것을 알 것이다. 이것이 스케치다. 10년 전 나는 이 형제들을 스케치했다. 10년 후 그들을 더 많이 안다. 그 스케치는 점점 더 분명해졌다. 많은 것이 화폭에 담겼다. 하지만 나는 10년 후에는 그 스케치가 훨씬 더 풍성해질 것이라고 믿는다. 매번 바울은 디모데에게 말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무언가를 스케치했다. 얼마나 놀라운 것인가!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주님께서 그들 안에 그분의 말씀을 스케치하시지 못하게 한다.
‘그림은 천 마디 말보다 낫다’라는 말이 있다. 성경은 그리스도인 안에서 그림이 되어야 한다. 재료로서 그리스도인들 안에 이 스케치가 되지 않고는 주님을 섬기는 시간은 헛된 것이 된다. 내게 그런 스케치가 되지 않았다면 그 시간을 낭비하고 허비하는 시간이 됐을 것이다. 만약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계속해서 시간을 낭비한다면,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 결국 모임에서 감독자 형제들을 반대하는 말을 할 것이다. 이렇게 하는 것은 시간을 낭비한 그리스도인이 폭풍을 견뎌낼 수 있는 그만의 재료, 즉 스케치 된 온전하고 건강한 말씀이 없기 때문이다. 이것이 내가 형제들에게 단순히 설교하는 기술보다는 그들 자신의 사역을 발전시키라고 계속 권하는 이유다. 설교에만 집중한다면 플랫폼(강단)이 필요하다. 플랫폼이 필요하므로 결국 다른 사람과 맞서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플랫폼을 잃게 된다. 플랫폼을 잃을 의향이 있는가? 플랫폼 없이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나? 그리스도인은 플랫폼을 위해 사는 게 아니다. 그리스도인은 주님을 따른다. 그리스도인은 플랫폼을 위해 살 수 없는 생명이다. 그리스도인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서 있거나 다른 곳으로 가기 위해 플랫폼을 버리기 쉬어야 한다. 타협이 있어서는 안 된다. 타협은 형제자매를 희생시킬 뿐이다. 그들을 희생시키고 그것이 일반적인 이익을 위한 것이라고 주장해서는 안 된다. 그리스도인들은 일반적인 이익은 없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의 유익만 있을 뿐이다. 일반적인 이익을 고려하여 타협한다면, 교회 안에서 정치를 하는 것이다. 이것이 온전한 말씀의 스케치를 하는 법을 배워야 하는 이유다. 바울이 디모데에게 한 말은 디모데에서 그의 삶을 지배하는 그림이 되었다. 그리스도인들 모두는 그런 사진에 의해 통제되어야 한다. 그리스도인이 주님과 하나님의 경륜에 대해 말할 때, 각자는 이 그림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 그림은 각 사람이 직접 그린 것이 아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인 각자 안에 구성된 것이다. 이 그림은 단순히 성경 한 구절, 한 장에서 그려진 것이 아니다. 그것은 성경 전체를 그린 그림이다. 성경 전체가 그리스도인 각자 안에서 그림, 스케치가 된다.
누군가가 나에게 어떤 성경 구절을 가장 좋아하는지 물어볼지도 모른다. 이것은 이상한 질문이다. 그것은 남편이나 아내가 어떤 부분이 가장 마음에 드는지 묻는 것과 같다. 내 아내가 어떠냐고 묻는다면, 나는 ‘그녀는 사랑스럽다.’라고 대답할 수 있다. 하지만, ‘사랑스럽다’라는 이 단어는 사실 내가 알고 있는 많은 것들과 여전히 채워야 할 많은 것을 가진 큰 그림이다! 많은 그리스도인은 어떤 구절을 가장 좋아하는지 말하고 싶어 한다. 다만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그리스도인들 안에 한 폭의 그림이 되었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스케치를 하고 있는가? 이 그림은 그리스도인들을 통제한다. 만약 스케치하고 있는 그림이 있다면, 말할 것이다.
“나는 사진을 본 적이 있습니다. 이 비전 때문에 하나님께 내 생명을 드리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을 ‘형식’이라고 부르든, ‘본’이라고 부르든, ‘개요’라고 부르든 상관없다. 온전한 말씀의 형식은 바울의 말이 그림이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바울은 하나님의 말씀을 말했고, 디모데는 자신을 통제한 그림을 받았다. 이 그림을 비전이라 부른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비전을 본다. 비전은 그리스도인의 삶을 통제한다. 이제 그리스도인은 그가 들은 말씀이 그에게 그림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나님, 하나님의 맏아들, 하나님의 존재, 그분의 행하심, 이루심, 경륜, 움직임, 영원한 목적과 영원한 목적의 나타냄에 관한 전체 그림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이 그림이 있다면, 그리스도인의 삶이 매우 가치 있다는 것을 느낄 것이다! 무엇보다도 이 그림은 그리스도인의 헌신이 된다. 사람들이 사랑에 빠지면, 그들은 그들이 사랑하는 사람의 내면을 갖게 된다.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할 때, 그 사람이 너무 사랑스럽다고 느낀다. 하지만, 두 사람이 너무 오랫동안 떨어져 있으면 그림이 흐려지고, 쉽게 약속을 잊을 수 있다. 어떤 작가가 젊은 커플을 헤어지게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들을 헤어져 있게 하는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이러한 분리는 안에 있는 서로에 대한 그림을 사라지게 한다. 내가 왜 이걸 말하는가? 하나님께서 주신 그림으로 계속 들어가라고 조언하고 싶다. 만약 그리스도의 말씀을 떠나게 되면, 그것은 흐릿해 지고 결국 그것을 잃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인이 기도하지 않거나 모임에 가지 않으면 반년 후에 비전을 잃게 될 것이다. 하지만, 놀라운 것은 그가 말씀 안으로 돌아왔을 때, 비전 또한 돌아올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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