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후서 11. 12장에서 바울은 그리스도의 권능이 자신의 약점 때문에 그분께 달려 있다고 말했다. 왜 그는 약했나? 그는 하나님, 그분의 경륜, 그분의 교회를 위해 살았기 때문이었다. 바울은 말했다.
“그들이 그리스도의 일꾼이냐? 내가 어리석은 자처럼 말하건대, 나는 더욱 그렇다. 왜냐하면 내가 수고를 더욱 넘치도록 하였고, 매도 셀 수 없게 맞았으며, 감옥에도 더 자주 갇혔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기 때문이다. 내가 유대인들에게서 마흔에서 하나 뺀 매를 다섯 번 맞았다. 세 번 몽둥이로 맞았고, 한 번 돌로 맞았으며, 세 번 파선을 당하여 한밤과 한낮을 깊으면 속에 있었다. 내가 자주 여행하면서, 물들의 위험과 강도들의 위험과 내 동족들로 인한 위험과 이교도들로 인한 위험과 도시에서의 위험과 광야에서의 위험과 바다에서의 위험과 거짓 형제들 가운데서의 위험을 당하였다.”(고린도후서 11:23–26).
이 위험들 가운데 거짓 형제들은 가장 위험한 요소였다. 바울이 ‘거짓 형제’라고 말한 것이 무슨 뜻인지 이해하기 어렵다. 그것은 교회 안에 있으면서 진정으로 믿지 않는 사람들을 말한다. 그들은 진정한 형제가 아니다. 그러나 여기서 바울은 믿는 자들이지만 그리스도에게 초점을 맞추지 않는 자들을 가리키는 것 같다. 이것이 그들이 바울에게 직면할 가장 위험이었던 이유이다. 그들은 같은 신앙을 가졌지만 그들의 초점은 그리스도가 아니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거짓 형제들처럼 행동했다. 바울이 갔던 어디에서나 그들이 따랐기 때문에 바울의 삶은 아주 어려웠다. 바울과 베드로는 바울이 이방인들에게 가고, 베드로는 유대인들에게 가는 것에 서로 동의했다(갈라디아서 2:7). 하지만 바울은 항상 이 동의를 어겼다. 그는 복음을 전파하러 시나고그(유대교회당)에 가는 것을 좋아했다. 그가 어떤 곳에서 복음 전파를 끝냈을 때 즉시 그 거짓 형제들이 등장했다. 그들은 할례를 받아야 한다는 것, 절기를 지켜야 한다는 것, 1년에 3번은 예루살렘에 가야 한다는 것 등을 예수님을 믿는 유대인들에게 말했다. 이다음에 바울을 만나면 나는 그에게 왜 약속을 어기고 유대교회당에 갔는지 묻고 싶다. 아마 그는 대답할 것이다.
“시나고그에서 복음 전파하는 것이 더 쉬웠다. 유대인들은 메시야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은 교육을 받았다. 나는 그들에게 말해야만 했다. ‘메시아는 오셨고, 그분이 예수 그리스도시다’”
그가 에베소처럼 이방인들에게 갔을 때 복음 전파하기에는 쉽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람들은 복음을 전파하고 있을 때 비판하고 논쟁하고 욕하기 일쑤였다. 열매는 나타나지 않았다. 물론 바울에 대한 추측은 내가 한 추측이다. 어떤 경우에도 그는 거짓 형제들의 위험이 있었다. 바울은 계속해서 말했다.
“또 지치고 아팠고, 여러 번 밤을 새웠으며, 굶주리고 목말랐고, 여러 번 금식하였으며, 추위를 당하고 헐벗었다.”(고린도후서 11:27).
얼마나 힘들었던지! 주님의 모든 종은 이렇게 살 각오를 해야 한다. 대개의 그리스도인이 바울과 같지 않다는 것이 안타깝다. 오늘날 대개의 그리스도인은 바울의 활력있는 영을 가지고 있지 않다. 이것은 그리스도인의 사역이 영향력이 없는 이유다. 오늘날 바울의 존재가 얼마나 높았고 그의 삶이 얼마나 가치가 있었는지 알 수 있다! 그는 머물 곳이 없었다. 그는 먹을 음식과 입을 옷이 변변치 않았다. 하지만, 이러한 것들이 그가 주님을 섬기는 것을 방해하지는 않았다. 내가 그런 생활을 해본 체험에 따르면 아마 생활하는 데 상당히 불편했고, 어려움이 있었을 것으로 보이지만 그는 그런 일에 구애받지 않았다.
“바울은 이기는 자였다.”
이렇게 그리스도인이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면 바울을 말할 것이다.
“그런 것들은 내 짐을 덜어주는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바울은 계속 말했다.
“밖에 있는 그 일들 외에도, 날마다 내게 닥치는 것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다.”(고린도후서 11:28).
이것은 작은 일이 아니다. 교회는 축복을 받았다. 교회는 공격을 받았다. 교회는 세워졌다. 교회는 흔들렸다. 바울은 그들을 모두 돌보았고, 더구나 그 형제들을 돌보았다. 그는 또 말했다.
“누가 약해지면, 내가 약해지지 않느냐? 누가 죄를 지으면 내가 애태우지 않느냐?”(고린도후서 11:29).
그는 말하지 않았다.
“누가 약해지면 내가 꾸짖지 않더냐? 누가 죄를 지으면 내가 책망하지 않더냐?”
그리스도인들이 이 구절을 읽을 때 진정으로 마음에 새긴다면 그들은 참된 주님의 종들이다. 마지막으로 바울은 말했다.
“내가 꼭 자랑해야 한다면, 나의 연약한 것들에 관한 것들을 자랑하겠다.”(고린도후서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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