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과 음료/새벽이슬처럼

제도화되지 않음

Hernhut 2019. 6. 6. 11:26


 

큰 나무가 되는 것은 생리적으로 교목과 관목의 경우에만 작은 종자에서 나무가 된다. 이것이 나무의 생리다. 작은 초본은 초본의 생리가 있다. 하지만 가장 큰 그리스도인 사역들이 가지는 모든 것은 생리적으로 제도화가 된다. 그것이 그들이 살아남는 방법이다.

예를 들어 요한 웨슬리는 말을 타고 마을 사이를 오가며 매일 3번 집회를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침에는 이 마을, 오후에는 저 마을, 저녁에는 또 다른 마을로 오가면서 복음을 전했다. 매년 약 천 번의 메시지를 전했다. 이런 방식으로 그는 작지만 많은 집회들을 일으켰다. 그들은 소수의 양무리들이었다. 그 작은 소수의 무리들은 거대한 감리교교파로 일으켜졌다. 요한 웨슬리의 마을마다 다니며 복음을 전한 것은 아주 귀한 일이다. 하지만 감리교파가 된 것은 제도화가 되는 것이다. 이것은 위험한 것이다.

나는 꿈이 있다. 나는 곧 한국의 주요 도시에 주님에 대한 강한 증인들을 보기 원한다. 각 도시의 증인들이 적어도 주변 도시 10곳의 교회들을 돌보기를 원한다. 많은 여행객들이 이곳저곳에서 예배하는 교회가 산출되기를 원한다. 동남아, 중국, 중앙아시아, 유럽, 러시아, 아프리카, 아메리카 등지에도 이런 교회들이 산출되기를 원한다.

이것이 야심차게 들릴지 모르지만 이 모든 교회는 적은 양무리요, 소그룹 모임이 될 수 있다. 어떤 모임도 절대 위계를 세워 제도화시키지 말아야 한다. 아무리 적은 무리더라도 우리의 교회가 아니라 주님의 교회다. 그러므로 오늘날 교회에서 주는 어떤 직책도 필요치 않다. 어떤 사람이 어떤 제도화를 꿈꾸는 야망이 있다면 그는 가라지보다 더 나쁘다. 그들은 교회의 본성을 작은 겨자씨에서 큰 나무로 바꾸려고 애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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