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과 음료/새벽이슬처럼

종교적 실행

Hernhut 2019. 6. 7. 16:36


 

어떤 형제들은 매우 신실하다. 하지만 어떤 종교적 실행으로 해를 입었다. 한번은 아미쉬공동체에 방문한 적이 있었다. 나는 기회를 잡아 어떻게 아미쉬 사역을 선택했는지를 물었다. 그들은 교구 안에서 모든 자격을 갖춘 남자들 중에서 몇 년마다 제비를 뽑아 책임을 맡긴다고 말했다. 그들이 느끼는 이런 선택방식이 하나님께 달려 있다는 것이다. 선택된 사람이 누구든 그가 하던 사역을 그의 임기 안에 끝내야 하고 공동체의 목사로서 섬겨야 한다. 인기가 끝나면 새로운 목사가 선택되고, 자신의 일터로 돌아간다. 나와 함께 이야기 했던 사람들은 이와 같이 선택이 있을 때 그들은 서로 선택되지 않기를 기도한다고 했다. 그는 아주 순수했지만 그리스도가 없었다. 오직 그들에게는 실행만 있었다. 그들의 많은 실행들은 거대한 아미쉬 나무를 산출했다.

로마카톨릭교회와 많은 교파는 오늘날 거대한 나무다. 그들은 전문화되고, 제도화 된 실행으로 가득 차 있다. 그들 중 몇을 만나 그들에게 당신은 그리스도인입니까?”하고 묻는다면 그들은 카톨릭입니다, 혹은 ㅇㅇ교인입니다.”라고 답할 것이다. 거의 다 그렇게 답한다. 이미 그들은 나무가 되었다는 말이다. 나무는 지체들이 아니다. 나무는 그 나무의 가르침이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도 가톨릭 교회, 교파와 같은 기관이 되게 할 수 있다. 그들에게는 복음이 필요하다. 종교적 실행은 복음을 막는다. 종교적 실행이 복음과 유사해 보이지만 복음은 아니다. 종교적 실행은 각 교파마다 그 가르침이 있다. 그 교파의 가르침은 복음의 가르침이 아니므로 변형된 나무를 산출한다. 이 나무는 하나님께서 좋아하지 않으신다. 교회에 해를 끼치는 가르침은 아주 나쁜 것이다. 하지만 모두가 귀하다. 순수한 그리스도의 복음으로만 그들과 달콤한 교제를 가질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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