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과 음료/새벽이슬처럼

짧은 수명

Hernhut 2019. 6. 7. 00:30


 

겨자는 한 계절만 자라고, 한번 수확한다. 그 수명은 짧다. 새로운 종자가 매년 다시 뿌려져야 한다. 나무는 여러 해 동안 자라고 매년 나무에서 나는 과실을 수확한다. 심지어 어떤 나무는 수천 년 동안 살아남아 있다. 이 나무들은 로마카톨릭과 같다. 로마카톨릭은 1,500년 넘게 지탱하고 있다.

나는 겨자가 수명이 짧다는 것에 행복하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그분의 사람들의 새로운 각 세대들과 사역하시기를 좋아하신다는 것을 보여준다. 교회의 어린 사람들은 새로운 세대다. 하나님은 그들과 사역하시는 것을 좋아하신다. 나이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자신이 책임자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현명하지 못하다. 나이가 많기 때문에 책임을 맡은 자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주님의 움직이심을 좌절시킬 뿐이다. 아무리 영적이라 해도 영원히 지속할 수는 없다. 한 세대가 사라지기 시작하면 주님은 다른 세대를 일으켜 세우신다. 모두는 한 계절만 버틸 수 있을 뿐이다.

이것은 냉정한 말이다. 주님께서 쓰시길 바란다면 진지해야 한다. 사람은 단 하나의 삶만을 살고, 한 세대의 일부일 뿐이다. 어떤 그리스도인들이 자기를 드리기를 거절하고 영적인 생활에 부주의하게 되면 주님은 한 세대의 일부로 여기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분은 전체적으로 그들을 보지 않을 수도 있다.

한 세대가 나이가 들면 주님은 또 다른 세대를 일으키실 것이다. 새로운 세대의 영적인 자들이 교회에 많은 도움을 주기 시작할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기성세대를 기피하거나 버리지 못한다. 그들이 기성세대를 저버리면 자기들을 도울 많은 체험과 영적인 무게들을 저버리는 것이다. 내가 어디에 있든지, 어딜 가든지 그 교회에 축복이 되게 할 생각이다. 심지어 나는 다음 세대가 그들이 추진해 가려는 것을 기대하고 있다. 봉사자들과 체험이 있는 성도들 모두가 나와 같은 태도를 가져야 한다. 그리스도인들이 이렇게 할 수 있는 이유는 목표가 그리스도뿐이기 때문이다. 많은 그리스도인은 자신이 아닌 많은 사람을 그리스도께 인도하기를 원한다. 아무도 교황이나 신부가 되기를 원치 않기 때문에 신세대나 구세대가 함께 일할 수 있다. 모든 사람이 유명하고, 잘 알려진 지도자를 알고 있어도 그리스도를 모르면 그 사람들은 실패한 것이다. 그리스도는 교회의 본성이자 본질이시다.

신약성경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교회는 아주 단순하다. 모든 교회는 그리스도를 머리로 표현하고, 각 교회들은 그분의 몸으로서 서로 교제를 한다. 주의 종들은 성도들을 섬기고, 교회들 가운데서 그분과 함께 걷는다.

그런데 이 비유에서 교회의 단순한 본질이 변했다. 많이 뿌려진 겨자는 커다란 한 그루의 나무가 되었다. 이 일이 일어나면서 주님은 개별적인 교회가 아니기 때문에 그 교회들 가운데서 더 이상 걸을 수 없으시다. 주님은 교회들과 분리되어 밖에 서 계셔야 한다(3:20). 교회의 본성이 변하는 것은 아주 심각한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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