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과 음료/복음칼럼

우리의 약함을 아는 것과 그리스도를 얻는 것

Hernhut 2018. 5. 28. 22:10

주님은 우리가 에노스라는 것을 알기 원하신다. 예를 들어 하나님은 우리의 성격과 기질이 엉망으로 자라게 하신다. 우리는 우리의 성격과 기질이 반복적으로 학습해서 우리가 엉망이라는 것을 잃어버린다. 그런 후에도 오랜 시간 엉망인 성질에서 벗어나기를 기도한다.

주님, 제가 어떻게 수많은 시간 동안 당신을 사랑할 수 있을까요? 어떻게 제 성질이 너무 자주 엉망이 될 수 있나요?”

하지만 주님은 우리가 에노스라는 것을 배울 때까지 우리가 일하도록 하지 않으신다. 주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실 것이다.

넌 내가 네 성질머리에서 너를 자유롭게 하기를 원한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할 수 없다. 내가 너를 네 성질에서 자유롭게 하면 너는 다시 네가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이제 너는 네가 에노스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우리의 약함에 대한 깨달음은 우리가 주님을 부르는 데 있다. 결국, 우리는 게난이 될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주님께 말할 때까지 우리의 성질과 대항해 분투할 수 있다.

나는 할 수 없어. 난 너무 약해.”

그 과정에서 결국, 우리는 어떤 것을 얻는다. 주님은 우리에게 계시를 주실 수 있다. 주님은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다는 것을 보여 주실 수 있다. 죽은 사람은 성질이 없으므로 우리는 우리의 성질에서 자유로움을 받을 필요가 없다. 우리의 성질은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기 때문에 이미 치료받았다. 그분께서 이것을 우리에게 보여 주실 때 우리는 어떠한 것을 얻는다. 우리는 게난의 체험 안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가 에노스라는 것을 깨달은 후에만 게난을 체험할 수 있다.

우리는 어떻게 게난이 되고, 진짜 영적인 얻음을 갖는가? 우리가 약하고, 제한을 받는다는 것을 알 때뿐이다. 우리가 생명의 노선에서 성장 과정을 거치면서 하나님은 우리가 약함을 체험하게 하실 것이다. 우리는 모두 약하다. 우리가 약하다는 것은 우리의 성질이 될 수도 있다. 우리가 약하다는 것은 우리의 느슨함이 될 수도 있다. 우리가 약하다는 것은 주님 외에 어떤 것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이 될 수도 있다. 모든 이들은 어떤 종류의 약함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의 약함으로 너무 절망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지나치게 신경 쓰거나 좌절감을 느끼지 말아야 한다. 오히려 우리의 반응은 우리의 약함 중심에서 주님께 부르짖어야 한다. 우리는 주의 이름을 불러야 한다. 이것이 에노스가 되는 것이다. 우리는 순수하게 주님께 부르짖을 수 있다.

주님, 저는 당신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약함이 실제로 우리의 영적인 얻음을 위한 것임을 알아야 한다. 우리가 어떻게 제한을 받았고, 우리가 부서지기 쉽다는 것을 알 때 우리의 기도가 달라진다. 그런 후 우리는 주의 긍휼을 위해 기도하는 시간을 더 보낼 것이고, 우리의 성공에 관한 좋은 느낌이 들지 못할 것이다. 우리는 주의 임재 안에서 시간을 갖고, 우리가 뽐낼 수 있는 영적인 활동을 덜 할 것이다. 그런 후 에노스는 우리의 체험 안에서 게난을 낳았을 것이고, 우리는 진짜 영적인 얻음을 가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