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과 음료/복음칼럼

두 번째 가리개 — 본질 안에서의 섞임

Hernhut 2018. 4. 5. 12:01

또 너는 청색과 자주색과 주홍색 실과 가늘게 꼰 아마 실로 바느질을 해서 장막 문에 달 현수막을 만들고 시팀나무로 그 현수막을 달 기둥 다섯 개를 만들어 그것들을 금으로 입히며 그것들의 갈고리들도 금으로 만들고 또 그 기둥들에 쓰기 위해 밑받침 다섯 개를 놋으로 부어 만들지니라.”(26:36-37).

두 번째 가리개는 첫 번째 가리개와 전혀 다르다. 원칙적으로 가리개의 재료는 같다. 하지만 두 번째 가리개는 바깥마당 가리개의 네 기둥과 대조적으로 아카시아(시팀)나무 기둥 다섯 개가 있다.

바깥마당 가리개는 복음을 전파하는 것을 상징한다. 아무리 복음이 전파되었어도 그리스도는 숨겨진 다섯 번째 기둥이 필요하다. 다섯 번째 기둥은 교회의 증거(간증)나 구원 안으로 사람들을 데려오는 그리스도인이다.

그 이유를 사도 바울은 말했다.

그런즉 그들이 자기들이 믿지 아니한 분을 어찌 부르리요? 자기들이 듣지 못한 분을 어찌 믿으리요? 선포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10:14).

그리스도는 문이시다. 하지만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파할 때 우리는 그분께서 사람들을 초대하도록 쓰시는 다섯 번째 기둥이 된다.

바깥마당의 가리개는 그리스도께서 함께 일하도록 숨기신 이를 더하신다. 그래서 사람들은 복음을 듣고, 의의 구속을 누리려고 바깥마당 안으로 들어온다. 하지만 성소의 가리개는 아무것도 숨겨지지 않은 다섯 기둥이 있다. 이것은 그리스도만이 성소로 대표된 유기적 구원을 이루실 것을 보여준다. 이 구원은 생명 안에서 우리가 성장하는 것이요, 하나님의 유일하신 사역이다. 떡 상으로 대표된 그리스도와 금등대로 대표된 교회 생활을 통해 이뤄졌다. 그리스도만이 풍성한 유기적 구원이 되도록 우리 안으로 그분 자신을 불어 놓으실 수 있다.

두 번째 가리개의 다섯 기둥은 하나님의 신성한 본성을 대표하는 금으로 덮여있었기에 여기서 하나님께서 쓰시는 교회 생활은 단지 사회적일 수 없다. 우리는 금이 아닌 어떠한 것도 교회 생활 안으로 가져오지 말아야 한다. 교회 생활은 신성한 요소로만 채워져야 한다.

어떤 때 우리의 찬양이 기쁘고, 즐겁고, 어떤 때는 은혜롭고, 감동이 있고, 진지해진다. 전자는 우리를 소리를 높이고, 웃음을 갖게 하고, 후자는 우리를 눈물 흘리게 한다. 하나님이 계시다면 어떻게 찬양하든 문제가 없다. 가끔 메시지 전달하는 형제가 정말 카리스마적이지만 듣는 이들이 단지 영적인 오락을 누리고, 하나님께로 오지 않는다면 그 메시지는 시끄러운 징()이요, 쨍그랑거리는 꽹과리(심벌즈)”(고전 13:1)일 뿐이다. 그것은 종교적인 것이 되거나 비종교적인 것이 되는 문제가 아니다. 우리가 의도적으로 비종교적인 것이 되려고 하지만 하나님 없이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각 기둥은 금 뚜껑을 꼭대기에 씌웠다(36:38). 이것은 모든 증거가 신성하다는 것을 가리킨다. 사람들이 안으로 들어올 때 그들은 그들이 보는 것을 의식해야 하고, 하나님을 느껴야 한다. 각자는 자기 마음의 은밀한 것들이 이렇게 드러나게 되므로 그가 얼굴을 대고 엎드려 [하나님]께 경배하며 또 진실로 [하나님]께서 너희 안에 계신다.” 고 느껴야 한다(고전 14:25).

다섯 기둥 모두 금 갈고리와 막대기(빗장)이 있다. 이것은 유기적 구원 안에서 섬기고 성장하기를 갈망하는 예수님을 사랑하는 이들이 그리스도와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이들과 연합해야 함을 가리킨다. 우리는 함께 그리스도를 추구한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썼다.

또한 청년의 정욕을 피하고 오직 순수한 마음으로 []를 부르는 자들과 함께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따르라.”(딤후 2:22).

우리는 그분의 이름을 부름으로 주님과 연합한 이들과 함께 부정적인 것을 피하고 긍정적인 것을 추구해야 한다. 교회 생활이 얼마나 멋진가!

우리가 성소를 대표하는 유기적 구원을 누리는 예수님을 사랑하는 이들이 되려면 우리는 그리스도를 위한 순수한 갈망이 있어야 하고, 그리스도를 유일한 목표로 세우고, 그리스도를 얻고, 교회 생활을 다스리시는 성령을 살아내야 한다. 물론 너무나 자주 우리가 실패하지만, 우리의 목표와 목적이 옳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의 첫사랑 그리스도께 빠르게 회개하고, 돌이키는 것을 배운다.

두 번째 가리개의 다섯 기둥은 놋 밑받침 다섯이 있다. 물론 놋은 하나님의 심판을 상징하기 때문에 바깥마당에 있는 번제단은 놋으로 만들어졌다. 그러므로 여기의 놋 밑받침은 우리가 아무리 영적이어도 우리의 성장과 건축이 여전히 하나님의 심판 아래에 사는 것이 필요함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바울은 기록했다.

내게 주신 은혜를 힘입어 너희 가운데 있는 각 사람에게 내가 말하노니 각 사람은 마땅히 생각할 것보다 더 높이 자기에 대하여 생각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믿음의 분량을 나누어 주신대로 맑은 정신으로 생각하라.”(12:3).

바울은 우리가 우리 자신을 높여 생각하기 너무 쉽기 때문에 이렇게 쓴 것이다. 우리가 특히 잘할 때 놋으로 세워진다는 것을 잊기 쉽다. 우리가 구원으로 몇 명을 인도하고, 우리의 영광스러운 증거로 온 교회가 들썩거린다면 우리 발바닥까지도 금이요, 천사들도 우리에게 감사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그 후 하나님은 다른 형제들을 통해 우기 자신이 그렇게 높다고 생각하지 않도록 우리를 상기시키신다. 우리는 여전히 은혜로 구원받은 죄인들일 뿐이다. 다시 한번 우리는 우리가 하나님의 심판인 놋에 세워지고 있음을 알게 된다. 이것이 역시 우리의 구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