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퍼런스/모세

신성한 약속을 전달하는 사람(12)

Hernhut 2017. 7. 25. 00:30

 

제사장에 속한 섬김

성막은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체험을 대표하는 그림이다. 많은 사람들은 입구를 통과한다. 말하자면 그들은 구세주로서 그리스도를 영접했고, 회복되었고, 교회모임에 참여하지만 그들 중 대부분은 제단 위에 없다. 다시 말해 모든 구원 받는 이들은 완전히 헌신하지 않는다. 헌신한 이들 중 모두 자신들이 제사장으로서 섬김의 체험을 추구할 필요가 있다고 깨닫지 못한다. 그러므로 모든 믿는 이들이 제사장이 되어야 하는 반면 오늘날 제사장직분은 아주 부족하다.

 

섬김의 두 방면

제사장은 먼저 대야에서 씻어야 했다. 거기서부터 그는 두 방향 중 한 곳으로 갔다. 각 방향은 섬김의 다른 방면을 대표한다. 한 길은 자신들의 제물을 가지고서 형제들을 섬기도록 제단으로 보내졌다. 그것은 오늘날 우리 동료 믿는 이들이 그리스도를 추구하고 알아가는 데 있어 그들을 방해하는 것 무엇이든 이기도록 돕는 것이다. 제사장으로서 우리는 영적 여행을 시작하고, 헌신하도록 하나님의 임재 안으로 들어가도록 다른 그리스도인들을 도와야 한다. 베드로는 이렇게 우리 []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의 영존하는 왕국에 들어감을 주께서 너희에게 풍성히 베푸시리라.”(벧후1:11)라고 기록했다.

 

다른 한 길은 제사장들이 진설병, 등잔대, 분향소(향로)를 가지고 거룩한 곳으로 보내졌다. 결국 그들은 지성소의 하나님의 궤에 들어갔다. 우리의 체험으로 이것은 우리의 성장과 전진을 위해 주님 안에서 싸우는 것이다. 제사장에게 속한 섬김의 두 다른 방면이 있었지만 정말 감사하게도 그들은 함께 묶여 있었다.

 

우리는 우리가 자라기 위해 진설병으로서 그리스도를 먹는 것을 체험하려고 지성소에 들어가는 것을 싸울 필요가 있다. 우리는 우리가 등잔대가 될 수 있음으로 다른 그리스도인들과 함께 누리기 위해 지성소에 들어가기를 싸워야 한다. 이 등잔대는 주의 증거를 빛 비춰 다른 이들과 합병하게 한다. 분향소(향로)가 되는 것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와 섞이고, 그분의 목적을 위해 그분과 하나 되게 하는 것이다. 이 체험의 결과 우리는 하나님의 가장 깊은 체험을 대표하는 그 궤를 가지고서 모든 것 중의 가장 거룩한 곳, 지성소에 들어갈 수 있다. 그런 후에만 우리가 우리 동료 믿는 이들에게 섬김으로 우리 자신을 줄 자격이 있는 것이다.

 

섬기는 생활로 하는 유일한 체험

구약성경에서 섬기는 제사장들만이 거룩한 곳을 체험할 수 있었고, 대제사장들만이 지성소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가 그리스도에 대해 더 깊은 체험을 하려한다면 신약성경 제사장들로서 섬기는 것을 배워야 한다. 사실상 우리는 우리가 이 방법으로 섬기지 않는다면  바깥뜰에 있는 대야의 실제를 체험조차도 못할 수 있다.

 

많은 이들이 섬김에 대한 자신들의 이해에 따라 섬기지만 그것은 하나님께서 갈망하시는 섬김이 될 수 없다. 우리는 사람들의 문화와 생각을 따라 섬기고, 그리스도를 따라 섬기지 않는다. 우리가 맛있는 음식이 있는 사랑 넘치는 사회생활 속으로 데려만 간다면 그것은 그리스도에게 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신약성경 제사장의 섬김이 아니다. 물론 우리는 냉정한 교회생활을 원치 않고, 애찬이 도움이 되지만 우리는 항상 사람들을 섬기는데 실제적으로 관심을 두어야 한다.

 

오래 전 부산에 사는 한 형제가 내게 자신은 자주 그리스도인들이 큰 집회에 참여하기 위해 기차로 1.5시간을 여행했다고 말했다. 그가 설명했던 곳은 여러 곳이었는데 그곳에는 수많은 이들을 이끌기 위해 어떤 것들이 있어야 했다. 그들은 좋은 음악이 있었고, 훌륭한 메시지가 전달되었으며. 그리고 맛있는 음식이 있었다. 하지만 모든 것을 행해지고 있었을 때 이 형제는 그와 함께 이야기하려는 사람을 아무도 찾을 수 없었다. 그가 교제를 갈망하여 일어섰지만 아무와도 교제할 수 없었다. 아무도 그리스도의 더 깊은 것들을 추구하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들이 거기에 있었어도 그들은 그리스도의 더 깊은 것들 안으로 이 달콤한 형제를 데려가기를 갈망하지 않았다. 나는 우리가 같은 것을 쉽게 범할 것을 두려워한다. 우리는 자주 종교적인 활동을 하고, 진정한 섬김을 드리지 못한다.

 

우리는 생각하는 것으로 우리 자신에게 뇌물을 줄 수 있다. 우리가 하나님도, 사람도 섬기지 않고 있을 때 우리는 이 둘을 섬기고 있다고 생각한다. 사회적인 활동과 영적 오락으로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는 것에 불과한 것으로는 사역하는 것이 아닐 것이다. 실제 봉사는 실제 제사장들을 요구한다. 제사장들은 그들 자신들이 더 깊은 영적 체험을 하려고 드린다.

 

본으로서 섬김

자신의 영적 성장을 위해 싸우는 제사장들만 같은 것을 행함으로 다른 사람들을 도울 수 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더 젊은 믿는 이들을 죽게 하신다면 그들이 우리가 있는 곳을 지나 성장하기란 어려울 것이다. 이것은 냉정한 생각이다. 그들이 그리스도 외에 어떤 프로그램을 의지하고, 활동을 의지하는 우리를 볼 때 그들은 같은 것을 배울 것이다. 그들이 우리가 하지 말아야 할 것으로 시간을 낭비하는 우리를 보고, 우리의 느슨한 말을 들을 때 이것은 그들의 본이 된다. 우리는 그들의 도움과 제한이 되고, 이 도움과 제한이 우리의 2세가 힘든 시간을 가질 수 있는 이유요, 내가 가끔 그들 자신에게 어떤 것을 확장하고, 산출하도록 격려하는 이유다. 이런 방법으로 주님께서 긍휼을 가지고 계신다면 그들은 돌파시킬 수 있고, 실제로 성장하기 시작한다.

 

성막체험은 섬기는 이에게만 속해 있다. 우리가 우리의 섬김으로 전진하면 할수록 우리를 따르는 이들이 같은 것을 하기 더 쉽다. 우리의 삶이 영적이면 영적일수록 우리를 보는 이들은 같아지기 더 쉽다. 모든 교회에 인도하는 이들 모두가 이런 본이 되기를 소망한다. 그들이 추구한다면 교회에 있는 모든 이들은 전진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은 달콤한 교회생활을 누리는 것을 바깥뜰 안과 밖에서 헤매고 다닐 것이요, 주님은 그들을 쓰시기 불가능할 것이다.

 

주님은 기꺼이 섬기고, 헌신한 무리들을 얻으셔야 한다. 그분은 영적인 일의 꿈 이상의 것을 하는 이들을 원하신다. 그분은 거룩한 곳에 대해 체험하고, 지성소에서 그분의 증거로 하나님과 하나 됨을 체험하는 것으로 자라기 위해 싸울 이들을 찾고 있다.

 

구약성경에서 이것은 대제사장을 위해 유일하게 보류되었지만 주의 죽음으로 지성소 입구에 있는 휘장이 찢어졌고, 신약성경 제사장이 되려고 갈망할 모든 이들을 위해 길이 열리게 되었다(15:38, 10:19). 우리가 시간과 수고를 투자할 가치가 더 있는 것은 이 영역 안으로 풍성한 들어감을 얻을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체험들은 일반적인 그리스도인들을 위한 것이 아니다. 이런 체험들은 하나님의 종들을 위한 것이다. 주변에 아무도 없는 사랑스런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을 사랑할 수 있지만 섬김, 성장, 그리고 전진은 포함되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가 섬기면 섬길수록 우리의 필요는 자라고, 그리스도에 대한 우리의 체험은 더 풍성해질 것이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존중받아야 한다. 하지만 그들 모두가 이런 과정을 통과하고 있는가? 그들의 목사들은 이와 같은 생각을 거의 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목사들은 그들 모임에 참여하는 이들이 행복하고, 서로 사랑하고, 함께 좋은 시간을 갖는다면 만족해한다. 영적인 여흥은 그리스도보다 더 강해 보일 수 있다. 영적인 여흥은 분투가 없기 때문에 더 쉬운 방법이다. 이것은 슬픈 상황이다.

 

하나님의 공급

우리가 섬기려고 한다는 것을 주님께 말을 할 때 그분은 가능하게 하는 많은 풍성한 공급들을 우리에게 주신다. 먼저 우리는 우리가 혼자가 아니고 제사장직분의 일부라는 것을 발견한다. 하나님은 아론에게 스스로 섬기도록 요구하지 않으셨고, 우리에게도 요구하시지 않으신다. 우리와 함께 섬기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있다. 주님의 모든 종들은 함께 섬기고, 의지하고, 배우는 다른 그리스도인들이 있다. 그리고 둘째로 우리는 제물이 있다. 주님을 섬기기를 갈망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우리를 즉각 실추시키는 심각한 문제가 있다. 우리가 죄를 범했을 뿐만 아니라 성경을 따르면 우리가 죄 덩어리다. 하나님은 그분을 섬기는데 죄를 받아들일 수 없으시다. 더욱이 우리는 완전히 천연적이다. 우리에게는 영적인 것이 아무것도 없다. 심지어 우리의 인간성은 가련하다. 모든 제물의 실제로서 하나님께서 개입하시고 그리스도를 공급하지 않으신 한 우리는 그분을 절대 섬길 수 없다. 세 번째로 우리는 우리를 덮는 제사장에 속한 의복들이 있다. 이와 같은 의복 없이 섬김에서 우리를 실추시킬 모든 것이 폭로될 것이다. 우리가 거울을 본 모든 시간에 우리는 우리 자신을 실망시킬 것이고, 마귀의 고발을 당할 것이다. 주님은 우리를 보호하기 위해 제사장에 속한 의복으로 우리를 덮으시고, 제사장직분이 우리의 것이 아니라 그분의 것이라는 것을 우리에게 상기시키신다.

 

신약성경 제사장들로서 섬기려고 우리 자신들을 드리기를 갈망하는 우리는 이 공급들에 대해 주님을 찬양해야한다. 그분은 이와 같은 섬김을 갈망하시고, 그분은 이와 같은 제사장직분을 갈망하신다. 그분은 모든 것을 하셨다. 이제 그분은 우리가 우리 자신을 드리기를 기다리실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