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식년과 절기생활
I. 안식년
하나님께서 십계명을 모세와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주셨을 때 그분은 안식일을 매주 지키라고 말씀하셨다(출 20:8). 하지만 후에 그분은 그들에게 안식년을 지켜야 하다고 말씀하셨다.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고 그들에게 이르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땅에 너희가 들어가거든 그 땅이 {주}께 안식을 지키게 할지니라. *너는 육 년 동안 네 밭에 씨를 뿌리며 육 년 동안 네 포도원을 가꾸어 그것의 열매를 거둘 것이나 *일곱 째 해에는 안식하는 안식이 그 땅에 있게 할지니 곧 {주}께 대한 안식이라. 너는 네 밭에 씨를 뿌리거나 네 포도원을 가꾸지 말며 *네 수확물 중에서 저절로 난 것을 거두지 말고 손질하지 아니한 네 포도나무의 포도를 거두지 말라. 그 해는 그 땅의 안식년이니라.”(레 25: 2–4)
이스라엘 민족이 이 안식을 누릴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하나님께서 주신 땅에 들어가 6년 동안 일을 한 후에야 비로소 이뤄지게 되었다. 그 땅의 소출은 모든 사람들에게 공급할 수 있도록 너무도 풍성했다. “그 땅을 안식하게 함이 너희에게 먹을 것이 되리니 곧 너와 네 남종과 네 여종과 네 품꾼과 너와 함께 머무는 타국인과 *네 가축과 네 땅에 있는 짐승에게 그 땅의 모든 소출이 먹을 것이 되리라.”(레 25:6-7) 그 땅 주인이 축복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그와 함께하는 모든 사람들, 심지어 동물까지도 축복받았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러한 안식을 주실 때 우리는 반응하는 방법을 거의 알지 못한다. 이에 대해 우리가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 충분치 못하다. 하나님은 정말 놀라우신 분이시다.
우리의 땅을 개발하기
출애굽기 20장에 주어진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우리가 살인, 도둑질, 그리고 탐내는 것을 하지 많음으로 안식의 생활로 우리를 이끈다고 배웠다. 하지만 안식년은 열매 맺는 생활로 우리를 이끈다. 우리가 먹게 될 뿐만 아니라 우리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공급하게 될 것이다. 이 때문에 우리는 매 7년에는 “씨가 저절로 땅에 떨어져 자란 것”(레 25:5)을 거두지 않아야 한다. 우리 모두는 한 조각의 땅이 될 필요가 있다. 한 조각의 땅에서 우리 스스로 건축되고, 성장하고, 또 누리게 되는 것이다.
6년 동안 인도하는 자들에 의해 개발되고 건축된다. 우리가 인도하는 이들의 보호와 지시를 받는 것은 좋은 것이다. 인도하는 자들은 우리를 위해 주의를 하고, 우리가 자라는데 도움이 될 수 있도록 가장 좋은 것을 행한다. 우리는 그들을 존경해야 한다. 하지만 더러 그들은 우리 스스로가 자라도록 안식년을 우리에게 허락해야 한다. 이것은 하나님의 원칙을 따르는 것이요, 교회가 영적으로 풍성해지는 비결이다.
선한 의도이겠지만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위해 계획한다면 영적으로 우리를 죽일 수 있다. 우리가 너무 많이 우리 자신을 위해 생각하고 계획한다면 그 결과는 더 나빠질 수 있다. 우리는 주님 안에서 완전한 안식을 취할 수 있고, 우리의 미래를 그분께서 설계하시도록 할 수 있는가? 그렇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에게서 도움 받기 위해 훈련과 컨퍼런스가 필요하지만 우리는 또한 그리스도의 인도하심을 찾는 주님과의 많은 시간을 보낼 필요가 있다. 하나님은 영적인 기초를 건축하는데 6년이 걸리도록 우리에게 어떤 것을 주실 것이다. 6년 동안 인도하는 이들에 의해 건축되고 자란다. 하지만 이듬해에 개발하고 누리는 것은 우리의 몫이다. 그것이 땅의 우리 조각이다. 우리는 그것을 통해 교회를 먹이고, 영적으로 자라게 할 것이지만 그 안식은 한해만 지속된다. 그해 이후는 끝난다. 그러면 우리는 이 한조각의 땅을 내려놓고, 또 다른 6년으로 되돌아가야 할 것이다. 물론 신약시대에는 더 이상 문자적이지 않지만 영적인 원칙이 존재한다.
우리가 이 영적인 기초가 없다면 우리는 안식년을 가질 수 없다. 왜냐면 우리가 아직도 아무것도 세워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교회생활과 말씀생활 안에 있어야 한다. 우리는 어떤 영적인 내용을 얻기 위해 그리스도를 체험해야 한다. 그런 후에야 안식의 날이 올 것이다. 우리가 영적인 것들을 준비하고 나면 이끄는 자들은 우리를 자유를 주어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어떤 것이 자라도록 주님 안에서 안식하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아마도 우리는 이제까지 다른 사람들에 의해 먹여졌을 것이지만 이 해에는 우리가 다른 사람을 먹이도록 배워야 한다.
우리는 한 조각의 땅에 애착을 갖고 자라지 말아야 한다. 한 조각의 땅은 우리가 그것을 개발하고, 조금 더 성숙시키는 방법을 배우도록 한해만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었다. 그 해 끝 무렵 주님은 그 한조각의 땅을 내려놓고 6년 동안 합당한 리더십 아래에서 정상적인 교회생활로 돌아가라고 말씀하실 것이다. 이것은 미래의 안식에서 우리가 또 다른 한조각의 땅을 누릴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우리의 성장을 위한 것이다.
교회를 축복함
예를 들어 모든 교회는 어린이, 청소년, 대학 봉사가 필요하다. 각자가 봉사하는 곳은 교회를 축복하기 위해 준비하는 땅의 한 조각이다. 적시에 인도자들은 우리에게 이런 땅 한 조각을 맡기고, 우리에게 그 땅을 개발하라고 말할 수 있다. 젊은이들, 그들의 부모, 봉사자들, 그리고 복음친구들을 부양할 수 있는 것이 정말 많다. 우리는 그들에게 그리스도를 선물할 컨퍼런스를 개최할 수 있다. 이것이 온 교회를 격려할 것이다.
우리가 교회모임에서 노래를 만들거나 시를 낭송하거나 격려하고 권면하고 가르치는 일을 맡을 수 있다는 것이 놀라운 일이다. 우리가 올바른 찬양을 부르게 하고, 풍성한 누림으로 교회를 이끌어야 한다. 우리는 음악적인 달란트를 가진 사람들과 음악적 재능이 없는 사람들에게 음악을 가르치는 사람들과 함께할 필요가 있다. 심지어 우리는 교회의 부담과 일치해 새로운 찬송을 쓰는 어떤 사람들과 일을 할 수도 있다.
또 우리는 모임에서 짧고, 긴 진리와 체험들을 사역자들에게 질문할 수도 있다. 이러한 것들은 우리가 성도들을 위해 말씀과 영적인 책을 읽는 수고하도록 하는 원인이 될 것이다. 결국 우리는 이와 같은 수고로움으로 다른 사람들과 함께 나눌 수 있다.
우리가 교회에서 어떤 필요를 볼 때 우리는 도움을 청하여 앞으로 나서 자원해서 그 필요를 채우려고 할 수 있다. 나는 인도자들이 필요하다면 안내를 해주고, 열려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수고의 모든 분야는 다가오는 안식년에서 우리의 수고를 위한 땅의 한 조각이다. 우리는 우리가 있는 어디에서든지 교회생활을 전적으로 부활시킬 수 있고, 변혁을 일으킬 수 있다. 하지만 우리 안식년을 결국 끝날 것이다. 우리는 안식년을 돌려주어야 한다.
이와 같은 관점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성장할 것이다. 안식년이 지난 후 그들은 교회에 아주 유용하고, 축복하는 자가 될 것이다.
인도하는 이들에 의하면 우리는 어떤 점에서 형제들과 자매들을 이끌 수 있지만 우리는 그들의 안식년을 누리도록 어떤 자유함을 그들에게 주어야 한다. 우리가 그들에게 이와 같은 기회를 주지 않는다면 우리의 모든 계획은 아무 영향도 주지 못할 것이다. 그들은 죽을 것이고 우리는 과로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아주 달콤할 것이고, 조금만 추수하게 될 것이다. 모든 사람은 한 조각의 땅이 필요하다.
오랫동안 교회는 하나님의 아주 단순한 두 단계의 원칙을 위반했기 때문에 제한받았다. 하나는 하나님께서 그분 자신을 우리에게 주시는 것이요, 다른 하나는 그분께서 그분의 안식을 우리에게 주시는 것이다. 이 두 단계는 온 교회가 자라도록 하고, 또 열매 맺도록 하는 것이다.
II. 절기생활
안식일에 추가하여 하나님은 축제생활을 누리는 그분의 백성을 원하셨다. 이스라엘 율법의 중요한 절기는 유월절, 맥추절, 그리고 수장절이 있었다. 오늘날 우리에게 이런 절기는 상징적인 것이다.
모든 믿는 이들은 유월절의 실제를 체험했다. 왜냐면 유월절이 우리의 구원을 대표하기 때문이다. 우리 어린양의 피 때문에 죽음의 천사가 우리를 지나갔고,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들로서 우리의 여행을 다시 시작하게 되었다.
그런 다음에 우리는 우리가 추수할 수 있을 때까지 그리스도인으로 성장한다. 밀과 같이 어떤 식물들은 농부가 날마다 그들의 과정을 성숙시킬 수 있기 때문에 빠르게 자란다. 다른 식물들은 아주 늦게 성장한다. 빠르게 자라건, 늦게 자라건 그 식물은 성숙되고, 열매가 익고, 농부가 그 열매를 수확할 것이다. 농부가 기다렸던 그날이다. 그날은 축제의 날이다.
맥추절이 지나고 수장절이 온다. 농부가 기쁨으로 기다리는 곳간으로 수확물을 가져올 때 그 때가 수장절이다. 이제까지 날씨가 그 수확물들을 손상시켰을 가능성도 있었고, 어떤 동물들이 먹어버렸을 것이다. 하지만 수확물들이 곳간에 있다. 그 수확물들은 농부에게 속해 있다.
수확을 위한 열매
많은 사람들은 첫 출발이 좋다. 그들은 구세주로 예수님을 믿어 유월절을 누리고, 죄 용서함 곧 구속을 받는다(골 1:14). 그들은 교회생활에서 장로들에 의해 돌봄을 받아 잘 자라는 것처럼 보인다. 그들이 몇 년 동안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 가능하지만 주님을 위한 열매를 맺지 못한다. 주님을 위한 수확이 없다. 대신에 그들은 컴퓨터, 직장, 종교 등에 의해서 수확한다. 가끔 그들이 어떤 혼란을 겪기 때문이거나 세상의 유혹 때문이기도 하다. 끝내기가 쉽지 않다.
우리는 우리가 열매를 맺도록 서로를 위해 함께 수고하기 위해 기도해야 한다. 우리는 주님을 위해 추수할 수 있도록 자라야 한다. 우리는 성경을 읽고, 복음을 전파하고, 주님을 사랑하고, 생명 안에서 자라도록 서로 도울 필요가 있다. 우리는 서로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 이것이 교회생활이다. 우리는 교회생활 안에 함께 있다. 우리는 뒤쳐지고 싶어 하지 않는다. 바울은 “우리가 그분(그리스도)을 선포하며 각 사람에게 경고하고 모든 지혜로 각 사람을 가르침은 우리가 각 사람을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완전한 자로 드리고자 함이니라.”(골 1:28)고 말했다.
나의 이해로는 식물이 열매 맺지 못하는 이유가 적어도 2가지의 가능성이 있다. 하나는 지나친 수정과 지나치게 물을 주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모든 컨퍼런스와 훈련에 가서 영적인 책들을 읽고, 메시지를 듣지만 여전히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이것이 우리의 경우가 될 수 있다. 우리가 흡수할 뿐만 아니라 모자람이 없다. 우리는 복음을 전파하고, 새로운 성도들을 방문하고, 어린 성도들을 돕는 것으로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을 필요가 있다. 그런 후에 충실한 열매가 맺게 될 것이다.
열매 맺지 못하는 다른 하나는 손질부족이다. 모든 영양분은 식물을 충실하게 하는 잎으로부터 이동한다. 하지만 그 식물을 손질하지 않으면 열매를 맺지 못한다. 누가 우리를 손질하는가? 우리가 손질할 수 없는 왕족으로 여겨졌다면 우리는 소망이 없다. 우리가 반사하려고 손질하는 모든 시도가 너무 어렵지 않아야 하지만 역시 아무도 우리에게 손 댈 수 없다는 것에 너무 감정적이거나 쉽게 화내지도 않아야 한다. 우리 주님은 잎이 아니고 열매를 찾고 계신다.
주를 위한 수확
유월절, 맥추절이 지난 후 수장절이 온다. 추수가 없다면 곳간에 수확물을 드리는 일도 없다. 추수는 곳간에 채우는 것을 보장한다. 우리가 추수한 후에도 떨어트린 것이 있을 수 있다. 우리는 우리의 임무, 헌신, 부담을 수행 못할 수 있고, 주님을 놓칠 수 있다. 수장절은 주님 자신에게 모으는 것이다.
추수는 열매를 따고 거두는 것을 의미하고 모으는 것은 그 열매를 모으는 자에게 그것을 속하게 하는 것을 의미한다. 모든 믿은 성도들은 유월절이 있다. 어떤 사람만이 추수할 수 있는 열매를 맺도록 자라고, 더 적은 숫자만이 주님에 의해 열매로서 모아지게 된다.
수확은 개인적인 것이다. 우리는 곡식 이삭이나 사과를 수확한다. 열매는 성숙되고 익고, 저장고에 넣을 수 있어야 한다. 모으는 것은 단체적이다. 우리는 곳간에 곡식이나 사과를 옮긴다. 교회가 필요할 때 저장된 모든 그 풍성으로 그 필요를 채울 것이다. 이러한 때에 모였던 사람들은 서로에게 분발시킬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서로에게 “자, 우리 계속해서 주님을 따르자.”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이제 풍성하지 않지만 우리의 기도는 주님께서 우리가 가진 것을 추수하시고, 모으실 것이라는 갈망이어야 한다. 우리는 우리가 수년 간 모은 그리스도의 체험이 그분의 성도들의 필요를 채우고, 공급하도록 그리스도께 가치가 있고, 쓰임 받을 것이라는 것을 믿는다.
'컨퍼런스 > 모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신성한 약속을 전달하는 사람(6) (0) | 2017.07.12 |
---|---|
신성한 약속을 전달하는 사람(5) (0) | 2017.07.11 |
신성한 약속을 전달하는 사람(4) (0) | 2017.07.10 |
신성한 약속을 전달하는 사람(2) (0) | 2017.07.09 |
신성한 약속을 전달하는 사람(1) (0) | 2017.07.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