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과 음료/새벽이슬처럼

알곡과 가라지들에 대한 심판

Hernhut 2016. 8. 10. 20:49


 

알곡과 가라지들 둘 다 같은 때, 같은 곳에서 다뤄진다. 비유에서 주님께서 그들을 다루심은 왕국 안으로 들어가도록 하거나 아니면 배제시키기 위한 것이다. 알곡으로 대표된 모든 성도들은 곳간에 모아져 가라지들로 대표된 이들과 전혀 다른 대우를 받는다. 알곡은 모아지고, 가라지들은 불태워진다(13:30, 40-43). 하지만 주목해 보면 영원한 진리들이 이 비유에서 다뤄지지 않고 있다. 오히려 이 비유의 주제는 왕국을 위해 열매 맺는 것이다. 모든 것은 주님께서 알곡과 가라지들로 대표된 이들을 다루실 때 심판대에서의 쟁점들과 결정들이 다른 성경구절과 완벽하게 일치한다는 것이다(24:45-51, 25:19-46, 15:1-6, 고전 3:12-15, 6:7-9). 이 본질에 대한 주님에 의한 다루심은 가라지들이 회심하지 않는 개인들이라는 어떤 생각과 완전히 다를 것이다. 여기서 볼 수 있는 방식에 따라 성경은 같은 시간, 같은 곳에서 구원받은 이들과 구원받지 않은 이들을 주님의 다루심을 나타나 있지 않다. 이런 방식으로 구원받은 이들과 구원받지 않은 이들이 왕국을 위해서 열매 맺는 것에 관해 둘 다 주님께 다뤄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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