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과 음료/복음칼럼

부패케 하는 질투의 힘

Hernhut 2016. 7. 8. 17:22

 

시기, 질투는 프흐도노스phthonos. 이 단어는 프흐데이로phtheirō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이 단어는 타락하다, 더럽히다, 심지어 파괴하다를 의미한다. 다른 사람들이 질투와 다툼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했을 때 바울은 복음의 전진에만 관심을 두었다(1:15). 자아생명은 사람들을 멸하고, 타락시키고, 더럽힌다. 하지만 자아생명이 이런 바울의 방식으로 증가될 때 시기하는 사람들을 사라지게 한다. 이렇게 되면 그런 사람들이 관심을 갖는 질투하는 것이 없게 될 것이다. 성도들은 주님께서 그리스도인들에게 헌신케 하셨던 것을 위해 싸워야 한다. 그리스도인들이 부러움, 질투에 의해 붙잡힐 때 우리는 더 이상 사람의 유익을 위해 싸우지 못한다. 시기는 사람들을 더럽히려고 가장 기본적인 전략을 사용할 수 있고, 또 그들 자신의 사람, 가르침, 실행, 사역 등으로 위협하거나 또 자랑함으로 그리스도와 그분의 복음에 대해 낮추려고 한다. 하지만 그리스도만을 붙잡을 때 이런 시기와 질투가 그리스도인들 안에 설 땅이 없다. 시기와 질투가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있기 때문에 주님의 긍휼과 은혜가 필요하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주님의 몸에 해()를 끼치게 할 어떤 것도 받아들이지 말아야 한다.

시기와 질투는 결국 분열을 산출한다. 루시퍼가 하나님의 위치를 부러워했기 때문에 그는 사탄이 되었다(14:1215). 시기 때문에 온 세상 시스템이 일어났다. 그 후 세상 시스템은 발전했다. 그리하여 시기가 그리스도와 그분의 복음을 파괴하려고 한다. 주님을 죽게 했던 종교지도자들은 그렇게 질투를 했다(15:10). 같은 방식으로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질투와 시기 때문에 다른 그리스도인들을 손상시킨다. 종교 세계가 시기와 질투를 만들어 내고, 도움을 주는 사탄의 시스템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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