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은 계속해서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착한 일을 완결하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빌 1:6)고 말했다. 사람들은 신뢰하기 힘들다. 특히나 순수하지 않을 때 더욱 그렇다. 그런데 바울은 순수했었다. 빌립보 성도들도 순수했었다. 바울은 빌립보 성도들에게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았다. 바울은 단순하게 빌립보 성도들을 사랑했다. 빌립보 성도들 역시 아무 조건 없이 단순하게 바울을 사랑했다. 이런 관계 안에 있는 순수성 때문에 진정한 확신이 발전할 수 있었다. 자신감을 갖다, 확신하다, 당당하다를 의미하는 페이토peithō는 설득하다, 설득시키다, 확신시키다, 납득시키다로 확대할 수 있다. 확신은 헌신으로 이끄는 어떤 사람에 대한 신뢰와 의존도에서 나온다. 직관에 바탕에 둔 것은 확신이 아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건축되었다. 바울은 빌립보 성도들이 완결될 것과 그들 안에서 시작하신 주님의 일이 어느 날 완전하게 될 것에 확신했다. 그는 주님에 대한 그들의 사랑이 절대 죽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했었다. 빌립보 성도들에 대한 이러한 확신은 바울의 주님에 대한 수년간의 체험에서 나왔다. 그는 “내가 비천하게 되는 것도 알고 풍부하게 되는 것도 알아 어디에서나 모든 일에서 배부른 것과 배고픈 것, 풍부한 것과 궁핍당하는 것을 다 배웠노라. 나를 강하게 하시는 그리스도를 통해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 4:12–3)고 말할 수 있었다. 우리가 좋은 때와 나쁜 때에 그리스도를 체험하기 전까지 우리는 우리와 다른 사람들 안에서 그리스도의 일을 완료하시는 그분의 능력에 대한 바울의 확신을 절대 나눌 수 없다.
시간은 결국 우리의 교제가 복음 안에 있는 것인지 아니면 단지 종교적인 일을 하고 있는지를 드러내게 될 것이다. 우리는 “나는 주님께서 살아계신다. 나의 생명은 그분께 맡겨졌다.”고 정직하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그분이 우리에게 주관적인 분이 되실 때까지 다른 사람들이 우리 안에서 확신 갖기가 어려울 것이다. 주 예수님의 일은 종교 영역에 없다.
바울은 빌립보 성도들이 진실하고도 견고한 방식으로 그리스도를 체험했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착한 일을 완결하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빌 1:6)고 말할 수 있었다. 우리는 우리 안에서 좋은 일을 시작하신 주님을 확신해야 한다. 우리는 “나는 주님을 안다. 그분은 네게 참되시다. 그리스도는 정말 살아계신다. 그분은 신뢰할 만하다.”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께서 우리 안에서 시작하신 그 일을 완료하실 것을 확신한다. 우리는 종교와 프로그램이 될 필요가 없다. 우리는 우리가 확신하는 살아계신 그리스도가 필요하다. 그분께서 우리 안에서 좋은 일을 시작하신 것을 완결시키실 것이다.
'빵과 음료 > 복음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바울)와 은혜에 참여하는 자들 (0) | 2016.05.25 |
---|---|
너희가 너희 마음에 나를 가졌다. (0) | 2016.05.24 |
복음의 영역 (0) | 2016.05.23 |
복음 (0) | 2016.05.21 |
바울은 성도들을 부모의 사랑으로 사랑했다. (0) | 2016.05.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