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과 음료/복음칼럼

나(바울)와 은혜에 참여하는 자들

Hernhut 2016. 5. 25. 10:50


 

빌립보교회는 그들이 자신들에게 복음을 전파하고, 자신들과 수고하고, 물을 주고, 가르치고, 생명을 공급했던 바울을 기억했기 때문에 축복을 받았다. 빌립보교회는 바울이 체험한 은혜에 참여하고, 그들의 마음에 사도바울을 가졌기 때문에 건강했다. 감옥에 감금되어 있는 동안 바울은 은혜를 체험했다. 바울은 쇠사슬에 묶여 있었지만 그는 복음의 목적을 위해 모두에게 열려 있었다. 어떤 사람들이 도움을 청하러 자신에게 왔을 때 사람들은 그에게 이의를 제기했다. 어떤 사람들은 그와 함께 일어섰을 때 사람들은 그를 공격하고 손해를 끼쳤다. 이와 같이 어려운 상황에서 바울은 은혜를 체험했다. 바울이 복음을 변호하고, 확신했기 때문에 그는 그리스도 예수님의 보좌로부터 오는 많은 은혜를 받았다.

주님은 그의 풍성한 누림, 만족, 그리고 축복의 원천이 되셨다. 진정한 은혜는 값을 지불하는 것에서만 온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을 위해 정말 많은 눈물을 흘리기 때문에 그들이 영적으로 자란다면 그것은 분명 은혜다. 소망이 없을 때 우리가 그들을 위해 기도했기 때문에 그들이 주님을 사랑한다면 그것 또한 은혜다. 바울은 이 은혜의 종류를 알았다.

좋은 때와 나쁜 때, 격려와 오해, 인정과 중상모략 모두 그에게 은혜를 가져왔다. 그가 전한 생명과 그가 흘린 눈물 또한 은혜를 가져왔다. 묶임 안에서도, 복음에 대한 확신과 변호 안에서도 그는 은혜 안에 있었다.

겉보기에는 이 은혜가 빌립보 성도들과 멀리 떨어져 로마에 있는 바울에게 독특하게 주어진 것이지만 그들에게 말할 수 있었다.

너희가 다 나와 함께 은혜에 참여한 자가 됨이라.”

이것이 그리스도의 유기적인 몸에 대한 놀라운 그림이다. 바울과 빌립보 성도들 사이에 어떤 매뉴얼이 있었다. 바울이 체험한 것은 빌립보 성도들도 체험하게 되었다. 바울이 받은 은혜는 빌립보 성도들의 은혜가 되었다. 그가 받은 축복 역시도 빌립보 성도들의 축복이 되었다. 이것은 빌립보 성도들이 자신들의 마음에 사도바울을 가졌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런 실행을 하는 성도들이 되어야 한다. 많은 먼저 된 그리스도인들은 우리에게 사역한다. 그들이 우리 마음에 있는가? 교회 지도자들이 우리 마음에 있는가? 우리 아이들을 돌보는 교사들이 우리 마음에 있는가? 그렇다면 우리는 그들의 은혜에 참여하는 성도들이 된다. 우리를 섬기는 성도들이 우리 마음에 있을 때 그들의 은혜는 우리의 은혜가 된다. 주님께서 그들에게 주시는 축복은 우리의 누림이 된다. 우리는 그들의 은혜에 참여한다.

과거를 생각해 보면 그 당시 우리는 누군가를 위해 기도했을 것이다. 우리를 섬기는 성도들을 위해 얼마나 기도하고 기억했는가? 우리 마음에 우리 자신으로 채워지고, 우리의 기도가 우리 자신의 필요에만 제한했다면 우리는 은혜의 누림이 부족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우리를 섬기는 성도들을 위해 기도하고 채운다면 우리는 그들이 누리는 은혜로 공급받게 될 것이다.


'빵과 음료 > 복음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복음에 대한 확신   (0) 2016.05.26
복음에 대한 변호   (0) 2016.05.26
너희가 너희 마음에 나를 가졌다.  (0) 2016.05.24
바울의 확신   (0) 2016.05.23
복음의 영역   (0) 2016.05.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