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은 빌립보 성도들에게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기를 원하노라.”(빌 1:2)는 말로 인사했다. 바울은 이 두 단어를 사랑했다. 그는 그가 쓴 모든 서신서에서 이 두 단어를 사용했다.
많은 사람들은 받을 자격이 없는 호의나 하나님의 물질적인 축복으로 은혜를 정의 한다. 하지만 은혜는 호의이상이요, 외면적인 축복을 넘어서는 것이다. 은혜는 놀라운 인격과의 생명관계의 문제이다. 그 관계에는 달램이 있고, 부드럽고, 만족함이 있고, 격려가 되는 어떤 것이 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누릴 때 우리는 이 은혜를 체험한다. 이 은혜는 우리에게 평강을 가져다준다. 은혜와 평강은 우리 매일의 체험이 되어야 한다. 은혜를 넘치시는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오실 때 그분은 은혜의 영역으로 우리를 데리고 가셔서 우리는 그곳에서 평강과 만족을 체험한다(요 1:14, 16–7).
은혜에 대한 가장 좋은 묘사는 가족 안에서 볼 수 있다. 아빠가 먼저 그의 아이를 껴안을 때 그의 모든 가족은 은혜로 가득해진다. 아빠는 그것이 흘러넘치는 것을 정말 사랑한다. 사실 우리가 함께 있을 때마다 우리는 특히 친밀함이 있고, 사랑, 평강, 그리고 쉼을 느낀다. 이 누림은 인간 수준에서의 은혜다. 가장 높고, 가장 진리적인 은혜는 주 예수그리스도로부터 온다.
은혜는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오심을 의미한다. 우리가 주님과 아침시간을 보낼 때 은혜를 체험할 수 있고, 그날 하루 종일 모든 부분에서 산만함을 느끼지 못할 것입니다. 찬양을 함으로 그리스도의 살아계신 인격을 만질 수 있다. 기도로 마음의 문을 열 수도 있다. 성경을 누릴 수도 있다. 그럴 때 은혜가 우리의 영에 와서 우리의 마음을 만지지게 해서 엄청난 것을 체험하게 한다. 이렇게 하면 은혜를 체험한 것이다. 그런 체험을 한 후에는 어디에 있는지, 누구인지 잃어버리게 된다. 만족을 느끼고, 그리스도인 생활의 가치를 알게 된다.
은혜는 우리의 누림을 위해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오심을 의미한다. 은혜는 단지 행복함을 주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깊고도 엄청난 만족을 가져다주는 어떠함이다.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님의 인격의 풍성한 누림 안으로 와야만 한다. 이것은 깊은 만족을 우리에게 가져온다. 그리스도인 생활은 아주 신묘한 것이다. 왜냐면 은혜로 그리스도 자신의 살아계신 인격을 누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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