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에 관한 헬라어는 둘로스doulos다. 그것은 “묶다, 올가미로 사로잡다”를 의미하는 데오deō라는 어근에서 왔다. 죽을 때까지 자신의 주인들에게 지배받는 노예로 가장 흔하게 사용된 단어다.
구약성경시대의 이스라엘 사람들 가운데 모든 노예들은 그들 자신들의 가족과 누릴 수 있는 권리와 같은 분명한 권리가 있었다. 그들은 그들 자신들의 소유와 공정한 대우도 받았다. 하지만 그들의 활동에서 자유를 갖지 못했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들의 자유를 소망했다. 그들에게 주어지는 자유는 희년에서야 가능했다(레 25:39–40).
노예에 대한 우리의 개념은 성경이 설명하는 것과 반대다. 우리는 모든 노예가 빈곤하게 살고, 주인들에게 혹사당하고, 억압받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모세의 율법 아래에서의 노예들은 그들 자신들의 소유를 가질 권리가 있었다(레 25:49). 그들은 자신들이 번 돈을 저축할 수 있었다. 노예들은 사실 풍족할 수 있었고, 많은 물질적인 것을 누릴 수 있었다. 그들이 노예가 되기 전에 결혼을 했다면 그들의 결혼은 존중되었고, 그들의 배우자는 그들에게서 빼앗지 못했다(출 21:3). 이것은 억압받고, 굴욕적이고, 옷이 벗겨진다는 노예에 대한 우리의 개념과 매우 다르다.
성경에서 노예와 노예가 아닌 것 사이에 존재하는 차이는 단순하다. 노예가 아닌 자들은 그들이 원하는 것 무엇이든 할 수 있었고, 노예들은 그들의 주인들이 그들에게 말하는 것만을 할 수 있었다. 그 둘 사이의 차이는 소유의 문제가 아니다. 주님을 섬기는 성도들은 정상적인 인간의 삶을 비우는 것이 아니다. 세상 사람들은 가족이 있고, 집과 차가 있다. 주님의 종들도 그런 것이 있다. 하지만 주님의 종들의 삶은 그리스도에 의한 것이다. 억압받기보다 오히려 주의 종들은 기쁨이 있다. 주님의 노예들은 세상 사람들에게 말할 수 있다.
“우리가 당신들과 다른 것은 우리가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자유가 없다는 것이다. 당신들은 당신들이 원하는 것을 할 수 있지만 우리는 그렇게 할 수 없다. 주님 자신께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 무엇을 해야 할지를 결정하신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노예다. 그것이 행복해 하고 기뻐하는 이유다.”
'빵과 음료 > 복음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명절과 축복 (0) | 2016.05.15 |
---|---|
고통 받으시는 예수님과 높임을 받으신 그리스도 (0) | 2016.05.15 |
그리스도 예수의 종 (0) | 2016.05.14 |
바울의 친밀한 인사 (0) | 2016.05.13 |
순수함의 시작 (0) | 2016.05.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