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과 음료/새벽이슬처럼

한 새사람(휴거)

Hernhut 2016. 4. 16. 14:32

 

과거 제도 끝 무렵에 하나님은 7년 짧게 이스라엘을 다루셨고, 그들을 따로 떼어 놓으시고, 다루시는 것을 중단하셨고, 전적으로 새로운 민족을 조성하시기 시작하셨다. 이 새로운 민족은 유대인들이 아니요, 이방민족도 아니다. 이 새로운 민족은 그리스도 안에서 새 창조가 되는 믿는 유대인들과 믿는 이방인들로 구성되었다(고후 5:17). 그리스도 안에 있는 이 새 창조들은 한 새사람을 이룬다(2:11-15).

현제도 동안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아닌 이 새사람을 다루시고 이들과 거래하신다. 이 새사람은 성경이 설명하는 것과 똑같은 민족이다(21:43, 벧전 2:9-10). 이 새사람은 땅에 있는 다른 모든 민족들로부터 완전하게 따로 떼어진 민족이다. 이들은 이스라엘에서도, 이방인들에게서도 따로 분리되었다(3:26-29). 하나님은 그분께서 오로지 이 새사람을 다루시고, 거래하시려고 전체적인 제도를 따로 떼어 놓으신다.

기독교에는 구원받은 유대인들과 구원받은 이방인 사이를 구분할 방법이 없다. 둘 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새 창조들이요, 한 새사람의 일부분이다. 어디에도 이 새사람을 비교하여 구분할 곳이 존재할 수 없다( 3:26-29, 2:11-15, 3:1-6). 그러나 오늘날 기독교는 완전히 성경과 반대된다. 오늘날 기독교는 구원받은 유대인들과 구원받은 이방인들을 구별하려는 시도를 하는 무리들이 있다. 예를 들어 오늘날 급속도로 퍼져나가는 메시아닉 유대인들이나 완전케 된 유대인들은 자신들을 구원받은 이방인들과 자신들을 구별한다. 이 두 무리는 완전히 적절하지 않은 명칭이다. 또 구원받은 유대인들을 미심쩍어하는 구원받은 이방인들로 구성된 무리들도 있다. 사실 구원받은 유대인들은 구별된 장소에서 만날 때 앞에서 말한 것처럼 메시아닉 모임처럼 다소 우월감을 행사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이렇게 행하는 이 두 무리 다 그리스도 그분을 나누는 결과를 낳게 되고, 그분을 손상을 입히게 된다. 그들 사이에 중간 담을 세우려는 것은 헛된 것에 지나지 않는다( 2:14). 마찬가지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새 창조가 야곱 안에 있는 옛 창조로 되돌아가는 것에 대해 기독교 어디에도 없다[43:1, 7, 고후 5:17]. 옛 창조의 것을 새 창조 안으로 가져오게 하는 것이 없다( 9:16-17). 하나님은 한 제도 동안 이스라엘을 따로 떼어 두시고, 오늘날 이 이스라엘이 아닌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새사람을 다루시고, 거래하신다. 하나님께서 따로 떼어 두신 이스라엘로 돌아가는 한 새사람과 한 새사람과 관계있는 것 안으로 이스라엘과 관계있는 것들을 가져오는 것은 완전히 잘못된 것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두 창조들 사이에 세우신 구별을 깸으로 혼란을 가중시키게 된다.

하나님의 성령은 한 새사람으로 구성된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행실을 찾으시고, 하나님의 아들의 신부를 찾으시려고 오늘날 이 세상에 계신다. 먼저 성령님은 이 일을 완료하시고 한 새사람은 옮겨질 것이다. 그런 다음에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다루시고, 거래하시는 것을 재개하실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그리스도인들을 다루심은 서로 별도의 문제요, 따로 분리된 것이었다. 이스라엘이나 교회를 하나님께서 다루시려 하실 때 오늘날 제도에서 이스라엘을 다루시는 것을 재개하시는 것은 성경에 하나님께서 정하신 방법과 완전히 이질적인 것이다. 이스라엘은 따로 떼어졌고, 하나님은 오늘날 새 민족을 다루시고 거래하시고 계신다. 이 새 민족을 하나님께서 다루시기를 완료하신 후에 그분은 이 새 민족을 옮기실 것이요, 이스라엘로 돌아가셔서 이스라엘을 다루시는 것을 완료하실 것이다. 모든 문제는 간단하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로 구성된 모든 그리스도인들 곧 한 새사람은 이 제도 끝에 옮겨질 것이다. 이것은 두 민족 즉 한 새사람과 이스라엘과 관계있는 이유 때문이다. 하나님은 하늘에서 한 새사람을 다루시는 것을 완료하실 것이고, 또 그분은 다른 한 민족 이스라엘을 땅에서 완료하실 것이다. 한 새사람은 하늘에 속한 부르심을, 이스라엘은 땅에 속한 부르심을 소유한다. 하나님께서 각 민족에 대한 부르심에 합당한 위치에서 다루시고 거래하시는 것이 당연하다. 이 교리는 신구약성경에서 볼 수 있는 가르침이다. 이스라엘과 교회와 관련된 성경적인 구별은 유지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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