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힘들어질 때 우리는 두 극단적인 것 중 하나의 방향으로 나아가려는 경향이 있다. “지나치게 흥분하여 호들갑떠는 경우”와 “거품처럼 지나치게 과장하는 경우”다.
전자의 경우는 티끌 하나 없이 집을 청소한다거나 주변 환경을 통제하려고 한다. 후자의 경우는 요즘 사람들처럼 SNS에 사진을 올려 자기표현을 하는 일을 즐긴다.
이 두 극단적인 일 중 어떤 일을 하는가? 우리가 여기서 배울 것은 둘 다 일시적이고, 느리고, 불안전하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안전지대로 우리를 부르시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그분과 함께 사는 우리의 삶이 고통이 없고,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약속을 하시지 않으셨다.
우리가 혼란을 피하려하고, 그리스도께서 약속하신 해방을 위해 싸우기를 거절할 때 우리는 두려움과 불안에 사로잡히게 된다. 우리는 우리가 우리의 행복을 추구하려고 한다는 것과 기쁨의 모든 원천이 이 세상, 이 환경, 이 계절을 넘어선다는 것을 잊고 있다.
마태복음 8장을 읽으면 예수님께서 폭풍우가 심해지고 배 안으로 물이 들어오는데도 잠을 주무셨다는 장면을 볼 수 있다.
주님, 우리를 구원하소서! 우리가 익사할 것 같아요!(마 8:25)
하나님, 무엇을 하고 계세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보고 계시죠?
우리는 이렇게 좌절을 느낀다.
이 때 예수님은 믿음이 적은 제자들을 꾸짖으니 그 폭풍우가 완전하게 잠잠케 하셨다. 그러고 나서 예수님은 “왜 두려워하니?”라고 물으셨다.
나는 제자들이 충격과 불신으로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했던 점을 생각한다. 그들에게 예수님의 질문은 심각한 것이었다. 예수님은 단 숨에 폭풍우를 잠재우실 수 있으신 유일하신 분이시다.
근심걱정 없는 환경에 근거를 둔 믿음은 믿음이 아니다. 믿음이 없다는 것은 자기 생활을 숭배하는 것이다. 우리 삶 속에 폭풍우가 올 것이 분명하다. 폭풍우가 올 때 우리는 선택권이 있다. 우리는 우리가 안전망을 만드는 것처럼 그것을 무시하거나 지나치게 흥분하여 호들갑을 떤다.
아니면 모든 불확실성 가운데 있는 자에게 우리의 눈을 맞출 수 있다. 우리의 환경은 바꿀 수 없지만 우리의 관점(세계관)은 바꿀 수 있다. 우리는 두려움과 불확실성에 머물거나 아니면 하나님의 손에 맡길 수 있다.
“너희의 모든 염려를 그분께 맡기라. 그분께서 너희를 돌보시느니라.”(벧전 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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