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rethren/연(輦)모임 메시지

사흘 밤낮

Hernhut 2014. 11. 14. 00:44

 

인자로서 요나처럼, 이스라엘로서 요나처럼

이제 {}께서 이미 큰 물고기를 예비하사 요나를 삼키게 하시매 요나가 밤낮으로 사흘 동안 그 물고기 배 속에 있었더라.”(1:17).

 

요나가 밤낮으로 사흘 동안 고래 배(거대한 물고기 배) 속에 있었던 것 같이 사람의 [아들]도 밤낮으로 사흘 동안 땅의 심장부에 있으리라.”(12:40).

 

요나서는 요나의 체험을 통해 하나님의 맏아들들(그리스도와 이스라엘)의 다른 면을 말하는 책입니다(4:22, 1:6). 요나서는 요나가 죽음의 장소에서 시간을 보낸 것처럼 두 아들들이 죽음의 장소에서 시간을 보냈지만 이스라엘에 관해 더 특별합니다. 그러므로 요나서는 더 큰 범위에서 두 아들에 관한 것입니다.

 

죽음의 장소에서 보낸 시간은 삼일 밤낮으로 요나서에서 표현되었고, 마태복음에서 말해졌습니다. 성경적인 해석상 주된 부정적인 결과들은 성경이 성경으로 비교되기보다 오히려 서양적 생각으로 이 표현을 이해하려고 하는데서 왔다는 것입니다.

 

삼일 밤낮이라는 표현은 요나서 1:17, 마태복음 12:40절에 나옵니다. 이 표현은 종종 3x24시간, 72시간으로 이해합니다. 이 표현은 성경적인 해석상 혼란 속으로 들어가게 하는 부분입니다. 그 표현 자체뿐만 아니라 이와 관련이 있는 많은 성경 구절의 구조에도 혼란을 일으킵니다.

 

그러므로 작은 문제가 아닙니다. 이 표현이 해석상의 문제든, 서양의 생각으로 이해하든, 성경이 해석하게 하든, 하나님의 무한하신 지혜와 지식으로 우리에게 설명을 하던 간에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삼일 후셋째 날이라는 표현은 조화를 이루어야 함

그리스도는 이틀 후 셋째 날에 죽음으로부터 일어나셨습니다(24:7). 또 그리스도는 삼일 후 일어나셨습니다(8:31). 둘 다 사실이고, 둘 다 조화를 이루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의 시간과 관련된 사흘 후라는 표현은 신약성경에서 2번만 사용되었습니다(27:63, 8:31). 반면 세 번째 날이라는 표현은 신약성경에서 12번 사용되었습니다. 12번 중 5번은 사흘 후라고 번역하려고 지원하는 사본입니다(16:21, 17:23, 9:31, 10:34, 9:22). 하지만 나머지 7번은 이런 것이 없습니다(20:19, 27:64, 18:33, 24:7, 21, 46, 고전 15:4). 모든 사본들은 이 표현을 셋째 날이라고 읽습니다. 또한 삼일 안에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14:58, 2:19~20).

 

오늘날 죽음의 장소에서 볼 수 있는 이스라엘은 이틀 후 셋째 날에 일어날 것입니다(5:13~6:3). 이틀 후는 2,000년 후요, 세 번째 1,000년이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관련 되셨던 것처럼 삼일 후(3,000년 후) 일어나게 될 민족이 이스라엘에 대해 말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와 관계된 이 말은 서로 조화를 이루어야 합니다.

 

거기에는 요나서가 중요합니다. 성경이 사흘 밤낮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방법이기 때문에 그에 대해서도 똑같이 말해져야 합니다. 다시 말해 요나는 이틀 후 셋째 날에 죽은 자로부터 일어났습니다. 요나가 물고기의 뱃속에서 죽었고, 죽음의 장소, 스올Sheol에서 부르짖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2:2). 마찬가지로 3일 후에 일어났습니다. 실제에서 두 부분과 똑같이 서로 조화를 이루어야 합니다.

 

성경은 일곱으로 된 구조와 완벽하게 일치됩니다. 이 일곱으로 된 구조는 창세기 1~2장에서부터 시작합니다. 그리고 일곱 구조는 요한복음 1~2장에서 마찬가지로 시작합니다. 사실 신약성경 구조는 마태복음이 맨 처음에 나와야 하는 것이 아니라 요한복음이 맨 처음에 기록되어야 했습니다. 모든 성경은 일곱 구조로 세워졌습니다. 이 구조는 성경 곳곳에 있는 많은 곳에서 다른 유형을 따라 다루어졌습니다. 예를 들어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안식일은 안식을 위한 다가오는 일곱 번째 날, 천년왕국을 가리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못 박히심과 부활 사이에 맞부딪치는 문제들

어떤 사람이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십자가에 못 박히심과 부활과 관련된 사흘 밤낮이라는 표현을 완전히 72시간으로 이해하려고 하는 것을 따른다면 그 사람은 성경적인 해석상 많은 측면에서 혼란스런 해결할 수 없는 문제에 봉착할 것입니다.

 

이 사람들은 예수께서 보통 십자가에 못 박히심이 수요일에 일어났고, 삼일 밤낮을 가득 채우려고 일요일에 부활하셨다고 보려고 합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심부터 부활하심까지는 72시간입니다. 다른 어떤 날은 그들이 필요하다고 믿는 24시간을 인정받지 못할 것입니다.

 

 

사람은 여러 가지의 해결할 수 없는 문제에 직면하게 됩니다. 이것이 사람들에게 성경적인 해석의 많은 측면에서 혼란을 가져오게 하는 이유입니다.

 

 

1)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

그리스도께서 수요일에 십자가에 못 박히셨다면 적합한 해석이 아닙니다. 대부분 그렇게 해석하고 있지만 72시간도 훨씬 넘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오후 한 낮에 죽으셨다고 기록되었습니다. 이때는 스올/하데스로 내려가신 때입니다. 예수님의 몸은 십자가에서 내려져서 매장을 준비하고, 다음 날이 시작되기 직전 동굴에 넣어졌습니다. 그런 후 예수님은 안식 후 첫날 어떤 때에 일어나셨습니다.

 

수요일에 못 박히셨다면 적어도 75시간 이상이었을 것입니다. 그분의 몸이 동굴에 두었던 시간을 72시간이라고 본다면 합당한 일이 아닐 것입니다. 아마 수요일에 못 박히신 후 72시간을 맞춰 일어나셨다면 안식일 곧 토요일에 부활하셨을 것입니다.

 

삼일 째 되는 날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이 중요합니다. 일요일은 수요일로부터 다섯 번째 날입니다. 세 번째 날이 아니지요. 마태복음 27:63, 마가복음 8:31절에 있는 “3일 후는 겉보기에는 맞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이 표현은 세 번째 날과 조화를 이뤄야 합니다. 그리고 이 날을 말합니다.

 

십자가에 못 박히신 후 큰 날”, “큰 안식일이 중요합니다(19:31). 유월절 후 그날은 무교절(안식일) 첫 날이었습니다. 한 가지 유일한 방법은 사람이 이스라엘 장막에서 규칙적으로 안식일 날 축제의 날을 지켰던 것처럼 큰 안식을 갖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수요일에 못 박히셨다는 것은 맞지 않을 여지가 많습니다.

 

 

2) 성경적인 해석상 혼란스러움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못 박히심과 부활 사이의 72시간에 대한 싸움은 변함없이 수요일 날 십자가에 못 박히셨다는 추측으로 다루어졌기 때문에 일곱으로 된 성경 구조의 나중 부분이 혼란에 빠지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이틀 후 삼일 째 되는 날 일어나셨던 것처럼 그분은 또 2,000년 후 세 번째 1,000(천년왕국)에 일어나실 것입니다.

 

같은 방식으로 이스라엘은 이틀(2,000) 후 삼일 째 되는 날(세 번째 1,000) 하나님의 시야에 살기 위해 일어날 것입니다. “사흘 밤낮이라는 표현을 72시간으로 보려는 것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말씀에 두신 많은 가르침들을 멸망케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하심 사이의 시간이 맞부딪힐 문제가 없다면....

한편 사흘 밤낮이라는 표현을 다룰 때 성경을 고려해서 성경을 해석한다면 이 문제들 중에 단 하나만 존재할 것이고, 모든 것이 합당한 곳에 꼭 들어맞을 것입니다.

 

아무도 설명할 수 없는 것을 설명하려고 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왜냐면 그 자신이 세운 해석을 통해 성경이 그 모든 문제 자체를 설명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구약성경 두 곳에서 요나서 1:17절과 같거나 유사한 표현을 사용했습니다(삼상 30:1, 12~13, 4:16~5:1).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요나서 1:17, 마태복음 12:40절이 이해되도록 성경이 이 두 곳과 연결시키는 것입니다(40:12~20, 42:17~20, 대하 10:5, 12, 27:62~64). 성경이 그 자체를 해석하게 될 때 그 표현이 이해되는 것에 관해 어떤 사람의 생각으로 질문할 여지가 없는 것입니다.

 

구약성경에서는 하루 온 종일을 낮의 일부나 밤을 하루로 계산한다는 것입니다(4:2, 1:13). 24시간은 온 종일이 아닙니다. 성경의 견지에서 보면 금요일 일부, 토요일, 그리고 일요일 일부가 사흘 밤낮이 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마태복음 27:63, 마가복음 8:31절에 있는 삼일 후라는 표현은 네 번째 날에 일어나는 사건을 말하지 않지만 3일 중 세 번째 날에 일어나는 사건을 말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7:63절에 있는 표현은 마태복음 27:64절에서 이해하게 됩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날은 금요일인 것이 분명합니다. 십자가에 못 박히신 후 그 날에 큰 안식일의 문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금요일은 부활이 삼일 째 되는 날(초실절), 일요일에 일어나도록 하는 유일한 날입니다(16:9, 고전 15:20, 23).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일요일로부터 거꾸로 세어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날이 언제인지를 알아내야 합니다. 아마 금요일뿐일 것입니다. 主護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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