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rethren/연(輦)모임 메시지

교회에서의 자매들의 역할

Hernhut 2014. 12. 27. 22:24

질문: 자매(여성)목사/ 복음전파자? 여성이 목사나 복음전파자가 될 수 있는가?

 

최근 몇몇 자매들이 우리 장로들에게 와서는 형제님들, 개신교의 많은 교파들은 자매목사들을 세우는데 우리 교회에서는 왜 그런 실행을 금지하고 있나요?”라고 물었습니다. 그래서 이 문제를 집중해 답해 보려고 합니다. 나는 예전에 한번 특별집회 때에 자매들에 역할을 다룬 적이 있습니다. 오늘 이 특별집회는 자매목사/ 복음전파자의 문제를 다루고자 합니다.

 

오늘날 (개신)교회에서 목사/ 복음전파자로서 섬기는 자매들의 이슈보다 더 핫한 논쟁은 없습니다. 결과적으로 이 논쟁을 형제의 대비로 자매를 보지 않는 것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성경은 자매 사역을 제한하고 있습니다. 자매들은 목사로서 섬기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매들이 복음전파자로서 섬길 수 있습니다. 복음전파자로서 사역을 하는데 제한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남성우월주의나 여성차별의 논쟁이 아닙니다. 이것은 성경적인 해석의 문제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여자는 전적으로 복종하며 조용히 배울지니라. *오직 나는 여자가 가르치거나 남자에게 권위를 행사하는 것을 허락하지 아니하노니 다만 조용할지니라.”(딤전 2:11~12)고 선포하십니다. 교회에서 하나님은 형제와 자매에게 다른 역할들을 맡기십니다. 이것은 사람이 창조된 방식의 결과요, 죄가 세상에 들어오게 한 방식의 결과입니다(딤전 2:13~14).

 

사도바울을 통해 하나님은 가르치는 역할로 섬기는 것에서 자매를 제한하십니다. 하나님은 형제 위에서 영적인 권위를 갖는 것을 제한하십니다. 이것은 형제 위에서 목사로서 섬기는 것에서 자매들을 금지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형제들에게 공개적으로 가르치는 것, 설교하는 것, 영적인 권위를 발휘하는 것을 포함합니다. 아마 여기까지는 개신교회의 모든 교파들이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개신교회의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개신교회의 모든 교파들이 자매목사를 임명하고 있고, 더 확산시켜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무지하다거나 사탄의 속임수에 빠진 것입니다.

 

흔히 사람들은 바울이 1세기의 자매들이 일반적으로 교육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가르치는 것에서 자매들을 금지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것도 잘못된 것입니다. 디모데전서 2:11~14절 어디에도 학력의 정도를 말하지 않습니다. 학력이 사역의 자격이었다면 많은 예수님의 제자들은 자격이 없었을 것입니다.

 

두 번째 반대는 바울이 에베소의 자매만 금지했다는 것입니다. 에베소는 아르테미스의 성전이 있던 곳이었습니다. 아르테미스는 이교도의 한 파()로서 여성이 권위를 가졌던 신이었습니다. 바울은 에베소 우상숭배자들의 여성이 이끄는 관습을 반대하여 금지하는 것뿐이었고, 교회는 달라야 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디모데전서는 아르테미스를 말하는 곳이 어디에도 없습니다. 또 바울은 디모데 2:11~12절에서 금지하는 이유로 아르테미스를 숭배하는 것에 대한 실행을 말하지도 않습니다.

 

세 번째로 바울이 형제와 자매가 아닌 남편과 아내에게만 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디모데전서 2장에 있는 여자남자의 헬라어는 남편과 아내를 말할 수 있지만 그 단어의 기본적인 의미는 그것보다 더 넓은 의미입니다. 더욱이 같은 헬라어가 디모데전서 2:8~10절에서도 사용되었습니다. 남편들만이 화냄과 의심이 없이 기도할 때 거룩한 손을 들었습니까? 아내만이 단정한 옷을 입고, 선한 행동을 하고, 하나님을 예배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디모데전서 2:8~10절은 남편들과 아내들에게만이 아니라 분명하게 모든 남자들과 여자들에게 말합니다. 디모데전서 2:11~14절에는 남편들과 아내들로 좁히는 말이 어디에도 없습니다.

 

네 번째는 구약성경에 있는 미리암, 드보라, 훌다 등 지도자의 위치에 임명된 자매들과 연관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 자매들이 하나님께 특별히 섬기도록 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것이 사실입니다. 그들은 믿음의 모델로서, 격려와 긍정의 지도자들로서 세워진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구약성경에서의 자매의 권위는 신약성경의 교회에서의 목양적 사역의 논쟁과 관련이 없습니다. 신약성경 서신서에는 하나님의 사람들을 위한 새로운 패러다임이 나타납니다. 이 패러다임은 교회요, 그리스도의 몸이요, 한 새 사람입니다. 이 패러다임은 이스라엘 민족이나 구약성경의 모든 사람들이 아니고 교회에 대한 유일한 구조를 포함합니다.

 

유사한 논쟁은 신약성경에 있는 브리스길라와 뵈뵈를 사용하기도 합니다. 사도행전 18장에는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그리스도를 전하는 신실한 사역자들로 나타나 있습니다. 브리스길라가 먼저 언급된 것은 아마 그녀가 사역에 있어 남편보다 더 유명했었음을 가리킵니다. 브리스길라와 그녀의 남편은 아볼로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가르쳤습니까? 그렇습니다. 그들의 집에서 말입니다. 그들은 완전하게 하나님의 길을 아굴라에게 설명해 주었습니다(18:26). 성경은 브리스길라가 교회를 목양했다고 말하나요? 성경은 그녀가 공개적으로 가르쳤다고 말하나요? 성경은 그녀가 성도들의 집회의 영적 지도자가 되었다고 말하나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브리스길라가 디모데전서 2:11~14절과 상반된 행동을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로마서 16:1절에서 뵈뵈는 교회에서 집사()”라 불렸습니다. 그녀는 바울에 의해 높이 칭찬받았습니다. 하지만 브리스길라와 같이 뵈뵈가 교회에서 남성들 중의 목사나 교사가 되었다고 성경에 말하지 않습니다. “가르칠 수 있다는 것은 장로들에게 자격이 주어졌습니다. 하지만 집사들에게 자격이 주어지지 않았습니다(딤전 3:1~13, 1:6~9).

 

디모데전서 2:11~14절은 자매가 확실히 목사가 될 수 없는 이유를 말해 줍니다. 디모데전서13절은 바울이 11~12절에서 말하는 이유로 시작합니다. 왜 자매들은 가르치지 말아야 합니까? 왜 자매들은 남성들의 위에서 권위를 가져서는 안 되는 것입니까? 왜냐면 아담이 먼저 창조되었고 다음이 이브였습니다. 아담이 속지 않고 이브가 속았기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먼저 아담을 창조하셨고, 그런 후 아담을 돕는 자가 되도록 이브를 창조하셨습니다. 창조질서는 가정에서(5:22~33) 와 교회에서 우주적인 적용입니다.

 

이브가 속았다는 사실이 디모데 2:14절에 주어졌습니다. 이것이 자매가 목사로서 섬기지 못하고, 형제 위에서 영적 권위를 갖지 못하는 이유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자매가 잘 속아 넘어가고, 그들이 형제들보다 더 쉽게 넘어간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모든 자매가 더 쉽게 속는다면 왜 그들이 어린이들과 다른 자매들을 가르치도록 할까요? 원문은 단순히 이브가 속았기 때문에 자매가 형제들을 가르치지 못한다고 말하고, 영적인 권위를 가질 수 없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교회에서 가르치는 권위를 주시려고 형제들을 선택하셨습니다.

 

많은 자매들은 대접(待接), 긍휼, 가르침, 신앙, 그리고 돕는 일의 은사에 탁월합니다. 지방교회의 많은 사역을 자매들에게 의지합니다. 교회에서의 자매들은 공개적인 기도와 예언하는 것에서 제한되어 있지 않습니다(고전 11:5). 다만 형제들 위에서 권위를 갖고, 영적인 가르치는 것을 금했습니다. 성경은 자매들이 성령의 은사를 발휘하는 것을 금했다는 말이 없습니다(고전 12:1~31). 형제들 못지않게 자매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사역자들로 불립니다. 자매들은 성령의 열매를 나타내는 사역자들로 불립니다(5:22~23). 길을 잃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파하는 사람들로 불립니다(28:18~20, 1:8, 벧전 3:15).

 

하나님은 교회에서 영적인 가르치는 권위로 봉사하도록 형제들만을 얻으셨습니다. 이것은 반드시 형제가 더 잘 가르치는 자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이것은 자매가 열등하거나 덜 지적이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교회사 기능하도록 계획하신 방법입니다. 형제들은 그들의 삶과 그들의 말을 통해 영적 지도자 직분에서 본을 세우는 것입니다. 자매들은 덜 권위적인 역할을 하게 됩니다. 자매들은 다른 자매들을 가르치도록 격려합니다(2:~5). 성경은 또한 자매들이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을 금지하지 않습니다. 유일하게 자매들은 형제들 위에서 영적인 권위를 갖는 것과 가르치는 것에서 금지되었습니다. 이것이 어떤 의미로 자매들을 덜 중요하게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오히려 하나님의 계획과 그들에게 있는 하나님의 은사로 더 집중하도록 하게 합니다.

 

질문: 교회에서 사역을 수행하기 위한 자매들의 역할은 무엇일까?

미향자매는 교회 사역 안에서 분주히 움직입니다. 형제들이 모여 봉사하는 곳에서도 큰 소리를 내며 이야기를 하기도 합니다. 그 때마다 나이 든 창수형제는 자매, 형제들이 봉사할 때에는 자매는 좀 조용히 하세요. 그리고 형제들의 봉사시간에는 집에서 기도하고 여기에 오지 마세요. 부탁합니다.”라고 말합니다.

 

사역 안에 있는 자매들은 성경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은 동의 할 수 없거나 동의하지 못하는 논쟁이 있습니다. 구별에 대한 관점은 성경구절에 초점을 맞춥니다. 교회에서 자매들이 말하는 것이나 형제들 위에서 영적인 권위를 맡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는 것을 성경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딤전 2:12, 고전 14:34). 의견 충돌은 그 구절들이 쓰인 시대에만 관련이 있다, 혹은 그 시대 이후에도 관련이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라”(3:28)는 것 때문에 자매가 형제들에게 열려 있는 어떤 사역지를 추구하는 것이 자유라고 주장합니다. 다른 사람들은 디모데전서 2:12절이 여전히 오늘날에 적용된다고 주장합니다. 왜냐면 명령의 근원이 문화적인 것이 아니고, 우주적인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주적이라함은 창조의 질서에 근거한다는 의미입니다(딤전 2:13~14).

 

베드로전서 5:1~4절은 장로의 자격을 설명합니다. 신약성경에서 66번 나오는 헬라어 프레스부테로스presbuteros노련한 형제 감독을 가리킵니다. 이 단어의 여성형은 프레스부테라presbutera로 절대 장로나 감독이라는 말에 사용하지 않습니다. 장로의 자격은 디모데전서 3:1~7절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장로의 역할은 장로, 목사, 그리고 감독에 따라 바뀔 수 있습니다(1:6~9, 벧전 5:1~3). 그렇기 때문에 디모데전서 2:12절에 따르면 자매는 가르치거나 형제 위에서 영적인 권위를 발휘하지 말아야 합니다. 가르치도록 양육해야 하고, 모임을 이끌어야 하고, 영적성장을 감독해야 하는 장로와 목사들의 위치(딤전 3:2)는 형제들에게만 구별되어야 하는 것이 분명해 보입니다.

 

물론 대부분의 제자들이 달아났을 때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못 박히심을 증거한 몇 명의 자매들이 있었지만(27:55, 19:25), 자매들의 교회성장에 중요한 역할은 기도하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자매들을 깊이 존경했고, 교회들에게 보내는 그의 많은 편지에 이름을 적어가며 특별한 자매들에게 인사를 했습니다(16:6, 12, 4:15, 4:2~3, 1:2). 바울은 이 자매들을 동역자들이라고 적었습니다. 그리고 그 자매들은 분명히 온 교회의 유익을 위해 주님을 섬겼습니다(4:3, 4:15).

 

사무는 몸의 필요에 맞도록 초기교회에 만들어졌습니다. 많은 현대의 교회들이 장로와 집사의 위치를 바꿀지라도 그들은 같은 사무가 아니었습니다. 물론 장로와 집사는 계급이 아니고 기능의 위치입니다. 집사들은 필요에 따라 물질적인 능력으로 섬기도록 임명되었습니다(6:2~3). 이런 방식으로 섬기려 하는 자매들을 반대하는 제한이 없습니다. 사실상 로마서 16:1절은 뵈뵈자매가 로마교회에 있는 존경받는 자매집사였음을 가리킬 수 있습니다.

 

자매들이 예배지도자, 10대 사역자, 어린이 사역자로서 섬기는 것에서 금지하는 성경적인 판례는 없습니다. 유일하게 제한하는 것은 자매들이 성인 형제들의 영적인 권위의 역할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질문: “자매들이 교회에서 장로들로서 섬길 수 있을까?”

일전에 미향자매는 장로들을 찾아가 형제님들, 제가 다른 교회처럼 신학을 해 목사가 될 수 없을까요? 목사가 되고 싶어요.’라고 말했습니다. 창수형제는 자매여, 우리 장로들에게 고통을 주지 마세요. 자매가 그러면 그럴수록 우리의 사무가 늘어나고 고통에 시달릴 수밖에 없습니다. 교회에서 자매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역할은 집에서 기도하는 것뿐입니다. 공부하는 것은 자매님 자유이지만 목사가 되겠다는 생각은 버리세요.’라고 핀잔을 했습니다.

 

교회에서 자매들이 장로로서 섬길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에는 두 가지 중요한 관점이 있습니다. 하나는 평등론입니다. 이 평등론은 자매들이 디모데전서 3:1~7절과 디도서 1:5~9절에 나열한 것을 그들이 요건을 충족시키는 한 장로들로서 섬길 수 있는 것을 붙잡습니다. 다른 하나는 보완주의론입니다. 자매들은 그리스도의 교회에서 장로의 능력으로 섬기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참고로 우리 교회에서는 후자를 따릅니다.

 

디모데전서 3:1~7절에 기록된 첫 번째 것은 남성형 대명사를 사용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이러한 대명사가 10번 정도 사용되었습니다. 결과적으로 결론부터 말하건대 이 구절을 대충 읽는 성도들도 장로, 감독의 역할이 형제로 수행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한 아내의 남편이라는 구문은 장로의 사무가 형제들로 수행되는 것이라는 것을 가리킵니다. 이 같은 것은 디도서 1:5~9절에서도 유사한 점을 찾을 수 있습니다.

 

이 구절들은 장로들, 감독들의 자격과 직무들이 장로들로서 자매들에게 문이 열려있지 않음을 설명합니다. 사실 일관되게 남성 대명사와 용어를 사용하고 있는 것은 형제들에게만 제한된 장로와 감독들의 사무임을 강하게 주장하는 것입니다. 이 구절에서 다른 사안이 있는데 자매들이 장로로서 섬기는 것에 대한 질문은 남성우월주의의 문제가 아닙니다. 절대 형제들이 자매들보다 훨씬 뛰어나고 우월하다는 문제가 아닙니다. 다만 하나님께서 형제들에게만 장로의 사무를 제한하셨다는 것입니다. 왜냐면 그분께서 교회가 기능을 하도록 그렇게 설계하셨기 때문입니다. 경건한 형제들은 지극히 중요한 돕는 역할로 섬기는 자매들과 함께 지도자들로서 섬기는 것입니다.

 

 

질문: “상호보완주의와 평등주의, 어떤 이론이 성경적으로 옳은가?”

 

미향자매는 우리교회에 나오면서 불만스러움이 많습니다. 가끔 형제들에게 왜 형제와 자매를 차별하는가? 왜 형제들은 하는 일을 허락하고 자매들에게는 제한을 하는가? 다른 교회들은 그렇게 차별하지 않는데 우리교회는 차별을 두는가?’를 묻습니다. ‘자매님, 우리교회가 차별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교회는 지극히 정상적입니다. 자매들에게 제한을 두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하는 것이 평등한 것입니다.’라고 창수형제는 말합니다. 이 둘은 늘 이렇게 충돌합니다.

 

성경적인 형제자매들에 대한 상담에서 상호보완주의는 교회에서 지도자역할로 섬기는 일에서 자매들을 제한하시는 대신에 동등하게 중요한 상호보완적인 역할로 섬기도록 자매들을 부르셨다는 관점을 말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의 평등성에서 평등주의는 교회에서의 성차별로 사역을 금지하는 것은 성경적이지 않다는 관점을 말합니다. 두 관점은 서로 성경적으로 근거했다고 주장합니다. 이 두 관점을 성경이 어떻게 말하는지를 완전하게 검토해보는 것은 지극히 중요한 것입니다.

 

한 면에서는 우리 모두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이기 때문에 성()구분이 없다는 것을 믿는 평등주의자들은 지도자와 가정에서 기능적인 역할에 관해서라면 바꿀 수 있다는 것입니다. 반대개념은 상호보완주의자들로서 자신들에게 말하는 사람들을 따랐습니다. 상호보완주의자 개념은 사람들로서 형제들과 자매들의 본질적인 평등을 믿지만 상호보완주의자들은 사회, 교회, 그리고 가정에서의 기능적인 역할을 할 때 성()구분을 지킵니다.

 

상호보완주의에 대한 유리한 논쟁은 디모데전서 2:9~15절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이 개념은 평등주의의 반대개념으로 보이는 것 같은데 디모데전서 2:12절을 읽어봅시다. 오직 나는 여자가 가르치거나 남자에게 권위를 행사하는 것을 허락하지 아니하노니 다만 조용할지니라.” 바울은 고린도전서 14장에서도 이와 유사하게 말을 했습니다. 너희의 여자들은 교회들 안에서 잠잠할지니 말하는 것이 그들에게 허락되지 아니하였고 또 율법도 말하는 바와 같이 그들은 순종하도록 명령을 받았느니라.”(고전 14:34) 바울은 자매들이 교회에서 형제들에게 권위를 행사하거나 가르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이와 비슷한 구절들이 있습니다. 디모데전서 3:1~13, 디도서 1:6~9절입니다. 이 구절에서도 자매들은 형제들과 같은 교회 지도자직분이 제한받았습니다.

 

본질적으로 평등주의는 갈라디아서 3:28절에 근거를 두는 경우입니다. 이 구절을 읽어볼까요? 거기에는 유대인이나 그리스인이 없고 매인 자나 자유로운 자가 없으며 남자나 여자가 없나니 너희는 다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하나이니라.” 평등주의 개념은 그리스도 안에서 성별이 분리된 관계가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어떻게 갈라디아서 3:28절이 이처럼 이해될까요? 문맥이 이와 같은 해석을 보장합니까? 이 해석이 이 구절의 문맥에 손상을 입히기에 충분합니다. 갈라디아서에서 바울은 사역이 아니고 믿음만으로 의롭게 됨의 큰 진리를 증명하고 있습니다(2:16). 갈라디아서 3:15~29절에서 바울은 율법과 약속 사이에 다른 점으로 의로다 함을 말합니다. 갈라디아서 3:28절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믿음으로 낳은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된 상속자들이라는 바울의 논리에 정확하게 맞습니다(3:29). 이 구절의 문맥은 바울이 교회에서의 역할이 아니고 구원에 대한 말을 하고 있음이 분명합니다. 다시 말해 구원은 민족성, 재정상태, ()등 외적요소와 상관없이 모든 사람들에게 자유롭게 주어진 것입니다. 이 문맥이 교회에서 성() 역할에 적용된다고 질질 끄는 것은 바울이 말하고 있었던 것을 지나치게 상상하는 것입니다.

 

이 논쟁의 핵심과 많은 평등주의자들이 무엇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역할 안에서 다름이 질적인 것, 중요성, 그리고 가치의 차이와 등등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형제들과 자매들은 하나님의 시각과 계획안에서 동등하게 가치를 가졌습니다. 자매들이 형제들보다 열등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교회와 집에서 형제들과 자매들에게 다른 역할을 배정하십니다. 왜냐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기능을 하도록 계획하셨기 때문입니다. 다름과 동등의 진리는 삼위일체 안에 있는 기능적 위계에서 볼 수 있습니다(고전 11:3). 아드님은 아버지께 복종하시고, 성령님은 아버지와 아드님께 복종하십니다. 이 기능적 복종은 본질에 대한 동등한 열등함을 암시하지 않습니다. 세분 모두 동등하신 하나님이십니다. 하지만 세분 모두 기능 안에서 다르십니다. 마찬가지로 형제들과 자매들은 평등한 존재들입니다. 둘 다 하나님의 형상을 동등하게 나누어 가졌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 얻은 역할과 기능이 있습니다. 그런데 왜 오늘날 교회의 질서가 혼란스러울까요?

 

 

질문: “자매들이 교회에서 집사들로서 섬길 수 있는가?”

교회모임이 열릴 때마다 빠지지 않고 모이는 자매들이 있습니다. 충성을 다해 봉사를 합니다. 언젠가 한 자매가 형제님, 자매들이 집사로 섬길 수 없나요? 전 다른 교회에서 이곳으로 와서는 집사에서 자매로 강등된 느낍입니다.”라고 푸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럴 수 있습니다. 자매님, 성경에서 형제든 자매든 뭐라 불렀죠, 오네시모집사, 뵈뵈집사, 아볼로목사, 디모데사도, 디도장로, 마리아집사, 마리아사모.......라고 불렀나요? 그렇지 않죠? 그냥 성도들이고 형제요, 자매들입니다.”라고 답한 적이 있습니다.

 

성경은 자매가 집사로서 섬길 수 있는지, 없는지를 분명하게 말하지 않습니다. 집사들은 존경할만한 형제가 되어야 하고(딤전 3:8), “한 아내의 남편”(딤전 3:12)이 되어야 자격이 있다고 말하는 것은 집사들로서 섬기는 것에 자격이 없음으로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자매 집사를 말하고 있는 디모데전서 3:11절을 아내들로 번역되었기 때문에 자매들로 번역될 수 있다고 해석합니다. 이 해석에 의하면 바울은 집사의 아내들을 말하고 있지 않지만 집사로서 섬기는 자매들을 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8절에서와 마찬가지로 단어를 사용하는 것은 장로들과 집사들에 추가적으로 제 3의 지도자 그룹을 암시할 수 있습니다. 또한 이 해석을 암시하는 것은 장로의 자격을 말할 때 바울은 장로의 아내에 대한 요건을 말하지 않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왜 바울은 집사들의 아내들에 대한 자격을 기록하고 장로의 아내의 자격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을까요? 장로들은 교회에서 더 깊고 중요한 지위를 차지했지만 바울은 그들의 아내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도록 했습니다.

 

집사들의 아내들자매 집사들로서 해석하는 것을 반대하는 무리들이 있습니다. 또 어떤 무리의 사람들은 바울이 디모데 3:8~10절과 12~13절에서 자매 집사들과 함께 집사들의 자격을 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로마서 16:1절은 디모데전서 3:12절에서 바울이 사용하는 같은 단어로 뵈뵈를 말합니다. 하지만 바울이 뵈뵈가 집사라고 말하고 있는지, 종이라고만 말하고 있는지 분명하지 않습니다. 초기교회에서 자매들 종들은 믿는 환우들을 돌보고, 가난한 자들을 돌보고, 나그네 된 순례자들을 돌보며, 감옥에 갇힌 자들을 돌봤습니다. 자매들은 다른 자매들과 아이들을 교육했습니다(2:3~5). 뵈뵈는 공식적인 집사 직무를 할 수 없었지만 바울이 로마에 있는 교회에 편지를 전달하는 엄청난 책무를 맡도록 그녀를 충분히 신뢰했습니다(16:1~2). 분명히 바울은 그녀를 열등하다거나 무능력하다고 보지 않고, 그리스도의 몸의 신뢰할만하고, 가치 있는 지체로서 보았습니다.

 

성경은 집사로서 섬기는 자매들에 대해 적극 지지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에게 반드시 자격이 필요치 않다는 것입니다. 어떤 교회들은 자매 집사들의 직무를 교육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 집사들의 직무에서 자매들의 직무와 구분 짓습니다. 교회가 자매 집사들의 위치를 교육한다면 교회 지도자들은 자매 집사들이 바울이 다른 구절에서 자매들의 사역을 금지하는 것에 대해 복종하도록 보장해야 합니다(딤전 2:11~12). 마찬가지로 교회 지도자들은 그리스도께 권위를 두어야 하고, 교회에 복종해야 합니다.

 

 

 

질문: “디모데전서 3:2절에 있는 한 아내의 남편은 무슨 의미인가? 이혼한 형제는 장로, 목사, 집사로 섬길 수 있는가?”

오늘날 개신교회에 이혼한 성도들이 많습니다. 우리교회에도 이혼한 형제들이 있는데요, 많은 개신교회에서 실행하는 것과 다른 행정을 하는 것에 대해 불만들이 있습니다. 이혼한지 7년이 넘은 한 형제가 주일날 집회 후 장로들의 기도모임에 문을 두들겼습니다. “형제님들, 교회에서 봉사를 하고 싶은데 제가 어떻게 해야 할까요?”라고 물었습니다. 우리는 형제님, 여기 한번 읽어볼래요? 뭐라 하고 있나요?”라고 그 형제에게 디모데전서 3:2절을 읽도록 했습니다.

 

디모데전서 3:2절에 있는 한 아내의 남편이라는 구문에 대한 해석은 적어도 세 가지가 있습니다. 1) 일부다처론자들은 장로, 목사, 감독, 그리고 집사가 될 자격이 없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대부분 구문에 대한 문자적인 해석이지만 바울이 편지를 쓰고 있던 당시에는 일부다처주의가 정말 드물었다고 다소 생각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2) 이 구문은 한 여자의 남자로 번역될 수 있습니다. 이것은 감독이 결혼한 아내에게 전적으로 충실해야 함을 가리킵니다. 이 해석은 혼인여부보다 도덕적 순수성에 더 집중합니다. 3) 이 구문은 장로, 감독, 집사, 그리고 목사가 될 목적으로 재혼한 과부의 경우를 제외하고 형제가 한번 만 결혼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설명하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2), 3)의 해석은 오늘날 일반적으로 만연되어 있는 해석입니다. 2)의 해석은 가장 강하게 퍼져있습니다. 왜냐면 주로 성경이 이례적인 경우에 이혼을 허락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19:9, 고전 7:12~16). 이것은 남자가 그리스도인이 되기 전에 이혼을 하고 재혼을 했는지, 그리스도인이 되고 난 뒤에 이혼하고 재혼을 했는지에 대한 중요한 기준점이 될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자격이 있는 형제가 교회 지도자에서 배제되지 말아야 합니다. 왜냐면 그가 그의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 전에 있었던 행동이기 때문입니다. 비록 디모데전서 3:2절이 장로, 집사, 감독, 그리고 목사로서 섬기는 것에서 이혼하고 재혼한 형제가 배제될 필요가 없다고 할지라도 거기에는 생각해야 할 다른 문제가 있습니다.

 

장로, 집사, 감독, 그리고 목사의 첫 번째 자격은 나무랄 데가 없어야 한다는 것입니다(딤전 3:2). 이혼과 재혼이 교회와 연모임에서 형제들에게 가련한 증거가 된다면 한 아내의 남편이어야 한다는 요구를 하여 그를 배제하기보다 오히려 나무랄 데 없는이라는 말로 대체할 수 있습니다. 장로, 감독, 집사, 목사는 교회와 연모임이 그리스도의 본과 경건한 지도자들의 본을 보일 수 있는 형제가 되어야 합니다. 그의 이혼과 재혼이 이 목적을 손상시킨다면 그는 장로, 감독, 집사, 목사의 위치에서 섬기지 말아야 합니다. 그것을 기억하는 것은 중요한 것입니다. 그런 형제가 장로, 감독, 집사, 목사로서 섬기는 자격이 없기 때문에 그는 그리스도의 몸의 한 귀중한 지체인 것입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영적인 은사를 가지고 있습니다(고전 12:4~7). 그리고 그 은사들로 다른 믿는 이들을 양육하는데 참여하도록 부르심을 입었습니다(고전 12:7). 장로, 감독, 집사, 목사의 위치에 자격이 없는 형제가 여전히 교회에서 가르치고, 전파하고, 섬기고, 기도하고, 예배하고,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질문: “성경은 자매들 음악사역자, 예배지도자들에 관해 뭐라 말하는가?”

피아노와 바이올린과 플롯을 전공한 자매들이 어느 날 우리가 악기로 봉사할 수 없을까요? 아름다운 음률로 하나님을 찬송하고 싶습니다.”라고 연로한 형제들에게 말했습니다. 그 때 그 형제들은 마리아들이여! 하나님을 찬송하겠다는 그 열정이 대단하군요. 헌데, 뭐라 말할 순 없지만 마리아들은 음성으로 하나님을 찬송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라는 대답을 주었습니다.

 

성경이 음악사역자들에 관해 많은 말을 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자매들 음악사역자들과 예배지도자들의 명쾌한 성경적인 위치를 말하기가 어렵습니다. 출애굽기 이후 미리암은 어느 정도 예배지도자로서 기능을 발휘한 사람이었습니다(15:20~21). 남성 레위사람들은 성막에서 예배로 섬기는 자들이 되어야 했습니다(8:25~26, 대상 9:33). 사사기 5장에서 드보라와 바락은 노래로 이스라엘을 이끌었습니다. 사무엘하 19:35, 역대하 35:25절은 노래하는 남자들과 여자들을 언급합니다(2:8).

 

다윗은 노래하는 사람들과 심벌즈, 하프, 트럼펫, 그리고 다른 악기를 사용할 줄 아는 레위사람들 중 남자들을 임명했습니다(대상 15:16~24). 역대상 15:12~13절은 솔로몬 성전 봉헌식장에서 음악을 이끌 레위사람들에 대해 묘사합니다. 성전을 재건할 당시에 레위사람들의 아들들은 성전에서 음악으로 봉사하도록 임명되었습니다(3:10, 12:24). 시편 68:25절은 노래하는 자들이 앞서 가고 악기를 연주하는 자들이 뒤따르니 그들 가운데는 작은북을 치는 처녀들도 있었나이다.”고 말합니다. 여자들은 참여할 수 있었지만 예배를 이끌 수는 없었습니다.

 

신약성경은 그리스도인 교회에서 특정한 악기나 그것으로 예배의 실행을 했었다는 예는 없습니다. 신약성경은 어디에도 여성 음악사역자나 예배지도자에 관한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인 말은 없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디모데전서 2:12절을 가리킨다고 말합니다. 디모데전서 2:12절에는 자매들이 형제들에게 가르치지 못하고, 권위를 갖지 못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예배에서 자매가 형제들을 이끄는 것을 금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원문은 지도자 직분의 다른 형태보다 가르치고, 목양하는데 초점을 맞춤으로 더 잘 이해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배를 이끄는 것은 어떤 권위를 포함합니다. 그런 것이 디모데전서 2:12절을 위반했을 것이라는 것은 의심스러운 것입니다. 무슨 의미로 예배 지도자가 예배자들의 권위를 갖는다는 것입니까? 그렇다면 자매들은 기구들을 사용할 수 있나요? 그리고 목소리로는 할 수 없나요? 어떤 의미에서 자매들이 피아노나 오르간 등 다른 악기 연주로 예배를 이끄는 결과를 낳지 않는 것인가요?

 

나는 분명히 말하건대 성경이 교회에서 자매들이 형제들을 가르치고 예배를 이끄는 것은 금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악기로 예배를 이끄는 것은 형제든 자매든 할 수 없습니다. 일반적으로 말하자면 교회에서 남성 지도자의 본은 일관적입니다. 교회의 음악지도자나 예배지도자의 역할에서 형제들이 가장 좋게 섬기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성경은 역할에서 자매들이 섬기는 것으로부터 금했다는 것이 분명하게 말하지 않습니다. 오늘날 많은 자매들은 목소리로든, 악기로든 예배에서 은사가 뛰어나고, 숙련되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이런 은사들은 틀림없이 무시되거나 방치되지 말아야 합니다만 교회에서의 이런 은사 발휘는 하지 않는 것이 형제들에게 권위를 발휘하지 않는 것입니다. 교회에서의 사역은 시와 찬송가와 영적 노래로 너희 자신에게 말하며 너희 마음속에서 []께 노래하고 선율을 만들며”(5:19)가 가장 적절한 사역일 것입니다.

 

질문: 목사의 아내의 임무와 역할은 무엇인가?

개신교회 교파에서는 목사의 아내를 사모라고 부르고, 언젠가부터 사모가 하나의 직분으로 정착한 것처럼 되었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어떤 사역 가운데 있는 목사의 아내와 관련해 어떤 호칭으로도 부르지 않습니다. 다른 말로 하자면 그런 호칭은 교파의 교리에서 나온 것들입니다. 교회 성직자, 목사의 아내들이 어떻게 되어야 하는지를 알리려고 만든 사람의 교리요, 교파의 교리입니다. 아내의 주된 책임 영역은 남편에게 복종하는 것이요, 남편을 지지하는 것입니다(5:22~24). 주님께서 사역 안으로 형제를 부르신다면 주님은 형제의 아내와 그의 가족 전체를 포함해 부르십니다.

 

디모데전서 3장에서 사도바울은 감독의 자격을 우리에게 말합니다. 디모데전서 3:4절에서 자기 집을 잘 다스려서 자기 자녀들을 모든 위엄으로 복종시키는 자라야 할 것이며한다고 말합니다. “잘 다스린다는 것은 남편(아빠)을 사랑하고 존경함으로서 복종하는 아내와 아이들로 성경적인 남편이 되게 하는 관용구입니다. 자신의 가정의 머리가 되는 목사는 교회 안에서 지도자로서 더 성공적일 것입니다. 물론 이것은 그의 아내가 교회와 마찬가지로 사역 안에서 그의 돕는 자가 된다는 의미입니다. 사역은 가정생활뿐만 아니라 삶의 전 영역에서 동역입니다.

 

아내는 목사의 일을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목사와 그의 아내는 하나님의 일을 하기 위한 함께 멍에를 진 한 팀입니다. 그 소수의 사람들은 이런 실재를 알고, 목사의 아내를 궁지에 몰기를 원하고, 집안 살림을 유지하도록 하고, 남편을 위해 기도로 지원하도록 합니다. 그것은 분명하게 그녀의 책임입니다. 하지만 아주 빈번하게 목사의 아내가 사역에서 사용해야 하고 사용할 수 있는 은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반면, 남편이 목사인 자매들이 있고, 그들은 그의 사역으로 그것을 보고, 어떤 방식으로든 사역 안으로 들어가지 말라고 합니다. 이 두 가지 생각은 모든 일이 하나님께 영광을 가져오도록 균형이 되어야 합니다. 활동적이고, 외향적인 목사의 아내는 하나님의 일에 있어서 오늘날 무관심의 분위기 가운데 있는 교회에 있어 귀중한 자산입니다.

 

 

질문: “자매들이 교회에서 조용해야 하는가?”

 

고린도전서 14: 33~35절을 읽읍시다. 성도들의 모든 교회에서처럼 [하나님]은 혼란의 창시자가 아니요, 화평의 창시자시니라. *너희의 여자들은 교회들 안에서 잠잠할지니 말하는 것이 그들에게 허락되지 아니하였고 또 율법도 말하는 바와 같이 그들은 순종하도록 명령을 받았느니라. *만일 그들이 무엇을 배우려거든 집에서 자기 남편에게 물을지니 여자들이 교회에서 말하는 것은 수치스러운 일이니라.”

 

처음에는 이것이 교회에서 자매들이 전혀 말하지 못하도록 하는 전반적인 명령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고린도전서 11:5절에서 바울은 자매들이 기도하는 것과 예언하는 것을 할 수 있도록 언급합니다. 우리는 연로한 자매들이 젊은 자매들을 가르친다고 알고 있습니다(2:4). 그러므로 고린도전서 14:33~35절은 자매들이 교회에서 항상 조용하라는 절대명령이 되지 말아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14장과 많은 서신서들은 교회 안에서의 질서와 조직이 있습니다. 고린도교회에는 그 모임에서 혼란함이 있었고, 걷잡을 수 없는 무질서가 있었음이 기록되었습니다(고전 14:33). 이 책에는 장로들이나 목사들에 대해 언급함이 없었음이 흥미롭습니다. 예언하는 자들을 통제하지 않고 있었습니다(고전 14:29, 32, 37). 교회 봉사 가운데 있는 모든 사람들은 그들이 갈망하던 것이 무엇이든, 그들이 갈망할 때가 언제든 참여하고 있었습니다. 결과적으로 방언의 은사를 가진 사람들은 일제히 말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계시를 받은 사람들은 닥치는 대로 외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말한 것에 대해 해석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모임은 빠르게 혼란으로 빠져들었습니다.

 

고린도교회의 혼란 부분은 방언을 말하는 것과 예언하는 자매들을 포함했습니다. 이 자매들은 교회에서 권위에 복종하는 대신에 봉사로 이끌고 있었습니다(딤전 2:11~15). 겉보기에는 고린도교회에 있는 어떤 자매들은 이미 혼란에 빠진 봉사를 하는 동안 분열을 시키는 질문으로 질서를 문란하게 했었습니다. 바울을 통한 하나님의 지시는 자매들이 예언하는 것(고전 14:29~33)과 방언을 말하는 것(고전 14:27~28)을 포함해 교회에서 계속해서 조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고전 14:34). 이 규칙은 고린도교회만이 아니고 모든 성도들의 모임을 위한 것입니다(고전 14:33). 어떤 사람이 예언의 은사가 있다면 형제나 자매는 이 문제에 있어 사도 바울의 권위를 인정할 것입니다(고전 14:36~38).

 

고린도전서 14:34절의 명령은 자매들이 전 시간에 교회에서 완전히 조용해야 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 명령은 모임에서 예언과 방언과 방언 통역하는 것에 참여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것들은 교회에서 가르치는 것이요, 권위를 발휘하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역할은 형제들에게만 맡겨졌습니다(딤전 2:11~12). 자매들은 교회에서 많은 역할을 가질 수 있고, 사역에서 동역자들이 될 수 있습니다(4:3).

'the Brethren > 연(輦)모임 메시지'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하나님의 소유된 사람 되기(2)  (0) 2015.02.05
하나님의 소유된 사람 되기(1)  (0) 2015.02.04
사흘 밤낮  (0) 2014.11.14
요나  (0) 2014.11.12
하나님의 아들들   (0) 2014.11.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