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rethren/연(輦)모임 메시지

하나님의 소유된 사람 되기(2)

Hernhut 2015. 2. 5. 19:29

 

 

3. (수르)

 

모세가 홍해에서 이스라엘을 인도하매 그들이 나와서 수르 광야로 들어가서 거기서 사흘길을 행하였으나 물을 얻지 못하고”(15:22).

 

우리가 구원을 받자마자 이집트를 떠나 홍해를 건넘으로 침례를 받고, (수르)의 광야에서 우리 자신을 찾습니다. 이곳은 새로 믿는 이에게 위험한 곳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발전을 위해서는 필요한 단계입니다.

 

수르라는 단어는 벽들을 의미합니다. 여기에는 물리적인 어떤 벽이 없었습니다. 사막만이 있을 뿐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벽이 있었습니다. 홍해라는 벽이 있었는데 그들은 거기를 건넜습니다. 홍해라는 벽은 그들이 영원히 이집트로 돌아오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 뒤에 있는 벽

이집트를 급하게 떠나려고 했던 어떤 사람들이 실수 했던 것은 그들이 어떤 것을 가지고 가는 것을 잊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그것을 위해 되돌아가기를 원했을 수도 있었지만 홍해가 그들을 둘러싸 가로막았습니다. 그들이 잠을 잤을 때 그것에 대해 꿈을 꿨을지도 모르지만 그들은 전처럼 다시금 그것을 즐길 수 없을 것입니다. 그들이 물을 건너는 동안 그것에 대해 미련을 가졌을 수도 있지만 그들은 돌아갈 수 없었습니다. 이집트는 영원히 사라졌습니다.

 

많은 새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 이전 그들의 옛 생명으로 되돌아가려고 합니다. 그들은 세상에서 즐겼던 것을 합니다. 거기에는 그들을 멈추게 할 물질적인 벽이 없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되돌아가려고 할 때 그들은 돌아갈 수 없습니다. 그들은 옛 습관 안에서 충족하려고 하지만 그들은 더 이상 같은 것을 맛보지 못합니다. 그들의 옛 친구들은 그들을 옛 방식으로 격려하려고 하지만 그들은 전처럼 그것들을 누릴 수 없습니다. 거기엔 벽이 있습니다.

 

우리 앞에 있는 벽

이스라엘 자손들 중 어떤 이들은 더 나아가기 원하고, 해방의 새 생명을 탐험하려고 주님을 따르기를 원했습니다. 하지만 거기에는 물 부족이라는 또 다른 벽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어떻게 물 없이 앞을 향해 갈 수 있었을까요? 그들은 주님을 신뢰하기 원했지만 어떻게 하는 것인지 몰랐습니다. 그들은 이집트에서 기적적인 구원으로 옮기시는 그분의 손을 볼 수 있었고, 그들이 안전하게 건넌 홍해와 같은 곳에서 파라오의 군대를 쓸어버리신 그분을 볼 수 있었지만 앞에 놓여 있던 극복할 수 없는 벽처럼 보인 마른 광야에서 날마다 물을 위해 그분을 신뢰할 수 있었습니다.

 

그들과 같이 새로운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으로 돌아갈 수 없고, 그들은 또한 앞을 향해 가는 방법도 모릅니다. 그들은 주님을 사랑하기 원하지만 사랑할 수 없습니다. 그들은 그분을 섬기기를 원하지만 섬길 수 없습니다. 그들은 그들이 다른 사람들이 하는 것을 보는 것처럼 교회 모임을 누리기를 원하지만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그들이 성경을 연구하기 원하지만 성경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들이 기도하기 원하지만 잠에 빠집니다. 그들이 복음을 전하기 원하지만 두려워합니다. 그들이 교회 집회에 참여하기 원하지만 집회를 지루해 합니다. 그들은 어디에서 물을 공급 받지? 내가 자라기 원하지만 방법을 모른다!”라고 묻습니다.

 

주님을 따르는 것은 쉽지 않다. 우리는 진실로 우리가 그분의 부르심에 응답하기 원한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그 후 그분은 우리에게 어려운 어떤 것을 물으십니다. 그분은 우리의 약속된 직업, 미래의 계획, 그분의 목적을 위한 모든 희생을 포기하라고 우리에게 말씀하실 수 있습니다. 그분은 그분의 노예로서 그분만의 것이 되도록 우리를 부르십니다. 우리는 대답할 방법을 알지 못합니다. 우리는 라고 그분께 말하기 원하지만 우리는 강하지 못합니다. 이와 같은 때에 우리는 거기에 벽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지 못합니다.

 

관심이 필요함

술은 젊은이들에게 가장 위험한 곳입니다. 그들은 돌아갈 수도 없고, 앞으로 나아갈 수도 없습니다. 그들은 높은 벽으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여러 가지 점에서 그들의 삶은 믿지 않는 것보다 더 어렵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영적으로 죽습니다. 이곳은 교회에서 훨씬 더 체험한 사람들의 가장 큰 관심이 필요한 곳입니다. 이 먼저 된 사람들은 젊은이들과 함께 있기를 가장 좋아해야 하고, 그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기를 좋아해야 합니다. 가능하다면 몇 가정들이 그들을 함께 도울 수 있습니다. 젊은이들은 그들에게 영적인 것들을 알려주는데 도움을 줄, 그들의 친구가 되어 줄 장로들이 필요합니다. 장로들은 찬송을 부르는 것을 도울 필요가 있고, 성경을 읽는 것을 도울 필요가 있으며, 주님을 만지는 것을 도울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면 그 젊은이들은 이 단계를 통과할 수 있습니다.

 

4. 마라

 

마라에 이르렀더니 그곳 물이 써서 마시지 못하겠으므로 그 이름을 마라라 하였더라 *백성이 모세를 대하여 원망하여 가로되 우리가 무엇을 마실까 하매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한 나무를 지시하시니 그가 물에 던지매 물이 달아졌더라 거기서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법도와 율례를 정하시고 그들을 시험하실쌔”(15:23~25)

 

이스라엘 자손들은 주님께서 자신들에게 물을 주실 것이라고 믿었던 마라로 이동해 그들이 그 곳의 물을 마셨을 때 물 맛이 써서 마실 수가 없었습니다. 그 물은 오염되었거나 독성이 없었습니다. 주님은 그들에게 해로운 것은 절대 주시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그 물은 맛이 좋지 않았을 뿐이었습니다. 그 물은 그들이 이집트에서 사용했던 단 물과 같은 맛이 나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맛에는 그 물이 썼습니다. 이 물은 마시기가 어렵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입맛

입맛은 흥미롭습니다. 사람에게 좋은 것처럼 보이는 것은 또 다른 사람에게는 참기가 어려울 수 있습니다. 아주 매운 음식이 어떤 사람에게는 달콤한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짠 음식을 좋아하고, 어떤 사람은 싱거운 음식을 좋아합니다. 우리는 그들의 집을 장식하는 방식으로, 그들이 듣는 음악의 종류로, 그들이 입는 옷 스타일로 그들이 운전하는 차의 종류나 색깔로 사람들의 입맛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 입맛이 달콤함을 느낄 때 어떤 사람들은 우리가 쓰다고 생각한 것을 좋아할 수 있습니다. 불행하게도 좋아하는 음악 스타일로도 때로는 싸움을 일으키고, 심지어 교회 안에서 분열이 일어납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교회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우리를 밀어 넣으십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와 같은 환경과 사람들 안에서 서로 존중하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우리의 입맛을 내도록 하십니다. 그분은 뒤에서 우리가 어떤 다른 것을 좋아하지 말아야 한다고 절대 말씀하시지 않을 것입니다. 그분은 다른 모든 것을 제외하고 우리가 그분만을 사랑하고, 누려야 한다고 우리에게 절대 말씀하시지 않을 것입니다. 그분께서 그렇게 하셨다면 우리는 살수 없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많은 것들을 우리가 누리게 하시지만 그 맛은 하나님의 맛을 따라가야 합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사랑하시고 그분의 교회를 사랑하십니다. 그분은 우리가 해를 받는 어떤 것으로 절대 채우시지 않으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많은 것에 후하게 채우십니다. 한 중국인 친구는 꽃병 모으기를 좋아합니다. 그의 기호에 따라 많은 꽃병들을 사들입니다. 사람들이 자신의 집을 방문할 때 장식해 놓은 꽃병들을 보여줍니다. 한번은 그 친구가 아주 비싼 꽃병을 구입하는 것을 주저 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아무 말씀도 하시지 않으셨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의 입맛이 그것이 죄짓게 하는 것이었다면 하나님은 많은 말씀을 하셨을 것입니다.

 

왜 마라에 있는 물맛이 쓸까요? 마라의 물맛이 쓴 이유는 우리의 입맛이 문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집트의 달콤한 물맛만을 가지고 있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기 원하시는 물은 좋아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쓴 맛이 나는 그분의 물에 설탕을 첨가합니다. 우리는 트롯, 댄스뮤직, 힙합, 팝송 등의 음악을 좋아하지만 찬송은 쓴 맛이 납니다. 우리는 소설을 좋아합니다. 하지만 성경은 쓴 맛이 납니다. 우리는 휴가가기를 좋아하지만 교회집회가기는 쓴 맛이 납니다. 우리는 텔레비전을 보며 시간을 보내기를 좋아하지만 성도들을 방문하기는 쓴 맛이 납니다. 우리가 언젠가 그만두게 될 회사에 가기를 좋아하지만 주님을 섬기는 것은 아주 쓴 맛이 납니다.

 

하나님의 입맛

형제들은 그들이 나의 섬기는 것이 얼마나 칭찬할만한지를 내게 말합니다. 내가 그들과 그들의 교회에게 얼마나 축복이 되는지를 내게 말하곤 합니다. 하지만 그들은 그들의 자녀들이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직업을 가지라고 말합니다. 그들이 나의 생활과 많은 섬김을 칭찬한다면 왜 그들은 나를 좋아하라고 말하지 않을까요? 왜 그들의 자녀들에게 주님께 그들 자신을 포기하고 그분을 따르라고 격려하지 않나요? 주님께서 좋아하시는 맛을 발전시키는 것은 모든 사람에게는 힘든 시련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좋아하는 것을 가지고 있고, 하나님은 그분께서 좋아하시는 것을 가지고 있으십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분의 입맛에 따라 하늘에 속한 물을 우리에게 주시기 원하십니다. , 공급, 그리고 만족은 모두 유용할 수 있지만 우리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에 따라 그것을 가져야합니다.

 

십자가

물이 쓰다고 말하지 마십시오. 물은 쓰지 않을 수 있습니다. 쓴 물에 설탕을 가미해 사용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나뭇가지를 꺾어 물에 던지라고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나무는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대표합니다. 우리가 설탕을 추가하여 쓴 맛을 줄일 수 있기에 물 안으로 던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십자가의 주님의 사역을 체험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하나님의 입맛에 맞는 우리의 입맛을 발전시키기 원한다고 주님께 말해야 합니다. 우리가 성경의 지루한 부분을 만난다면 우리는 거기서 입맛을 향상시키고, 행동부분부터 읽기 시작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파하기가 두렵다면 우리는 더 체험한 성도들과 함께 갈 수 있고 듣도록 할 수 있습니다. 복음에 대한 우리의 입맛은 자라기 시작할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주님을 만족케 할 것들을 사랑하기 시작할 것입니다. 이것이 입맛입니다. 십자가 적용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 서기 시작합니다. 우리가 썼다고 생각하는 것은 우리의 만족과 누림이 됩니다.

主護村